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지
김안연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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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낸 판타지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그 상상력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기도 하고, 깊은 성찰과 깨달음의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육체적, 정신적 인간의 한계,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펼쳐지는 재미진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깊은 메시지는 현실과 인간 내면의 뒤틀림을 정확히 짚어내면서도 재미라는 달콤함을 입혔기에 식상하지도 않고 어려워서 무시하며 도망치지도 않고 직시하고 깊이 바라보고 생각하도록 이끌어 준다. 그래서 나는 판타지가 좋다. 판타지 동화도 좋고, 판타지 소설도 좋다.

 

이 책 <만월지>에도 그런 메시지가 있다. 금과 과학이 지배하는 상위계급 태상과 과학이 닿지 않아 보존된 자연과 함께 자기 몸으로 갈고 닦은 기술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하층계급 천하의 이분법적 세계는 막대한 재력으로 자신들을 점점 귀족화해가는 재벌들과 자본에 종속되어가는 과학계의 현실을 보여준다. 타고난 신분 때문에, 돈이 없어서 뛰어난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조롱과 멸시를 겪어야 하는 주인공 백터는 우리 주변에서도 한 번쯤 있을 법한 인물 유형이다. 타고나기를 금수저로 타고나 그다지 할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떠받들어지고 좋은 자리에 꽂아 지는 많은 이들은 꼭 황금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안다는 것 빼고는 할줄 아는 것도 없고 타인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 허세에 절어 있는 만월 왕자를 생각나게 한다.

 

이렇게 22세기의 신분제가 엄격한 판타지 세계를 통해 현실을 비춰준다면 등불 시인 매화의 존재와 사랑을 이용해 금화를 얻어 태상 과학원 인공지능 연구원으로 들어가려 한 백터의 비뚤어진 욕망과 후회, 등불시인의 죽음으로 시로 대표되는 감성을 통한 삶에 대한 반성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 없는 세상에서는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 해도 인간의 삶은 온전할 수 없다고 전한다. 과학은 만능이 아니고 감성과 윤리, 인간에 대한 사랑 없는 과학은 인간의 삶에 독이 되고 만다. 아들과 아버지를 죽인 이 교수 집안 이야기, 과학을 위해 사랑하는 이를 죽였지만 죽고 난 다음에 더욱 더 그리워하고 후회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진정한 염원은 현재에 충실하면서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 때에만 그 가치가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시인의 죽음으로 앞므솝이 없어지는 정면상실의 아픔을 겪은 태상은 상실의 시대가 또 오지 않기 위해 시를 가까이 하고 사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만월지에는 금화 대신 등불을 띄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입해 더 좋은 점수, 더 높은 대학, 더 높은 직장을 보고 달려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 아닐까?

 

인공지능과 과학, 과학과 재력을 이기는 등불 시와 사랑이라는 주재가 현실과 판타지, 과학과 감성을 고루 넘나들어 재미와 감동을 주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재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책 중반쯤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백터가 등불시인을 죽이고 사람들이 정면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금화를 훔치기 위해 도둑질이 난무하고, 만월왕자가 몰락해가는 과정이 펼쳐지면서 박진감이 넘치고 속도감이 더해져 작품이 훨씬 재미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많이 아쉬운 점들도 있어서 별 다섯 개를 줄 수는 없었다는 것. 판타지 동화는 모름지기 상상의 세계에서 현실감을 느끼도록 해야 하기에 판타지 세계에 대한 법칙을 촘촘히 짜고 플롯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좋은 판타지 동화는 그 세계를 제대로 묘사하고 그 세계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여 몰입시키도록 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러다 보니  판타지 소설은 자연스래 책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천만년 동안 살아온 태상 왕남 출신 만월왕자 라는 말을 강조하며 천만년을 오랜 세월에 등치시키고 5억 만 년 살아온 천월 왕자라는 것으로 태상의 과학이 생기기 전에 인간에게는 자연과 함께 살며 자기 재주를 뽐내던 원초적 시절이 있었음을, 금과 과학으로 신분이 나눠지기 이전의 평화로운 시절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도 지금의 오랜 세월 지구에 살아온 주인공이 고려와 조선, 일제시대 등 우리 역사를 함께 겪고 그 역사의 모습대로 자기 복식과 모습으 바꿔가며 살았기에 나름대로의 개연성을 가진다. 천만년 동안 스테이크를 먹고, 핸드폰을 들도 다니고, 대저택에서 양복 입고 살았다는 흐르는 세월과 변화를 무시한 채 정지해 버린 태상 세계에 대한 설명은 작품의 개연성을 떨어뜨리고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태상 왕자가 먹는 12첩 반상이라는 묘사도 매번 그대로이다. 왕자가 어마어마한 부자이고 떠받들어진다는 것을 암시하겠지만 매번 반복되는 묘사는 너무 식상하다.

등불시인 매화에 대한 묘사도 그렇다. 차분히 시를 쓰고 나무에 걸터앉기는 하지만 방정맞지는 않는 전통과 세계의 감성을 수호하는 소녀로 그려지는데 만월왕자와 만날 때는 중간중간 너무 방정맞은 대사들과 묘사들이 캐릭터의 일관성을 떨어뜨려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왕자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느라 그랬겠지만 좀더 세심하고 덜 비약적인 묘사들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 만화에서만 볼법 한 호에, 해에, 캑, 스르륵, 샤락, 빠지직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들이 자꾸 걸려 책을 읽어가는 재미를 깎아내렷다. 내가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아 그런지도 모르겠다. 만화와 웹툰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오히려 재미있어 하려나? 중학생 아들이 읽고 나면 뭐라고 하는지 한번 물어볼 일이다.

 

여러 결점들도 있고, 플롯과 묘사가 군대군대 어설픈 감도 있지만 신선한 아이디어와 재미가 있는 판타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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