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대행 에이전시
안네 헤르츠 지음, 김진아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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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픈 이별을 대신해드립니다’, <이별대행 에이전시>.

제목부터 재미있으리라는 기대에 솔깃했고, 칙릿(chic-lit)의 향기가 풍겨져 나왔다.

 

저자소개부터 좀 독특하다. 분명 표지에는 안네 헤르츠란 하나의 이름만이 적혀 있었는데, 표지를 열어보니 두 명의 여자가 등을 맞대고 앉아있다. 알고 보니, 안네 헤르츠는 언니 프라우케 쇼이네만과 동생 비프케 로렌츠라는 자매 작가의 공동 필명이라고 한다. 어떻게 두 명 이상의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같이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안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조금은 안정적이랄 수 있는 직장에 다니며, 일생에 한 번 뿐일 결혼식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 차 있는, 매일을 꿈을 꾸듯 살아가는 율리아 린덴탈이 있다. 그리고 그녀와 미래를, 그리고 일년 뒤의 결혼식을 약속한, 현재는 동거 중인 남자친구 파울 에발트 마이스너도 여기에 있다. 율리아에게서 강한 로맨틱한 성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세상에서 그녀와 제일 가까운 파울에게서는 로맨틱함보다는 현실적인 성향을 훨씬 더 짙게 느낄 수 있었다. 둘은 분명 서로 사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왠지 처음부터 나는 이들이 무미건조해보였고, 사랑보다는 ‘정’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어쩌면 파울에게서 로맨스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나치게 안정적인 사랑을 하고 또 삶을 살고 있던 율리아에게 드디어(?) 일이 터진다. 그나마 고정된 수입을 보장해주던 직장에서 너무도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한 것이다. 해고당한 율리아는 직장을 잃어 슬픔을 느끼는 것보다도 당장 내년에 있을 결혼식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더 불안해한다. 이 정도로도 율리아가 꿈에 젖어 사는 정도가 조금은 지나치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파울은 그저 담담한 위로와 더욱 담담한 희망을 안겨주는 게 전부였다. 당장 내일이 사라져버린 것 같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율리아는 자신을 해고하는 데 일조했던 시몬 헤커로부터 사업 제의를 받는다. 이별 대행 사업. 굳이 부연 설명을 하자면, 미안한 마음 때문에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지 못한다거나, 이젠 얼굴조차 보기 싫어서 이별을 대신 전해줄 이를 찾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 사업이다. 1초만 생각해봐도 얼토당토 않는다는 답이 나오듯, 율리아를 포함하여 주변 모든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고 만다. 그러나 드디어 율리아는 그녀 인생에서 처음으로 ‘결심’이라는 것을 한다. 그동안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그렇게 살아왔다면 난생처음으로 결심다운 결심을 내린 것이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전의 율리아였다면 상상도 못했을 큰 결정이었다.

 

그렇게 율리아는 변했다. 지극히 수동적인 인간형의 대명사였던 그녀는 이제 스스로 결정을 할 줄 알고,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할 줄 아는 주도적인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런 아주 축하할 만하고 칭찬받아 마땅한 변화가, 그런데 파울에게는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파울과 율리아, 시몬 사이에 서서히 삼각 구도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평생을 그저 안정적으로만 살아갈 것인가,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고 그런 것으로부터 오는 스릴를 느끼기도 하면서 인생을 즐기듯 살아갈 것인가 하는 인생관을 두고 율리아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시간이 감과 동시에 율리아는 스스로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율리아가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때로는 위험한 일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일을 즐기기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껴보고 자기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타인의 이별을 대신 해주면서 그녀는 타인을 위로하는 법을 배우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자신의 일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과정에서 그녀는 스스로 자기계발을 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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