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엔 리허설이 없다
이채린 지음 / 반디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까만 하드커버에, 곧 눈이 찢어져버릴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공의 그림을 보는 순간,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덧붙여 제목도 참 독특했다. 어떤 첫날밤을 말하는 건데? 집에 돌아와 편하게 엎드려 책을 펼쳐 읽고 있는데... 대체 뭐야 이건? 정말 솔직히 말해서 다른 곳에서 ‘첫날밤’이란 키워드를 접했다면 달리 생각했겠지만, 책 제목에서 읽은 ‘첫날밤’으로부터는 어떠한 것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리허설’에 초점이 맞추어져 거기에 빠졌었던 것 같다. 아무튼, 충격이라면 충격 그 자체를 안겨준 책이었다. 소재 자체가 바로 그 ‘첫날밤’인 만큼 수위도 그 이상으로 넘나들었다. 계속 읽어야 하나 싶을 만큼.

 

스물아홉, 그녀의 첫.날.밤.

연예부 기자로 일하고 있는 나름 워커홀릭, 이채은이 바로 여주인공이다. 여태껏 열심히 인생을 달려왔다고 생각해왔건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스스로 헛살았다는 자괴감이 스멀스멀 찾아온다. 그 자괴감이 온 것은 바로 아직도 ‘처녀’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모두 ‘경험’이 있는 친구들 틈에서 채은은 심지어 자신도 ‘경험’이 있다고 거짓말을 할 정도로 ‘처녀’라는 사실을 숨긴다. 왜 그래야 하지?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꼭 ‘처녀’가 아니어야 당당할 수 있는 걸까?

 

아무튼 이채은은 그렇게 절망에 빠진 채, 여태까지의 연애사를 되돌아본다. 아쉬울 것 없었던, 그러나 길게 가지만은 않았던 연애 생활들,이었다. 그래도 별로 개의치 않았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만 ‘처녀’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때부터 발등에 불 떨어진 것 마냥 남자를 찾아 나선다. 마치 사냥을 하듯 첫날밤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남자사람’ 말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에서도 시간을 쪼개 소개팅을 하고, 남자를 유혹할 목적으로 서점을 찾아가 이 남자는 A+, 저 남자는 B-, 아니 B+, 이렇게 점수를 매기며 설렘과 실망을 반복했다. 정말 너무하지 않나 싶을 만큼, 그녀는 노골적이고 저돌적이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렇게 절박할까. 그러면서 실패를 거듭하고 굴욕을 당해가면서 결국 이채은은 자신 주변의 사랑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그리고 도형과의 사랑에 정착하는 방법을 미숙하게나마 조금씩 배워간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충격적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재미있는 책이었다. 이십 대 후반의 직장 여성의 삶, 그것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달까. 이런 자극적이랄 수 있는 이야기와 소재가 이렇게 책에, 전혀 거리낌 없이 쓰였다는 것부터 신기했다. 이십 대 후반이 되면 밥 먹는 것처럼 캐주얼한 것쯤으로, 그리 특별함이 없는 것쯤으로 여겨지는 걸까, 하는 생각에 놀라기도 했다. 사랑의 달콤함을 보여주는 책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솔직한 사랑의 단편들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읽으면서 함께 행복해진다기보다는 아직은 공감할 수 없고 아직은 나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기만 하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결과적으로 사랑의 환상을 제.대.로 품고 있는 나에게는 그리 썩 반가운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었던 것은, 드라마틱하지 않아 보인다는, 읽다보면 정말 있었던 일 같아 보인다는 점 때문에서였다. 쇼킹하지만 재미있는 이채은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처녀’에서 탈출하기 프로젝트, <첫날밤엔 리허설이 없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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