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시네마 천국 - 유아동 자녀와 함께 볼 만한 좋은 영화 50편
김용익 지음 / 스타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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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이 익숙한 시대에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영화로 소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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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중록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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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이후 로맨스 소설을 읽지 않았다. 

현실 연애의 무미건조함을 알아버려서인지, 로맨스 세계가 펼쳐놓은 터무니 없는 달콤함이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미스터리가 붙으면 다르지!


중국 웹소설 베스트셀러 1위라는, 어마어마한 인구수만큼 1억 뷰라는 엄청난 조회수를 가진 소설 <잠중록>은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로맨스 사극이다. 총 4권으로 권당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스토리다.

일단 1권만 읽어봤을 때 500페이지라도 한달음에 읽을 수 있는 페이지터너 소설였다!


황재하는 촉 지방의 형부 시랑 황민의 여식으로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형사 사건이 벌어진 곳에서 단서 몇 개만으로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한 전적으로 장안 바닥에서 유명인사다. 

어느날 그녀의 일가족이 독살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당일 혼사 문제로 가족과 갈등을 빚은데다 독살에 쓰인 음식을 직접 전달한 황재하는 끔찍한 존속 살해의 범인으로 몰린다.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촉에서 장안으로 남장을 한 채 도망쳐 온 그녀는 황제의 아우이자 역적을 무찌른 영웅이면서, 차갑지만 수려한 미모로 소문이 자자한 기왕 이서백의 가마에 숨어든다.

하지만 금세 정체를 들켜버린 황재하는 이서백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이서백은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면 황재하를 도와주겠다 약속하는데.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음 범행이 일어날 곳을 정확히 추정해낸 황재하, 이서백은 약속한 바대로 그녀에게 안전하게 신분을 감추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실종된 소환관 양숭고의 신분으로 위장할 수 있게 돕는다.

그리고 이서백이 역적 방훈 일당을 척결하던 날, 그에게 도착한 의문의 문서 속 '환잔고독폐질(홀아비, 장애, 고아, 무자식, 폐기, 질병)'이라 적힌 글자와 그에 얽힌 저주에 대해 전해듣게 된다. 저주는 이서백에게 그에 해당하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글자에 붉은 원이 생긴다는 것. 

마치 귀신의 농간처럼 여겨지는 이 일은 곧 '홀아비'를 뜻한 글자에 붉은 원이 생기며 얼마 남지 않은 이서백의 왕비 간택에 문제가 생김을 암시한다.


이서백은 현재 황후의 가문 낭야 왕가 출신의 왕약을 자신의 비로 간택하는데, 황재하는 왕약이 숨기고 있는 듯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그녀 주변을 돌며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간다. 

그런 가운데 왕약의 불가사의한 실종과 가무 악방 운소원 출신의 예인들이 살해 당하거나 사라지며, 운소육녀와 한때 이서백이 구조해줬던 두 소녀 설색과 난대가 얽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과학 수사도 없던 시대에 몇 가지 단서로 치밀하게 추리를 이어가는 황재하와 이를 조력하는 이서백의 관계가 마치 셜록과 왓슨 같았다.

단서를 정리하며 추리를 진행할 때마다 머리의 비녀를 뽑아 글로 쓰는 황재하의 시그니처 동작하며,

까칠한 듯하지만 묵묵히 뒤에서 다 지켜봐주고 있는 로맨스 소설 남주 특징을 다 담고 있는 이서백,

명문가 자제지만 시체 부검에 푹 빠진 괴짜 주자진, 

자신의 야심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서슴없이 저지르는 황후, 

제각기 다른 성정을 지닌 왕제들 등 등장하는 캐릭터들 모두 면면히 살아 있어서 머릿 속에 드라마를 그리기 충분했다.

역시 중국에서 청잠행(靑簪行)이라는 이름으로 드라마화 되고 있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1권이 마무리되고, 이제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황재하의 일가족 살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나설 것 같은데...

소녀였던 황재하의 눈빛을 여인으로 만들어 버린 우선이라는 죽마고우의 등장이 기대된다.

이서백은 자신이 황재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 각성하게 될련지!


아직 1권에서 개운하게 풀리지 않은 2가지 의문도 다음권에선 알게 되려나?

