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행복하소서 - 정덕희가 전해주는 삶의 지혜
정덕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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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하게도. 나는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입맛 잃은 적이 없다." (p.144) 책 중간 어디쯤에서 이 구절을 발견하고는 급속도로 정덕희란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본인이야 복도 아주 큰 복을 타고났다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먹을 것이라면 설설 기는 나에게는 일단 딱한 상황이다. 열이 39도로 올라 주사 맞으면서도 나와서 된장찌개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는 그 먹성이라니. 딴 건 몰라도 밥 먹는 건 복스럽다는 나였으니 이 말 한마디에 이 아줌마가 달리 보인 게 별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작년 말 즈음해서 학력위조 소동으로 한바탕 난리를 쳤지만 여전히 입 크게 벌리고 "행복하쏘~서"를 외치고 다니는 그녀 정덕희. 처음엔 수필이 거기서 거기지. 또 좋은 소리 하다 끝내겠네 싶었는데 웬걸. 이 아줌마 말 하는 게 별 것 아닌 듯 아주 쏙쏙 박힌다. 년놈거리며 온갖 곳을 배회하며 강의하는 그녀의 삶과 사람 이야기는 도통 끝날 줄도 모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그녀의 대~단한 자기 사랑이었다. 아무리 깊은 골짜기에 빠져도 아무리 높은 산이 장벽이 되어 가로막고 있어도 '나는 멋지다'는 이미지 트레이닝과 '좋은 게 좋은거지' 의 사고는 자신 뿐 아니라 타인까지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녀만의 비법이고 마법의 주문이었다. 왜, 우리는 미리 걱정하고 안 해도 될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스스로 만들곤 하지 않나. 그런데 그저 만사 편하게 식인 그녀의 삶은 물 흐르듯 유연하다. 

 
그녀라고 아쉽지 않고, 화 한 번 안 낫겠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스트레스고 문제는 오래 머물 것이 못 된다. 혹자는 이미 가질 거 다 가지고 행복하니 그럴 수 밖에 라고 냉소를 흘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디 한 술에 배부른 장사가 있던가. 아픔과 고통과 스스로의 성장이 함께 했기에 버틸 수 있던 시간이었다. 스스로 스트레스는 쌓이지 않게 발로 뻥 차버린다. 우리라고 못할까.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음에도 여전히 부족한 나 사랑하기에 있어서는 그녀에게 특히 배우고 싶은 점이 있었다. 스스로 꽃 선물하기! 보통 꽃이란 연애질 할 때 남자가 여자한테 주는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스스로에게 꽃 선물 보내는 것이 못내 창피할 수 도 있지만. (개중엔 나처럼 꽃에 돈 쓰는 아까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선물, 꼭 필요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받으면 기분 좋은 꽃을 받았을 때의 그 우월한 기분 좋음을 느끼는 데 그 정도 투자쯤이야. 스스로를 빛나게 하는 일은 정말 사소한 데서 시작함을 알 수 있는 구절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하는 모든 말을 옳다, 좋다고만 듣지는 않았다. 수필이란 게 보통 그렇듯 결국 자신의 이야기니까. 그런데 이 구절만큼은 도저히 메모를 해 놓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더라.
 

"똑똑한 년.! 주제파악을 하는 년이 사랑받고 사는겨. 외모의 부족분을 애교로 커버한다 이거지? 그럼 잘하고 있는겨. 안 생겼으면 대안으로 예쁜짓이라도 해야 상품성이 있지. 안 생겨놓고 미운짓까지 하면 끝장인겨." -p.215

 
얼굴 안 생기면서 애교? 그거 못 봐주지 라는 생각에 20년 이상 무애교로 일관해온 삶. 그런데 아차! 잘못 생각해도 단단히 잘못 생각했다. 안 생겼는데 웃지도 않아? 휴.. 할 말이 순간 없어진다. 가슴에 지릿지릿 와 닿는 게 지금이라도 빨리 웃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애교 거 별거라고. 까짓 것 하면 되지. (라고 말은 해도 몸과 말로 나오지 않는 고질병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겠지만.) 

