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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 - 촉각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과학
마르틴 그룬발트 지음, 강영옥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몽골인들은 시력이 4.0까지 나온다는 얘기도 들었고, 고구려 장수들은 훈련을 통해 땅에서 울리는 소리를 감지하여 적의 규모와 근접 거리를 파악한다는 얘기를 듣고 인체의 신비함을 세삼 느꼈었다. 환경과 훈련에 따라 우리 감각은 생각보다 민감하게 발달할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웟다. 내 뇌를 깨우는 것 못지 않게 내 잠재적 감각을 깨우는것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촉각에 대해서는 좀처럼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시각장애인들이 손으로 올록볼록한 점을 만져 문자로 활용하는 점자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청각장애인들의 수화도 알고 있었고, 하다 못해 드라마 '대장금'에서 미각의 중요성도 익히 알았지만 이런 감각들은 불편하기는 하지만 다른 감각들이 보완작용하여 인간의 생명 유지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촉각은 어떤가? 촉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책을 빌어 내수용과 외수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뉴런과 뇌로 이어지는 전달체계가 망가지면 그 기능을 일부 또는 전부 잃는다. 이런 경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온각, 냉각, 통증 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에 지장이 있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유추해낼 수 있다.
또 연인간의 애무와 성적 접촉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불감증을 일으킬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촉각은 이런 상식적인 치명적 결함을 넘어서서 태아때 부터 학습하기 시작해 인간이 제대로 서서 걸을 수도 있고 자기 신체의 위치와 지면과 신체와의 관계를 자각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를 신체도식을 인식한다고 한다. 제대로 된 신체도식이 없다면 머리가 아래로 가야 한다는 것, 급하면 손을 뻗어 물체를 탐색하는 무의식에 가까운 잡기 반응 등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슬로우 비디오를 찍듯 시각으로 일일이 물체를 확인하고 손을 뻗어 시행착오를 거쳐야 물체에 도달할수 있게 된다. 내 신체와 다른 것들에 대한 위치 정보를 제대로 그릴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촉각의 세계가 제대로 연구되지 못한 건 아마도 촉각하면 으래 성적 접촉과 쾌락과 연관시키는 무의식적 풍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디지탈 기술 발달로 시각 청각의 많은 부분들이 인간의 한정된 감각을 대체하고 있지만 초각은 아직 어떤 기계로도 대체되지 못하고 있어 아직도 인간 고유의 감각으로 남아 있어서 그 기능에 다시 눈뜨고 주목하지 않았나도 생각해 본다.
햅틱 디자인과 햅틱 마케팅이라는 영역의 발견을 통해 사회 경제적으로 우리 피부에 더 와닿는, 직접 그 성과를 확인할수 있는 영역들에 대한 발견도 촉각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활성화하고 있을 것이다.
따뜻한 손이 내 손을 잡아줄 때의 푸근함과 오스트리아에서 벌어지는 프리허그 좀, 마사지 클럽 등의 활성화는 촉각은 하나의 감각이지만 인간 심리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심리학이 뇌과학과 연계해 촉각을 연구하는 게 아닐까? 거식증 치료가 그 대표적인 예라는 것도 신선한 충격, 신선한 앎이었다.
과학책은 너무 어렵고, 그렇다고 생활정보 팁이라고 나열되는 얄팍한 과학도 그다지 흥미 없는 터에, 생소한 용어와 설명으로 조금은 어렵지만 생활과 인간 심리의 접점을 찾고, 생활에 그 원리를 적용해주는 이 책은 끝까지 흥미롭게 읽고 많은 것을 제대로 얻어가는 책이었다.
인문학의 숲에서 살던 내게 새래운 나들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