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장 자끄 상뻬 지음, 윤정임 옮김 / 미메시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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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상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좀머 씨 이야기> 표지를 기억하세요? 쥐스킨트 소설에 삽화그린 사람인데...라고 말하면 다들 아~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꼬마 니꼴라>도 유명하지만 말이다. 상뻬는 1932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그림을 그렸으며 1960년 르네 고시니를 알게 되어 함께 <꼬마 니꼴라>를 만들었다.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곧 그는 프랑스에서 데생의 일인자가 되었다.

   상뻬의 그림은 유쾌하다. 가느다란 선들이 촘촘히 채워져 있는 그림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컵 하나, 머리카락 하나 대충 그린 것이 없다. 특히 표정들은 얼마나 놀랍고 풍부한지. 게다가 곁들어진 글을 또 어찌나 멋진지. <얼굴 빨개지는 아이>(1969)에서 시도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꼬마 마르슬랭과 언제나 재채기를 하는 꼬마 르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그렇게 몇 마디 글과 그림으로 감동을 주기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1995)의 주인공 라울 따뷔랭도 얼마나 아름답고 애처로운가. <뉴욕 스케치>(1989)는 냉철하면서도 예리하게 뉴요커들을 묘사하고 있어 씁쓸한 웃음과 함께 생각할 여지를 남겨준다.

   상뻬의 책들은 매우 얇고 글도 거의 없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다. 읽다보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웃음이 나고, 언젠간 다시 펼쳐보게 된다. <아름다운 날들> 역시 유머와 따뜻함이 가득하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말만 하는 소시민들이지만 상뻬는 그들을 향한 애정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견제하고, 사랑에 빠지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림과 함께 곁들어지는 글은 또 얼마나 뛰어난지. 예를 들면, 공원에서 사람들이 여기 저기 모여 택견을 연습하고 있는 그림이 나온다. 무리와 떨어져 한 아주머니가 홀로 택견을 연습하고 있고, 그 모습을 두 명의 아주머니가 지켜보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림 아래엔 이런 글이 쓰여져 있다. “맞아요. 맞아. 분명해요. 내가 며칠 전부터 죽 봐왔다니까. 저 여자가 아주 천천히 되풀이하는 몸동작은 청소하는 모습이야. 저걸 잘 따라하면 굉장히 유용하겠어.” 상뻬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다시 한번 상뻬를 향한 무한 애정을 보내며 책을 덮는다.

 

# 좀 길어지긴 했지만 맛있는 점심이었네. 저 사람의 문화적 소양은 매력적으로 보이네만 그가 들려준 온갖 일화며 인용들은 5분이면 인터넷에서 모두 찾아낼 수 있어.

 

# 여보게 질베르, 내가 여자들 마음속에 깊은 동경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바로 내 시선 속의 깊은 절망을 미묘하게 표현해 낸(장담컨대 그런 표정을 지어내느라 무진 애를 썼지) 덕분이라네.

 

# 모기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잠. 어제 나눠 준 가방 안에 조난을 알리는 조명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겨우 보리 설탕과자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까지는 집단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사실에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음(오히려 이런 경험을 흥미로워했으니까). 한두 시간 좀 더 기다려 볼 것. 그런 다음 이 설탕과자를 가능한 한 멀리, 높이 던져 볼 것.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 우리가 어른이 되면 속옷을 입게 될 거야. 할 수 없지 뭐. 근데 영화나 텔레비젼에서 보니까 어른이 되면 내가 널 아주 비싼 식당에 초대해야 하더라. 그런 식당에서 먹는 건 지금 우리가 여기서 먹는 거랑 거의 비슷해. 어쨌든 그렇게 해야만 어느 날엔가 네가 속옷을 벗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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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한스와 도라 - 프로이트전집 10 프로이트 전집 10
프로이트 지음, 김재혁 외 옮김 / 열린책들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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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전에 열린 책들에서 발행한 프로이트 전집 20권 중 10권을 읽었다. 지금은 15권으로 만들어진 개정판이 나왔다고 하는데 정말 사고 싶구나. <꼬마 한스와 도라>는 프로이트가 한스라는 어린 아이의 사례를 2년 가까이 분석한 글과 도라라는 젋은 여성과 3개월 동안 상담을 하며 분석한 글이 실려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856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두 번째 부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총명했던 그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지원으로 학교에서 수석을 놓치지 않았으며 1882년 빈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1886년 그는 신경질환 상담자로서 개인 병원을 열었고 결혼을 하였다. 1906년경부터 문하생들이 모여들었고 이들 중에는 융과 블로일러가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아들러와 융이 프로이트와의 견해 차이로 결별했고,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정신분석의 국제적인 확산은 중단되었다. 그는 1938년 히틀러를 피해 영국으로 갔고 1년 뒤 그것에서 숨을 거두었다.

