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제공 #열린책들 #서평단뭐라 가장 쓰기 힘든 서평이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남에게 강요당한 일을 매개로 존재한다는 것, 그건 지독한 악몽이었다.’그 순간 이후로 한 사람은 강간 피해자로 규정된다. 작가의 말대로 피해자 중심으로 서술되는 작품들은 차고 넘치지만 여전히 세상이 가해자에게 더 관용적이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 ‘성적인 지배는 존재의 근본까지 침해하는 억압의 한 형식이다.’ -215p. 강간 이후의 끝없는 자기의심, 자책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은 피해자를 괴롭힌다. 사실 피해자라는 말도 이 책을 읽으면 한 존재를 완전히 담기 힘든 말이구나 라는 것을 체감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피해자됨’이란 무엇인가? 꼭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심리적 외상을 입어야 하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해야 피해자인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공쿠르상 수상을 받은 책인데 읽다보면 이게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진 않았다. 여러 번 책을 덮어가며 읽었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덤덤한 문체로 써내려가는 작가의 모습이 오히려 덤덤해서 더 슬펐다.
* 열린책들에서 도서제공을 받고 올리는 솔직한 리뷰입니다.열린책들에서 동사 5가지(걷다 묻다 보다 듣다 안다)를 주제로 5명의 작가들의 단편을 묶은 앤솔러지를 냈다. 이번 편은 <보다>로, 흰색 바탕에 붉은 색으로 그려진 속눈썹과 거울이 시각적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바스락거리는 겉표지 재질도 꽤 마음에 든다.)모토부에서 언니와 언니의 남자친구 진호, 그리고 자신의 남자친구 우형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모토부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일을 마주’보며‘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는 이야기, <이사하는 사이>처럼 자신과 똑같은 도플갱어를 물리적으로 ’보게’되는 이야기 등 보다-를 중심으로 연결된 5편의 단편선은 현대 한국문학의 추세를 잘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들 마다의 개성있는 작품을 맛볼 수 있다.개인적으로는 <별 세 개가 떨어지다>과 <하얀 손님>이라는 단편이 인상깊었다. 연락이 한동안 안 됐던 시골 할아버지네 과수원에 가서 일을 도와드리는데 낯선 사람의 발이 땅에 묻어있다든가 하는 느낌은 마치 습한 장마철 여름날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하얀 손님>은 이삿짐 운전기사인 주인공이 정말 말그대로 피부가 새하얀 알 수 없는 손님을 이사 목적지로 데려가는 과정에서의 이야기이다. 특이하게도 시점이 2인칭으로(‘너’로 서술됨) 서술되는데, 양선형 작가의 복잡하지만 특이한 문체가 내 취향에 맞아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볼 동기가 생겼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 바쁠 때 틈틈이 머리 식힐 겸 읽어보기 괜찮은 책이었다.살아 있는 경우라면 누구라도 변덕을 부릴 수 있고 그래도 된다. -54페이지무언가를 다시 할 수 있다는 말이 언제나처럼 나를 기분 좋게 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슬프게 했다. - 72페이지내가 이렇게 슬픈 눈을 하는 것은 나의 두 마음을 응시하는 탓이다. - 98페이지
공통점이라는 문학동인에서 출판한 시집을 운좋게도 읽게 되었다. 시와 짧은 산문도 곁들여져, 시와 시인들의 세계를 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시인이 다른 시인에게 차례를 넘기는 시들에서는 왠지모를 따뜻함을 느꼈다.시집 속 시인이 다음 시인에게, 그리고 이 시집이 다른 독자에게 전해져 하나의 느슨한 연결고리를 생산한다. 이는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느슨한) 연대를 연상시킨다. 연대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첫 독서모임에서 횡설수설할 때 누군가의 미소로 긴장을 풀 수 있고(25p), 섣불리 위로를 던지지 않고 같이 있어주는(98p) 것만으로도 타인과의 연대를 실천할 수 있다.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 시집에서, 사람의 선한 마음을 믿게 되고(127p)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도 공통(痛)점을 나눌 희망을 갖게 된다.이처럼 서로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점 문학동인이 정말 부럽다. 서로 다른 통점을 가졌지만, 문학이라는 공통점아래 모이는(157p) 이들이 질투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이들의 빛남이 문학동인 공통점을 넘어 광주,기후위기 등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통점을 어루만져주기를, 그리고 청년들의 공통점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