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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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의미있게, 맞이하기 위한 아름다운 보고서

 

이 책은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폐암에 걸려 어린 딸과 역시 의사인 아내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신경외과 의사의 회고록이다. 암에 걸린 이후에 쓴 글이므로 아주 절박한 심정으로 평소 그가 느끼던 인생과 죽음과 도덕의 문제를 의학적인 측면에서 기술해 나가고 있다
...
- 옮긴이의 말 중에서 -

 

책의 맨 뒤 페이지에 있는 사진은 볼 때마다 뭉클하게 한다.

세상 또는 카메라를 신기하게 응시하는 아이의 똥그랗게 뜬 까만 눈동자. 세상 아무 두려움이 없는 아이들만의 맑고 신비로운 눈빛이죠. 그리고 이 아이의 부모인 폴 칼라니티와 루시 칼라니티. 두 사람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고 만족스런 얼굴이죠. 이후 이 아이의 아빠가 앞으로 살 날이 1년도 채 안 남았다는 것은 절대 어떤 징후도 그림자도 겉돌지 않는, 그의 죽음을 꿈에도 생각못할 단란하고 행복하고 따뜻한 사진이죠.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이 사진을 보면. 그냥 눈물이 주루룩 흐릅니다. 그냥이요. 죽음의 순간까지도 치열했던 폴이 안쓰러워서. 그런 그를 곁에서 그리워하며 보내야만 했던 루시가 가여워서. 그리고 두 사람 사랑과 삶과 죽음과 그 모든 흔적의 결정체로 남아야 하는 딸 아이 케이디를 생각하는 마음이 뜨겁고 벅차서 말입니다.

폴은 참으로 폴답게 삶의 끝자락을 살아갑니다.

 

폴은 토요일에 내가 녹화하는 동안 엘리엇의 "황무지"를 꺼내 거실에서 크게 읽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자극한다.' 숙제도 아닌데 폴이 책을 무릎에 엎어놓고 열심히 암송하는 모습을 보고는 가족들이 빙긋 웃었다. '정말 저 애답구나' 시어머니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 나도 폴답게 죽을 수 있으리라...
내 좋아하는 시집을 펼쳐놓고, 한 편의 시를 골라서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암송하는 듯 읽고 또 읽으면서. 나의 죽음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날들을 문학적 비유가 가득한 문장과 하리라. 그 얼마나 멋진 삶인가, 시간인가, 나의 모습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받은 내용 중에 한 가지가. 폴의 문학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 구절. '폴은 성경보다 시에서 더 위안을 얻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라는 구절이다. 우리는 정말 때로는 한 줄의 짧은 시 구절에서 우주보다도 더 큰 위안을 얻을 때가 있다. 완전 공감하는 문장이라서 더욱 뭉클했었다. 그리고.
'폴의 묘지는 투박하면서도 우아해서 평소 그의 상품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라는 문장이 있다. 투박하면서도 우아함. ...................... 내가 진정 바라는, 내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이것이구나. 새삼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다. 투박하면서도 우아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하고 시를 암송해야 하고. 인간에 대한 시야를 넓혀야할까. 참으로 어렵고도 먼 길이다, 라는 생각도 함께 한다.

폴의 이 죽음과 삶에 관한 회고록은, 나에게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가(How Long Have I Got Left?)'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고, '떠나기 전에(Before I Go)'에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나, 하는 진지한 고민에 빠지게 한다.
우리는 삶과 함께 늘 죽음을 생각한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에 대한 경고, 죽음에 대한 신의 가호, 죽음에 대해 신에게 기도하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 메멘토 모리. 삶과 죽음의 길은 예 있으매(함께 공존하므로) 어떻게 죽느냐는 결국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답일 수 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죽음을 앞에 두고 괜찮은 삶이라고 자신있게 자녀에게 말할 수 있을까?

"나에게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가, 내가 떠나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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