   1906년~1908년 동안 5살이 채 안되는 ‘꼬마 한스의 공포증 분석’에 관한 글은 정말 재밌다. 한스의 아버지는 지식인이었고, 풍부한 문화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프로이트를 대신하여 한스에게 질문하고, 그 대답을 분석하는 일을 매우 잘 수행하였다. 프로이트와 한스는 단 한차례 면담하였을 뿐, 나머지는 한스의 아버지가 기록한 것이다. 읽다보면 대단한 아버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스의 성에 대한 관심의 첫 징후는 자신의 <고추>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었다. 그는 고추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생물과 무생물을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자신의 성기를 만짐으로써 느꼈던 쾌감은 적극적인 형태나 소극적인 형태의 관음증과 연결된다. 한스는 다른 사람들의 고추를 보려고 애쓰기 시작했고, 동시에 자신의 고추를 남에게 보여주기 좋아했다. 한스는 덩치가 큰 동물들은 자기 것보다 훨씬 더 큰 고추를 갖고 있음을 보았고, 자신도 몸이 자라면 고추도 자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스는 평범하게, 어머니에게서 받은 보살핌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애정에 이르는 길을 발견했다. 그것은 어머니와 함께 자는 것이다. 그는 정말로 아버지를 ‘제거하고서’ 아름다운 어머니와 단둘이만 남고 싶어하는 어린 오이디푸스였다. 한스는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면서도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우리 인간들의 감정적인 삶은 대체로 그와 같은 대립된 쌍으로 조합되어 있다.

한스의 성심리학적 발전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여동생의 출생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세 살 반이었다. 그는 처음에 여동생에 대해 적대감을 보였다. 정신분석 과정에서 그는 동생이 죽었으면 하는 소망을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어느날 한스는 거리에 나갔다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는 흰 말이 그를 물지도 모른다는 아주 구체적인 공포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와 같이 병세를 <공포증>이라고 부르며 한스의 경우는 광장공포증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것은 불안 히스테리가 공포증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스의 불안은 어디서 기인했을까?

   그 뒤에 나타난 한스의 여러 환상들을 분석해 본 결과 한스는 어머니를 소유하려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두려운 까닭은 그가 아버지에 대해서 질투심이 섞인 적대적인 소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스는 이제 ‘똥 컴플렉스’에 집착하면서 대변보는 것을 연상시키는 모든 것에 대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석 결과 한스의 동생 한나가 똥이며, 똥처럼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다.

   한스는 어린아이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하는 커다란 수수께끼에 직면했다. 그러나 한스의 아버지는 황새가 한나를 물어다 주었다며 한스에게 거짓말을 했고 한스는 믿지 않았다. 한스는 어머니가 몸이 불어나고 아이를 낳을 때 신음소리를 냈다는 것, 그리고 나서 몸이 홀쭉해져 일어났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한나가 엄마 배 속에 있다가 마치 ‘똥’처럼 나온 것이라고 직면한 것이다.

한스는 엄밀히 말해서 체질적으로 신경증 유진 인자를 물려받은 퇴보적인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그는 신체상으로 잘 발달되어 있고 성격도 밝고 상냥한 아이이다. 물론 그가 성적으로 조숙했긴 했지만, 여기서 프로이트는 성적인 조숙이 지적인 조숙과 상당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한다.

   한스는 더 이상 말들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제는 그의 아버지와 가족처럼 잘 어울리게 되었다. 꼬마 한스라는 별명의 주인공은 헤르베르트 그라프로써 그는 나중에 유명한 오페라 감독이 되었다. 그는 뉴욕 메트 오페라 단 예술 감독의 자리를 수년간 역임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그는 1973년에 생을 마감했다.

