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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워즈워스 다시 읽기 ㅣ LIE 영문학총서 26
김성중 지음 / L.I.E. / 2011년 9월
평점 :
이 책은 저자가 워즈워스에 관해 쓴 논문들을 모아 책으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워즈워스에 관한 시를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재미있게 읽지는 못하였다. 미리 시를 좀 읽어놓을 걸 후회가 된다. 워즈워스는 1770년 영국에서 태어나 1850년 사망하였다. 사람들에겐 ‘무지개’라는 시로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신역사주의자들이 워즈워스를 왜곡되게 해석한 것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 책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다 네이버 캐스트에서 문태준 시인이 워즈워스에 관해 적어놓은 글을 발견했는데, 이 글에서 주장하는 바와 방향이 달라 깜짝 놀랐다. 평소 그 시인을 존경하는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책을 읽고 기사를 봐서 그런지 기사 내용이 확실한 근거 없이 단정 지어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공부하는 만큼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절대적 사실이란 없는 것인가? 즐겁게 시를 읽으려고 고른 책인데, 머리만 복잡해졌다.
총 7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장에서 주장하는 바를 정리해보았다.
1장 -신역사주의, 워즈워스의 시에 적용 가능한가?
문학작품을 역사적 공간 안에서 다룰 것이안 아니면 텍스트 자체만을 다룰 것인가에 대한 대립은 신비평이 시작되면서 첨예화된다. 신역사주의는 문학비평에 있어 역사적 요소를 강조하지만, 신역사주의자들이 진정으로 관심을 두는 것은 텍스트 자체-또는 작가의 의도-의 성실성에 대한 거부이다. 시의 경우에 있어, 타락한 현실을 벗어나 순수한 자신의 시적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의 가능성 배제한다. 신역사주의자들이 워즈워스의 시 <틴턴 사원에서 몇 마을 떨어진 곳에서 쓴 시>에 틴턴 사원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그 이유를 시인의 정치적 계력으로 탓함. 왜냐하면 당시 틴턴사원 근처에는 빈민들이 많았는데, 시인이 의도적으로 역사적 의식을 억제하여 이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반박이 조목조목 이어진다. 그 중 하나는 틴턴 사원이나 집이 제목에 포함되면 이들이 반드시 시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며, 이것은 시인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항상 숨기고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아도르노 역시 예술가에게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서정시에서 시인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상상의 세계를 갈망하는 것을 역사로부터의 도피라기 보다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
2장 -워즈워스의 주체성 회복을 위하여
신역사주의자들은 <틴턴 사원> 시에서 시인이 프랑스 혁명 직후의 불안정한 사회, 역사적인 배경 속에 존재하고 있었음에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며 비판한다. 그런 이유로 워즈워스를 당시의 사회 상태를 지속하고 유지하려는 보수주의자로 낙인 찍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평가들이 지닌 공통된 문제점은 시인에게 독창적인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시인의 독특한 주체성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아, 그들 스스로가 상정하는 단일한 주체성을 워즈워스에게 강요하고 이에 따르기를 기대한다. 아도르노는 이런 시각을 비판하며 대량 생산으로 상징화되는 현대사회에서 사라져가는 개인의 주체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3장 -아도르노와 워즈워스의 자연관
둘의 자연관은 비슷하다. 워즈워스가 그의 시에서 표현한 자연은 이성적 판단에 의해서 지배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니라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자연이다. 원시시대의 주술사가 공포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감수성을 전제로 하는 자연이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생명력을 느끼지 못한 채 지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우리가 주체 중심적이 되어서 객체를 인식하는 감수성이 퇴화되었기 때문이다.
4장 -워즈워스, 콜리지, 아도르노
워즈워스가 콜리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콜리지의 시학이 워즈워스 것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을 아도르노의 목소리를 빌려 비판하고 있다. 콜리지는 이성의 능력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자연의 생명력을 인식할 수 있는 감수성을 잃어버린 듯하다. 콜리지는 워즈워스가 지나치게 자연을 예찬하는 것에 탐탁해 하지 않았다. 워즈워스는 콜리지와 달리 기억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초자연적인 존재보다는 감수성으로 느낄 수 있는 자연의 대상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5장 -워즈워스, 베토벤, 아도르노 :저항의 예술
시와 음악이 갖는 유사성을 전제로 하여, 같은 해에 태어난 베토벤과 워즈워스를 비교하였다. 베토벤은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와 달리 귀족의 후원으로부터 비교적 독립적인 작곡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경제적 독립은 그를 당시의 귀족들에게 익숙한 관례적인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했다.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이 공포정치로 인하여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자, 질서를 회복시켜 줄 것을 기대하고 나폴레옹의 등장을 환영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폴레옹에게 바치려던 곡에서 나폴레옹의 이름을 지워버렸다고 한다. 또한 베토벤은 왕이나 귀족층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은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워즈워스가 <서정담시집>에서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여 실험적 시를 시도했고 하찮은 소재를 다루어 기존의 문학 전통을 따르지 않았듯 베토벤 또한 비슷한 시도를 하였다. 소나타 형식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조성을 사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비평가들은 프랑스 혁명에 회의적인 태도로 선회한 것을 보수주의자로 변절한 증거로 삼는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이다. 정치적인 보수주의자란 그 당시의 사회 상황에 만족하여 그 상태를 지속하려는 사람이다. 시에서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적 요소를 표현하여 긴장감을 조성한 시인을 보수주의자라고 낙인 찍을 수는 없을 것이다.
6. <서정담시집> 실험적이었는가?
몇 비평가들은 워즈워스의 주요 작품이 처음부터 보수적이었다고 주장한다. 푸코식의 냉소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이러한 비평가들은 워즈워스가 노후에 보수적으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젊은 시절에 보수적으로 변절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를 반박하며 워즈워스가 소외된 사람들을 시에 등장시켜 그들의 고통에 독자들이 동정심을 느끼게 하여 그런 고통의 발생 원인과 해결 방법을 생각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인이 시에서 자신의 급진주의적인 정치적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야 인정하겠다는 비평가들의 태도는 문학적 표현 방법을 지나치게 제한하여 문학 속에 내재하는 정치성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7. 1805년 워즈워스의 종교관
여러 비평가들은 1805년의 <서곡>이 1850년에 비해서 범신론적인 표현을 많이 담고 있다고 보고, 이를 근거로 그의 종교관을 결정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자세히 분석하여 워즈워스의 종교적 성향이 범신론이 아니라 기독교였음을 밝히려고 한다. 범신론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은 급진주의에서 보수주의로의 전향이라는 그의 정치적인 성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