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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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밤이 선생이다' 중에서 (작가 황현산)

몇 차례 읽고 또 읽었던 내용...

'삼가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읽는다' 전문을 여기에 옮겨 적습니다.

 

소리 내어 읽어도 보았고.
그리고 또 이렇게 옮겨 써 보고도 싶었습니다.

#황현산 작가의 '밤이 선생이다'는 저의 집 거실 책상에 오래 전부터 놓여 있고. 오며 가며 두어 페이지씩 읽는 책인데.
이상하게 이 마지막 글(300쪽~302쪽). '삼가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읽는다'는 책을 펼쳐 볼 때마다 읽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도 함께 읽으면서 그 해답을 찾아 보면 어떨까 싶어요.
아직도 그의 이름 앞에서 슬픔과 미움과 원망이 고스란히 생생하니 살아나는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300쪽~302쪽

말귀가 어둡지 않은 사람이면 느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 남긴 짧은 글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힘이 있어서, 그의 죽음을 앞에 두고 허튼소리를 할 수 없게 한다.
죽음을 결심한 한 가장이 가족에게 당부하는 말로 쓴 이 열네 줄의 유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여섯 줄로 가장 긴 첫 부분에서, 고인은 여전히 공인의 신분인 전직 대통령으로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힌다. 그는 먼저 자신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고 있거나 받게 될 여러 사람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이 "여러 사람"은 우선 그의 가족을 비롯해서 수사중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겨냥하는 말일 것이나, 그에게 여전히 믿음을 지니고 그를 어떤 정치적 상징이나 그 구심점으로 생각했던 사람들도 거기서 빠질 수 없기에, 그 안타까움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고인이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고 썼을 때도, 그는 자신의 삶과 연결된 주변 사람들의 부담만을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과 정치적인 의견을 같이했던 사람들의 역사적 희망에도 자신의 삶이 걸림돌이 될 것을 바라지 않았다. 고인은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도 말한다. 건강이 좋지 않아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썼다. 창조적 활동가였던 고인은 이제 자신에게서 그 창조 역량을 더는 발견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한 인간의 위엄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고난 앞에서 그 위엄은 살을 찢고 뼈를 부러뜨리는 결단으로만 회복할 수 있다. 고인은 그 일을 결행했다.
자신의 죽음에 임해 가족들이 지녀야 할 마음의 태도를 말하는 두번째 부분은 세 줄의 당부와 두 줄의 이유 설명으로 되어 있다. 고인은 슬퍼하지도 미안해하지도 말라면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말했다. 여기에는 물론 땅과 몸이 하나라는 철학적 종교적 사유가 있지만, 비록 죽음이 인위적이라도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따른 결과이기에 자연을 거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다. 고인은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를 "운명이다"라고 짧게 썼다. 이 운명은 제 희망이 오욕으로 덮인 것을 바라보며 몸을 찢어야 하는 사람의 처절한 운명이다. 그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름다운 정신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자기희생에 속한다. 거기에 패배주의는 없다.
고인이 자신의 장례에 관해서 말하는 마지막 부분은 세 줄로 짧다. 화장하되,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라고 당부했으며, "오래된 생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작은 비석은 공훈을 적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겨야 할 이 비석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것이다. 자신을 면목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고인은 이렇게 그 영욕의 자리였던 생물학적 육체의 흔적을 지상에서 지우고 싶어했으나, 역사에 걸었던 기대를 끝내 접지 않았으며, 그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래된 생각은 깊은 생각이다. 그는 역사의 깊이를 믿었다.
고인은 순간마다 한 뜻을 위해 자신의 온몸을 내던졌던 사람답게 죽음 앞에서도 전적으로 죽음에 관해서만 말했다. 처절한 결단을 향해 추호의 주저함도 없었던 고인의 유서에는 짧은 문장과 비교적 긴 문장이 어울려 만드는 단호한 리듬과 처연한 속도감이 있다. 이 다감하고 열정적이었던 사람의 절명사는, 고결한 정신과 높은 집중력에서 비롯되는 순결한 힘 아래, 우리 시대의 어느 시에서도 보기 드문 시적 전기장치를 감추고 있다. 고인의 믿었던 미래의 힘과 깊이가 그와 같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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