   꼬마 한스의 사례를 읽으며, 어린 아이들의 자위와 성기에 대한 집착이 모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나도 어렸을 때 그러한 경험이 있었을까? 정말 모든 아이들에게는 오이디푸스와 일렉트라 컴플렉스가 있는 것일까? 성인이 된 후에 단지 잊어버리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들을 부인하는 것일까? 나중에 아이를 키우게 되면 유심히 살펴봐야지.

 

   ‘도라의 히스테리 분석’도 흥미진진하다. 이 사례는 1901년에 쓰여졌다. 18세 소녀이던 도라의 치료는 1900년 10월 시작되어 석 달 후에 끝났다. 글을 읽어보니 <살인의 해석>에 나오는 여주인공 노라가 ‘도라’의 사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읽어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프로이트는 ‘가벼운 수준의 히스테리’ 증상으로 호흡곤란, 신경성 기침, 발성 장애, 편두통, 짜증, 히스테리적인 무 사교성, 가벼움 무력감을 든다. (공부하다 생기는 편두통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겠지?? 갑자기 불안해진다.)

   프로이트는 도라의 생각과 꿈을 해석하여 치료를 진행시켰다. 도라의 가족은 부모와 한 살 나이가 많은 오빠가 있다. 아버지는 가족을 지배하는 인물로 40대 후반이었던 그는 활동적이고 대기업가였으며 도라는 아버지를 많이 따랐다. 도라의 어머니는 남편이 자신과 멀어지자 모든 관심을 집안일에 쏟았다. 그녀의 행동은 ‘가정 주부 정신병’이라고 할 수 있다.(얼마나 재밌는 병명인가) 어머니와 딸 관계는 소원하였다. 아버지가 중병이 생겨 가족들은 B 도시로 요양을 떠났다. 그의 가족들은 B에 있을 때 K씨 부부를 알게 되었고 그 가족과 친하게 지냈다. K씨 부인은 도라의 아버지를 잘 돌보아 주었으며 도라도 K씨 자녀들을 잘 보살펴 주었다. K씨도 그의 딸 도라에게 호감을 가져 둘은 자주 산책을 하고 그는 도라에게 조그만 선물들도 주었다.

   어느 날 도라는 호숫가로 산책을 하던 도중 K씨가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했다고 부모님에게 말한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K씨도 부인하였다. 그러나 사실 K씨는 그 전에 도라를 끌어 당겨 입술에 키스했으며, 호수에서 구혼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 도라는 이 때 소화기관 입구의 점막에서 생겨난 불쾌감, 즉 구역질이 일어난다. 도라는 아버지를 성병 환자로 여겼으며, 아버지가 이 병을 자신과 어머니에게 감염시켰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그녀는 모든 남자들이 성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했다.

   K씨 부인은 아버지와 가까워지고 도라는 이를 질투한다. 도라의 태도는 어머니의 품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질투에 가득 찬 여자처럼 느끼고 행동했다. 이성으로써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수년 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K 부인과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며 몇년을 보냈다. 그렇다면 도라가 어떻게 그렇게 K 부인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K씨 부인이 도라를 배신하고 그녀의 비밀을 누설했기 때문이다. K씨 부인이 도라를 사랑한 이유는 그녀의 인간성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 때문이었다. (도라의 가정교사가 그랬듯) 이러한 모욕은 도라에게 큰 상처를 주었고 병을 일으키는 데 더 크게 작용했다.

   또한 도라의 두 번의 꿈의 분석을 통하여 프로이트는 놀라운 사실들을 이끌어 냈다. 사소한 염증에서 출발한 도라의 기침은 심장 질환을 앓고 있던 아버지를 모방하려는 증상임과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걱정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이것은 더 나아가 K씨와의 관계를 나타내거나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고 그에게 더 좋은 아내가 되고자 하는 소원을 표현하는 등의 능력을 지니다. 유혹의 손길을 손길을 뻗치는 남자를 아버지로 대체하려는 도라의 소원은 유혹의 억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도라가 이 남자를 사랑할 수 없다고 억압하게 될 때 야뇨증, 천식, 구역질 등과 결합되기 때문이다.

