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슈타포 - 히틀러 비밀국가경찰의 역사 KODEF 안보총서 43
루퍼트 버틀러 지음, 이영래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역사가 되풀이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조지 버나드 쇼

 

   저자는 영국의 작가이며 저널리스트로 제3국과 2차 대전에 대한 글을 주로 쓰고 있다. 이 책은 두툼하지만 그림이 많이 실려 있고 주요 인물과 사건이 네모 박스 안에 정리되어 있어 보기가 편하다. 사진들을 보며 글을 읽으니 마음에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게슈타포의 탄생에서부터 제국의 종말까지 적고 있는데,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히틀러를 중점으로, 그와 관련한 인물,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이 책으로 백장미단과 히틀러의 측근이었던 하이드리히, 히믈러에 대해 깊이 알 수 있었다. 홀로코스트에 관해서는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정작 그것에 관한 책들을 자세히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홀로코스트 하면, 유대인 대학살, 디아스포라, 히틀러와 게슈타포를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더 자세히 설명해 보라고 하면 글쎄.

   몇 년 전 베를린을 여행하다 유대인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박물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작품으로 건축물 자체로도 매우 유명한 곳이다. 매우 정갈하고, 소박한 박물관이었는데, 여러 장소 중 ‘홀로코스트 타워’라는 방이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며 사방은 벽으로 덮여있다. 오로지 24m 높이에서 빛줄기가 내리는 데, 그곳에 들어간 순간 서늘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때 유대인들의 마음을 100만분의 1이라도 느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다른 공간은 낙엽이라고 이름붙여진 곳인데 유대인들의 얼굴이 만 여개의 금속 얼굴로 만들어져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금속 얼굴 위로 걸으면 금속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비명처럼 들린다. 입을 벌리고 고통스럽게 누워있는 금속 얼굴 위를 밟고 차마 걸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 대부분도 아무말 없이 가만히 땅바닥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베를린에 머물면서 몇몇 유대인 관련 기념관을 방문했고 아파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홀로코스트를 잊고 살았다. 그런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 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서였을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즐거운 일상에 괜히 찬물을 끼얹을까 두려워서였을까? 책을 읽으며 괜히 미안해진다. 잊고 살아서, 죄송합니다.....

 

# 바이마르 공화국 - 1919년 패전 독일의 잿더미에서 생겨나 1933년 제3제국이 탄생할 때까지 존속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베를린에서 남서쪽으로 24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제헌의회는 베르사유 조약을 받아들였다. 조약은 전쟁의 책임이 전적으로 독일에 있다고 규정하고 군대와 공무원 조직은 유지하되, 군비를 축소하고, 영토를 반환 및 할양하며, 무장을 해제할 것 등을 요구했다. 13

 

# 히믈러의 왕국 - 하인리히 히믈러는 파더보른의 고대 베스트팔렌 시가 근처 숲에 자리한 베벨스부르크의 높은 벽 뒤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왕국을 만들었다. 이곳의 지배자는 고지식한 안경잡이 관료가 아니라 제복과 정교한 기장들, 그리고 프리메이슨의 의전을 른 장식물에 집착하여 낭만주의적 성전을 만들어낸 히믈러 본인이었다.

1934년 여름 히믈러가 손에 넣은 베벨스부르크 성은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 12명이 등장하는 전설에 깊은 영향을 받아 일종의 카멜롯으로 여긴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그가 직접 선발한 친위상급대장들이 전설 속의 원탁의 기사 12명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혈통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두 귀족’이라고 주장했다. 선택된 친위상급대장들은 정기적으로 식당에 있는 커다란 참나무 테이블에 모여야 했다.

성의 한쪽 모퉁이에는 성배를 모시기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히믈러는 아주 오래된 아리아인의 종교로부터 기독교인들이 앗아간 신성의 상징인 성배를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하실에는 현대판 기사들의 유골이 담긴 석재 대좌 12개와 함께 그들의 친위대 단검과 개인무기가 놓여 있었다.

