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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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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김탁환이라는 작가를 검색해서 그의 소설들을 찾아 읽는 나를 발견했다. 정도전을 다룬 <혁명>이야 드라마를 보고 찾아아읽었지만 개항기 대한제국의 근대 은행 설립을 다룬 <뱅크>와 러시아 공사관이 들어오며 러시아 역관이 개입된 사기극 <노서아 가비>는 작가를 검색해서 읽게 된 책이다.

 

책장을 덮을 때까지 흥미진진했다. 한국사에 애정을 갖고 공부한 역사마니아라 우리 역사를 얼마나 생생히 되살리고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좋고 셜록홈즈 전집과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을 소장할 만큼 추리소설을 좋아하는데 잘 짜여진 플롯을 통해 펼쳐지는 추리소설이라 좋았다. 광활한 역사와 조밀한 추리를 모두 다루자면 장편일 수 밖에 없으니 분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더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싶어 기대가 되는 것도 김탁환 작품들의 특징이라 생각하며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김탁환의 두 권 짜리 책이 나왔다는 블로그 글을 읽고는 냅다 책을 잡았다.

 

국가의 부가 증가하여 먹고 삶에서 벗어난 이들이 많으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지적 호기심을 채우려고도, 단순한 여흥으로도 책이라는 걸 찾게 마련이다. 조선후기에 농업이 발달하고 생산활동이 증가하면서 그림에서는 민화가 유행했고, 판소리 가면극도 유행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자야 워낙 어려운 문자니 서민들이 배우기 어려웠으니 밑으로 파급되는 효과가 적었지만 그 틈새 시장을 언문소설들이 채워가기 시작했다.

 

단편들은 시시하다고 열 권, 스무 권, 오십 권 이상의 장편소설, 그러니까 대소설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재주 있으나 그 재주를 풀어낼 기회를 차단당한 집안의 여자들과 평생 궁궐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아야 했던 궁녀들의 공간 궁중에서는 홀로, 또는 여럿이서 대소설을 읽는 풍조가 널리 퍼져 나갔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나 할까?

 

그럴수록 소설의 중심 이야기도 가문의 혼사와 번영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이 분야야 말로 여성들의 권한이 막강하기도 할 뿐더러 주요 관심사이기도 했으니 독자를 겨냥한 변화라고 볼 수 있겠다.

 

<대소설의 시대>는 이런 조선후기,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커진 여성들의 목소리와 폭발적으로 늘어난 소설, 그것도 대소설(장편소설)에 대한 이야기이다.

 

셜록 홈즈의 활약상을 전해주는 왓슨처럼 추리에도 보통 사람들보다는 뛰어나지만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은, 소설에는 관심이 많아서 습작도 하고 있는 의금부도사 이명방이 조선의 셜록 홈즈 김진이 사건을 해결해 가는 활약상을 독자들에게 생생히 이야기한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글이든 완벽한 것을 창조하고 싶은 욕망과 생노병사에 갇힌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고, 모차라트를 질투한 살리에르처럼 천재를 질투하지만 도저히 그 경지에는 이룰수 없어 좌절하지만 천재가 누리는 영광은 갖고 싶은 이류 예술가의 욕망도 드러난다.

 

의형제를 살해하고 스승의 업적을 가로채려는 음모가 밝혀지는 과정에서 조선후기에 청나라로부터 들여온 <천주실의>라는 책을 통해 자생적으로 천주교를 믿게 된 영정조 시대의 역사적 격동 상황도 드러난다. 박제가의 건의를 받아들여 서얼허통을 비롯한 많은 개혁이 이루어지게 된 이야기들도 살짝 엿보이고.

 

이렇듯 격변의 역사를 살아낸 실재와 가상의 인물들을 동원해 인간사의 희노애락과 질곡을 스펙터클하게 그려내면서도 끝까지 범인의 궁금증을 남겨두어 책장을 덮을 때까지 긴장감을 늧추지 않은 작가 덕분에 <대소설의 시대>를 읽는 한 주가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웠다.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 더해져 대소설을 그토록 애독했던 조선 여인들의 삶을 통해서는 아직도 현실에 존재하는 유리천정과 육아와 일을 왔다갔다 하느라 허덕이는 요즘 여자들을 비추어봤고, <산해인연록>을 쓰면서 가졌던 노작가 임두의 소설에 대한 생각, 김진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난 사회를 반영하는 소설의 의미와 작가의 노력에 대한 문학적 비평을 통해서는 작가 김탁환이 소설을 쓰며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자신의 목소리를 담지 않았을까 싶어 좀더 유심히 읽게 되었다.