   세밀하게 이어지던 도라의 꿈 분석은 그녀가 그만 오겠다고 선언하여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도라의 사례를 통하여 꿈들을 해석하고 질병의 발생 원인을 찾는 작업들은 놀라울 정도로 공감이 간다. 당분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혼자 열심히 분석할 것 같다. 내 안에 감춰진 무의식의 세계는 어떠할까? 프로이트를 만나서 상담을 받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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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 / 성찰 / 정념론 외 - 삼성세계사상 12
르네 데카르트 / 삼성출판사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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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찰은 1641년 파리에서 출간되었다. 성찰은 6개의 성찰들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을 쓴 후 여섯 명의 반박자들의 글과 그의 답변을 묶어 재판하였기 때문에 원본은 80쪽이지만 나중에 400쪽이 더 붙는다.

   데카르트는 직관(영역)을 통해 인식한 것이면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지식이라고 간주하였다. 우리는 오성(직관), 상상력, 기억, 감각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감각의 기능을 정확하게 확정해야 한다. 감각이 중요한 인식기관이 되려면 감각이 수동적이어야 한다. 즉 인식대상이 독립적이니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적 관념론자들은 관념을 통해 외부대상을 지각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결론은 회의주의이다. 그러나 이 이론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우리는 직관으로 바로 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믿음이 다 거짓일 수 있다고 전제를 한다. 그러나 <제 1 성찰 :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관하여 >에서 자신이 왜 미치광이가 아닌지 증명하지 않고 단지 아니다 라고 말하고 넘어가는 모순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 미치광이가 아님을 배제하는 것은 그가 글을 쓰는 이유가 일반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특징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1 성찰 >에서 그 유명한 꿈의 논증이 나온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자 그렇다면 반증을 해보자. 만약 내가 꿈을 꾸고 있으면 나는 내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무엇을 아는 필요조건 중 하나가 내가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닌지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걸 모르면 나는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모른다. 꿈과 현실의 차이는 내가 아닌지 모르는 것인지 이다.

   그런데, 내가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지만, 꿈 속에서 꿈꾸지 않은 것과 똑같은 상황에 놓여진다면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따라서 꿈과 현실의 차이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닐 수 있다.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쓸데없이 <인셉션>과 <메트릭스>가 떠오른다. 감독들은 데카르트의 성찰을 곰곰히 생각하다 이런 영화들을 만들었을까? 나는 지금 꿈속에 있는 것일까? 파란 알약을 먹던가, 팽이를 돌리던가 해야겠다. 철학을 하려면 한가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쿠 머리야.

 

# 내가 침대 속에서 옷을 벗고 잘 때에도, 얼마나 여러 번 내가 이 장소에 있고, 옷을 입고 있고, 불 옆에 앉아 있는 것을 꿈꾸었던가? 내가 이 종이를 바라보고 있고, 내가 흔들어 보는 이 머리는 조금도 졸지 않고 있고, 내가 이 손을 뻗는 것은 의식적인 것이며, 또 내가 이것을 느끼는 것은 결코 두 눈이 잠들어 있지 않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이러한 것은 잠 속에서는 지금의 것처럼 그렇게 명석하고 그렇게 판명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내가 잠잘 때에도 그러한 환상에 의해서 자주 속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러한 생각에서 보면 분명히 잠이 깨어 있을 때와 잠을 잘 때를 구분하여 줄 수 있는 아무런 결정적인 징후도 없고 충분히 확실한 표적도 없다는 것을 그렇게 명백히 보고 나는 매우 놀란다. 내 놀라움은 매우 커서 내가 지금도 잠을 자고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는 것이 거의 가능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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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g Man (Paperback)
DeLillo, Don / Scribner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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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드릴로는 1936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지금까지 15편의 소설을 비롯한 다양한 글들을 쓰고 있다. <Falling man>은 9/11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제목처럼 떨어지는 남자는 9/11 사건이 일어났을 때 쌍둥이 건물 밖으로 수많이 사람들이 뛰어내려 자살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작품 안에서도 떨어지는 남자의 이미지는 주인공을 비롯하여 다양한 인물들에게 나타난다. 소설에서는 일관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다. 3칭인 화법이나 관점은 계속 바뀐다. 첫 장면에서 주인공이 무역 타워를 벗어나는 장면으로 시작되고 3년동안의 일을 서술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의 장면이 반복된다.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진전이 되기는 커녕 제자리로 돌아오는 인물들을 볼 수가 있다. 마치 조그만 트랙을 맴도는 것처럼.