히믈러는 다양한 무기들을 수집하고 거대한 도서관을 세워 독일 제1국을 세운 ‘매사냥꾼’ 하인리히 1세에게 헌정했다. 히믈러는 자신이 그의 후손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인리히 왕이 사망한 날 자정이 되면, 히믈러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영웅인 이 어둠의 왕과 교감하곤 했다. 1935년 히믈러는 친위대에 독일 고대유산연구회라는 새로운 조직을 창설하고 유명 나치 학자들을 고용했다. 이들은 원정대를 조직하는 임무를 맡아 성배를 찾아 아이슬란드로 가거나 순수 아리아 혈통을 가진 조상들의 흔적을 발굴하기 위해 이란을 찾는 등 세계 전역을 탐사했다. 3년 뒤 친위대는 그들의 가장 야심찬 티베트 원정에 착수했다. 인종적 정체성의 절대적인 지표를 만들기 위해 티베트인들의 시체를 측정하고 검사하는 필름이 남아 있다. 47

 

 

# 나의 투쟁 - 히틀러의 정치철학을 구체화한 <나의 투쟁>은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제 1권은 바이에른 주 란츠베르크 암 레흐의 요새 감옥에서 씌어졌다. 히틀러는 미수로 끝난 비어홀 폭동으로 인해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편안한 환경에서 9개월을 복역한 것이 전부였다. 그곳에서 그는 충실한 추종자 루돌프 헤스에게 자신이 구술한 내용을 받아쓰게 할 만큼 여유로운 생활을 했다. 제1권은 1925년에 발행되어 9400부가 팔렸다. 완성본은 1933년 히틀러가 총리가 될 때까지 100만부 이상 팔렸다. 130

 

# 게토 - 폴란드에는 나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지명이나 선출을 거쳐 유대인위원회가 설립되었고, 뒤이어 바르샤바에 게토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39년 11월 4일 무장한 게슈타포 요원들이 유대인위원회의 위원들을 소집시킨 뒤 모든 바르샤바 유대인을 3일 내에 게토로 지정된 지역으로 이주시켜야 한다는 포고문을 읽었다. 한스 프랑크 총독이 반포한 포고문에는 유대인위원회가 독일의 모든 명령을 받아들이고 시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명기되어 있었다. 유대 위원회는 다음달까지 유대인 지구의 심장부에 있는 34개 거리 모퉁이에 “위험, 전염 지대”라는 대형 나무 표지판을 세워야 했다. 이 지역에는 50만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수용되어 외부와 격리되었다. 불법으로 ‘유대인 거주 지구’를 떠난 사람이나 이에 조력한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다. 게토는 의도적으로 황폐한 지역에 세웠고, 외부에서 온 유대인들까지 그 속에 몰아넣었다. 몇 달이 지나자 집이 망가졌고, 위생시설과 하수처리시설이 붕괴되어 거리는 더 이상 청결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이질과 결핵, 발진티푸스가 창궐했다. 바르샤바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식량 배급이 급격하게 줄었다. 히믈러는 게토이든 아니든 폴란드 내에 유대인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참을 수 없었다. 1942년 여름 그는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바르샤바의 모든 유대인들에게 이동을 명령했다. 10월까지 31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인종말살 강제수용소로 추방당해 가스실로 향해야 했다. 149

 

