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살인 사건 매그레 시리즈 7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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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수사반장 매그레의 출장 추리 서비스.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모종의 살인사건에 연루된 프랑스인 교수(장 뒤클로)로 인한 파견 근무다. 사건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장 뒤클로는 네덜란드 해군 사관 학교 교수인 포핑아 씨의 초대를 받고 네덜란드로 강연을 갔다. 강연 후 포핑아씨의 이웃들과 집에서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자정 경 총소리와 함께 포핑아씨가 살해당했다. 살해 현장으로부터 총을 들고 나오는 장 뒤클로 씨가 목격되었다. 네덜란드 경찰 측은 뒤클로 씨를 범인이라 단정짓지는 않았으나 도시 내에 있기를 요청한 바다.



지역 유지인 포핑아 씨의 죽음을 둘러싼 몇 몇의 인물이 있다. 내연녀와 그녀의 아버지, 포핑아 씨의 친구와 제자, 부인과 처제. 명확한 증거에 집착하는 현지 경찰과 달리 매그레는 천천히 마을을 돌며 포핑아 씨의 주변인들을 관찰한다.



매그레 반장을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 그의 행각은 이상해보인다. 제대로 수사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반해 여기저기 들쑤시는 곳은 많고. 나같은 독자라면 맹하게 머리에 물음표 하나 달고 반장의 뒤를 쫓을 지 모른다. 답이 없는 질문의 연속. 답답한채로, 궁금한채로 수사를 쫓다보면 어느 새 결말이 펼쳐진다.



홈즈를 위시한 기존의 추리물에 익숙해져있는 독자에게 이 작품은 낯설다. 사건의 주변부에 끊임없이 질문만 내던지는 수사 과정은 범죄 수사물이라기보단, 심리 상담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포인트가 심농만의 자질이 아닐까. 그의 소설은 첫 번째 읽을 땐 갸우뚱, 두 번째 읽을 땐 음, 세 번째 읽을 땐 아하를 외치도록 만들어진건지도 모른다. 읽은 책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을 매그레 시리즈는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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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라트비아인 매그레 시리즈 1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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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몸집,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 투박한 말투. 심농이 만들어낸 매그레 반장의 모습이다. 뤼팽의 매력적인 외모와 화술, 예의는 애초에 갖고있지도 않다. 홈즈의 비범한 천재성도 그의 소유는 아니다. 굳이 비슷한 인물을 꼽자면 포와르 정도. 그러나 매그레는 그 모두와 다르다. 매그레 시리즈가 다른 추리 소설과 다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수상한 라트비아인>의 첫 문장을 읽으며 난 기대에 차 있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홈즈를 읽었던 순간만큼 흥분되더라는 추천인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문학계 거장들의 찬사 때문만도 아니었다. 열린책들에서 한 달에 두 권씩 맘잡고 펴낸단 계획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 모두에 더해 왠지모를 끌림이 있었다.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는 추리소설로 분류된다. 이야기 속에선 사건이 벌어지고, 매그레 반장은 범인을 뒤쫓는다. 그러나 심농에게, 매그레에게 중요한 건 범인과 트릭을 밝혀내는 일만은 아닌 듯 하다. 그 점이 일련의 작품들을 단순한 추리물에서 문학작품으로 승격시키는 건 아닐까.



매그레는 투박하지만 섬세하다. 현란한 추리의 기술 따위 선보이지 않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소통할 줄 안다. 소설을 읽어나가다보면 느끼겠지만, 천성이 따뜻한 사람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일반적인 탐정들과는 다르다. 우러러보게되진 않지만 재수없지도 않다. 그의 성격은 그대로 작품에 투영된다.



소박한 스케일. 사건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의 서사. 범죄 기법을 알고 난 후에도 왠지 한 번 더 읽고 싶어지는 작품이라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단 한 권만으로 심농과 매그레에 대해 잘난척을 하는 건 시기상조다. 한 권 더 혹은 한 번 더 읽어 봐야겠다. 그런데 그러다 정말 빠져버리면 어쩌나. 이거 칠십 몇권이 나온다는데 지갑이 거덜나지 않으려면 여기서 멈추는 게 현명한 짓일지도. 위험 경고가 요란스레 번쩍이고 있다.



