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빈자리 낮은산 키큰나무 8
사라 윅스 지음, 김선영 옮김 / 낮은산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선생님의 질문에는 답을 하기가 싫었다.

마지 아줌마의 질문에도.

그리고 그 문제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의 질문에라도.

 

 

열한 살 소년이 감당해내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닥친다. 아끼고 아끼던 고양이가 죽고, 아빠라는 사람은 다른 여자와 도망을 가버리고, 이모는 사고로 머리를 다쳐 과거에만 머무르려 하고, 형편이 어려워 엄마와 둘이 이모가 사는 컨테이너 박스로 이사를 하고...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들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점점 고통으로 스스로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어떤 고통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던 과거, 어떤 날의 기억이 제이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자기 자신이 증오스러워 견딜 수 없는, 떠올리기 싫은데도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이었다, 불쌍한 제이미. 결국 제이미는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되어 자신 안에 가두어버렸다.

 

학교에서는 불우한 가정으로 인해 문제가 있는 아이로 낙인찍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찐따’가 되어 아이들의 놀림거리로 전락한다. 제이미의 담임선생님을 지켜보면서 정말 저런 사람이 교단에 설 자격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절로 분개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었다. 저런 선생님과 함께라면, 제이미는 점점 더 나쁜 길로만 가려 할 텐데, 하는 걱정을 겨우 추스르며 페이지를 넘겨 나갔다.

 

왜 제이미는, 누군가 자신의 몸을 스치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또 당황하면 스카치 사탕 맛이 온 입 안을 감싸는 것일까? 그 비밀의 이면에는 바로 그 끔찍한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스스로 굳게 빗장을 치고 닫아버린 제이미의 마음을 조용히 다가와 두드려주는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1일 교사로서 학교에 방문한 글쓰기 선생님이다. 그는 연륜으로 제이미에게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밝은 곳으로 조금씩 끌어내주었다. ‘어른들이란, 죄다 한 통속이야! 모두 똑같은 속물이야!’라고만 생각했던 제이미에게 있어서 글쓰기 선생님은, 조금씩 마음을 열 수 있는, 그리고 제이미 입장에서 대화가 통하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오드리라는, 근처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고 있는 같은 반 친구 역시 제이미가 세상에 나서고 소통을 하려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소위 최면요법이라 부르는 치료방식으로 제이미를 치료해주겠다고 귀찮게 굴던 오드리가 언젠가부터 마음을 조금씩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로 자리매김을 한다. 그렇게 제이미와 함께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제이미에게서도 이제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를 바라보고 응원을 하고 있는 나 역시 진심으로 기뻤다.

 

제이미가 이 책 <기억의 빈자리>에서 그러했듯이, 우리 모두는 처해진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 관계는 제이미와 래리, 혹은 담임선생님 사이의 것처럼 자신에게 악영향만을 끼치는 것이 있고, 반대로 제이미와 글쓰기 선생님, 오드리, 이모 사이의 것처럼 도움을 주고 나눌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반대로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과연 나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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