# 백장미단 - 히틀러와 나치 정권에 대한 반대는 여러 형태로 나타났고, 전쟁이 계속되면서 점점 더 강화되었다. 나치 독일의 젊은이들이 만든 가장 유명한 반체제 조직은 1942년 뮌헨 대학의 학생들이 결성한 백장미단이었다. 그들의 슬로건은 “공포와 테러라는 철의 장막을 쓰러뜨리자”였다. 게슈타포 사냥의 희생양이 된 이들의 구성원 중에는 한스와 쇼피 숄 남매도 있었다. 그들은 체포되어 즉석재판을 받고 1943년 2월 22일 참수형에 처해졌다. 쇼피 숄은 게슈타포의 심문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가 한 일로 인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각성하여 자각하게 될 것이다.”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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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홀로코스트 - 개정판
로버트 S. 위스트리치 지음, 송충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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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독 도서관 앞마당에는 벚꽃이 활짝 피었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도서관은 온통 벚꽃 향기로 가득하다. 이렇게 햇살 좋은날, 벚꽃이 분분이 날리는 날,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었다. 꼭 이런 날 읽어야만 하냐고 가끔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어가며 꾸역꾸역 읽어나갔다. 책장을 넘길수록 눈물이 날 것 같아 입술을 꾹 깨물었다. 주위는 온통 봄날을 즐기는 사람들의 웃음이 가득한데, 혼자 먹구름을 가득 끌어안고 글을 쓰고 있다.

저자는 유대인과 반유대주의 역사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예루살렘에 소재한 헤브루대학에서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저자는 유대인의 역사와 홀로코스트를 꼼꼼하게 기술하였다. 이 한 권의 책으로 홀로코스트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을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일이 학습을 통해 가능하단 말인가? 홀로코스트가 불과 80년 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무섭기만 하다. 어떻게 유대인들은 온 세상의 멸시와 적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선민사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그토록 유럽인들에게 질투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니, 나와 다르면 경계를 하고 배척하는 민족주의 사상이란 얼마나 무서운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잔인하고 혐오스러운지 역사를 통해 수없이 통해 수없이 행해진 대학살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들, 사람들 마음속에 사랑이 있다고 믿으며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던 자들, 그들을 생각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홀로코스트를 과연 문학과 그림, 음악, 건축이 재현할 수 있을까? 이미 죽은 자들은 아무 말이 없는데, 살아남은 소수의 증언이 이들의 죽음을 대변할 수 있을까? 르완다 대학살, 난징 대학살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이들의 죽음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전쟁과 살인이 자행되고 있다. 피로 물들인 역사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게슈타포를 피해 2년 동안 다락방에 숨어 있었던 안네 프랑크, 끝내는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던 그녀는 쓰고 있다. “이와 같은 모든 안 좋은 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이 선하다고 믿고 있다.”

나는 가까스로 안네의 말을 붙잡고 서 있다. 인간 본질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선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으며, 그래서 지금까지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있다고 믿으며, 무고하게 죽은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무력해 보이는 두 손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홀로코스트는 나치 제국이 유럽의 유대인을 성별과 나이를 막론하고 최후의 한 사람이라도 남기지 않고 멸종시키고자 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노선 때문에 목숨을 잃어야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나치 국가에 경제적 혹은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존재도 아니었다. 이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떤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 출신이라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유대인들만 나치의 인종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것은 아니었다. 집시들도 인종적으로 불순한 집단으로 여겨져 가스실로 보내졌으며, 러시아인, 폴란드인, 그리고 다른 독일 동유럽 점령지 주민들도 노예 상태로 전락했다. 설사 게르만족이라 해도 정신적 혹은 신체적 결함이 있다고 낙인찍힌 사람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 계몽주의, 프리메이슨운동에 책임이 있다고 여겨졌다. 이들은 부패의 인자로서 소요, 혼돈, 그리고 인종 타락을 부추긴다고 낙인찍혔다. 유럽인들이 유대인을 악마로 간주하는 이 사상에 감염되게 된 데이는, 그 연원이 중세로까지 거슬로 올라가는 아주 뿌리깊은 반유대주의적 기독교 전통이 크게 작용했다. 유대인은 고리대금업자, 불경스런 배신자, 제례살해범, 기독교에 반항하는 위험한 음모자, 또는 도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부류라는 이미지가 이미 확고하게 박혀 있었기 때문에, 나치가 그런 이미지를 스스로 고안해낼 필요는 없었다.(19)

