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집 - 보림 창립 50주년 기념 그림책 내일의 책
이혜리 지음 / 보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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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조금씩 잃어가는 병, 치매를 겪게 된 이와 그 곁을 지키는 이의 이야기를 담은 『기억의 집』은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아름다운 집에 사는 사자 씨와 토끼 씨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복사꽃뿐 아니라 채송화, 봉숭아, 수국, 붓꽃, 구절초가 계절마다 피어나는 곳이라니 사시사철 꽃이 이어지는 풍경을 떠올리면 그 안에서의 삶은 충분히 평온해 보입니다. 둘은 각자가 잘하는 일을 하며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시간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자주 쓰던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분명 알고 있던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 머뭇거리는 일이 요즘 들어 잦아졌습니다. 대화의 흐름이 끊기고 순간적으로 멈춰 서게 될 때면 답답함과 불안이 따라옵니다. 노화로 인한 단순한 건망증일 거라 생각하지만 혹여나 다른 시작은 아닐지 불안한 마음이 한켠에 머무릅니다.

기억을 잃는 일이 두려운 병이라고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가족이 치매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떠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 무게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억이 흐려지는 과정이 어떤 시간인지 그리고 그 곁을 지켜보는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치매에 대해 배우면서 막연했던 두려움은 조금 정리되었지만 기억의 상실이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자씨는 이제 많은 기억을 잃은 듯 보입니다. 토끼 씨는 지금의 사자 씨는 사자 씨일지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사자 씨의 기억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헤아리기보다 토끼 씨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사자 씨를 떠올립니다. 기억은 흐려졌지만 관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토끼 씨는 남아 있는 기억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을 통해 지금의 사자씨를 바라봅니다.

『기억의 집』은 치매를 겪는 이들의 곁에 선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며 우리가 그 시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기억이 흐려져도 함께했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그들이 함께 지내온 시간은 집처럼 그 자리에 남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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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터 부인의 정원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74
N. M. 보데커 지음, 이혜원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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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터 부인의 정원에는 고슴도치가 살고 있었습니다. 부인과 고슴도치는 서로 활동하는 시간대가 달라 맞추질 일이 없었지만 가끔 해가 진 직후에 만나기도 했습니다. 재스터 부인은 고슴도치를 위해 우유를 준비했고 고슴도치는 부인이 집에 들어가면 마셨습니다. 5월의 어느 날 정원의 텅 빈 꽃밭에서 자고 있던 고슴도치가 놀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재스터 부인이 꽃씨를 뿌리고 물도 주고 했기 때문입니다. 색이 비슷해서 부인은 고슴도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피할 수 도 있었지만 피하지 않은 고슴도치는 어떤 모습을 하게 되었을까요

꽃밭에 있다가 몸에 꽃씨가 묻은 고슴도치의 모습이 이야기에 재미를 더합니다. 그림책을 보며 작은 고슴도치의 모습을 찾아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고슴도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자연과 어우러진 정원을 보고 있으면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이런 곳에서는 시간도 느리게 흐를 것만 같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지칠 때 자연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작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느껴집니다. 작은 해프닝을 다룬 이야기지만 그 이면에 보이는 것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던 순간에서 시작된 오해와 그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던 배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재스터 부인의 정원』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읽혀 온 그림책입니다. 오랫동안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수채화 그림은 편안한 분위기를 전하고 이야기는 소박하지만 재미와 따뜻한 마음을 남깁니다. 유럽의 정원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오래 보고 싶은 장면들이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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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시적인 과학, 당신을 위한 최소한의 우주
우주플리즈 지음 / 모티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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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혜성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소식에 관찰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기대와 달리 한참을 누워 있어도 별똥별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 앞에서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길게 꼬리를 남기며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게 되었습니다. 소원을 빌 틈도 없이 지나갔지만 도심에서 별똥별을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뻤습니다. 도심을 벗어난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 수많은 별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올려다보게 됩니다. 밤하늘의 별이 가진 아름다움과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의 깊이가 시선을 붙잡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동경으로 바라보던 우주를 떠올리며 『이토록 시적인 과학, 당신을 위한 최소한의 우주』를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볍게 전달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평소 천체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해 관심이 갔는데 책을 읽으며 지식 전달을 넘어 우주를 통해 지금의 나와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의 저자는 유튜브 채널 <우주플리즈>를 운영하는 우주 과학 콘텐츠 크리에이터입니다. 우주에 관련 영상을 종종 시청하기에 이 채널을 찾아 구독도 했습니다. 우주가 궁금해 수많은 자료를 보고 자신의 언어로 번역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이 즐거웠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책 역시 기본적인 우주 지식을 전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풀어내 편하게 읽었습니다.

