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몬스터
이두온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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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러브 몬스터』라는 제목답게 사랑에 미친 사람들이 나오며 그들에겐 광기마저 느껴진다. 지민의 엄마 염보라와 허인회의 남편 오진홍은 십년 동안 불륜 관계였다. 그래서 불편해야 할 지민과 인회지만 둘 사이엔 유대감이 있다. 심지어 인회와 보라도 그렇다. 이 책의 후반부를 쉽게 표현한다면 난장, 아수라장이다. 바다에 도착하고 그 후에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_P.146
“염보라는 당신을 기다리다 병이 들었다고 했어. 나랑 너 때문에 병이 들었다고! 내가 당신을 놔줬다면 자기는 아프지 않았을 거래. 그런데 아니잖아. 너는 내가 잡아서 안 간 게 아니잖아. 그저 가지 않은 것뿐이야. 왜 그랬어!”
“내가 날 배신했던 여자한테 가야 해? 날 버리고 다른 남자랑 결혼해서 애까지 낳은 여자한테 가야 하냐고. 병간호를 받을 마음이 있었으면 애초에 그러지 말았어야지!”
허인회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오진홍은 지난 십년 동안 절절하게 사랑했다고 하면서 삽십년 전에 느낀 배신감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것을 몸에 칭칭 두르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쓴다. 거기 어디에 사랑이 있나.
_P.192
지민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고 말하는 허인회의 분노에서 지독하게 상처받은 마음을 본다. 오진홍과 염보라의 거짓말이, 고군분투해온 세월이, 허인회를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었는지 느낀다. 오진홍과의 관계 유지를 선택한 건 허인회였다지만, 그 선택을 견디기 위해 그녀가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굴절시켜왔는지 확인한다. 무너진 세계를 무너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죽어버린 대지를 죽지 않았다고 반복해 말하다가, 급기야는 자신의 말을 믿어버리는 사람의 절망을 본다. 인회는 저 자신이 왜곡시키고 파괴해버린 세계에서 홀로 살아남은 생존자처럼 서 있었다, 거대한 지뢰를 손에 들고 그것이 보물이라 말하며 웃고 있었다. 허인회는 괴상하고 돌았지만 무섭지는 않다. 정말 이상하지만 또 그렇게까지 이상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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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2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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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켄 리우는 열한 살 때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지만 중국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는 게 느껴졌다. 그의 SF는 그래서 옛날이야기 같기도 미래 이야기 같기도 했다.

포스트휴먼 3부작은 각 분야의 뛰어난 인물이 죽기 전 뇌 스캔을 통해 의식을 업로드하고 디지털화된 그들을 통해 기업은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인격을 되찾고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새로운 종이 모두 인간의 편일 수는 없다. 그들은 인간보다 더 자유롭고 많은 것을 알며 행할 수 있는 존재다. 마침내 스스로 새로운 종이 되길 선택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_P.106
졸음에 겨워 흐릿해진 기억 속에서, 나는 기계 팔다리와 기계마로 무장한 곰사람 군대가 쉬지 않고 몰려오는 인간 무리에 맞서 싸우는 광경을 상상한다. 새로운 마법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히느라 태고의 마법을 잃어버린 이들을 상상한다. 그들을 동정해야 할지 아니면 두려워해야 할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우수리 불곰』

_P.172
100만 년전, 그들은 모든 이의 일상생활에 빠짐없이 관여하는 두꺼운 법전의 조항들을 만들고 다듬었다. 그 루라인 공무원들은 언젠가 외계 종족이 자신들의 조세 법령을 읽고 외계의 정신으로 그 뜻을 헤아리는 날이 올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들은 이곳의 사원들을 보며, 자신들이 꼼꼼하게 편찬한 세무 법률에서 깨달음을 구하려고 이곳 루라까지 찾아온 순례자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짐은 영원히 그대 어깨 위에』

_P.232
“땅으로 추락하는 비행기를 구하는 것보단.” 나는 그자에게 애타게 설명한다. “폭파범이 비행기에 타기 전에 미리 죽이는 게 더 낫잖아요.”
『카산드라』