   히틀러가 집권했을 때 이들을 무자비하게 몰살시키는 일은 SS(나치 친위대)의 총수 하인리히 히믈러와 그의 최측근 수하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맡았다. 나치의 인종차별주의는 실제로 유대인의 선민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되 내용만 바꾼 것으로, 어쩌면 유대인들에게 불리하게끔 기묘하게 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선택된 민족이 둘일 수는 없는 것이다. 히틀러가 구세주로 자임할 수 있으려면, 3000년 동안이나 선택된 민족으로 여겨졌던 바로 그 유대인이 사라져야 했다.(34)

   유대교의 핵심에는,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의 내면에 도덕률을 심어준 유일하고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믿음이 존재한다. 성서 속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나이 산에서 성스러운 율법과 십계명의 계시를 받음으로써, 신과 계약을 맺은 민족이 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독특한 윤리적 임무를 담당하기 위해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믿었다. 곧 인류는 창조주의 뜻에 따라 탄생되었으며, 그것은 제국을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은 각자 신이 내려준 생명을 이어가고, 모든 삶은 신성하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구체화하기 위해서이다.(35)

   1933년 1월30일, 히틀러를 수상으로 내세우고 파펜을 부수상으로 하는 보수주의자 8명 나치는 고작 2명만이 참여한 내각이 구성되었다.(85) 1935년 뉘른베르크 인종법이 세워졌다. 이 법률은 독일인 및 그와 비슷한 혈통의 국민과 유대인 사이에 결혼이나 혼외정사를 금지시켰고, 유대인은 45세 이하의 독일 여성을 고용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유대인이 국기를 걸거나 제국의 색깔을 사용하는 것도 금했다. 그리고 제국시민법은 누가 유대인이고 또 누가 유대인에 속하지 않는제를 새로 규정했다. 이 법에 따르면 유대인에게는 다음 세 범주가 있었다. 1. 완전한 유대인은 친조부모와 외조부모 가운데 적어도 3명이 유대인일 경우에 해당되며, 또한 그 중 사람이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유대교를 믿고 있거나 나중에 믿게 된 사람, 혹은 유대인과 결혼한 사람도 이에 해당한다. 2. 혼혈 유대인 ‘제 1등급’은 친조부모 및 외조부모 가운데 두 사람이 유대인이지만, 유대인과 결혼하지 않았거나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을 가리켰다. 3. 혼혈 유대인 ‘제2등급’은 친조부모와 외조부모 가운데 한 사람만이 유대일 경우이다.(95)

   1938년 10월, 그 당시까지 독일에 거주하던 폴란드 출신 유대인 1만 7천명은 나치 당국에 의해 집단적으로 잔인하게 강제추방을 당했다. 악전고투 끝에 폴란드와 독일 사이의 국경에 다다른 이들에게 폴란드 정부는 입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감자기 무국적자로 버림받은 이 폴란드 유대인들 중에 그린스즈핀 일가도 있었다. 이 가족 출신으로서 법과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책 파리에서 홀로 망명생활을 했던 17살 난 아들 헤르셀은 자기 부모와 유대인들 모두가 학대 받는 것에 분개했다. 그는 복수를 하기 위해 고민끝에 파리 주재 독일 3등서기관이었던 에른스트 폼 라트를 암살했다. 나치선전기관은 즉각 이 행위를 전쟁선포, 그리고 전세계적인 유대인 비밀결사 조직의 음모라고 규탄하고 나섰다. 이에 대한 대응 조치로서 나치는 독일 전역에서 전례없이 잔혹한 반유대주의적 폭력과 테러를 일제히 자행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 유대인 상점의 유리창들이 수없이 부서졌고 그 깨진 유리 조각들이 마치 수정처럼 빛났다고 해서, 이때의 사건을 듣기 좋게 일명 ‘수정의 밤’이라고 부른다.(107)