(수상한 라트비아인에 대한 리뷰를 쓰려고 마음먹었는데... 오 마이 갓. 난 여태 무얼 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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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떼가 나왔다 -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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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실종되었다. 배꼽 옆에 악어 문신이 있는 아이를 찾기 위해 온 도시가 들썩인다.

우발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시체를 수습하기 위해 사내는 시체를 토막낸다.

인형같은 젊은 여자가 있다. 오디션에서 떨어진 후 심각한 다리 컴플렉스에 빠진 그녀는 제 다리에 녹슨 못을 박는다. 기어코 제 두 다리를 잘라낸다.

휠체어를 타고 한강 투신 자살 하는 여자. 그녀가 떨어지기 무섭게 한강에선 시체들이 솟아오른다.

실종된 아이가 고아원에 나타난다. 악어 모양 점은 이미 뭉게져 형체가 뚜렷치 않다. 아이는 고아가 된다.



연관되어 있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을 통해 진행되는 다섯 편의 이야기. SF만화를 방불케하는 엽기적인 사건들 투성이지만, 그 세계는 여전히 리얼하다.



처음 안보윤 작가를 접한 건 '안'이라는 자전 소설이었다. 무미건조함, 메마름... 한기가 느껴졌다. 뼈아픈 현실을 써내려가면서도 유머를 담고,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요즘의 소설과는 사뭇 달랐다.



데뷔작인 <악어떼가 나왔다>는 '안'과는 또 다르다. 생선장수의 도마 위에서 마지막으로 몸을 털썩이는 고등어마냥 소설 속 인물들은 요동친다. 활기가 아닌 아득바득함으로 꿈틀거리는 모습이 되려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야기는 차갑다. 판단은 유보한 채 현실을 꼬집는 강렬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글자를 읽고 난 후 물음 하나가 떠올랐다. 이 소설은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소설이고, 그 내용 또한 과장된 면이 없지않은데 어이없게도. 그 이유도 장면 장면에 뿌리내린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 때문은 아니었을까.



세상에 대한 부라림에서 무미건조함까지. 그 사이, 그 이후 안보윤 작가는 어떤 글을 써왔을까. 또 다른 작품이 날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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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작은 새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고정아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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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작은 산업도시 스파타. 과거의 영광은 가고 황폐함만이 남은 이 곳에서 창녀(조이 크럴러)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용의자로 지목된 두 사람은 죽은 여자의 남편(델레이 크럴러)과 고객(에디 딜). 사건과 연관됐단 이유만으로 파멸되기 시작하는 두 집안, 그 곳에 제 아버지의 무고함을 믿는 소녀(크리스타 딜)와 소년(애런 크럴러)이 있다.



문제가 있다는 걸 감지한, 피 냄새를 맡은, 누군가 탓하고 싶은 아이들만큼 잔인한 이는 없다. _96



500여쪽이 넘는 긴 이야기의 화자는 마지막 몇 페이지를 제외하고 '아이'의 시점이다. 이제 열댓살이 된 소녀 크리스타 딜. 그녀의 눈에 비친 아빠의 자존심, 아빠의 외도, 아빠의 파멸, 엄마의 히스테리, 정의되지 않을 성적인 욕망. 그녀보단 어른에 가깝(다 자부하)지만 아이일 수 밖에 없는 소년 애런 크럴러. 그에게 인식된 어머니 조이의 죽음, 분노의 표출, 변화될 수 없다는 자괴감.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보여진 스파타는,



긴박하지 않다.

심각하지 않다.

무력하지만 여전히 어디에선가는 활기를 띠고 있다.

긍정적이다. (여전히 무언가 희망하고 있다.)

그래서 잔혹하다.