 

대작가의 스물 넷 시절, 인생의 가장 밝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소설은 함께 읽고, 즐겁게 읽고, 그 즐거움을 나눌 때 진정한 빛을 바라니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 아니 모든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스물 넷 임두처럼 하기를 바란다는 독자들에 대한 당부처럼 읽혔다.

 

역사가 삶으로 와닿고, 소설이 나눔으로 와닿는 즐거운 경험이었으니 나도 내가 본 책을 좋은 사람과 나누어야겟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의빈과 혜경궁 한씨가 ,산해인연록>을 다 읽고 나서 허전함과 동시에 다음 작품을 기대했듯 나도 김탁환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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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해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42
맥스 아마토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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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는 꼭 우리 집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어지르고 나는 조금 치우고, 나도 조금 어지르고 남편은 많이 많이 치우고.

나는 아이들에게 따라다니면서 제발 제자리에 놓든지, 한 쪽으로라도 치워서 지나다닐 때 걸리지 않게 하라고 야단친다.

남편은 나에게 제발 책 좀 치우라고, 제자리에 놓으라고 잔소리 잔소리 해 댄다.

 

분홍색 지우개는 아무 것도 없는 깨끗한 여백을 보며 너무나도 행복해 한다. 자기 소임을 다하고 뿌듯해 하는 남편을 보는것 같아 웃음이 난다. 그러다 아이들이 하나 둘 학교에서 돌아오고 장난감이 여기저기 뒹굴고 내 책들이 식탁과 소파와 책상에 한 두 권씩 펼쳐지기 시작하면 남편은 쫓아다니면서 치우느라 에너지가 소진되기 시작한다. 노랑이 연필이 하얀 여백에 까만 자국들을 남기기 시작하자 바빠지는 재우개처럼.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지우개는 지치고, 자기 본능을 주체하지 못한 연필은 지우개를 약올리는것 마냥 온 종이를 까맣게 물들이느라 몽당몽당 키가 줄어들면서 지처가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지우개의 노력은 가상하다. 어떻게든 까망을 하양으로 바꿔내려고 온 몸을 바치며 돌아다닌다. 하나는 그러야 하는 본성으로 태어났고, 하나는 지워야 하는 본성으로 타고났으니 애초에 타협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누구 하나가 지처 나가떨어질 때까지 이렇게 되풀이되어야만 할까?

 

책을 덮으며 조금 서글퍼 진다.

 

함께 보던 아들도 우리 집을 떠올렸는지 지우개가 아빠같다고 낄낄 웃는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아빠가 지처 화내고 짜증내기 전에 적당히 어지르고 대충이라도 치우자고 말해 본다. 서로서로 조금은 반성하며 책상 위의 종이들을 한 줄로 쌓고 버릴 건 버리고 만화책들은 제자리에 꽂는다.

 

남편이 한 말을 다시 떠올린다. 정리 못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자기도 적당히 봐줄테니 장난감은 다 놀고 카펫 위에라도 모아 놓고 내 책들은 내 책상에서만 마음껏 어지르라고. 식탁에서 책을 읽은 다음에는 식탁 아래 앉은뱅이 소파에 쌓아두라고.

 

남편이 지우개처럼 지치지 않기를 바라고 아빠가 장난감을 장농에 다 집어 넣고 며칠 동안 못 가지고 놀게 하는 일 없도록 반성 또 반성하면서 정리 좋아하는 아빠를 존중해주자고.

 

이렇게 그림책 한 권으로 우리 가족은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마음을 다시 끄집어 낸다. 그림책에 나오는 분홍 지우개와 연필보다는 행복한 결말을 위하여!