   나치정책은 분명히 수정의 밤을 계기로 과격화되었다. 독일 유대인들은 1939년까지 추방당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회적으로 매장된 사람들이었다. 3년 뒤에 이들은 부랑자 신분임을 확인시켜주는 노란 다윗별 문장을 모두 착용할 수밖에 없었다.(113) 게토는 1939년 말부터 폴란드 전역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컸던 것은 바르샤바 게토로서, 한때는 그 수가 50만명까지 달할 정도로 그야말로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게토에 연구모임, 도서관, 그리고 지하 학교를 설립할 수 있었다. 가난한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키울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활동을 제공하는 모임들도 생겨났다. 게토 거주자들은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전통과 유대교의 종교적 가치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토라 경전이 보전되었고, 탈무드 연구, 기도, 성인식, 히브리어 학습이 계속되었다. (131)

   히틀러는 1945년 2월 13일 “장차 세계는 영원히 우리에게 감사할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나치는 진정으로 “유대인 종양을 절개했다”고 자랑했다. 히틀러는 자살하기 하루 전인 1945년 4월 29일 베를린 수상 관저에 소련군의 폭탄이 떨어지는 가운데 ‘정치적 유언장’을 작성하도록 일렀다. 히틀러의 최후 유언장은 대량학살의 정당성을 주장함과 동시에 홀로코스트를 맨 처음으로 부인하는 문서였다. 그는 유대인과 벌인 전쟁을 “세계 모든 민족들을 독살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방어하려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유대인을 가스와 총으로 죽인 행위는 연합군이 독일에 퍼부은 공습에 비하면 ‘인간적인’ 대응이었고, 나치의 세계관에 따르면 이 공습행위는 ‘아리안족’에 대한 ‘유대인’의 침략행위였다.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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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의 장난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번 팽이를 돌려 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쫒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 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 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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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여성문학
임진희 지음 / 태학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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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한국 작가, 외국 작가로 나누어 읽었지 한국계 미국인이나 한국계 일본인 등 하이픈(-)이 들어간 작가는 거의 알지 못한다. 이창래, 서경석 작가 정도? 이번에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예전 같으면 전혀 눈에 관심도 없었을 제목의 책인데 이제는 눈에 번쩍 띈다.

   저자는 세계에 흩어져 이산(diaspora)의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 한국 사람들, 범위를 더 좁혀 미국에 사는 동포들, 마지막으로 한발 더 나아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길 원한다. 사실 이산 여성들은 신대륙에서의 핍박과 가정 내에서의 억압을 이중으로 받아 왔다. 백인들이 동양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가부장적인 위계 질서에 희생되어 왔던 여성들이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 책은 인종차별과 성차별 속에서 소외되었던 하위주체들의 ‘자기 찾기로서의 글쓰기’이다.(16) 이들은 침묵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으며, 어머니의 기억을 양분으로 삼으며 자기 정체성을 놓지 않았다. 한국의 이산자들은 두 가지 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두고 온 조국에 대한 죄의식의 짐이요, 또 다른 하나는 미국 내 아시이 인으로서 감내해야만 했던 백인 중심의 인종담론의 짐이라는 것이다.(17) 책에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이 작품이 거의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작품을 예로 들며 여성 이주에 관한 담론을 풀어가기 때문에 재밌고 쉽게 읽힌다. 명미 김, 캐시 송, 강용흘, 차학경, 수잔 최, 린다 수 박, 최숙렬 등이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작가도 많았다. 반성했다.

 

   2장에서 저자는 이산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식민 지배 막바지인 1945년경에는 한국 인구의 11%가 국외에서 살고 있었으며,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귀향이 차단되어 중국, 사할린, 만주, 시베리아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 미국으로의 이주의 동기는 탈식민지적 이산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백년에 걸친 미국으로의 이주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데, 첫째 1903~1905년 하와이 농장의 노동자, 둘째 1960~1953년 한국 전쟁 이후, 셋째 1965년 이민법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 강점기 중이었던 1910-1924년 사이에는 약 900명의 정치적 망명객, 학생, 지식인들이 이주했다고 한다.

