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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여성문학
임진희 지음 / 태학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한국 작가, 외국 작가로 나누어 읽었지 한국계 미국인이나 한국계 일본인 등 하이픈(-)이 들어간 작가는 거의 알지 못한다. 이창래, 서경석 작가 정도? 이번에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예전 같으면 전혀 눈에 관심도 없었을 제목의 책인데 이제는 눈에 번쩍 띈다.
저자는 세계에 흩어져 이산(diaspora)의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 한국 사람들, 범위를 더 좁혀 미국에 사는 동포들, 마지막으로 한발 더 나아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길 원한다. 사실 이산 여성들은 신대륙에서의 핍박과 가정 내에서의 억압을 이중으로 받아 왔다. 백인들이 동양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가부장적인 위계 질서에 희생되어 왔던 여성들이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 책은 인종차별과 성차별 속에서 소외되었던 하위주체들의 ‘자기 찾기로서의 글쓰기’이다.(16) 이들은 침묵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으며, 어머니의 기억을 양분으로 삼으며 자기 정체성을 놓지 않았다. 한국의 이산자들은 두 가지 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두고 온 조국에 대한 죄의식의 짐이요, 또 다른 하나는 미국 내 아시이 인으로서 감내해야만 했던 백인 중심의 인종담론의 짐이라는 것이다.(17) 책에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이 작품이 거의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작품을 예로 들며 여성 이주에 관한 담론을 풀어가기 때문에 재밌고 쉽게 읽힌다. 명미 김, 캐시 송, 강용흘, 차학경, 수잔 최, 린다 수 박, 최숙렬 등이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작가도 많았다. 반성했다.
2장에서 저자는 이산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식민 지배 막바지인 1945년경에는 한국 인구의 11%가 국외에서 살고 있었으며,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귀향이 차단되어 중국, 사할린, 만주, 시베리아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 미국으로의 이주의 동기는 탈식민지적 이산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백년에 걸친 미국으로의 이주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데, 첫째 1903~1905년 하와이 농장의 노동자, 둘째 1960~1953년 한국 전쟁 이후, 셋째 1965년 이민법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 강점기 중이었던 1910-1924년 사이에는 약 900명의 정치적 망명객, 학생, 지식인들이 이주했다고 한다.
남성들을 따라 여성들의 이주도 이루어졌는데 1920년 경까지 ‘사진 신부’로 당도한 약 천 명의 여성들은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이나 미국서부 농장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였다. 초기 한국 여성 이주사에는 고단한 삶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 척박한 여성 이산의 출발점은 여성 작가들의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한국계 이산 여성들은 ‘국가’ 앞에서 여성들의 인권이나, 성차별의 문제를 안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일정감정기에 조국에 닥친 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애국’이라는 이름 뒤에 감추어야 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남성 위주의 독립운동의 주류에서 소외되었으며, 이 시기에는 ‘남성적 내셔널리즘’이 압도했다. 또한 여성들은 유교사상이 내재되어 있어 공격적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유교사상에는 우선 국가, 성, 나이, 친족관계처럼 남성적 권력 우위의 것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46)
한국계 미국문학에서 조국은 미학의 구심점이다. 국가의 상실과 복원, 망명, 살아남은 자의 슬픔, 도망자의 죄의식이 문학적 상상력의 근원이 되고 있다.(49) 두고 온 조국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말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은 있는 그대로의 동양이 아니라 동양으로 만들어졌다고 지적한다. 백인의 환상으로 꾸며진 아시아가 오리엔트이고, 그에 따른 부속적인 이데올로기가 오리엔탈리즘인 상황은 백인 문학 속에서 온갖 로맨스와 이국성, 제국주의적 환상을 불러일으켜 왔다. 여성들은 남성/제국/국가권력의 타자로서 기호화되면, ‘그들’의 환상 속에서 만들어진 정체성을 강요받는다.(77) <마담버터플라이>난 <미스사이공>은 복종적이고 순종적인 동양 여성상을 잘 보여준다.
