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의 농담을 마주친다.

치매는 늙은 연쇄살인범에게 인생이 보내는 짓궂은 농담이다. 아니 몰래카메라다. 깜짝 놀랐지? 미안 그냥 장난이었어.

너무나 적확한 표현에 유쾌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간담이 서늘해진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사금파리보다 더 날카롭게 빛나는 한마디에 으스스해질 정도다.

미안하지만 그것들은 비유가 아니었네. 이 사람아.

살인 행위와 살인의 과정을 생생한 언어로 비유한다.
.
시인이 숙련된 킬러처럼 언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하는
존재인 것을.
주인공 '병수'는 실제로 그렇게 숙련된 킬러이다.
천부적인 살인자
살인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
..
그런 그가 치매를 앓는다
그리고 혼돈이 시작된다
죄의식 하나 없는 인간이
의식과 기억 사이를 오고 가며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린다
기억하려고 애를 쓸수록 그것은 무의미한 망상에 불과하다
..
은희를 살리기 위해
은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준비하는 의식은
이미 무의식의 지배에서 농락당한
또는 패배당한 망상일 뿐이다
.
간결하고도 명료한 빛나는 문장들로 이루어낸
살인자의 기억법.
.
.
역시 영화와 문학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읽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서로 같을 수도 없고, 같은 빛깔이 되어서도 안 되는고유의 영역이다.
.
그래서 문학도 영화도
따로따로 아름답다
.
김영하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은 내 소설이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그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
김영하 작가는 그만의 방식으로 세로운 세계에 방문하고 온 것 같다.
글 쓰는 일을 여행에 비유했던 것만큼
그만의 글여행 경험이 녹아 있는 것 같다.
.
아주 좋은 작품을 읽었다. 신선했다
.
농담의 공포
악마적인 재능과 허물어가는 인간의 의식
망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고통
.
(없다, 비다, 아무것도 아니다)의 세계로 돌아가는 인간의 마지막 여정
.
그 망가지는 인간 기억의 여정을
참으로 빛나는 언어로 잘 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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