   남성들을 따라 여성들의 이주도 이루어졌는데 1920년 경까지 ‘사진 신부’로 당도한 약 천 명의 여성들은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이나 미국서부 농장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였다. 초기 한국 여성 이주사에는 고단한 삶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 척박한 여성 이산의 출발점은 여성 작가들의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한국계 이산 여성들은 ‘국가’ 앞에서 여성들의 인권이나, 성차별의 문제를 안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일정감정기에 조국에 닥친 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애국’이라는 이름 뒤에 감추어야 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남성 위주의 독립운동의 주류에서 소외되었으며, 이 시기에는 ‘남성적 내셔널리즘’이 압도했다. 또한 여성들은 유교사상이 내재되어 있어 공격적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유교사상에는 우선 국가, 성, 나이, 친족관계처럼 남성적 권력 우위의 것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46)

   한국계 미국문학에서 조국은 미학의 구심점이다. 국가의 상실과 복원, 망명, 살아남은 자의 슬픔, 도망자의 죄의식이 문학적 상상력의 근원이 되고 있다.(49) 두고 온 조국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말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은 있는 그대로의 동양이 아니라 동양으로 만들어졌다고 지적한다. 백인의 환상으로 꾸며진 아시아가 오리엔트이고, 그에 따른 부속적인 이데올로기가 오리엔탈리즘인 상황은 백인 문학 속에서 온갖 로맨스와 이국성, 제국주의적 환상을 불러일으켜 왔다. 여성들은 남성/제국/국가권력의 타자로서 기호화되면, ‘그들’의 환상 속에서 만들어진 정체성을 강요받는다.(77) <마담버터플라이>난 <미스사이공>은 복종적이고 순종적인 동양 여성상을 잘 보여준다.

   한국계 미국 여성문학에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만행되었던 여성의 몸을 고발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문당한 유관순의 몸, 일본군의 성노예, 전후 서양에 대한 매춘은 ‘조국’ 혹은 ‘제국;의 이름으로 희생된 성을 보여준다. 또 다른 국가 기호는 기지촌 여성들이다. 기지촌 여성의 문제는 전쟁의 상황 속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남성적 국가권력 구조 속에서 피식민화 되는지가 나타나 있다.(91) 미군과 결혼한 기지촌 여성들은 한국인으로도, 미국인으로도 인정되지 못해왔다. 이 여성들은 인종적, 민족적 경계성을 넘어가 버린 자, 주체성을 잃어버린 자, 자신의 문화에 등을 돌리고 미국에 야합하는 자로서, 그 존재가 철저히 부정되어 왔다.(93)

   아시아계 문학에는 지배언어로서의 영어에 대한 강박관념과 좌절감, 굴욕감 등이 섞여 있다. 아시아인의 언어는 단순히 텍스트의 문제가 아니다. 적극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 아시아인들의 언어습관, 표현방식, 사회문화적인 규범을 볼 때, 사실 동, 서양은 언어의 구조와 내용만이 다른 것이 아니라 언어에 태도가 다르다.(105)

   언어의 상실은 인간 존재가 그 표현의 출구를 잃었음을 의미하며, 이산자들의 근본적인 고민은 존재의 근원이 되는 언어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다. 언어는 식민화의 도구이다.(106)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만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던 것을 생각해 보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든 영어의 규칙을 따르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는 애처로운 모습을 통해, 언어가 인간들의 사고에 얼마나 전횡적인 제약을 행사하는, 또한 인간을 규제하는 합법적 폭력으로 자리잡아 가는 하는 상황이 나타나 있다. 결국 이러한 ‘언어의 힘’으로 아시아에 대한 인습적 전형을 깨려는 것이 바로 아시아계 작가들의 소명이다.(109) 최근의 아시아계 미국작가들은 ‘완벽한 미국식 영어’로 표현하는 지배담론에 함축된 동화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한다. 명미 김의 시나 차학경의 소설을 보라.