 
오랜 시간 예쁜 삶보단 시니컬하고 멋진 삶이 훨씬 좋아 라고 생각한 나에게 이 책은 커다란 타격을 직빵으로 날렸다. 그렇다고 아기자기 예쁜 삶을 살라는 것은 아니겠지만 뿌린 만큼 거두고 생각하는 만큼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따라 해서 나쁘지 않을 일이니 이래저래 메모해놓은 녀석들을 방에 붙여놓고 매일매일 읽어야겠다. 
 

아, 이 아줌마 정말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을 때 정덕희 아줌마의 욕 바가지 한 되 얻어맞으면 제대로 벌떡 일어날 것 같은 유쾌함. 지금 막 무기력 공장에서 발 뺀 나에게 제대로 가속도 붙여준 이 책의 지금 나에게 와서 어찌나 고마운지!
 

지금 왠지 만사 귀찮아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는 당신! 어때, 정덕희 표 욕바가지 들어보고 싶지 않수? (물론 책에는 욕 바가지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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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갈릴레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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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 세상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신기한 일, 무서운 일, 재미있는 일 등등. 그 중 우리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은 (물론 우리는 거의 다잖아! 라고 말하고 싶을 지 모르지만) 얼마나 될까. 아마 모르는 일이 더 많기에 미해결 사건도, 세상의 신비라며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야기도 끊이지 않는 건 아닐까.

 

여기 그 미해결 사건들의 숨겨진 비밀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남자가 있으니, 이름하여 데이도 대학 공학부 물리학과 제13연구실 조교수 유가와. 경시청에 근무하는 친구 구사나기의 부탁으로 멋지게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 남자의 뒤를 따라다니다 보면 베일에 가린 비밀 몇 가지는 명쾌히 풀어져버린다. 때론 너무 간단해서 속상할 정도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두 번째 유가와 시리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분들, 바로 맞췄다. 국내에서는 먼저 선을 뵌 <용의자 X의 헌신>의 그 유가와가 맞다. 바로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은 다소 밋밋할 수 있음을 밝혀둔다. 일단 단편의 문제로 이야기가 간결해질 수 밖에 없다는 치명적 약점. 두 번째는 이 책이 천재 물리학자의 탄생을 알린 유가와 1탄이란 점. 그러나 그 탄생만으로도 이 책은 뿌듯하게 읽을 수 있으니 다소의 밋밋함은 용서해주지 않으려나.

 

어쨌거나 천재 물리학자의 불타는 호기심과 지적 능력은 그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타오르다, 옮겨붙다, 썩다, 폭발하다, 이탈하다의 총 5장으로 나뉜 이야기는 각각의 주제에 맞는 살인사건과 살인의 원리를 과학으로 찾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뭔가 배합이 맞지 않는 듯 보이는 구성, 그러나 전기공학과 졸업 후 관련 직종에서 일한 경험에서 나오는 지적 밑받침 덕분인지 이야기의 논지는 상당히 치밀하다.

 

스토리는 사실 뻔하다. 살인 사건, 경시청 구사나기 형사의 현장 방문, 유가와에게 일감 던져놓기, 혼자 이리저리 바쁜 유가와, 사건 해결 및 살인 원리 설명. 무슨 소설이 이렇게 조직화되어 설명이 가능하냐고 물어봐도 뭐.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설 특유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다운 스피디한 속도감은 여전하고, 스토리도 흥미롭다.

 

다만 다소 간략화 된 이야기 흐름이 아쉽다면 아쉬울까. 특히 이 점은 앞에서 밝혔듯이 <용의자 X의 헌신>과 비교해서 더 그런 느낌을 준다. 뭔가 이야기가 진행될 듯 하다가 후다닥 끝나버리는 느낌일까.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장편에 손 들어주고 싶은 강렬한 욕망. 어쩌면 소설보다 먼저 만난 일본드라마 <탐정 갈릴레오>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러고 보니 이 책을 원작으로 일본에선 동명의 드라마를 제작한바 있다. 책만으로는 유가와의 이미지가 상상되지 않는 분들은 멋진 천재 물리학자를 보기 위해서라도 필히 보시길. (다만 드라마에서는 극적인 요소를 위해 구사나기 대신 여형사를 선택했다.)