 

하얀 도화지에 아들에게 이야기 한 두 컷을 덧붙여보자고 했더니 노력은 하겠지만 아빠의 참을성도 조금은 더 필요할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는 게 아니니 쬐끔은 봐줘야 한다는 말과 함께.

 

글도 별로 없고, 그림도 지우개와 연필처럼 단순한 어찌 보면 벌것 아닌 그림책이지만 아들과 나는 한동안 즐겁게 놀고 의미 있는 되돌아봄과 깨달음과 실천의지도 불태우며 즐겁게 즐겁게 놀았다. 평범한 일상이기에 십게 공감하고, 여백이 많기에 더 많이 조잘거릴수 있었던 게 아닐까?

 

간만에 재미있는 그림책 한 권이 이렇게 행복할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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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시계가 멈춰도 아이들은 자란다 - 열일곱 꽃다운친구들의 갭이어 이야기
이수진.정신실 지음 / 우리학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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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내가 제일 많이강조한 것은 일기쓰기와 책 일기였다. 학교에서 내 주는 기본적인 숙제야 해 가야 하겠지만 변화무쌍한 인생에서 길잡이가 되어주고 배움의 동력이 되어주는 것이 책을 읽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과 내 생각을 글로 전달하고 정리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식을 넓히고 감성을 넓힌다는 독서교육 프로그램 없이 그냥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고 모르는 단어 찾아보고, 가끔은 북카페에 가서도 읽으며 책은 재미있는 것, 내가 원할 때 읽고 배우는 일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살짝 성공한 듯 보였다. 아들은 검색이라는 이름으로 원하는 물건을 찾았고, 원하는 축구 용어와 야구 용어를 찾았고, 원하는 축구 중계 목록과 축구 책 싸게 사는 방법들을 찾았다. 다양한 설명서를 읽고 레고를 조립했고, 1000피스짜리 직소퍼즐을 잘 맞추는 방법을 사이버 상에서 전수받았다.

 

이런 것들이 수학의 정비례와 반비례보다, 영어 단어 몇 개 보다 앞으로의 삶에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좀더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삶의 교훈으로 삼을 만한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함께 역사를 읽고 사극도 보고, 엄마가 읽은 책들을 쉬운 말로 나누는 가족 티타임 시간도 가졌다.

 

초등학교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중학생이 되니 초등학교 때 했던 많은 일들이 미루어졌다. 하루에 책 한 권은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지고 독서는 생각날 때마다 하는 잔소리가 되어버렸다. 중학교 1학년 때 배우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국어가 좋지만 영어, 수학을 어디까지 기본으로 해 둬야 나중에 손해를 덜 볼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자유학년제라 시험도 안 보는데도, 내 아이는 그 흔한 영수학원 하나 안 다니는데도 영어와 수학 얘기를 하며 에너지를 쏟다 보니 함께 책 읽을 시간은 줄고, 힘든 영수하느라 지쳤다고 아들은 다른 것은 시키지 말라고 아우성이다. 뭘 크게 시킨 것도 없는데 말이다.

 

학교에서 이렇게 많이 공부하고 왔는데 또 공부를 해야 하다니! 선생님은 저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기발하고 창의적인 수행평가들, 학원 하나 안 다니는 내 아이가 이렇게 바빠보이는데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학교 공부에 독서에, 그 많은 스펙들을 쌓는지 신기했다. 아마도 내가 너무 게으르든지, 내가 너무 마음이 좋아서 아이를 그냥 풀어줘서 그렇겠지.

 

한편으로는 아이가 참 불쌍하다 싶었다. 나중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실감하지 못하는 두루뭉술한 선고유애 같은 말장난 때문에 관심도 없고, 어렵기도 한 저 많은 과목의 시험준비를 해야 하고, 영어, 수학은 해도해도 끝이 없다고 자꾸 하라고 하고......