   기억은 과거와의 대화이다. 기억은 단절된 역사를 넘어서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의식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기억을 공유하는 행위는 여성으로서의 연대, 그 상상의 공동체와의 연대를 향한 의식이다. 특히 기억이 모계로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여성의 영역으로서의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모계성은 하위주체 미학의 독특한 특징이다. 어머니의 기억은 특히 이식된 문화의 자아들에게 있어서, 구대륙과 신대륙,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절대적 보고이다. (158) 어머니의 기억은 그동안 침묵당해 왔던 역사 복원의 근간이 되며, 과거 기억의 저장고를 열어 보이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산세대 여성작가들의 문학적 영감의 근원이 되었다. 이러한 여성들의 구전적인 감수성(대화적 텍스트)에는 소외된 목소리를 포괄하며, 전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작가들은 영어라는 연장을 사용하여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을 통해 작가의 표현으로 다시 말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제까지 금지되어 왔던 제3세계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이야기꾼의 미학은 이성 중심적인 제1세계 중심의 문화특성으로부터의 이동이라는 점에서 탈식민적인 미학적 가치를 지닌다.(171)

 

# ‘모범적 소수민족’으로서 아시아인의 성공의 신화는 동시에, 성공한 아시아 세력에 대한 경계로서의 ‘황인종의 위협’으로 늘 견제되어 왔다. 동시에 아시아인은 자신들이 새로 선택한 양부의 국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 충성심을 인정받고자 동화하였다는 사실에 괴로원한다. 61

 

# 헨리 황은 전형적인 아시아 인형은 대개 두 가지로 분류된다고 지적한다. ‘좋은’ 아시아인, 즉 무기력하고 무성적이고, 엉터리 영어를 쓰고, 백인들에게 충실하고 유순한 하인이든지, 혹은 ‘나쁜’ 아시아인 즉 서구세계를 전복시키겠다고 위협하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묵인자라는 것이다. 72

# 성담론의 이분법에서 볼 때, 서양남성이 성적인 만큼 결국 동양남성은 무성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으며, 또한 동양남성의 무성적 특징이 강조될수록 동양여성의 성적 특징은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78

 

# 조디 김(Jodi Kim)은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던 종군위안부 여성들의 증언이 이제 와서 상품화 되고, 그들의 모습이 센세이셔널리즘의 대상이 되어 엿보기를 좋아하는 시선에 노출되어 결국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종군위안부들의 목소리 기억, 몸은 영화, 텔레비전 방송, 인쇄 자료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시의 대상’이 되었다. 96

 

# 인간의 존재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존재를 지배하게 된다. 언어를 지배하는 자는 지배담론구조 속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반면, 언어의 피지배자는 지배자가 할당하는 정체성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다. 101

 

# 미국 내 아시아인들의 문학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인종적, 국가적, 성적 정체성이 매우 복합적이어서, 거의 주체의 분열증적인 속성에까지 이르는 고통을 경험해왔다. 자신들의 정체성에 하이픈(-)이 있다는 것, 즉 그 다리모양의 연결점의 양쪽을 다 설명해야만 자신들이 총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생존이었다.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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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예찬 열화당 미술책방 1
지오 폰티 지음, 김원 옮김 / 열화당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알게 된 건 다른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을 쓴 저자가 칭찬하며 언급하였기에 메모해 두었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제목 그대로 건축에 대한 찬양과 숭배가 가득 차 있다. 지오폰티는 이탈리아의 건축가이며 디자이너다. (1891-1979) 그가 디자인한 가구들을 아마 한번쯤은 봤을 것이다.(다만 그 가구를 지오 폰티가 디자인 했다는 것을 모를 뿐) 그의 정열적인 일생은 그가 쓴 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책은 논리적인 구성을 따르지 않고 있으며, 단편적인 그의 생각들이 부산스럽게 담겨 있다. (지오폰티 자신도 인정했듯이) 그래서 읽다보면 이건 대체 일기인지, 에세이인지, 경구 모임집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럴 땐 그냥 마음을 비우고 읽는 것이 최고. 지오폰티는 이 책은 건축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말하였다. 그래, 다 읽고 나면 뭐라도 정리가 되겠지.

