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줴의 겨울
디안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이것은 나와 내 형제자매의 이야기다. 둥니(東), 시줴(西), 난인(南), 베이베이(北).
동서남북 어디서든,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내려오면 곧바로 그 무대 위에 다른 사람이 등장한다.


라는 문장으로 이 이야기 <시줴의 겨울>은 시작한다. ‘동서남북’의 돌림자를 가진, 이 책 속의 화자 시줴와 그의 사촌형제들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베이베이를 제외하고 둥니, 시줴, 난인이 등장하는데 그 캐릭터가 참 독특하고 개성이 넘쳤다. 나 시줴는 고아다. 아버지가 죽고, 바로 아파트 너머로 몸을 던진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그래서 시줴는 난인의 부모님이기도 한 작은 어머니, 아버지네 집에서 살게 된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탓인지 시줴는 적극적이기보다는 소극적인 인물에 가깝고 자기 방어적이며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가족들에게 있어서만큼은 다정하고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따듯한 사람이다. 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지만 때때로 선생님의 모습을 잊고는 한다. 방랑자적 성격을 갖고 있는 둥니는 시줴보다 누나인데, 그녀의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운다. 그 싸움의 규모는 항상 커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아마 그것이 둥니를 일찍이 집에서 나가게 하는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막내 난인. 시줴가 교사로 있는 학교의 학생이다. 언제나 천진난만하고 언제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뱉으며 행동에 거침이 없다.


어린 난인에게 남자친구가 생기자 시줴는 묘한 질투를 느끼며 기분 나빠한다. 그러다 난인이 사랑의 상처를 받으면 언제나 묵묵히 토닥여주고 위로해주고 응원해준다. 난인 역시 시줴를 응원하고 따르며 잘 지낸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고 남편에게도 쫓겨나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 둥니가 히스테리성 증세를 보여도 꿋꿋하고 아이와 둥니를 책임진다. 시줴에게 그들 모두는 가족이고 진정으로 지켜내야 할 사람들이었다.


소소한 에피소드에서부터 큼직하고 날카로운 칼날을 가진 사건들까지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때로는 그들을 귀엽게 지켜보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에 말도 안 돼!를 연발하며 기가 막힌 채로 그들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때도 있었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도 했다. 탄생과 죽음, 사랑과 결혼, 이별과 상처, 희생과 배려, 주는 쪽과 받는 쪽, 그리고 의리와 배신에 반전까지 모든 요소가 곳곳에 들어있었다.


처음에 몇 장을 넘기며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야기가 쉽게 읽히려 들지 않고, 계속 책 밖으로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 이름에 익숙해지는 것도 어려웠고,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도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끈기를 갖고 기다린 결과,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정신없이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시줴가 되었다가, 둥니가, 난인이 되었다가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정말 재미있게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은 ‘룽청 정씨 가족’이란 이름 아래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2부, 3부가 나오면 꼭 찾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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