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불 - 존재에서 기억으로
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한 때 일본 소설이라면 진저리치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 소설을 읽는 이유를 모르겠고, 거기서 뭘 느끼는 건지도 알 수 없어 가까이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우연히 츠지 히토나리의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를 읽고는 조금씩 일본 소설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었다. 주제를 사랑으로 두고 있는 일본 소설들에는 개인적으로 그리 공감하지 못해서 지금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외의 주제들에 있어서는 재미도 느끼고 흥미도 느끼고 그 밖의 다른 감정들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백불>의 주인공은 에구치 미노루다. 오오노지마라는 작은 섬에 살고 있는 그의 전반적인 인생을, 전쟁 속에서의 삶의 모습을 이 책 속에 그려 놓았다. 칼을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나 전쟁 중에는 철포 개발에 종사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발명가가 된 저자의 할아버지 이마무라 유타카가 미노루의 모델이라고 츠지 히토나리는 밝혀 두었다. 조부를 모델로 하여 픽션을 만들어 냈으며, 그 속에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군국주의가 팽배하던 그 시기의 일본, 미노루를 포함한 일본인들은 군인이 되어 나라를 위해 전쟁에서 싸우는 것을 명예 그 자체로 인식했다. 군인을 동경하며, 또 실망하기도 하며 점차 성장해가는 미노루에게는 어려서 강물에 빠져 익사한 형의 죽음이라는 상처가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이 뭔지도 채 알기 전 겪은 동네 누나와의 첫사랑이 있었다. 언제나 주위에는 사랑이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고 또 죽음이 있었다. 형도 죽었고, 사랑했던 사람도 죽었고, 친구들도 하나둘씩 죽어갔다. 왜 사람은 죽어야 하며 그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미노루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고민과 번뇌와 생각 속에서 미노루는 사람들의 뼈를 모아 불상을 만들 것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우리 중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삶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당장 5분 후가 될 수도 있고, 내일이 될 수도 있고, 10년 후가 될 수도 있고, 또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바로 그 죽음에 대해, 그것이 갖고 있는 철학적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거운 주제임이 분명하지만 저자의 담담한 듯 써내려가는 문장 속에서 뭔가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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