   주인공 Keith는 빌딩이 붕괴되던 당시 극적으로 빠져나왔다. 그날 이후부터 그의 사고는 그 사건의 장소와 시간에 갖혀 있다. 그는 사건 전에 그의 아내 Lianne와 별거 중이었다. 그는 스포츠와 포커를 할 때 외에는 혼자 있기를 즐기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건 후 그는 가족과 함께 있기 원하고 아들 Justin을 학교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Keith는 사건 당시 자신도 모르게 들고 나온 서류 가방의 주인을 찾는다. 주인은 Florence라는 여성으로 그녀를 만난 후 그는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말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났음을 깨닫는다. Florence도 사건의 충격을 그에게 털어놓으며 그를 의지한다.

   아내 Lianne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알츠하이머 환자를 돌보며 자신도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 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자살했기 때문에 자신도 그 영향을 받은 건 아닌지에 대해서도 걱정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려고 노력한다. Lianne의 어머니 Nina와 그녀의 연인 Martin의 관계도 주목해 보아야 한다. Martin은 현재 예술 거래상이나 과거에는 Kommune 공동체에 속해 있었고 테러리스트나 혹은 서포터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암시된다.

떨어지는 남자를 연기하는 행위 예술가 Daivd도 있다. 이 행위 예술가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준다.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고 불편해한다. 마지막에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Keith는 어쩌면 이미 Falling man 이다. 별거와 고립된 세계에서 살며 끝까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Martin의 원래 이름은 Ernst이다. 그가 과거 테러리스트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테러리스트가 우리와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우리 중 한명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떨어지는 남자를 재현하는 Daivd의 의도는 무엇일까? 사건이 생겼을 때 여기 저기 떠드는 모든 목소리를 잠깐 정지하고 숙고해보자는 의도가 아닐까? 또한 죽은 사람들을 위한 제의적인 몸짓이지 않을까?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각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며, 제목의 주인공들은 각 파트마다 중요한 메세지를 던진다. 트라우마는 억누르려는 심리와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트라우마를 겪은 인물들의 서술이 뒤엉키고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읽을 때는 아무 내용이 없는 것 같아 보였는데, 읽고 나니 많은 것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과연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트라우마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일까? 시간만이 답이라는 것일까? 사건의 재현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 가능할까? 우리가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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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ure Bride (Paperback)
Cathy Song / Yale Univ Pr / 198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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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 3세대로서 캐시송(Cathe song)의 시는 많은 부분 할머니 세대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 가족 서사를 그려 보인다. 그녀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민 1세대로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였다. 어머니 엘라 송(Ella Song)은 중국계 미국인 2세대이며 아버지 앤드루 송(Andrew Song)은 한국계 미국인 2세대이다. 캐시송은 1995년 하와이에서 태어났다.

    캐시송의 첫 시집 Picture Bride(1982)은 촉망받는 시인에게 주는 상인 “예일 젋은 시인 총서”에 선정되었다. 이 시집에서는 가족 역사에 관한 탐색이 중요한 소재이지만 또한 우타마로(Kitagawa Utamaro)와 오키프(Georgia O'Keeffe)의 화가에게서 영감을 받아 쓰인 시들 또한 중요하다. Picture Bride는 31편의 시가 담겨 있고 이것은 총 5부분(Black Iris, Sunflower, Orchids, Red Poppy, White Trumpet Flower)으로 나눠지는데 각 제목들은 오키프의 그림 제목을 따르고 있다.

    오키프는 꽃잎을 실물보다 크게 확대하여 그림으로써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화가이다. 현대미술에서 꽃은 감상적이고 상투적인 여성성을 상징했으나 오키프는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벗어나서 새로운 이미지의 ‘꽃’을 창조하였다. 캐시송은 오키프의 이러한 사상을 따라 여성에 대한 관습적이고 억압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원했던 것이다. 또한 우타마로는 각양각색의 여성의 얼굴과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그린 화가이다. 특히 1791년부터는 미인도에 심취하여 반라상의 여성을 많이 그렸는데 모델은 주로 창녀, 기생, 찻집 아가씨 등 무명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에도 시대 때 여성을 배경이 아닌 중심으로 다룬 우타마로의 새로운 시도는 오키프와 같은 맥락에 있다. 그림을 가득 채우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캐시송은 시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Picture Bride 에 나온 시 중 마음에 드는 시 몇 편을 적어본다.