이서백은 어떻게 황재하를 한 눈에 알아본 것인지(왠지 어린 시절 첫 눈에 반했던 운명?!)

그리고 이서백에게 내린 저주의 문서는 누가 보낸 것인지.


루쉰 소설이나 허삼관 매혈기 같은 근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제외하고, 중국 소설은 처음이라 낯설 줄 알았는데 '구르미 그린 달빛'을 떠올리며 푹 빠져 보았다. (사실 드라마는 보지 않았고, 그냥 이서백에 박보검, 황재하에 김유정을 대입해서 읽었다ㅎㅎ)


로맨스 지분이 높았으면 이렇게 흥미롭지 않았을거다.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서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사건들, 아마도 매 권 이렇게 굵직한 반전 사건들이 나오겠지?

웹소설이니 다음 회차 결제를 부르는 스토리를 창작한 작가가 너무나 영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함께 읽는 시리즈 도서로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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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 현실 편 : 철학 / 과학 / 예술 / 종교 / 신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2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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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진정으로 신비하고 심오한 깨달음을 주는 진실은 

내가 세계의 구심점으로서 세계를 구성해내는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실체라고 믿었던 눈앞의 세계가 사실은 나의 주관에 의해 구성된 것이며, 

그것은 단지 내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진실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안개는 걷히고 가려져 있던 내면으로 향하는 길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p376 / 웨일북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두번째 권은 현실 너머에 대해 다루고 있다. 현실세계를 역사, 정치, 경제, 사회, 윤리로 봤다면, 현실너머의 세계는 우리가 진리라 말하는 것들- 철학, 과학, 예술, 종교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신비에 대한 얘기다.


이 책은 진리를 대하는 3가지 입장으로 철학, 과학, 예술, 종교의 역사적 흐름을 훑어본다.

진리를 대하는 입장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는 '절대주의', 진리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는 '상대주의', 그리고 진리 그 까이꺼!!를 외치며 진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회의주의'로 나뉜다. 


철학, 과학, 예술은 헤겔이 말한 정-반-합처럼 절대주의와 그 반대급부로 등장한 상대주의, 그리고 다시 근원에 대한 의문과 성찰을 담은 회의주의로 번져간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데아를 추구하던 절대주의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보다 인간 중심의 상대주의로, 인간의 이성을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데카르트의 합리론에서 경험에 가치를 둔 베이컨의 경험론으로, 그리고 이를 통합시킨 내면의 형상을 제시한 칸트의 관념론으로, 근대철학의 이성 중심적 사고에 반발하며 등장한 실존주의와 니체의 회의주의적 철학은 포스트모던으로 이어져왔다.


과학도 절대값을 추구하던 근대 물리학에서 확률로 측정되는 현대 물리학으로 변화했고, 이 과정에 토마스 쿤은 과학이 정치적인 투쟁이 내포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전 세대와 단절하며  전 세대와 단절하며 진행되어 왔기에, 전혀 과학적인 진보를 이룬 것이 아니라는 회의론을 펼치기도 했다.


예술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낳은 역사를 가졌다. 조화와 균형의 절대적인 미를 추구하던 고대 그리스에서 파생된 예술사조는 중세 르네상스에 들어 작가 개인의 미적 추구와 부르주아의 취향이 반영된 바로크와 로코코 풍에 이어, 작가의 신념과 사상을 담은 낭만주의로 옮겨간다. 그리고 현대미술은 화가를 대상 자체로 삼거나, 대상을 우연한 기법으로 얻는 등 주체를 흔들어대며 회의주의의 절정을 달린다. 


종교만이 <구약>을 기반으로 한 서양의 절대유일신과 <베다 철학>을 기반으로 한 동양의 상대적 다신교로 나뉘어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맥을 이어오고 있다.


포스트모던적 사고가 일반적인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절대주의는 뭔가 권위적이고 일방적이며 그래서 다른 생각에 배타적인 꽉 막힌 사고방식으로 여겨진다. 반면 상대주의는 지향해야할 가치다. 아마도 과학에서 경험주의의 승리가 이런 사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나에게 현대미술은 여전히 소통이 어려운 불편한 존재다. 절대적인 미를 추구했던 고전주의보다는 작가의 고뇌가 담겨 있는 낭만주의가 그림 자체에 스토리성이 살아 있어 더 즐겁게 감상하게 되지만, 포스트모던의 감성은 아닌 것이다.