책의 첫 부분에서는 태양을 축구공 크기로 가정하고 광화문에 놓았다는 설정으로 태양계를 설명합니다. 막연하게 느껴졌던 거리와 크기가 눈에 보이는 수준이 되니 쉽게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태양계의 거리를 가늠하며 지구의 크기와 위치를 이해하고 나면 지구의 단짝 달의 이야기와 태양계를 이루는 행성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다룹니다. 익숙하게 외우던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의 순서를 떠올리며 각 행성의 특징을 컬러 사진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지구와 비슷해 보이지만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조건의 행성들을 보며 골드락 존(생명체가 살 수 있는 딱 알맞은 거리)이라 불리는 지구의 위치와 지구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목성의 존재를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우연이라기보다 일정한 질서 속에서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과학적인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아직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양계를 지나 더 넓은 영역으로 시선을 옮기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세계가 펼쳐지고 체감하기 어려운 거리와 시간을 지닌 우주를 보게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이 얼마나 작은지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생명이 살아가는 이 지구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살아가는 나의 존재 또한 가볍지 않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토록 시적인 과학, 당신을 위한 최소한의 우주』는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과 지금의 내 삶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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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말을 하는 아이 이야기강 시리즈 13
고미솔 지음, 홍소 그림 / 북극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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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는 사람 앞에서만 노래하는 황금새를 곁에 둔 임금은 그 노래를 듣기 위해 나무꾼의 딸과 결혼하고 나무꾼의 딸은 왕비가 됩니다. 하지만 공주를 낳고 세상을 뜬 왕비를 잃은 슬픔에 잠긴 임금은 딸의 이름조차 제대로 지어주지 못한 채 '나중에'라는 말만 남겼고 공주는 '아라루아'(나중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자라던 아라루아는 자식을 잃은 꾀꼬리의 보살핌으로 살아남고 사람 대신 새를 통해 말을 배우며 성장합니다.

『새의 말을 하는 아이』는 사람의 말을 배우지 못하고 새의 말을 익히며 자란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보고 배운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친구인 꾀꼬리와의 소통으로 새의 언어를 하게 된 아이입니다. 그러던 중 여러 사건을 겪으며 슬퍼서 눈물이 나는 이유와 기쁠 때 웃게 되는 이유를 알아가며 자신이 감정을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씩 배워가게 됩니다. 슬픔과 기쁨은 따로 떨어진 감정이 아니라 서로 이어져 있고 감정을 이해하는 일이 곧 자신을 이해하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어린아이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딛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힘들었던 경험들이 아이에게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이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책을 읽으며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서툴게 표현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알아가고 표현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전해주는 이야기란 생각이 듭니다.

『새의 말을 하는 아이』는 아름다운 표지에도 반했고 판타지의 세계를 보여주며 여러 궁금증을 갖게 만든 책입니다. 호기심으로 읽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표현하는데 용기를 건네는 이야기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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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담아, 제인 오스틴 - 제인의 사람과 사랑, 문학에 대한 가장 내밀한 생각을 나눈 편지들
제인 오스틴 지음, 유혜인 옮김 / 이일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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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쯤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을 맞아 대표작들이 특별판으로 출간되었고 그중에서 『오만과 편견』 과 『이성과 감성』을 구입했습니다. 『오만과 편견』은 영화로 먼저 만났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제인 오스틴은 영국의 시골마을에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작가로 알고 있는데 그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섬세한 감정과 관계를 그려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랑을 담아, 제인 오스틴』은 그런 저의 궁금증을 풀어 준 책입니다. 제인 오스틴이 가족과 편지를 주고받은 내용을 담은 책으로 수많은 편지 중 42편을 골라 담았다고 합니다. 여러 형제자매 가운데 특히 언니와 나눈 편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고 뒤쪽에는 조카들에게 보낸 편지들도 함께 실려 있었습니다.

책을 읽기 전 제인 오스틴의 가계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위로는 오빠와 언니들이 있고 아래로는 남동생까지 형제자매가 많은 집안이었습니다. 조카들도 무척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이야기뿐 아니라 가족을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을 편지에서 곳곳에서 보게 됩니다. 요즘이라면 전화로 오래 이야기했을 법한 일상들이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인 오스틴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앞부분에는 무도회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관찰한 경험이 소설 속 인물로, 이야기로 이어졌을 거란 생각이 들게 합니다.

편지 내용 중 언니에게 왜 같은 사람과 네 번이나 춤을 추면서 정작 언니를 관심 있게 본 사람과 춤을 추지 않았는지 타박하는 이야기는 재밌기도 하면서도 그녀의 관찰이 사뭇 진지하고 세심하구나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새언니를 잃은 후 슬픔에 잠겼을 가족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조카에게도 앞으로를 버텨낼 수 있는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책 이야기를 할 때 기쁨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습에서는 작가로서의 면모도 느껴졌습니다. 뒤편에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조카가 쓴 글을 세심하게 살펴보며 조언해 주는 부분에서 가족을 넘어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태도를 전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사랑을 담아, 제인 오스틴』은 제목처럼 제인 오스틴의 사랑이 담긴 편지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녀의 재치 있는 모습과 사람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이 편지에 드러나 있어 작품 속에서 느껴졌던 분위기와 이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그녀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고 그녀가 살아온 시간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통해 인간적인 면모뿐 아니라 작가로서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었고 작품을 다시 읽게 된다면 이전보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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