 

# Picture Bride

 

She was a year younger than I,

twenty-three when she left Korea.

Did she simply close

the door of her father's house

and walk away. And

was it a long way

through the tailor shops of Pusan

to the wharf where the boat

waited to take her to an island

whose name she had

only recently learned,

on whose shore

a man waited,

turning her photograph

to the light when the lanterns

in the camp outside

Waialua Sugar Mill were lit

and the inside of his room

grew luminous

from the wings of moths

migrating out of the cane stalks?

What things did my grandmother

take with her? and when

she arrived to look

into the face of the stranger

who was her husband,

thirteen years older than she,

did she politely untie

the silk bow of her jacket,

her tent-shaped dress

filling with the dry wind

that blew from the surrounding fields

where the men were burning the cane?

 

 

사진신부

 

그녀는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한국을 떠날 때 그녀의 나이 스물셋.

그녀는 담담히 아버지 집의 빗장문을 여닫고

걸어나왔을까? 그리고

부산의 양복점 거리를 지나

그녀가 최근에야 알게된

이름의 섬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는

그 섬의 해안가로

그녀를 데려다 줄 배가

기다리고 있는

선착장으로 이르는

그 길은 멀었을까?

와이알루 설탕공장 밖에 있는

캠프에 등불이 켜지고,

방안이 환해진다

기다리던 남자는

그 빛에 그녀의 사진을 비춰본다

사탕수수 줄기에서 나온 나방들의

날개짓으로 방안이

환해질걸까?

나의 할머니는 무엇을

가져왔을까? 그리고

그녀가 도착해서

그녀보다 열세살이나 많은

남편의

낯선얼굴을 들여다봤을 때

그녀는 비단 저고리의 옷고름을,

남자들이 사탕수수를 태우고 있었을

주변 들판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으로

봉긋 부풀어오른 치마를

얌전히 풀었을까?

 

 

   “Picture Bride"는 시인의 할머니의 삶을 재현한 것이다. 그러나 시는 모두 의문문으로 끝난다. 이것은 재현의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는 언뜻 보기에 서정적인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주민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시에서 할머니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이미지이다. 그러나 그 시절 하와이로 결혼을 하러 가기로 결심한다는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오히려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여성이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집의 문을 담담히 닫고 하와이로 떠나지 않았을까? 시인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 The Youngest Daughter

The sky has been dark

for many years.

My skin has become as damp

and pale as rice paper

and feels the way

mother’s used to before the drying sun parched it out there in the fields.

 

 

Lately, when I touch my eyelids,

my hands react as if

I had just touched something

hot enough to burn.

My skin, aspirin colored,

tingles with migraine. Mother

has been massaging the left side of my face

especially in the evenings

when the pain flares up.

 

 

This morning

her breathing was graveled,

her voice gruff with affection

when I wheeled her into the bath.

She was in a good humor,

making jokes about her great breasts,

floating in the milky water

like two walruses,

flaccid and whiskered around the nipples.

I scrubbed them with a sour taste

in my mouth, thinking:

six children and an old man

have sucked from these brown nipples.

 

 

I was almost tender

when I came to the blue bruises

that freckle her body,

places where she has been injecting insulin

for thirty years. I soaped her slowly,

she sighed deeply, her eyes closed.

It seems it has always

been like this: the two of us

in this sunless room,

the splashing of the bathwater.

 

 

In the afternoons

when she has rested,

she prepares our ritual of tea and rice,

garnished with a shred of gingered fish,

a slice of pickled turnip,

a token for my white body.

We eat in the familiar silence.

She knows I am not to be trusted,

even now planning my escape.

As I toast to her health

with the tea she has poured,

a thousand cranes curtain the window,

fly up in a sudden breeze.

