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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ure Bride (Paperback)
Cathy Song / Yale Univ Pr / 1983년 9월
평점 :
이민 3세대로서 캐시송(Cathe song)의 시는 많은 부분 할머니 세대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 가족 서사를 그려 보인다. 그녀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민 1세대로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였다. 어머니 엘라 송(Ella Song)은 중국계 미국인 2세대이며 아버지 앤드루 송(Andrew Song)은 한국계 미국인 2세대이다. 캐시송은 1995년 하와이에서 태어났다.
캐시송의 첫 시집 Picture Bride(1982)은 촉망받는 시인에게 주는 상인 “예일 젋은 시인 총서”에 선정되었다. 이 시집에서는 가족 역사에 관한 탐색이 중요한 소재이지만 또한 우타마로(Kitagawa Utamaro)와 오키프(Georgia O'Keeffe)의 화가에게서 영감을 받아 쓰인 시들 또한 중요하다. Picture Bride는 31편의 시가 담겨 있고 이것은 총 5부분(Black Iris, Sunflower, Orchids, Red Poppy, White Trumpet Flower)으로 나눠지는데 각 제목들은 오키프의 그림 제목을 따르고 있다.
오키프는 꽃잎을 실물보다 크게 확대하여 그림으로써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화가이다. 현대미술에서 꽃은 감상적이고 상투적인 여성성을 상징했으나 오키프는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벗어나서 새로운 이미지의 ‘꽃’을 창조하였다. 캐시송은 오키프의 이러한 사상을 따라 여성에 대한 관습적이고 억압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원했던 것이다. 또한 우타마로는 각양각색의 여성의 얼굴과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그린 화가이다. 특히 1791년부터는 미인도에 심취하여 반라상의 여성을 많이 그렸는데 모델은 주로 창녀, 기생, 찻집 아가씨 등 무명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에도 시대 때 여성을 배경이 아닌 중심으로 다룬 우타마로의 새로운 시도는 오키프와 같은 맥락에 있다. 그림을 가득 채우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캐시송은 시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Picture Bride 에 나온 시 중 마음에 드는 시 몇 편을 적어본다.
# Picture Bride
She was a year younger than I,
twenty-three when she left Korea.
Did she simply close
the door of her father's house
and walk away. And
was it a long way
through the tailor shops of Pusan
to the wharf where the boat
waited to take her to an island
whose name she had
only recently learned,
on whose shore
a man waited,
turning her photograph
to the light when the lanterns
in the camp outside
Waialua Sugar Mill were lit
and the inside of his room
grew luminous
from the wings of moths
migrating out of the cane stalks?
What things did my grandmother
take with her? and when
she arrived to look
into the face of the stranger
who was her husband,
thirteen years older than she,
did she politely untie
the silk bow of her jacket,
her tent-shaped dress
filling with the dry wind
that blew from the surrounding fields
where the men were burning the cane?
사진신부
그녀는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한국을 떠날 때 그녀의 나이 스물셋.
그녀는 담담히 아버지 집의 빗장문을 여닫고
걸어나왔을까? 그리고
부산의 양복점 거리를 지나
그녀가 최근에야 알게된
이름의 섬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는
그 섬의 해안가로
그녀를 데려다 줄 배가
기다리고 있는
선착장으로 이르는
그 길은 멀었을까?
와이알루 설탕공장 밖에 있는
캠프에 등불이 켜지고,
방안이 환해진다
기다리던 남자는
그 빛에 그녀의 사진을 비춰본다
사탕수수 줄기에서 나온 나방들의
날개짓으로 방안이
환해질걸까?
나의 할머니는 무엇을
가져왔을까? 그리고
그녀가 도착해서
그녀보다 열세살이나 많은
남편의
낯선얼굴을 들여다봤을 때
그녀는 비단 저고리의 옷고름을,
남자들이 사탕수수를 태우고 있었을
주변 들판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으로
봉긋 부풀어오른 치마를
얌전히 풀었을까?
“Picture Bride"는 시인의 할머니의 삶을 재현한 것이다. 그러나 시는 모두 의문문으로 끝난다. 이것은 재현의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는 언뜻 보기에 서정적인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주민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시에서 할머니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이미지이다. 그러나 그 시절 하와이로 결혼을 하러 가기로 결심한다는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오히려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여성이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집의 문을 담담히 닫고 하와이로 떠나지 않았을까? 시인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 The Youngest Daughter
The sky has been dark
for many years.
My skin has become as damp
and pale as rice paper
and feels the way
mother’s used to before the drying sun parched it out there in the fields.
Lately, when I touch my eyelids,
my hands react as if
I had just touched something
hot enough to burn.
