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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때가 오면 - 존엄사에 대한 스물세 번의 대화
다이앤 렘 지음, 황성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6월
평점 :
“죽음을 벽장에서 꺼내 대화를 나누는 일은 중요해요.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삶을 긍정하는 실천일 수 있거든요.”
『나의 때가 오면』, 다이앤 렘/ 헤더 매시(죽음 교육자)
책을 선택할 때는 기대치가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은 흥미로웠지만 엄청 기대하고 집어 든 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30쪽이 넘어가기 전에 난 이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다 읽어냈다. 부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접하고,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나의 때가 오면』은 존엄사와 관련된 스물세 명(존엄사를 원하는 말기 환자, 사랑하는 이를 존엄사로 떠나보낸 혹은 그러지 못한 사람들, 의료조력사망 관련 의사, 호스피스 종사자, 입법자, 종교인 등)과 저자인 다이앤 렘의 인터뷰집이다. 다이앤 렘은 존엄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의료조력사망이 불법인 주에 살았기에 스스로 곡기를 끊으며 죽어간 남편을 무력하게 바라봐야 했던 한 명의 아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에는 존엄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실려 있지 않다. 저자는 사려 깊게 존엄사를 둘러싼 다양한 입장을 보여준다.
나는 꽤 어린 시절부터 안락사를 찬성했던 사람이지만, 이 책을 통해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 과정의 복잡함과 어려움, 단순하지 않은 역사적 맥락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단순히 환자의 입장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입장 차이와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점도 이 책이 가진 매력이다.
2024년 현재 미국 10개 주에서 적용되고 있는 건 안락사*가 아닌 의료조력사망이다. 의료조력사망은 비용뿐 아니라 절차,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워 원한다고 해서 모두 가능하지도 않다. 기대 수명 6개월 이하의 불치병이 대상이며, 의사 표현뿐 아니라 자가 투약이 가능해야 한다. 말기 환자와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은 존엄한 죽음을 '쟁취하기 위해 아주아주 열심히 싸'운다. 끝내 '아주 평화롭고 아주 고요'하게 죽어가기도 하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이 준비 과정에서 먼저 죽어버리기도 한다. 힘겹게 처방을 받았지만 사용하지 않고 죽는 경우도 왕왕 있다.
* 의사의 적극적 개입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안락사의 경우 스위스, 네덜란드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의료조력사망을 원할까? 고통의 경감을 위해? 많은 인터뷰이들은 말한다. 말기 환자들이 원하는 건 선택지라고. 의료조력자살이라는 비판에 옹호자들은 말한다. 존엄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산다는 선택지는 애당초 주어지지 않는다고. 그들이 고를 수 있는 건 어떻게 죽을지다. 병원이라는 낯선 장소에서 기계에 둘러싸여 죽을 것인지, 혼수상태로 죽을 것인지 아니면 깨어 있는 상태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죽을지 말이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안도, 나에게 선택지가 있다는 위안을 원한다.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해서는 안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환자 본인의 (잘) 죽을 권리와 남은 가족의 현실적인 생활고 등으로 존엄사를 지지한다. 그러나 제도는 늘 양면성과 사각지대를 가질 수밖에 없기에, 사회 구성원의 합의, 발생 가능한 문제의 대책 등은 계속 연구되고 보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개인부터 이 문제를 인식하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기에.
의료조력사망을 선택한 사람들은 삶에서 도망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마지막을 더 적극적으로 살아낸다. 죽음은 삶의 대척점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삶의 일부로 가져올 때 삶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다이앤 렘은 인터뷰 말미에 인터뷰이들에게 좋은 죽음에 대해 질문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답변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마지막 순간은 가능하면 아주 사적이기는 해도 혼자는 아니면 좋겠어요."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