 

막내딸

 

 

하늘은 몇 해 동안이나

어두웠다.

내 피부는 라이스페이퍼처럼 창백해지고

눅눅해졌고

메마른 태양에 그것을 내놓아 들판에서 바짝

마르게 하시곤 했던 어머니의 방식을

느낀다.

 

 

최근에, 내가 눈꺼풀을 만질 때

나의 손들은 마치

데일 것 같은 뜨거운 것을 내가

만진 것처럼 반응한다.

아스피린으로 착색된 내 피부는

편두통으로 욱신거린다. 어머니는

내 얼굴의 왼편을 마사지해주시곤

하셨다

특히 발갛게 타오를 듯한 고통이 엄습하는

저녁마다.

 

 

오늘 아침

어머니의 숨이 거칠었다.

어머니의 애정담긴 거친 목소리

내가 어머니를 욕조로 밀어넣었을 때,

어머니는 기분이 좋으셔서

마치 두 마리의 바다코끼리가

우유빛 물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축 늘어지고 젖꼭지 주위에 털이 난

당신의 큰 젖가슴에 대한 농담을 하셨다

나는 입속에서

시큼한 맛을 느끼며 어머니의 젖가슴을 문질렀다.

여섯명의 아이들과 한 늙은이가

이 갈색의 젖꼭지들을 빨아댔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파란 멍들

30년간 인슐린을 맞아서

몸에 생긴 반점에 이르러서는

나는 거의 조심스러워졌다.

나는 어머니를 천천히 비누칠해 드렸고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늘 이래왔던 것 같다.

이 빛도 들지 않는 방에서

우리 둘이

욕조의 물로 물장구치기.

 

 

어머니가 휴식을 취한

오후마다

어머니는 의례 우리의 차와 밥을 준비하신다.

얇게 저민 생강을 곁들인 생선 한 조각,

내 하얀 몸둥이의 상징,

절인 순무 한 쪽으로 장식된.

우리는 익숙한 침묵 속에서 식사를 한다.

어머니는 내가 믿을 수 없다는 걸 아신다.

심지어 지금도 도망칠 꿍꿍이를 하는 것도

어머니가 따라놓은 차로

내가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할 때

창문에 드리운 천마리 학이 있는 커튼이

갑작스런 미풍에 하늘로 날아오른다.

 

 

    시인은 엄마의 병수발을 오랫동안 하고 있다. 그녀는 많이 지쳤나보다. 마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고, 엄마는 자신이 도망칠 꿍꿍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미국인들이 이 시를 본다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왜 엄마를 자식이, 그것도 막내딸이 간호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러나 한국 정서로 봤을 때는 그리 어색하지 않다. 우리의 효 사상은 부모의 돌봄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또한 동양의 시선으로 볼 때 불편한 부분이 있다. 엄마의 육체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다. 동양에서는 어머니를 신성한 영역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노골적으로 엄마의 육체가 표현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천마리 학’은 그녀가 탈출하기 원하는 소원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어머니의 장수를 위한 기도인 것인가? 아니면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 Easter: Wahiawa, 1959

 

1

 

The rain stopped for one afternoon.

Father brought out

his movie camera and for a few hours

we were all together

under a thin film

that separated the rain showers

from that part of the earth

like a hammock

held loosely by clothespins.

 

Grandmother took the opportunity

to hang the laundry

and Mother and my aunts

filed out of the house

in pedal pushers and poodle cuts,

carrying the blue washed eggs.

 

Grandfather kept the children

penned in on the porch,

clucking at us in his broken English

whenever we tried to peek

around him. There were bread crumbs

stuck to his blue gray whiskers.

 

I looked from him to the sky,

a membrane of egg whites

straining under the weight

of the storm that threatened

to break.

 

 

We burst loose from Grandfather

when the mothers returned

from planting the eggs

around the soggy yard.

He followed us,

walking with stiff but sturdy legs.

We dashed and disappeared

into bushes,

searching for the treasures;

the hard-boiled eggs

which Grandmother had been simmering

in vinegar and blue color all morning.

 

2

 

When Grandfather was a young boy

in Korea,

it was a long walk

to the riverbank,

where, if he were lucky,

a quail egg or two

would gleam from the mud

like gigantic pearls.

He could never eat enough

of them.