포스트모던의 이념적 측면은 동조할 수 있지만, 실천적 측면은 아직 난해하다고 해야할까.


짧은 생각이지만 이렇게 진리에 대한 입장에 대해 스스로의 취향을 물을 수 있는 건, 이 책이 이해하기 쉽게 철학, 과학, 예술 그리고 종교 분야를 훑어보기 때문이다. 다만 이전 '현실 편'에서는 너무나 찰떡 같은 비유를 들어 이해의 폭을 더욱 확대시켰다면, 이번에는 그다지 연결되지 않는 분야를 두루 훑어나가서인지 개념 요약에 급급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특히 종교는 잘못 다뤘다가 논쟁적이 될 수 있어서인지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베다 철학>을 바탕으로 한 힌두교와 불교의 역사는 그동안 접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무척 새로웠다.)


신비 분야는 임사체험과 죽음 이후, 그리고 삶과 우리의 의식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는데 증명되지 않는 분야라 막연하고 어려웠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나에게 삶의 절실함 같은 게 없었던 건 아닐까 생각도 들고,

니체의 영원회귀나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순환으로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는 방법은 의미의 상실 속에서 불안을 느끼는 나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이 책은 채사장이 정리해둔 요약 노트 같은 성격을 띄고 있지만, 가치와 깊이를 더하기 위해 읽고 토론을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각 주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내 생각과 접목시켜 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고 살아가는 지 돌아본다면 이 책의 내용이 그저 단편적 지식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저자인 채사장도 마지막 줄에 강조하지 않았나.

'인생의 의미와 깊이는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비로소 빛을 낸다'고.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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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변신
피에레트 플뢰티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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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도시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커피를 한 잔 마시러 갈 카페를,

유리로 된 거대한 건물에서 자신이 치르게 될 면접을,

그들이 그녀에게 줄 일자리를,

그리고 곧 찾아올 저녁을 생각한다.

'분명해, 이게 내 삶이야.'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피에레트 플뢰티오 <여왕의 변신> '여왕의 궁궐' 중 / 레모


리딩투데이 주당파에서 함께 읽은 책 <생각하는 여자>에서 신화학자 마리나 위너는 동화 속 여성캐릭터에게 발견되는 억압적 이데올로기를 지적했다. 예속과 순종을 답습시킨다는 것. 동화 속 해피엔딩은 가부장적인 세계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어른이 되어 다시 곱씹어 본다.


하지만 마리나 위너는 동시에 동화가 가진 비도덕적인 면, 호기심 많은 말괄량이 - 도덕적 시각에서는 놈팡이 같은 녀석-의 모험이 보상을 받는 전복적인 즐거움도 함께 언급했다. 동화가 즐거웠던 이유- 특히 나는 빨강머리 앤과 말괄량이 삐삐를 좋아했다- 아마 현실에서 내가 날리지 못한 강력한 사이다 한방을 누군가가 대신 해줬기 때문이었을 거다.


이 책 <여왕의 변신>은 우리에게 익숙한 샤를 페로의 동화를 새로운 이야기로 재창조한 단편모음집이다. 흥미로운 소재인데다 프랑스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 수상작이라 하여 더욱 기대가 되었다. 책에서 재해석하는 샤를 동화는 <엄지 동자>, <신데렐라>, <빨간 모자>, <푸른 수염>, <잠자는 숲속의 미녀>, 그리고 그림형제의 <백설공주>다.