My skin, aspirin colored,
tingles with migraine. Mother
has been massaging the left side of my face
especially in the evenings
when the pain flares up.
This morning
her breathing was graveled,
her voice gruff with affection
when I wheeled her into the bath.
She was in a good humor,
making jokes about her great breasts,
floating in the milky water
like two walruses,
flaccid and whiskered around the nipples.
I scrubbed them with a sour taste
in my mouth, thinking:
six children and an old man
have sucked from these brown nipples.
I was almost tender
when I came to the blue bruises
that freckle her body,
places where she has been injecting insulin
for thirty years. I soaped her slowly,
she sighed deeply, her eyes closed.
It seems it has always
been like this: the two of us
in this sunless room,
the splashing of the bathwater.
In the afternoons
when she has rested,
she prepares our ritual of tea and rice,
garnished with a shred of gingered fish,
a slice of pickled turnip,
a token for my white body.
We eat in the familiar silence.
She knows I am not to be trusted,
even now planning my escape.
As I toast to her health
with the tea she has poured,
a thousand cranes curtain the window,
fly up in a sudden breeze.
막내딸
하늘은 몇 해 동안이나
어두웠다.
내 피부는 라이스페이퍼처럼 창백해지고
눅눅해졌고
메마른 태양에 그것을 내놓아 들판에서 바짝
마르게 하시곤 했던 어머니의 방식을
느낀다.
최근에, 내가 눈꺼풀을 만질 때
나의 손들은 마치
데일 것 같은 뜨거운 것을 내가
만진 것처럼 반응한다.
아스피린으로 착색된 내 피부는
편두통으로 욱신거린다. 어머니는
내 얼굴의 왼편을 마사지해주시곤
하셨다
특히 발갛게 타오를 듯한 고통이 엄습하는
저녁마다.
오늘 아침
어머니의 숨이 거칠었다.
어머니의 애정담긴 거친 목소리
내가 어머니를 욕조로 밀어넣었을 때,
어머니는 기분이 좋으셔서
마치 두 마리의 바다코끼리가
우유빛 물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축 늘어지고 젖꼭지 주위에 털이 난
당신의 큰 젖가슴에 대한 농담을 하셨다
나는 입속에서
시큼한 맛을 느끼며 어머니의 젖가슴을 문질렀다.
여섯명의 아이들과 한 늙은이가
이 갈색의 젖꼭지들을 빨아댔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파란 멍들
30년간 인슐린을 맞아서
몸에 생긴 반점에 이르러서는
나는 거의 조심스러워졌다.
나는 어머니를 천천히 비누칠해 드렸고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늘 이래왔던 것 같다.
이 빛도 들지 않는 방에서
우리 둘이
욕조의 물로 물장구치기.
어머니가 휴식을 취한
오후마다
어머니는 의례 우리의 차와 밥을 준비하신다.
얇게 저민 생강을 곁들인 생선 한 조각,
내 하얀 몸둥이의 상징,
절인 순무 한 쪽으로 장식된.
우리는 익숙한 침묵 속에서 식사를 한다.
어머니는 내가 믿을 수 없다는 걸 아신다.
심지어 지금도 도망칠 꿍꿍이를 하는 것도
어머니가 따라놓은 차로
내가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할 때
창문에 드리운 천마리 학이 있는 커튼이
갑작스런 미풍에 하늘로 날아오른다.
시인은 엄마의 병수발을 오랫동안 하고 있다. 그녀는 많이 지쳤나보다. 마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고, 엄마는 자신이 도망칠 꿍꿍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미국인들이 이 시를 본다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왜 엄마를 자식이, 그것도 막내딸이 간호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러나 한국 정서로 봤을 때는 그리 어색하지 않다. 우리의 효 사상은 부모의 돌봄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또한 동양의 시선으로 볼 때 불편한 부분이 있다. 엄마의 육체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다. 동양에서는 어머니를 신성한 영역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노골적으로 엄마의 육체가 표현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천마리 학’은 그녀가 탈출하기 원하는 소원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어머니의 장수를 위한 기도인 것인가? 아니면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 Easter: Wahiawa, 1959
1
The rain stopped for one afternoon.
Father brought out
his movie camera and for a few hours
we were all together
under a thin film
that separated the rain showers
from that part of the earth
like a hammock
held loosely by clothespins.
Grandmother took the opportunity
to hang the laundry
and Mother and my aunts
filed out of the house
in pedal pushers and poodle cuts,
carrying the blue washed eggs.
Grandfather kept the children
penned in on the porch,
clucking at us in his broken English
whenever we tried to peek
around him. There were bread crumbs
stuck to his blue gray whiskers.