한국계 미국 여성문학에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만행되었던 여성의 몸을 고발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문당한 유관순의 몸, 일본군의 성노예, 전후 서양에 대한 매춘은 ‘조국’ 혹은 ‘제국;의 이름으로 희생된 성을 보여준다. 또 다른 국가 기호는 기지촌 여성들이다. 기지촌 여성의 문제는 전쟁의 상황 속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남성적 국가권력 구조 속에서 피식민화 되는지가 나타나 있다.(91) 미군과 결혼한 기지촌 여성들은 한국인으로도, 미국인으로도 인정되지 못해왔다. 이 여성들은 인종적, 민족적 경계성을 넘어가 버린 자, 주체성을 잃어버린 자, 자신의 문화에 등을 돌리고 미국에 야합하는 자로서, 그 존재가 철저히 부정되어 왔다.(93)
아시아계 문학에는 지배언어로서의 영어에 대한 강박관념과 좌절감, 굴욕감 등이 섞여 있다. 아시아인의 언어는 단순히 텍스트의 문제가 아니다. 적극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 아시아인들의 언어습관, 표현방식, 사회문화적인 규범을 볼 때, 사실 동, 서양은 언어의 구조와 내용만이 다른 것이 아니라 언어에 태도가 다르다.(105)
언어의 상실은 인간 존재가 그 표현의 출구를 잃었음을 의미하며, 이산자들의 근본적인 고민은 존재의 근원이 되는 언어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다. 언어는 식민화의 도구이다.(106)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만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던 것을 생각해 보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든 영어의 규칙을 따르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는 애처로운 모습을 통해, 언어가 인간들의 사고에 얼마나 전횡적인 제약을 행사하는, 또한 인간을 규제하는 합법적 폭력으로 자리잡아 가는 하는 상황이 나타나 있다. 결국 이러한 ‘언어의 힘’으로 아시아에 대한 인습적 전형을 깨려는 것이 바로 아시아계 작가들의 소명이다.(109) 최근의 아시아계 미국작가들은 ‘완벽한 미국식 영어’로 표현하는 지배담론에 함축된 동화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한다. 명미 김의 시나 차학경의 소설을 보라.
기억은 과거와의 대화이다. 기억은 단절된 역사를 넘어서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의식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기억을 공유하는 행위는 여성으로서의 연대, 그 상상의 공동체와의 연대를 향한 의식이다. 특히 기억이 모계로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여성의 영역으로서의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모계성은 하위주체 미학의 독특한 특징이다. 어머니의 기억은 특히 이식된 문화의 자아들에게 있어서, 구대륙과 신대륙,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절대적 보고이다. (158) 어머니의 기억은 그동안 침묵당해 왔던 역사 복원의 근간이 되며, 과거 기억의 저장고를 열어 보이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산세대 여성작가들의 문학적 영감의 근원이 되었다. 이러한 여성들의 구전적인 감수성(대화적 텍스트)에는 소외된 목소리를 포괄하며, 전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작가들은 영어라는 연장을 사용하여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을 통해 작가의 표현으로 다시 말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제까지 금지되어 왔던 제3세계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이야기꾼의 미학은 이성 중심적인 제1세계 중심의 문화특성으로부터의 이동이라는 점에서 탈식민적인 미학적 가치를 지닌다.(171)
# ‘모범적 소수민족’으로서 아시아인의 성공의 신화는 동시에, 성공한 아시아 세력에 대한 경계로서의 ‘황인종의 위협’으로 늘 견제되어 왔다. 동시에 아시아인은 자신들이 새로 선택한 양부의 국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 충성심을 인정받고자 동화하였다는 사실에 괴로원한다. 61
# 헨리 황은 전형적인 아시아 인형은 대개 두 가지로 분류된다고 지적한다. ‘좋은’ 아시아인, 즉 무기력하고 무성적이고, 엉터리 영어를 쓰고, 백인들에게 충실하고 유순한 하인이든지, 혹은 ‘나쁜’ 아시아인 즉 서구세계를 전복시키겠다고 위협하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묵인자라는 것이다. 72
# 성담론의 이분법에서 볼 때, 서양남성이 성적인 만큼 결국 동양남성은 무성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으며, 또한 동양남성의 무성적 특징이 강조될수록 동양여성의 성적 특징은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78
# 조디 김(Jodi Kim)은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던 종군위안부 여성들의 증언이 이제 와서 상품화 되고, 그들의 모습이 센세이셔널리즘의 대상이 되어 엿보기를 좋아하는 시선에 노출되어 결국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종군위안부들의 목소리 기억, 몸은 영화, 텔레비전 방송, 인쇄 자료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시의 대상’이 되었다. 96
# 인간의 존재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존재를 지배하게 된다. 언어를 지배하는 자는 지배담론구조 속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반면, 언어의 피지배자는 지배자가 할당하는 정체성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다. 101
# 미국 내 아시아인들의 문학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인종적, 국가적, 성적 정체성이 매우 복합적이어서, 거의 주체의 분열증적인 속성에까지 이르는 고통을 경험해왔다. 자신들의 정체성에 하이픈(-)이 있다는 것, 즉 그 다리모양의 연결점의 양쪽을 다 설명해야만 자신들이 총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생존이었다.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