샤를 페로의 동화는 당시 프랑스 구전되던 민담을 순한 맛으로 각색한 이야기인데, 프랑스 혁명 전 너무나 피폐했던 민중의 끔찍한 삶이 녹아 들어있어 어느 나라의 민담보다 잔혹한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재창조된 <여왕의 변신>도 잔혹하고 성적인 묘사가 적나라했다. 마치 서사가 모호한 프랑스 예술영화를 보는 듯한 단편들이 많았다. 뒤에 딸린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없었으면 이 이야기가 담은 의미는 고사하고, 대체 어떤 동화를 재해석한 것인지 인지하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첫 장인 <식인귀의 아내>는 동화 <엄지 동자>에서 아주 잠깐 등장한 식인귀의 아내의 숨은 사연을 재창조한 이야기다. 버려졌던 아이였던 그녀는 우연히 식인귀를 따라나선다. 하지만 그녀 앞에 펼쳐진 삶은 더욱 가혹하다. 수간과 생식을 일삼는 폭력적인 성향의 남편과 똑 닮은 성향의 일곱 식인귀 아이들을 돌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던 그녀 앞에 무능력한 형들을 돌보고 있는 엄지 동자가 나타나고, 두 사람은 자신들을 착취하는 공간을 떠나 서로를 온전히 느끼며 사랑을 나눈다.

이 장에서 묘사된 식인귀 아내가 겪었을 폭력적 상황은 너무나 끔찍해서, 사지를 절단하는 슬래셔 무비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남성 감독들에게서 관찰되는 불필요한 폭력성, 가학적인 장면의 전시 등을 반복하고 있었다. 여성적인 재해석에서 기대했던 감성적이고 섬세한 묘사와 전복적인 쾌감은 별로 기대할 수 없었다.


두번째 장은 신데렐라 스토리를 남성 버전으로 바꾼 <신데렐로>다. 주인공 신데렐로가 처한 환경은 신데렐라와 동일하지만, 마냥 착하고 순수하지 않다. 자신의 처지를 잘 파악하고 처세에 능한 영악한 남자다. 돌의 마법으로 무도회에 참석한 그는 일약 스타가 되고 온 나라의 여인들의 마음과 몸을 사로잡아 버린다. 하지만 그에게 나타난 진정한 사랑은 왕을 대신해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지적이고 현명한 왕비. 두 사람은 엄청난 나이차에도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신데렐로는 왕비와 결혼해 왕이 된다.


이 책에서는 연하 남자 판타지가 '신데렐로' 외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전복적이라기 보다는 남성적 문화를 답습하는 묘한 불쾌함이 들었다. 그리고 신데렐로에게 모여든 귀족 여인들의 행태는 남자에게 몸을 내주며 헌신하는 여성들이란 기존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세번째 장 <도대체 사랑은 언제 하나>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재해석한 동화이다. 국정과 육아에 바빠 제대로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왕과 왕비의 현실 부부 수난기를 다루고 있다. 왕비가 죽음에 처할 무렵 태어난 막내 딸에게 마녀가 물레의 저주를 내리려고 하자, 왕비는 그 저주는 백년 동안 자신이 이미 다 겪었다고 한탄하며 끝을 맺는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동화 속에서 무엇을 비틀고자 하는지 공감할 수 없었지만,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동화였다.


네번째 장 <빨간 바지, 푸른 수염, 그리고 주석>과 다섯번째 장 <일곱 여자 거인>에서 비로소 이 책에서 기대했던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주체적이고 강한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동화들이다.

어려서부터 늑대를 길들일 줄 알았던 원령공주같은 빨간 바지(모자를 쓰지 않고 바지를 입는다)는 특유의 용맹함으로 저주에 걸려 괴물이 되어버린 푸른 수염에게서 감금되어 있는 아내를 구해낸다. '개구리 왕자'처럼 푸른 수염이 저주에 벗어날 수 있도록 구원한다. 압권인 것은 푸른 수염의 로맨틱함과 으리으리한 재산에 넘어왔던 아내들이 '인생에 남자는 필요없다'며 자신들끼리 짝을 지어 사라지는 장면이다. 삶의 주체성이 전이되는 장면이었다.


<일곱 여자 거인>은 백설공주의 미모를 시기 질투하며 거울 앞에서 자신의 외모에 대해 묻던 가련한 왕비에 대한 오명을 벗겨준다. 원래는 박사학위를 준비하며 자기 관리에도 철저했던 멋진 여성이었던 왕비가 거울로 표현된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억압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시들어간다. 외모에 집착하며 점차 쇠약해져 가던 왕비는 궁을 떠나고, 모욕감을 느낀 왕은 사냥꾼에게 그녀를 죽일 것을 명한다. 사냥꾼은 가엾은 왕비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를 발견하지만 살려준다. 숲을 헤매던 왕비가 발견한 곳은 여섯 여자 거인들이 사는 집, 그곳에서 강한 여성들 속에서 자신을 억눌렀던 억압에서 치유되는 왕비는 일곱번째 거인이 된다. 그리고 이 여성 거인들은 여성을 속박하는 상징 같은 거울을 깨부셔 버린다.