 

그래서 결국은 복합적인 여러 요소로 인해 히가시노 읽기의 즐거움보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는 개인적인 후일담. 역시 1탄부터 차례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교훈을 주는 책. 더불어 역시 영상보단 활자를 먼저 봐야 활자의 재미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책은? 역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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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이야기 - 아주 특별한 사막 신혼일기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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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마오. 당신을 처음 알게 된 건 쟈핑와의 <친구>라는 수필집에서였어요. 짧은 글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겼던 당신이 이미 세상에 없다는 걸 알고 쟈핑와 만큼이나 안타까워했었죠. 그리고는 당신의 그 많은 글을 읽지 못하는 나의 무지한 중국어 실력에 또 한번 속으로 울었죠. 그런데 인연이 닿았나 봐요. 이렇게 당신의 글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려서부터 자유분방했던 싼마오. 결국 자신의 고향 중국을 떠나 멋진 남자 호세와 서사하라에서 살림을 꾸리게 된 그녀. 미치도록 힘겨웠지만 그만큼의 행복으로 충만했던 얼마간의 삶 그리고 호세의 죽음. 다시 돌아온 대만. 그러나 48세의 나이로 직접 세상과 이별한 싼마오. 삶 자체도 한 편의 소설이고 영화와도 같았던 그녀의 사하라 이야기가 웃음기 가득 배고 우리를 찾아왔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이기주의자 싼마오. 
 

몇 번을 불러도 한 번이라도 더 부르고 싶은 그녀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재미있다. 지하철에선 애써 소리 죽여가며 킥킥거렸고 집에서는 못내 참지 못해 푸하하로 이어졌다. 때로는 너무나 심각한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 '어쩜 좋아' 를 외치며  책을 부여잡았고, 뻔뻔스런 그녀의 이웃을 보면서는 함께 노발대발했다. 맛깔 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말은 바로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말일지도!
 

<사하라 이야기>에는 그녀와 남편 호세의 결혼 직전 이야기부터 결혼서류 준비, 결혼식, 신혼을 거쳐 그들의 다사다난한 삶 이야기가 그대로 녹아있다. 그 이야기들은 애써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기에 우리네 삶처럼 어쩔 때는 웃음이 가득하고, 때론 너무나 심각하다. 한 마디로 울고 웃고 욕하고 놀라고 화내고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삶의 조각들이다. 다만 배경이 사하라라는 사막이고, 그 중에서도 '못' 사는 묘지구역이라는 점. 집은 폐품과 관을 쌌던 상자로 만든 가구로 가득 찼다는 점들이 좀 다르달까. 
 

그러고 보니 읽는 내내 그녀의 집이 참 궁금했다. 도대체 없는 것이라곤 없는 만물상 같은 그녀의 집. 그 집은 얼마나 멋있고 달달한 느낌으로 가득 찼길래 사람들이 못 들어가 안달일까. 싼마오의 음식 솜씨는 얼마나 좋길래 호세가 껌뻑 넘어갈까. 도대체 얼마나 능력이 좋아 미용사, 치과의사, 의사, 수의사, 산부인과 의사까지 겸업을 하는 걸까. 속 표지에 담긴 그녀의 모습은 세상물정 모르는 공주님 같던데, 그 사하라에서 살아가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는 끝없는 질문. 
 

<사하라 이야기>는 싼마오에 대한 나의 작은 궁금증을 200% 확장시켜버렸다. 이 상태로 그녀에 대한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당장에 중국어 학원을 등록할지도! 그녀의 끝내주는 생활력도, 바로 생생하게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글 솜씨도 부럽고 샘 난다. 아니 너무 좋다. 그녀를 단 한 권의 책으로 만나야 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오랜만이다. 책 한 권을 읽으며 이렇게 웃음이 넘쳐 흐른 것은. 아직 사하라 사막 어딘가에서 호세와 사랑 뿅뿅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싼마오에게 하늘 너머 몇 글자 보내는 것으로 행복한 그녀와의 첫 만남을 마쳐야겠다.
  