 

It was another long walk

through the sugarcane fields

of Hawaii,

where he worked for eighteen years,

cutting the sweet stalks

with a machete. His right arm

grew disproportionately large

to the rest of his body.

He could hold three

grandchildren in that arm.

 

I want to think

that each stalk that fell

brought him closer

to a clearing,

to that palpable field

where from the porch

to the gardenia hedge

that day he was enclosed

by his grandchildren,

scrambling around him,

for whom he could at last buy

cratefuls of oranges,

basketfuls of sky blue eggs.

 

 

I found three that afternoon.

By evening, it was raining hard.

Grandfather and I skipped supper.

Instead, we sat on the porch

and I ate what he peeled

and cleaned for me.

The scattering of the delicate

marine-colored shells across his lap

was something like what the ocean gives

the beach after a rain.

 

 

부활절: 와히아와, 1959

 

1

 

비가 멈춘 어느 날 오후

아버지는 무비 카메라를

가지고 나오셨다 몇 시간 동안

얇은 필름 속에

우리는 모두 함께였다.

소나기와 땅의 비내린 부분을

구분짓는 얇은 필름은

빨래집게로 느슨하게

해먹처럼 매달려있다.

 

 

 

할머니는 빨래를 널

기회를 잡으셨고

엄마와 나의 이모들은

짧은 파마머리를 하고 자전거 페달을 돌리며

집밖으로 줄지어 나간다,

푸른 물을 들인 달걀들을 나르러.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현관에 가두어 두고

우리가 할아버지 주위를 엿볼때 마다

엉터리 영어로 우리에게 꽥꽥대셨는데.

할아버지의 희푸레한 수염에는

빵부스러기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로부터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부숴뜨릴 듯이

위협하는 폭풍의

위세로 잔뜩 팽팽해진

달걀의 하얀 얇은 막 같은 하늘로.

 

 

우리는 엄마들이 물에 흠뻑 젖은 뜰 주변에

달걀들을 심고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풀려났다.

뻣뻣하지만 튼튼한 다리로 걸으시며

할아버지는 우리를 따라오셨다,

우리는 숲으로

돌진해서 사라져버렸다

보물들을 찾으러.

할머니가 아침 내내

식초로 삶고 푸른 물을 들인

그 푹 삶은 계란들을.

 

2

 

한국에서

할아버지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강둑까지는

먼 길이었단다.

그곳에서, 만약 할아버지가 운이 좋았다면

메추라기 한 알이나 두알이

마치 거대한 진주처럼

진흙 속에서 빛나곤 했단다

할아버지는 메추리알을 결코 배불리

먹을 수는 없었으리라.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을 지나는 것은

또 다른 먼 길이었다.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십팔년동안 일하셨다,

달콤한 줄기들을

큰낫으로 자르며. 그의 오른쪽 팔은

그의 다른 신체에 비해서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그는 그 팔로

세 명의 손자들을 들 수 있었으리라.

 

 

나는 각각의 줄기가 쓰러질 때마다

할아버지가 개간지 더 가까이,

현관에서부터

치자나무 울타리까지

그날 할아버지에게

기어오르는

손자들에게 둘러싸여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는 마침내

오렌지 몇 상자,

파아란 하늘빛 달걀이 담긴

바구니들을 사줄 수 있게 되었던

그 뚜렷한 들판으로 더 가까이 가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날 오후 나는 세 개를 찾아냈다.

저녁에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고

할아버지와 나는 저녁을 거렀다.

대신에, 우리는 현관에 앉아서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위해 껍질을 까서

깨끗이 해 놓으신 것을 먹었다.

섬세한 바닷빛 색깔의 껍질들이

할아버지의 무릎을 가로질러 흩어지는 것이

비온뒤 바다가

해변에게 주는 것과 닮았다.

 

 

    1959년은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된 해이다. 시인은 부활절을 보내며 할아버지의 삶을 그리고 있다. 할아버지는 고된 노동으로 오른 팔이 비정상적으로 커졌으며, 그는 그 팔로 세 명의 손자를 들 수 있었다. 이것은 할아버지의 손자들을 위한 양육과 재정적 보호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할아버지의 성실한 희생으로 시인은 풍요로운 부활절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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