"그리고 나는, 나는 내가 그녀를 기다렸던 곳이 바로 거기, 안개에 묶인 아주 높은 그 울타리 앞이라는 걸 깨닫는다.

왕비여, 가요, 곤두선 나뭇가지들과 가시덤불의 붉은 발톱들과 튀어 오르는 돌들 속으로 가요.

당신의 허벅지와 이마와 어깨가 그 모든 것보다 더 끈덕지기를!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져 집요하게 당신을 막는 숲을 헤쳐 나가요.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나에게 보여줘요.

물러서지 말아요. 나를 저버리지 말아요."

피에테르 플뢰티오 <여왕의 변신> p259 / 레모


여섯번째 <잠자는 숲 속의 왕비>는 약자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지만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왕궁 식구들에게 식인귀라 불리는 왕비가 궁을 나와 세계를 떠돌며 세상과 마주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는 느닷없이 작가가 등장해서, 왕비의 모험을 응원한다. 하지만 호숫가에 놓인 배를 타고 정처없이 흘러가게 되는 왕비의 결말은 동화의 한계를 드러내는 듯 하다. 아마도 일곱번째 장을 이어가려고 만든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난해한 이야기였다.


일곱번째 <여왕의 궁궐>은 기존 동화의 재해석이 아닌 피에레트 플뢰티오가 오롯이 창작한 이야기이다. 두 남편을 떠나보내고 궁궐에서 외롭게 늙어가던 여왕이 현실 세계의 자유로운 '깃털 단 여성'을 만난 후 궁궐을 나와 헤매는 이야기로 해설에 의하면 (극악의 난해함으로 읽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과 같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나중에 여왕은 현실에서 일자리를 찾으며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동화에서 뛰쳐나와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듯 하다.


개중에는 마음에 드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기대했던 부류는 아니였다. 아마도 나의 문학적 깊이가 부족해 해석이 어려운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말에서 보여준 의도와 시도는 공감했다. 동화가 전하는 '위로하기'와 '인도하기' 기능으로 어린 소녀들에게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했던 동화들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려내는 것!


새로운 동화들이 더욱 더 활발하게 쓰여지길 기대한다.

지금 자라는 아이들이 더 나아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달라진 언어로 쓰여진 이야기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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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10주년 개정증보판)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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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본 Netflix 다큐 <소셜딜레마>에서는 SNS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교묘하게 잠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무너져내리는지를 두렵도록 잘 보여주었다. 한때 디지털마케팅을 업으로 삼고, 트래픽과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나는 정작 내 개인 SNS는 거의 하지 않는다. (물론 카카오톡을 SNS 메신저 서비스로 포함시키면 예외다.) 여하튼 '좋아요'에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사는 나에게 다큐가 보여준 현실은 무척 심각했지만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이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디지털 시대 전반이 우리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SNS는 하지 않아도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곁에 끼고 살고 있고, 손으로 쓰는 글 보다 워드로 쓰는 글이 훨씬 편하고 익숙하며, 정보를 찾을 때 책을 드는 것보다 위키피디아나 관련 영상을 찾아보는 편인 나도 예외가 아니다. 


책의 요지는 하이퍼링크와 멀티 미디어로 가득한 인터넷 세상이 방대한 연결 가능성과 확장성을 가져온 듯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깊게 사고하는 능력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뇌는 어떻게 변화에 적응해가는지를 조명하고, 수 많은 연구와 실험 결과를 거론한다. 


책은 크게 2개 부로 나눠져있다. 

1부 문자 혁명과 인간 사고의 확장은 인류의 역사에서 사고가 확장된 발명들- 문자, 책, 인쇄술- 등을 다루고 있다.