순수하고 아름다울줄만 알았던 그림동화가 사실 잔혹했듯이. 그럭저럭 살만했다고 느껴졌던 스파타도, 그들의 삶도 사실은 엉망진창 진흙탕이었다. 현실은 참담했다.



그렇게 사건 후 십수년이 지나고 크리스타와 애런은 만나서 사건의 진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용의자였던 두 사람의 아버지가 모두 죽은 후에도 한참이 지나서야 밝혀진 진실 앞에서 그들은 숨겨왔던 욕망을 분출한다. 아득하고 격력한 욕구 해소의 끝에서 크리스타는 읊조린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다. 이 남자가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얼굴은 아름답지 않았다. 마구 깎아놓은 얼굴, 거친 얼굴, 냉혹할 수 있는 얼굴, 고집과 남성적 어리석음이 어린 얼굴. 하지만 내게는 아름다운 얼굴이었고, 나는 그 경이에 황홀했다. 남자의, 남성성의 아름다움이 나를 덮쳐 나는 힘을 잃고 방향 감각을 잃었다. _547



우리는 스파타의 낭만이었다. _547



하지만 정확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돌 더미 흩뿌려진 공터는 고대 폐허처럼 낯설게 타오르는 망가진 아름다움이 있었지만, 이곳은 기념은 고사하고 명명조차 하지 않은 폐허였다. 기억, 정체가 없는 폐허였다. _539



찢어발겨 잊어도 될 고약한 과거의 망령, 누구에게도 득이 될리 없는 기억. 그러나 소녀는 그 잔해를 아름답다고, 자기들은 스파타의 낭만이었다고 말한다. 그 땅을 떠나면서도 기억은 아름다움으로 포장해 챙기는 마지막 행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작은 새가 죽은 자들,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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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의 콩트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정재곤 옮김 / 북하우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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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미쳤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요즘에 들어서는 타박, 농담, 심지어는 애정의 표시로까지 사용된다. 그러나 '미친 사람'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수용적이지 않다. 조금이라도 남과 다르면 미친 사람 취급한다. 이해하고 고치기보다는 쉬쉬하고 배격한다. 그러나 미친 사람들이 앓고 있는 병, 즉 정신질환은 신체적으로 겪는 내과, 외과적 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덜 명확하긴하나 객관적 진단 기준이 있고, 치료 방법이 있으며, 호전되어 일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신질환은 사람들의 무지에 의해 나쁜 의미로 더 특별해진다. 프랑수아 를로르의 <정신과 의사의 콩트>는 충분한 임상적, 전문적 정보를 다루면서도 알기 쉽게 풀어써졌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책에서는 광장공포증, 조울증, 우울증, 자폐증, 중재 정신의학, 강박증, 정신분열증, 거식증 및 폭식증, 공황 장애, 스트레스 10항목의 정신질환을 다루고 있다. 각 챕터별 전반부에서는 해당 환자의 임상 사례를 치료 과정을 포함해 상세히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는 각 장애에 대한 DSM-VI의 정의나 진단 및 원인, 치료 방법 등을 여러 학설에 의거해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환자의 예후를 다뤄 차후 경과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다소간 해소시켜준다.



정신 질환에는 정신분열증, 자폐증과 같이 치료가 어려운 정신병도 존재한다. 그러나 우울증, 공포증, 강박증같은 많은 질환들은 경미하게나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겪어봤음직한 범위를 포함한다. 실제로 사례 속에 나오는 환자들의 모습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도 태어나서 별 문제 없이 몇십년을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그러다 어느날 특별한 촉발 요인에 의해 마음의 병을 앓게 된 것이다. '나'와 '미친 사람'은 타고나는 것도, 명확한 경계선으로 줄이 그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나 혹은 나와 친한 누군가도 늘 정신질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라는 것은, 미리 겁을 주고 공포심을 유발하고자 함이 아니다.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을 '미친 사람'이 아닌 이해와 포용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한 걸음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은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은 정신 질환에 더 많이 노출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사실은, 마음과 뇌의 아픔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치료 방법도 발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정신 장애를 겪는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더해진다면 정신 질환 치유의 길은 한층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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