I looked from him to the sky,
a membrane of egg whites
straining under the weight
of the storm that threatened
to break.
We burst loose from Grandfather
when the mothers returned
from planting the eggs
around the soggy yard.
He followed us,
walking with stiff but sturdy legs.
We dashed and disappeared
into bushes,
searching for the treasures;
the hard-boiled eggs
which Grandmother had been simmering
in vinegar and blue color all morning.
2
When Grandfather was a young boy
in Korea,
it was a long walk
to the riverbank,
where, if he were lucky,
a quail egg or two
would gleam from the mud
like gigantic pearls.
He could never eat enough
of them.
It was another long walk
through the sugarcane fields
of Hawaii,
where he worked for eighteen years,
cutting the sweet stalks
with a machete. His right arm
grew disproportionately large
to the rest of his body.
He could hold three
grandchildren in that arm.
I want to think
that each stalk that fell
brought him closer
to a clearing,
to that palpable field
where from the porch
to the gardenia hedge
that day he was enclosed
by his grandchildren,
scrambling around him,
for whom he could at last buy
cratefuls of oranges,
basketfuls of sky blue eggs.
I found three that afternoon.
By evening, it was raining hard.
Grandfather and I skipped supper.
Instead, we sat on the porch
and I ate what he peeled
and cleaned for me.
The scattering of the delicate
marine-colored shells across his lap
was something like what the ocean gives
the beach after a rain.
부활절: 와히아와, 1959
1
비가 멈춘 어느 날 오후
아버지는 무비 카메라를
가지고 나오셨다 몇 시간 동안
얇은 필름 속에
우리는 모두 함께였다.
소나기와 땅의 비내린 부분을
구분짓는 얇은 필름은
빨래집게로 느슨하게
해먹처럼 매달려있다.
할머니는 빨래를 널
기회를 잡으셨고
엄마와 나의 이모들은
짧은 파마머리를 하고 자전거 페달을 돌리며
집밖으로 줄지어 나간다,
푸른 물을 들인 달걀들을 나르러.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현관에 가두어 두고
우리가 할아버지 주위를 엿볼때 마다
엉터리 영어로 우리에게 꽥꽥대셨는데.
할아버지의 희푸레한 수염에는
빵부스러기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로부터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부숴뜨릴 듯이
위협하는 폭풍의
위세로 잔뜩 팽팽해진
달걀의 하얀 얇은 막 같은 하늘로.
우리는 엄마들이 물에 흠뻑 젖은 뜰 주변에
달걀들을 심고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풀려났다.
뻣뻣하지만 튼튼한 다리로 걸으시며
할아버지는 우리를 따라오셨다,
우리는 숲으로
돌진해서 사라져버렸다
보물들을 찾으러.
할머니가 아침 내내
식초로 삶고 푸른 물을 들인
그 푹 삶은 계란들을.
2
한국에서
할아버지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강둑까지는
먼 길이었단다.
그곳에서, 만약 할아버지가 운이 좋았다면
메추라기 한 알이나 두알이
마치 거대한 진주처럼
진흙 속에서 빛나곤 했단다
할아버지는 메추리알을 결코 배불리
먹을 수는 없었으리라.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을 지나는 것은
또 다른 먼 길이었다.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십팔년동안 일하셨다,
달콤한 줄기들을
큰낫으로 자르며. 그의 오른쪽 팔은
그의 다른 신체에 비해서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그는 그 팔로
세 명의 손자들을 들 수 있었으리라.
나는 각각의 줄기가 쓰러질 때마다
할아버지가 개간지 더 가까이,
현관에서부터
치자나무 울타리까지
그날 할아버지에게
기어오르는
손자들에게 둘러싸여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는 마침내
오렌지 몇 상자,
파아란 하늘빛 달걀이 담긴
바구니들을 사줄 수 있게 되었던
그 뚜렷한 들판으로 더 가까이 가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날 오후 나는 세 개를 찾아냈다.
저녁에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고
할아버지와 나는 저녁을 거렀다.
대신에, 우리는 현관에 앉아서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위해 껍질을 까서
깨끗이 해 놓으신 것을 먹었다.
섬세한 바닷빛 색깔의 껍질들이
할아버지의 무릎을 가로질러 흩어지는 것이
비온뒤 바다가
해변에게 주는 것과 닮았다.
1959년은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된 해이다. 시인은 부활절을 보내며 할아버지의 삶을 그리고 있다. 할아버지는 고된 노동으로 오른 팔이 비정상적으로 커졌으며, 그는 그 팔로 세 명의 손자를 들 수 있었다. 이것은 할아버지의 손자들을 위한 양육과 재정적 보호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할아버지의 성실한 희생으로 시인은 풍요로운 부활절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