우선 전제해야 할 것은 우리의 뇌는 새로운 상황에 스스로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 '가소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초기 구술문화에서 알파벳 등 문자의 발명으로 글로 기록하게 되며, 인류는 풍부한 감각과 몰입을 잃었지만 논리적인 사고와 고취된 의식을 얻었다. 책의 발명도 우리의 사고를 변화시켰다. 문서에 띄어쓰기와 구두점, 문단 구조가 생기고 인류는 비로소 깊게 읽기가 가능해졌다. 깊게 읽는 것은 항상 주변의 위험물을 감지하느라 본능적으로 산만할 수 밖에 없는 인류의 뇌에 고도의 집중력을 가져다 주었다. 인쇄술의 발명은 이런 깊은 사고를 대중들에게 까지 확장시켰다. 저자는 지도, 시계 등의 도구의 발명이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도구의 기능을 넘어서 사고를 바꾸는 지적 기술이라 지적하며 문자 역시 이와 같은 지적 기술이며, 지적 기술에는 지적 윤리가 수반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은 문자만큼 강력한 지적 기술임에 비해 확장성에 대한 찬사만 있을 뿐 그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고 보는 듯 하다.


​2부 인터넷, 생각을 넘어 뇌 구조까지 바꾸다에서는 구체적인 실험 결과를 통해 인터넷이 어떻게 우리의 뇌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에 대한 가장 큰 착각이 방대한 정보를 다룰 수 있고, 더 정확하게 검색할 수 있기에 우리의 지적 능력을 확장시켜준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다수의 실험 결과는 인터넷이 인지 부하를 유발시켜 단기 기억을 처리하느라 지친 뇌는 장기 기억과 스키마를 형성하지 못해, 기억력은 저하되고 사고력도 동시에 사라진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인터넷은 우리로 하여금 그 규모나 범위 면에서 전례가 없는 정보의 도서관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중략) 인터넷이 축소시키고 있는 것은 스스로 깊이 아는 능력, 우리의 사고 안에서 독창적인 지식이 피어오르게 하며 풍부하고 색다른 일련의 연관 관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바로 그 능력이다."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p236 / 청림출판


또한 구글은 '세상의 정보를 조직하고 이를 광범위하게 접근 가능하고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미션과 선한 영향력을 이루고자 하는 경영철학과 달리 정보를 독점하여 우리의 관심과 사고를 조정하는 있고 있다. 굉장히 이중적이다. 그 중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구글이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서비스 활용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은 우리의 뇌를 컴퓨터와 동일시 하고 있다. 인간의 뇌를 '더 빠른 프로세서와 더 큰 하드드라이브, 그리고 사고의 과정을 조종할 수 있는 더 나은 알고리즘이 필요한 구식 컴퓨터'로 보는 것이다. 구글의 세상에서는 사색을 위한 침묵이나 모호함은 고쳐야할 버그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이 공감이 되었다. 특히 우리에게 지금 가장 친숙한 구글의 유튜브를 생각해보면, 편향된 알고리즘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플레이에 갇혀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본 적이 있는 나로써는 이 무서운 경고가 너무나 와닿았다. 


​"우리의 뇌는 망각에 익숙해지고 기억에는 미숙해진다."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p313 / 청림출판


우리는 어느새 기억을 웹에 아웃소싱하고 있다. 전화번호는 모두 스마트폰 주소록 속에 있고, 익힌 지식보다 그때그때 정보를 검색하는데 익숙하다. 매일 가던 길도 지도앱을 켜지 않으면 헷갈린다. 웹의 정보 저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록 우리는 망각에 익숙해지고, 기억은 쇠퇴한다. 한때 문제시 된 '디지털 치매'가 떠올랐다. 우리는 어쩌면 붕어보다 못한 뇌를 가질지도 모른다.


책은 다양한 실험과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심플하다.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 뇌를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 뇌를 잃는다는 것은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생각이 사라지면 문화도 소멸할 것이다.


이 책은 디지털 시대에 우리 뇌가 처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지만, 대안을 조목조목 제시하진 않는다. 

다만 선형적 사고가 준 깊은 사고와 높은 지적 능력을 매번 상기시키며 우리가 돌아가야할 방향을 은근히 제안한다. 

그래서 결론은 디지털 시대의 지배에 대항하기 위해 책을 읽자는 것!

나도 어느 책의 제목처럼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이 되어야 겠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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