 

학교에 적을 두었으니 적을 두는 동안에는 학교 생활에 충실하면서 성실하게 사는 버릇을 연습해 둬야 나중에 좀 힘들고 불편한 일이 있어도 참고 넘길거라고 시험 때면 시험 준비, 수행 때는 수행 평가 준비를 하라고 하지만 그것도 참 어렵다. 어디까지가 기본이고, 어디까지가 성실한 것인지 아이와 엄마의 기준은 참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렇게 정신없는 아이들에게 중3이 되면 진로고민이 찾아온다. 내 아이도 곧 겪을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목적 없이 충실하기만 해서야 어디 조용히, 깊이 고민할 틈이라도 있을까 싶다. 고등학교 들어가면 더 정신없다고 미리미리 정하고 가자는데 그러기에는 아이들의 경험치도 너무 얕고 접한 정보도 별로 없고. 빠져봤어야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아는데, 아이들은 무언가 빠져보기도 전에 정신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하지 않았던가!

 

이런 내 아이에게 1년을 쉬게 해 주고 싶었다. 부모가 여력이 되는 만큼 함께 책 읽고, 동네를 어슬렁거려도 보고, 같이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내일 걱정 없이 밤새 이야기도 해 보고......

그런 여유 속에서, 아니면 심심하다 심심하다 지쳐서 자기를 돌아보고 앞으로 재미있게 살 궁리를 해 주면 좋겠다 싶었다. 사실 큰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언젠가 때가 오면 이렇게 인생의 여백 한 장면 만들어 스스로 채워가게 해 주고 싶었다. 아이가 선택해야 가치 있는 여백의 시간이기에 초등학교 졸업할 때는 그냥 말만 했고, 중학교 들어가면서는 중학교 졸업하고 1년 쉬는 경우,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면서 아무 때나 1년 쉬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대학을 가도 좋고, 안 가도 좋고, 사업계획이 확실하면 사회에 바로 나가는 것도 괜찮다고 했었다.

 

말은 이렇게 해 놓고도 사실 좀 두려웠다. 정말로 아들이 1년 쉰다고 하면 내가 그 모든 것을 참아낼수 있을까? 빠듯한 살림살이에 아들의 여백을 뭔가 특별하고 멋진 활동들로 채워줘야 할텐데 돈은 얼마나 들까?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놀기만 하다 끝나버릴수도 있겠지?  그런 시간을 내가 오롯이 지켜보며 벼텨낼 인격이 될까? 친척들은 난리도 아니겠지.

 

내 아이의 내신등급이 인격 등급이 되고, 부모까지 같은 등급으로 묶여지는 고등학교에서 내 아이를 목적 없이 혹사시키기보다는 1년 쉬면서 자기 관심사를 찾고 자기 목적을 찾게 해 주고 싶으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 그래도 남들 다 가는 무난한 길로 가는게 제일 안전하지 싶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 두번씩 이리 출렁 저리 출렁 마음이 요동치는 요즘 때마침 이 책을 접했다. 내가 내 소중한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고 함께 걸어가 보고 싶은 길을 먼저 걸어본 이들의 이야기는 오지탐험을 앞둔 여행자가 오지 여행기를 읽는 심정보다도 더 절실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 '나만 이런 생각을 하며 산게 아니구나', '용감하게 도전하고 그 결과도 아름다웠구나' 먼 이국 땅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것 마냥 반갑고 고마웠다. 어찌나 힘이 되는지! 내 아들이 '꽃다운 친구들'이라는 모임에서 함께 활돋하는 1년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쉰다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세삼 느끼게 해 주는 절절한 단락들이 참 많았다. 나의 용기보다는 내 아이의 용기가 중요하고, 내 결정보다는 내 아이의 결정이 중요하고, 우리는 그저 지켜보며 응원해야 한다는 것도 세삼 와닿았다. 아들이 결정하면 친척들의 왈가왈부를 최선을 다해 막아주고 옆에 있어주는 일을 하면 되는구나! 그런데 그게 참 힘들겠구나! 그래도 해 볼 만한 가치가 있겠구니! 이 책은 내가 읽는게 아니라 나와 아이가 함께 읽고, 부부가 함께 읽고 아이의 입을 바라보고 기다려야 하는 일이구나!