"당신의 재미있고 정신 없고 똘똘한 삶 이야기를 슬쩍 이나마 만나볼 수 있게 되어 너무나 반가워요. 싼마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다던 당신. 어딘가에서 내 글도 보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언젠가 한번 웃어줘요 그 곳에서. 그럼 난 정말 고마울 거에요. 벌써 당신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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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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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 진주귀고리 소녀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의 화가. 소설일까 예술인문서일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집어든 책은 얼핏 보기에 소설같지는 않고. 아, 베일로 덮인 베르메르를 제대로 만나보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아뿔싸!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한마디만 하자. 베르메르라는 화가, 그의 그림, 예술 세계가 궁금한 자들은 한 발 뒤로 빠지길. 이 책은 베르메르를 담았으나 그에 대한 책이 아니다. 또한 만만치도 않으니 각오 단단히 하고 따라올 것!
 

그렇다. <베르메르의 모자>(추수밭.2008)는 예술인문서가 아닌 역사경제인문서로 분류해야 마땅할 책이다. 굳이 분류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장르 나누기가 상당히 애매한 책이다. 시작은 베르메르의 그림으로 시작하고 그의 작품 이야기를 슬쩍 꺼내는 듯 하더니 채 두 페이지가 넘어가기 전 특정 사물에 초점을 맞춘다. 이내 주제는 하나의 사물에서 16,17세기 네덜란드, 유럽의 역사로 넘어가고 어느 새 배경은 중국이 된다. 아니 이런 버라이어티한 책이라니!
 

어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나 싶어 저자의 이력을 따라가본다. 아하. 중국 상하이로 유학을 하고, 계속 중국에 대해 연구했단다. 어쩐지 당대 중국의 사회, 경제 전반을 둘러보는 저자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더니.
 

그런데 왜 하필 중국과 교류한 그 많은 나라 중 네덜란드였을까. 그 시작은 소박하다. 20살 어느 여행길, 우연한 자전거 사고. 그리고 따뜻한 아주머니의 친절. 그 곳은 네덜란드 델프트였다. 베르메르가 그림을 그리고, 당시 네덜란드의 무역항이었던 어느 마을. 바로 그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저자가 들려주는 베르메르의 그림이야기는 다섯 개. 거기에 더해 또 다른 네덜란드 화가 반 데르 부르흐의 작품 하나. 총 6개의 그림을 통해 16,17세기 사회상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마냥 쉽지만은 않지만 한 편의 이야기를 보듯 술술 이어진다. 
 

그림 혹은 영화를 통해 사회상을 그려낸 책은 지금껏 수없이 대중에게 전해졌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 작가의 그림을 통해, 그 중 한 요소에서 시작해 점점 더 넓은 이야기를 펼치는 저자의 통찰은 상당히 날카롭고 자연스럽다. <델프트의 풍경>을 통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소개한다. <장교와 웃는 소녀>를 통해서는 장교의 펠트모자를 갖고 상플랭의 원주민 협력기를 그려낸다.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들에 독자들은 그저 빠져들 뿐이다.

 
그 뿐인가.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에서는 유럽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중국자기의 여행을 따라가본다. <중국 화원의 풍경이 그려진 접시> 속 그림을 보며 담배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내기도 하고, <저울을 든 여인> 속 은화를 따라 은 거래의 속성을 보여준다. 

 
때론 그런 그림 속 사물찾기와 그 것에서 파생되는 이야기 전개가 억지스럽다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가 소개하는 당시의 유럽, 중국 사회를 정신없이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책에 푹 빠져든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에게 쉽지만은 않은 책이었다. 사정없이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과 국가 간 복잡한 관계는 읽는 이를 상당히 고생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한 번, 두 번 독파할 때마다 새롭게 들어오는 정보, 지식들에 분명 고마워할 나와 당신의 모습 또한 그려진다. 
 

