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을 향하여 - 음악을 통하여 존재의 의미를 찾아갔던 10년간의 여정
김성은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그림 하나 없고 눈을 끄는 편집 하나 없는 500여 페이지짜리 일기, 양장본이라 들고 다니며 읽기에도 무거운 이 책이 어떤 경로를 거쳐 출판되었을까? 출판사 사람들과 인맥이라도 있을까?

책 마지막에 가서 그 의이 풀렸다. 저자 김성은의 결심과 기획, 추진으로 출판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미워하고 부정하려고만 햇던 자신을 좀더 사랑하고 위해주면서 마음속에 있는 불꽃을 향해 나아가고, 불꽃을 태우며 살아보려는 저자의 몸부림이라는 것을. 워낙 방대한 분량이고 중간중간에 저자가 그토록 극찬햇던 스크랴빈의 <불꽃을 향하여>와 글라주노프의 <사계>를 듣고,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앨렌 그라모의 라흐마니노프와 다른 음반들을 찾아 듣다 보니 읽어가는 속도도 맥없이 느려졌다. 너무 자주 언급되는 자살과 자해, 여러 여자들과 함께 방황했던 시간들은 건너뛰어 볼까도 생각해 봤었다. 읽기 편한 주제들은 아니니까. 그래도 저자의 의도대로 편집 없이 가감 없이, 미스터치가 있는 실황 연주음반을 듣는 느낌으로 저자 김성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았다.

 

스크랴빈의 음악들은 나같은 보통 사람들이 듣기에는 좀 벅찬 느낌도 있었지만 계속 듣다 보면 내 삶을 좀더 업그래이드 시켜야 할것 같은 지적 충동이라고나 할까 미적 충동 같은 것들이 마구마구 느껴져서 좋았다. 음악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고, 존재해야 함의 끈을 놓치 않는 음악가에게는 좀더 고차원적인 것이겠지.

글라주노프의 <사계>를 들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삶을 포기하지 않고 무아지경 같은 환각으 느낀다고도 했는데 나는 아직 러시아 음악이 낯설어서 그런지 그토록 깊이 와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곡에 대해 극찬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언뜻언뜻 느껴갈수 있는 저자를 보며 참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내 가족에 대한 애착은 그들에게 무언가 보답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죄책감이 가미된 의무감적인 삶의 에너지를 주어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릴수 없는 상황이 많지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음악이든 그림이든 아니면 단순한 취미든 무엇인가가 나를 해옥하게 해줄수 있다면 한 인간에게 삶은 좀더 자유로운 행복을 선사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가를 즐기고 건전한 취미를 가져보라고들 하겠지.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옆에 있는 친구가 행복해하는 것 같아 가끔씩 이 음악을 들어볼 생각이다. 그 행복이 나에게도 조금씩 느껴진다면 넉넉치 않고 정신 없어서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어서 멍하니 주저앉고 싶을 때 나에게도 위로가 조금은 위로가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저자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책에 대한 이야기, 우리 역사와 정치 현실에 대한 이야기, 예술 일반에 대한 이야기가 더 쏙쏙 들어왔다. 너무 예뻐서 외모가 음악적 업적을 가리는 악조건을 극복하고 뛰어난 성과를 이뤄낸 김성은의 여신(이제는 아닌가?) 앨렌 그리모와 다른 여자 음악가들, 여배우들, 여가수들에 대한 문제의식은 같은 여자 입장에서 참 좋은 지적이었다. 그리고 앨런 그리모의 ,특별수업>을 너무도 극찬했기에, 나도 이 피아니스트를 너무 좋아하기에 그의 책을 읽고 싶어 찾아봤는데 우리에게 번역된 책이 없어 안타까웠다. 이 참에 저자가 이 책을 번역해 출판해 보면 어떨까? 내가 보기에 그만한 문장 실력도 되는것 같은데.

동서 냉전, 남북분단상황에 희생된 뛰어난 음악가 윤이상에 대한 재조명과 북한 음악가들에 대한 재평가, 서양의 소리에 동양을 담아낸 절묘한 음악이라는 윤이상 음악에 대한 평가 역시 인상적이었다.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가 그의 전기를 출간했는데 외국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한동안 잊고 지낸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프랑수아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사라트르의 <구토>는 참 반가웠다. 연주자가 단순히 악기를 기계적으로 누르는 사람이 아닌 이상 악보에 근거해 자신의 철학과 작곡가의 철학을 결합한 새로운 해석을 창조하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해석을 위해서는 세계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그 도구가 되는 것들이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 문학, 역사이니 연주자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수 과목이 아닐까? 그가 말하는 작곡가, 연주자, 편곡자, 음반 이야기만큼이나 그가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고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가는 것은 정마로 힘들었다. 기왕 많은 사람들에게 내보이기로 했다면 편집을 조금 더 신경쓰고 분량을 100여 페이지 정도라도 줄여서 독자를 고려해주었으며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얼마 전 천재적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동생 테오 반 고흐의 생애를 추적한 책을 읽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서 자살 시도도 하고 자기 귀도 자르느 등 힘든 삶을 살아가는 형에게 동생 테오가 한 말이 있다.

위대한 예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형이 겪엇을 정신적 고양 상태를 생각하면, 그 때문에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겪어야 햇을 고통을 생각하면 아찔해진다고, 형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 편지였다.

 

부모님의 헌신적 뒷바라지에 비해 이뤄낸 것이 없어 죄책감이 물밀듯 밀려오고 앞날이 걱정되어 막막하고, 예민하고 상처받은 감성 때문에 세상살이가 쉽지 않은 김성은 작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앞으로는 올바르게 살아라 라고 말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 무엇이 올바른 삶이고, 그가 겪는 고통이 어느만큼인지 나는 어림짐작 이상 다가갈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과 없다고 자기를 탓하지 말고 음악을 사랑하며 그 속에서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남들보다 예민하고 여려서 힘들지 내가 못나서 힘든게 아니니 절대 자기를 탓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 책을 통해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의 삶으 응원할수 있는 책이었고 음악과 책에 대한 새로운 구금증과 탐구의 길을 열어준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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