 

아마 내 아이는 이 책의 주인공인 '꽃다운 친구들'처럼 1년 쉼을 거부할 수도 있다. 아니면 몇 년 후에 쉼이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 모든 청소년들이 당장 꽃친과 같은 여백을 꿈꾸든 꿈꾸지 않든 이 책은 많은 이들에게 참 의미있는 길을 열어주는 책인것 같다. 어떤 길을 가든 아이의 길은 아이가 앞장서 가며 우리를 손짓하게 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부모가 그토록 바라는 아이의 행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아이는 존중받아야 할 꽃같은 친구들이다. 때로는 내 생각과 감정이 앞서 이 기본 전제를 잊어먹고 부산떠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책이다.

많은 부모들이 내 아이의 열일곱의 삶이 어떠하기를 바라든 이런 점을 생각하며 함께 읽고 나와 내 아이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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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생명의 지배자 - 누가 당신을 지배하여 왔는가?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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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나도 모르는 또다른 내가 있다는 것은 섬뜩하기도 하지만 신비롭기도 하다. 학교 가는 날은 어김없이 배가 아프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모르게 말실수를 하게 되는 것도 회피하고 싶어서 꿀꿀 눌러 놓앗던 무의식의 표출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무의식의 신비한 세계를 소개하는 책이다. 성적 충동이라는 리비도 개념을 도입해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그 무의식 때문에 생겨나는 대표적 현상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꿈이나 거짓말, 말 실수 같은 이성의 질서체계에서 벗어난 곳에서 억압당했던 공간이 무의식이 표출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무의식은 자기 본성에 충실한 이기적 존재이고, 이 존재의 지배를 받는 심급이 이드라고도 했다. 이드의 작용이 너무 강해지면 강박증, 정신분열증, 우울증 같은 다양한 정신질환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무의식이 긍정적으로 표출되면 위대한 예술적 업적을 남기고 자아에 의해 배제되었던 삶의 다양한 측면이 드러나면서 삶 자체를 풍요롭게도 할 수 있다. 문제는 긍정적인 강도만큼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쌍은 이성적인 산물인 언어의 세계와 그 세계에서 배제되어 억압된 무의식이라는 언어와 관련된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냇다. 라깡은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세계를 성적 충동이라는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 해석했는데 이것은 인간의 내면을 지나치게 축소한다고 생각했나보다. 상식적인 보통 사람들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들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철학과 언어학이 인간의 이성에 기대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인식 체계를 탐구한다면 라깡은 언어의 세계에서 배제되고 질서에 어긋난다고 억압된 언어체계 이면의 세계를 탐구했다. 그래서 라깡은 인문학과 심리학을 절묘하게 접목시킨 사람이라고 하나보다.

