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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생 텍쥐페리 지음, 강주헌 옮김 / 예담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여기 모자를 닮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 그림이 무서운가요?
어린 시절, 나중에 누군가를 만나면 꼭 이렇게 물어봐야지. 무섭다고 대답할만큼 순수한 사람을 만나게 될거야라는 작은 소망. 혹은 나도 어린왕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만나면 생텍쥐페리 아저씨에게 만났다고 편지를 써야지. 이런 바보같은(어른의 입장에서 보자면) 생각들을 하며 읽었던 추억들이 하나 둘 떠오를지 모르겠다. 전세계 많은 어린이들이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냈을 법한 셍텍쥐페리의 대표작 <어린왕자>.
 
그러나 그렇게 아껴가며 읽었던 책인데도 왠일인지 어른이 되면 너무나 금새 잊어버리는 듯 하다. 어쩜, 어른들은 보아뱀 그림도 못 알아봐? 라면서 투덜거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가림막을 치고 쓸데없는 그림 대신 수학, 국어, 영어 공부나 하라는 그저 그런 어른으로 우리를 바꿔놓는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어른이 되어 만나는 어린왕자는 그래서 더 반갑고 사랑스럽다. 어렸을 때는 그저 수많은 상징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현실과 결부되어 우리를 찌르고, 돌아보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장미는 잠시 등돌린 애인이 되기도 하고, 어린왕자가 만난 '나'와 여우는 인생의 친구로, 수많은 여행길에 만난 어리석은 어른들은 다름아닌 자신의 모습이 된다. 

이야기는 사막에 불시착한 '내'가 신비스런 금발의 어린왕자를 만나면서 시작한다. 대뜸 양을 그려달라는 아이. 두어번의 실패 끝에 상자 하나를 그려놓자 그제서야 아이는 빙그레 웃음짓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필요로 하는 양을 찾아내는 어린왕자의 순수함. 이제는 어린 시절조차 그 순수함을 지켜내기 버거운 세상인 것만 같아 문득 슬퍼진다.

그렇게 독특한 환경에서 만난 '나'는 조금씩 어린왕자에 대해 알아가는데.. 어린왕자를 사랑하는 방법이 어색했던 장미, 그런 장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는 자신의 별을 떠난다. 현명하나 어리석은 왕을 만나고, 허영심 많은 어른을 보며, 소유할 수 없는 별을 소유하려는 사업가를 방해하고, 진정 중요한 걸 버려둔 채 기록에만 몰두하는 지리학자를 만난다. 그리고 말한다. 어른들은 참 이상해!라고. 그가 유일하게 괜찮다라고 평하는 사람은 어른의 눈에 가장 어리석고 바보같은 전등키는 사람이다. 아! 아이러니하기도 하지.

돌이켜 보건데, 그 모습이 조금씩 섞여 우리를 만들고, 그런 우리가 모여 지구가 되었다. 그렇다면 지구는 퍽이나 살만한 곳이 못 될텐데도 어린왕자는 지구에서 큰 교훈을 얻어간다. 가장 어두운 암흑에 판도라의 상자 속 희망이 남아있던 셈이다. 여우에게서 "길들이는 법"을 배운 어린왕자는, 지구에 도착해 보았던 장미정원을 떠올린다. 아! 똑같으되 그네들은 나의 장미가 아니었다. 내가 길들인 그 장미만이 나의 장미라는 걸 그렇게 오랜 여행 끝에 깨닫는 어린왕자. 

 '나'까지 길들인 어린왕자는 이제 상자 속 양 한마리를 데리고 자신의 별로 돌아간다. '나'에게 아름답고도 슬픈 사막의 풍경을 남겨두고. 

 다시 읽는 어린왕자는 전만큼 달콤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깊은 우물 속에는 목을 축일 수 있는 시원하고 달콤한 물이 들어있게 마련이다. 그 우물까지 걸어가기는, 그 우물에서 물을 퍼내기까지는 힘들지라도. 

 오늘 밤 까만 밤 하늘을 올려다본다. 도시의 빛나는 어둠 속 몇 개의 별이 나를 향해 반짝인다. 여기 그리고 저기 저어기에도 별이 웃고 있는 것 같다. 어린왕자의 별. 나도 웃는 별을 갖게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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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러시아가 낳은 세계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이하 도끼). 그 이름만으로도 떨려 그의 작품 세계를 직접 만나려는 수고를 하기까지 많은 결심과 인내가 필요한 건 비단 나 뿐일까. 유명한 대중성에 비해 선뜻 다가가기 쉽지 않은 도끼와 그의 작품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러시아문학 번역가로 잘 알려진 석영중 교수가 펜을 들었다. 요컨대 도끼를 대중에게 소개하고자 함이다. 그 것도 매우 매력적인 소재, 돈을 통해. 아니 심오하고 깊이 있는 문학가에 왠 돈? 이제부터 만나보시라.

도스토예프스키. 그의 작품은 고전 중에서도 고전에 속한다. 인간에 대한 심오한 사유와 성찰이 담긴. 그렇다면 그의 작품만큼이나 생애 또한 심오하였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처절하고 돈에 쪼달리며,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까지 자아낼 정도다. 그의 인생은 선불인생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돈을 미리 땡겨 받고 기한내에 글을 쓰기 위해 내달린 시간들이었다. 일상이 되어버릴만큼 돈을 꾸는 편지를 지인들에게 써보내야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 밖에도 그와 돈에 관련된 일화는 끝이 없다. 그로 인해 자괴감에 시달리고, 타인에 대해 비방할 수 밖에 없었던 도끼. 그렇게 처절한 글쓰기를 해나갔으니 글에 돈에 대한 생각들이 빠졌을리 만무하다. 석영중씨는 바로 그 관점에서 도끼의 재해석을 시도한다. 돈과 관련된 그의 삶을 추적하고, 호평 혹은 혹평을 받는 작품들을 해석한다. 총 8부로 나뉘어진 그의 삶과 7개의 대표작을 뒤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의 삶을 조금은 이해한 듯한 착각 아닌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돈. 지극히 현대적이고 속물적이며, 왠지 고풍스런 근대 작가와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이 물건에 대해 그는 소설속에서 다양하게 그 의미를 찾아간다. 돈이 있어야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나는 돈을 초월했다라고 말하지만 실상 돈에 집착하는 범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시대에 이미 돈은 모든 인간관계의 연결 고리임을 파악한 세속적인 작가의 일면도 보인다. 그러나 돈은 돈일뿐, 그 것이 사람으로서 타고난 재능을 뒤엎을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분노한다. 

이렇게 돈의 다양한 측면을 적극적으로 소설에 반영한 그는 그러나 돈에 있어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실상 그의 작품들이 충분한 가치를 돈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는 상당한 수입을 가졌었다. 그럼에도 찢어지게 가난할 수 밖에 없던 도끼. 귀족적 낭비의 일면이 있었으나 그보다는 바보같은 베품과 어리석음으로 일생을 점철시킨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는 점점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아니 치명적인 통찰력과 비견되는 어리석은 씀씀이 덕분일까. 어찌되었든 인간적인 그의 글들은 그를 알기 전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덮고 난 후 당장 도끼 전집을 사야겠다고 결심하는 게 다소 오버러스할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도스토예프스키란 작가를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듯 하다. 위대한 고전 작가를 돈이란 속물과 결부시킨 소재도 독특하나, 그 이상으로 이 책이 사람을 끄는 매력은 저자의 맛깔스런 글솜씨가 아닐까싶다. 쉬우면서도 그 깊이가 얕지않게 서술하는 저자의 솜씨를 보니 그녀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문득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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