누군가는 "낚였다!"며 무릎을 칠 지 모른다. 그러나 다소의 머리 굴리기만 감당한다면 이 험난한 세상에 이런 낚임 정도야,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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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에 쓴 수필
정목일 지음, 이목일 그림 / 문학수첩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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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은 얼마나 빡빡하고 좁았던가. 서정 수필이란 말이 아깝지 않은 그의 글들을 읽다 보면 무엇인가 몸에서 무엇인가 하나하나 빠져나감이 느껴진다. 글자들을 잡으려는 머리 속 지식들까지도 한 거풀씩 벗겨지는 게 처음엔 어색하기만 하다. 소설을 읽는 마냥 앞으로 돌아가 다시 글자를 머리에 집어넣는데 금방 다시 지워져 내린다. 아이고야, 왜 그런가 했더니 제목 봐라. 모래밭에 쓴 수필이란다. 모래밭에 쓴 글이 어디 오래 남아있겠나. 내 머리도 모래밭이 된 듯 하다.

 
그러나 글자는 지워져도 그 감정만은 오롯이 남아 몸을 적셔 내린다. 내가 책을 붙잡고 읽는지 책이 나를 붙잡고 읽는지 모를 일이다. 글 한 편을 곱씹기 전에 손과 눈이 먼저 다음 장을 넘긴다. 왠지 모르게 책을 내려놓을 수 없다.
 

처음엔 수필집이라 하여 조금씩 읽어나갈 참이었는데, 어째 읽기 시작하니 놓기가 아쉽다. 그저 이 얘기 저 얘기 들려주는 맛에 취했나 싶다. 결국 앉은 자리에서 수십 페이지가 훌떡훌떡 넘어간다. 
 

네 가지 이야기다. 별에 대한 명상, 타악기의 명인, 연꽃의 집, 아름다운 간격. 무슨 기준으로 나누어놨나 슬쩍 다시 열어보는데 봐도 모르겠다. 그저 가까운 풍물을 읊고, 사람 이야기도 몇 번 해보고, 과거로 밟아 들어가는 길도 걸어본다. 자신의 이야기도 슬그머니 꺼내놓는다.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아야겠는지 수필이란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글이라더니, 정말 정목일이란 수필가가 오롯이 글 속에 남아있다.

 
그럼에도 아직 붙잡을 욕망으로 가득 찬 나에게는 다소 먼 그대였는지 모르겠다. 그저 왔다 가는 글귀들이 잠깐 마음을 편히 해주었고, 어느 저녁 놀 소파에서 뒹굴 거리며 듣는 할머니 이야기 같아 푸근했을 뿐이었다. 수필을 아는 사람, 지나온 삶이 많은 사람이라면 더 공감하기 쉽지 않을까. 그 구절 하나가 마음 속에 자리잡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책 중간 어디쯤 경봉선사와의 만남 이야기가 있었다. 처음 친견한 자리에서 이리 물으셨다는 경봉선사.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애꿎은 대답을 하고 모르겠다 해야 했는데 라며 후회스러운 저자의 이야기가 아직은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경봉선사의 물음 하나는 그대로 마음에 박힌다.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나라면 어찌 대답할까. 이리 대답하진 않을까. "그럼에도 길 따라 왔지요."라고. 아니, 그 자리에선 말 한마디 못하고 애꿎은 웃음만 지을 지 모를 일이다.
 

수필이란 놈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매한가지 아닐까. 사람 사는 걸 적은 글이라면 거기에 무슨 길이 있겠나. 소설처럼 이리 쓰라고 알려줄 길이 있는 바도 아니고, 그저 자신이 걸어온 시간, 지혜로 쓰는 글인 것을. 아니, 비단 수필 뿐이겠나. 인생살이가 길에 대한 질문일지 모른다. 그래, 당신은 없는 길 어찌 가고 있습니까.

 
그저 한 판 잔잔하니 쏟아 부은 글이라 지겨울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웬걸 사람 잡아 끄는 힘이 여느 자극적인 소설 못지않다. 오늘은 책 한 권 집어 들고 권하러 할머니 댁을 찾을까 한다. 읽으시는 내내 그렇지, 이거구나 하는 추임새를 넣어가시며 읽으신다면 더 바랄 게 없는 추천이겠는데. 
 

잊을 뻔했는데 똑같이 목일이란 이름으로 맺은 글, 그림의 인연이 놀랍다. 나무 아래 뜨신 햇살 받으며 책을 써내지야 않았겠지만 왠지 그렇게 읽는다면 책 맛이 더 살아날 법하다. 투박한 듯 정겨운 글과 그림의 매력에 한 판 빠져보실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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