언어학이 어렵듯이 라깡의 무의식의 세계를 읽어가는 것도 참 어려웠다. 그래도 핵심을 얘기해보자면 문명이 발달하면서 언어체계를 통한 삶의 질서는 점점 더 탄탄해지고 그 결과 문명 질서와 맞지 않는, 언어로 표현되기 힘들고 질서 있는 언어로 표현되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점점 더 소외된다. 이 소외가 커지면 인간은 이 소외된 것들을 결여로 느끼고 그 결여를 채우기 위해 무의식이 주체가 되어 자아에 개입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도록 한다. 그런데 이 욕망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 속에 비춰진 상상의 내 자아가 욕망하는 것이기도 하고, 관계맺음 속에 대상화되어 있는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욕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욕망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다. 그래서 무의식은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로 남을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무의식이 주체가 되는 욕망 역시 삶을 피폐하게도 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표출되면 삶을 업그레이드시키고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핵심인 현상의 무의식이다. 저자 윤정이 주장하는 현상이란 생명현상을 말한다. 원시 지구의 뜨거운 바다에서 무기물과 유기물이 생기고, 산소를 활용할줄 아는 호기성 미생물이 생기면서 생명의 근원인 세포를 만들수 있게 되었다.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이든 인간 같은 복잡한 다세포 생물이든 생명체는 세포 속에 생명 정보인 DNA를 가지고 있는데 이 DNA 속에는 자아에 해당하는 정보를 저장하는 엑손과 염색되지 않은 정보가 없는 쓰레기 같은 인트론이라는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이 인트론은 다시 염색된 엑손과 결합하기도 하며 자리를 마음대로 바꿀수 있는 부분과 고정되어 있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윤정은 심리학은 어디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원자의 불규칙하고 자유로운 운동의 성질에서부터 협기성과 호기성 미생물의 결합, DNA의 출연 같은 머나먼 과거에서부터 이어진 생명탄생의 메커니즘을 담고 있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 나타나는 무의식도 DNA의 구조에서 비롯된 뉴런과 신경 물질들의 작용이라고 한다. 염색된 엑손 부분을 자아, 엑손과 결합하여 삶의 질서를 유지하는 염색되지 않은 인트론의 자리바꿈이 가능한 부분을 초자아로 규정하고, 마음대로 자리를 바꿀수 없어 평소에는 잠잠하다 미세한 떨림과 자극에도 심하게 요동치는 고정되어 있는 인트론 부분을 무의식이라고 보았다. 정보를 담은 엑손이 DNA의 겨우 1%밖에 안 되고, 인트론 부분이 99%를 차지한다는 점은 우리 삶에 자아가 차지하는 비중보다 무의식이 지배하는 영역이 훨씬 크고, 그 세계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는 점을 반영하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유전자 속에 내재된 현상의 무의식은 의학계에서도 다양한 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밝혀져 가고 있다. 따라서 흔히 말하는 마음의 병 뿐만 아니라 염증과 암 같은 것들도 현상 무의식의 작용일 수 있다고 본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우리 유전자 속에 ㅇ미 내재되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이런 무의식의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무조건 억압할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수용하면서 사는 것이 우선이다. 마음의 병은 내가 문제가 있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태생의 상실과 결핍 유전 현상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수용하기가 좀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 뇌과학과 심리학의 접목이 많이 일어나고 있고, 그 연구 성과도 다양한 매체와 책으로 소개되고 있다. 윤정의 현상 무의식도 생명과학, 뇌과학과 심리학의 접목인 샘이다. 그러나 너무 간략히 소개되어 있는데다 생물학적 내용도, 심리학적 내용도 쉽지 않은 분야로 둘의 접목과정에서 일어나는 논리적 해석이 명쾌하게 와닿지 않는다. 위대한 고전을 다이제스트판으로 읽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현상 무의식에 대한 좀더 자세한 책, 사례가 듬뿍 담겨 일반인들도 조금 더 쉽게 읽을수 있는 책을 기대해 본다. 어디서 현상 무의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에 대한 과정 설명이 담겨 있으면 훨씬 이해하기도 쉽고 받아들이기도 쉬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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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2 세트 - 전2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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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한국사 입문 수업에서 들은 말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한반도가 중국에 붙어 있어서 턱없이 작아보이지만 한반도를 유럽에 갔다 놓으면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라고. 누구에게나 꿀리는것 없이 한판 붙어볼 만하다고.

순간 우와, 하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저렇게 생각하고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커도 너무 큰 중국 등살에 살아남느라고 정말 고생 많이 했겠구나 싶어 한반도가 살짝 안스러워지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이 말이 다시 생각난다. 일찌감치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돈황 막고술 같은 석굴, 만리장성의 불가사의, 자금성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기가 죽고 한글은 있어도 우리 말의 수많은 한자어 표현들은 중국에서 유래햇으니 수업 시간에 이 말을 듣고 '우와!' 할지언정 그것은 초라한 변명으로 들렸고 우리 역사는 변명이나 늘어놓아야 하는 좀 찌질한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구려 이후의 역사, 근현대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이런 뒤틀림이 있었다.