    첫 장에서부터 저자는 우리에게 명령한다. “건축을 사랑하라.” 마치 성직자가 신도에게 설교를 하는 것처럼 강력하게 지시한다. 현대 건축과 건축가를 사랑하라고. 이토록 당당한 저자를 보았나! 좀 더 읽다보면 건축이 무엇인지에 관해 당당하게 정의내리기 시작한다. “건축은 수정(crystal)이라고, 수정처럼 순수하고, 완전무결하고 명확한 것이라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공학과 건축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웬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한다. ‘하느님이 내려 준 예술의 참된 정의’ 같은 장은 저자가 상상으로 쓴 것으로 하느님이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보여주는데, 이 장에서 저자의 예술에 대한 열정(혹은 광기?)을 완벽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로 이야기하자’ 장은 방바닥, 분수, 지붕, 방 등에 대해 정의내리고 있는데 각 소제목들이 시처럼 아름답다. -방바닥은 하나의 법칙이다. 오벨리스크는 수수께끼이다. 분수는 하나의 목소리이다. 계단은 소용돌이이다. 지붕은 뱃머리를 세우고, 하늘을 항해한다. 발코니는 한 척의 범선이다. 창은 한 점의 투명한 그림이다. 방은 하나의 세계다 - 그 다음 장에서는 건축의 재료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유리, 알루미늄, 강철, 세라믹, 콘크리트, 플라스틱, 대리석, 목재, 직물, 종이 등 모든 것들이 놀랄 만한 재료라고 (이쯤 읽으면 저자에게 적응이 되어 독자도 함께 놀라워 할지도 모른다.) 감탄을 하고 있다. 뒷부분에 가면 스스로 건축에 관한 오십 개의 문답을 만들어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최고의 직업은 성직자, 교육자, 의사, 건축가라고 대답함으로써 건축예찬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토록 건축을 대놓고 사랑하는 건축가의 책은 처음이다. 그러한 열정이 있으니 많은 이가 칭송하는 건축가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겠지. 저자의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몇 군데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나는 걸 보면 이 책은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하였다고 생각한다. 폰티의 열정에 은근슬쩍 감염되어 두 손을 불끈 쥐어 본다.

 

# 공학은 원형(prototype)을 창조하며, 건축은 유일형(monotype)을 창조한다......아무도 파르테논 신전이나 로톤다를 낡고 오랜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예술성이 그들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었다. 60-61

 

# 도시에서는 군중들과 그 움직임 때문에 낮에 거의 건축을 바라보지 못한다. 낮에는 건축을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만 보게 된다........건축은 밤에 그 설계 당시의 모형으로 돌아간다. 그 자체의 도면과 똑같게 보인다. 도면 그대로이다. 건축은 밤에 신기하게 보인다. 그것은 바로크 시대의 하프와 첼로같이 조용한 음을 내는 악기이다. 그것은 소리를 속에 품고 있다. 낮에 그것은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된다. 생활의 소리. 생활은 음향이다. 102-03

 

# 건축가(예술가)는 재료의 아름다움을 예찬하지 말아야 한다. 재료의 아름다움이란 영혼이 없는 물질적인 것이다......아름다운 재료는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것이다. 평범한 재료로써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은 소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쨌든 아름다운 재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적절한 재료가 있을 뿐이다. 115

 

# 가장 아름다운 계단이란 공간 안에 자유롭게 놓인 것이다. 계단의 한쪽 끝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고, 또 다른 쪽 끝은 꼭대기에, 마치 경사진 다리처럼 연결된 것 말이다. 이것이 가장 고무적인 계단이다. 이것은 공중을 난다. 이것은 하나의 도약이다.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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