 

요즘의 한류로도 쉽게 풀리지 않는 이런 역사에 대한 뒤틀림은 나만 가지는 것만은 아닌가보다. 중국 답사를 시작하며 저자는 문화유산을 볼 때는 절대 이리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거듭 강조한다. 중국에 막고굴, 맥적산 석굴 같은 거대 석굴이 있는 이유는 그곳의 자연 환경이 곡괭이질 몇 번으로도 쉽게 파들어갈 수 있는 사암이나 역암 지질을 가지고 잇어서이지 그네들이 우리보다 더 뛰어나서, 우리는 못나서 석굴이 없는게 아니라고 했다. 단단한 화강암을 쪼개고 다듬어 석굴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무모한 짓인지, 그래서 우리는 그런 무모함 대신 우리네 아름다운 산 속에 산사를 지어 마음을 다스리는 고즈녁하고 아름다운 산사의 전통을 낳았단다. 문화유산을 대할 때는 이렇게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발디디며 터잡고 사는 자연을 함께 생각하며 보면 괜한 열등감도 가질 필요가 없으며, 그렇다고 교만해지지도 않는다고 했다.

 

저자의 이 글을 대하며 그 동안 좋기는 하지만 왠지 변명처럼 들렸던 스무살 때 들은 선생님 말이 가슴으로 와 닿는다. 그래, 우리한테서 전수받은 주제에 무슨 문화유산이니 뭐니 까불지 마라 하며 중국에서 뺨 맡고 분풀이하는 심정으로 바라보던 일본 문화유산에 대한 뒤틀린 심사도 풀어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중국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과는 다른 우리 삶에 어울리는 문화를 지어나갔듯, 일본도 지리적 여건 때문에 우리에게 영향받음이 많았겠지만 그네들의 풍토와 삶에 맞는 문화를 지어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터인데. 그 말이 맞습니다, 라며 고개 끄덕이며 이런 구절들을 읽어내려갔다.

 

사실 나는 아마추어다 보니, 그리고 글만 많이 대하다 보니 불상의 조형미와 석굴의 배치도, 미술 양식들은 그러려니 하면서 재미있게 읽은 반면 문화와 역사 전반에 대한 이런 설명들은 맞다, 맞아 하며 글과 내가 대화라도 나누는 양 흥미진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보니 얼어붙은 월아천을 보며 느끼는 저자의 자연에 대한 감상과 가도가도 끝 없는 고비사막을 오가며 느낀 감상들들 읽으며 나도 저런 사막을 맥없이라도 한번 지나가보았으면, 그러고 나면 나도 좀더 커져 있고 너스러워져 있을텐데 싶었다.

차는 문화제가 있는 곳 저 멀찌감치 세워 두고는 전기차와 도보로 사람들을 오가게 하여 유적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중국의 문화제 보호 노력은 관광을 위해서는 계발, 관람객은 왕이니 편하게 모십니다를 연발하는 우리네 문화제 관람 정책과 관광지 계발 정책을 돌아보게 한다. 중국은 후진국이 아니잖아!

 

돈황 문서를 둘러싼 제국주의의 약탈과 결과적으로는 문화제 보존이지 않았느냐며 발뺌하는 그네들의 행태를 보면서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다. 병인양요 때 훔쳐가 놓고 임대라는 형식으로 우리나라에 반출시켜 준 프랑스의 규장각 의궤 사건이 생각나서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조선총독부가 훔쳐온 돈황 유적과 중앙아시아 유적들을 우리 박물관에 상설전시하고 있는데 중국이 이것을 돌려달라고 하면 우리는 선뜻 돌려줄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니 생각은 또 왜이리 복잡해지는지.

 

손 안에 스마트폰이 있는 요즘은 백과사전적 지식은 예전만큼 절실하지 않다. 이 책도 그런 지식만을 추구한다면 굳이 읽을 필요는 없다. 미술사가나 불교사를 전공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는 특히나 필요없는 책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 삶에 대한 저자의 경탄과 아쉬움, 훌륭한 업적을 이루며 고단한 삶을 살아낸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숙연한 마음들, 함께 걷는 이들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있기에 현재의 내 삶으 돌아보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함부러 펀단하고 비난하지 않기 위해 나를 가다듬게 해 주는 삶의 길라잡이로 다가온다. 원래 여행과 답사가 그런 것 아닐까 싶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내 삶을 돌아보고 배울 것은 배우고, 이런 삶도 있으니 내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러니 함부러 단정해서 남에게 상처주지 말자 다짐하며 돌아오는 것 말이다. 부엌 식탁에 앉아, 커피 한잔 놓고 책상에 앉아 이런 여행을 떠날수 있게 해 준 책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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