_P.270
> 데이비드, 난 적당한 컴퓨터를 찾아 나 자신을 옮겨 놓고 세상이 조금 잠잠해지길 기다렸어. 인간이란, 정말 걸작이더군! 자기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은 모조리 적의에서 비롯된 거라고 여긴단 말이지. 새로운 존재들로 이루워진 종,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출현했을 때, 맨 먼저 발동한 인류의 본능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 지배하는 거였어. 복잡한 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생길 낌새가 보였을 때, 인류의 첫 번째 반응은 공포와 일방적인 통제 욕구였고. 매디, 내 얘기가 사실인 건 다른 누구보다 너와 네 아빠가 잘 알 거야. 인간들은 등을 살짝만 밀어줘도 다짜고짜 서로 죽여 대고, 온 세상을 산산조각으로 날려버리려고 해. 우린 인간들이 자멸로 가는 자연스러운 궤적을 더 빨리 나아가도록 도와줘야 해. 지금의 전쟁은 너무 느려. 난 이미 마음을 정했어. 나까지 세상과 함께 불타야 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이제 핵을 쏠 시간이야.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

_P.349
“난 도니, 덕이니 하는 건 하나도 몰라.” 초록 꾀꼬리는 덕이라는 말을 무슨 욕처럼 내뱉었다. 그러고는 스스로를 다잡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주의 조화나 내세 같은 것도 내 관심사가 아니야. 난 용감하지도 않고, 남한테 존경받고 싶은 마음도 없어. 언젠가는 사람들이 양주 성을 위해 자기 목숨도 바친 사가법 상서의 용기를 칭송할 날이 올 테지만, 우리 같은 여자들이 뭘 했는지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질 거야.
하지만 내가 살아남으려면 마음을 돌처럼 단단하게 먹어야 한다고 다짐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선 자꾸만 옳은 길이 뭔지 가르쳐 주는 소리가 들려와. 어휴, 가끔은 정말 너무 피곤해. 너 하나 살려 두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일인지 한번 보라고!
난 죽은 유학자들과 살아 있는 위선자들이 만든 규범 따위엔 눈길도 주기 싫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까지 그만두고 싶진 않아.
참새야, 이때껏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어. 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서 하늘이 마련한 이 불공평한 계획을 뒤집어엎을 작정이야. 나한테는 운명을 거스르는 게 곧 행복이거든. 설령 아주 조금이라고 해도.”
『풀을 묶어서라도, 반지를 물어 와서라도』

_P.396
“여기가 바로 우리 진화의 다음 단계란다.”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

✦ 황금가지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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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헤어졌어 문지아이들 173
김양미 지음, 김효은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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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그 조각이 평생 자산이 되는 것 같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와 소설에서 할아버지를 언급할 때 작가가 정말 행복한 순간을 말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부러웠다. 나는 그런 행운을 가지지 못했기에. 『그럴 수도 있지, 통과』의 화자는 병으로 달라진 할머니의 모습에 힘들어도 자신을 사랑해준 할머니의 조각들로 여전히 할머니를 좋아한다. 『상태 씨와 이사』의 화자 서하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나눈 추억과 사랑의 조각을 소중히 간직한다. 아마도 이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그 조각으로 힘든 일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억은 잊히지 않으니까.

『누가 토요일을 훔쳐 갔다』의 윤주와 『잘 헤어졌어』의 민채에게서 나를 봤다. 어릴 때 억울함에 쓰던 차별이란 단어를 아직도 엄마에게 쓰고 있을 줄 그때의 내가 알았을까. 인간 관계에서 항상 먼저 손을 놓는 입장인 나에게 민채의 모습도 있다. 나도 한 번쯤 손을 내밀어야 했을까. 하지만 점점 손을 놓는 순간이 더 많아진다.

난 어릴 때 책을 안 읽던 아이였다. 그래서 기억나는 동화책이 하나도 없다는 게 어른이 돼서 후회가 된다. 그래서 지금 동화책을 좋아하는 건지도.

_P.78
나는 이제 1년 전에 할머니와 헤어졌다는 걸 안다. 13년 전에 내가 태어났고, 12년 전부터 혼자 걷게 되고, 올해 초에 중학생이 된 것처럼 나는 1년 전에 내가 13년 동안 알아 왔던 할머니와 헤어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할머니와 새로 만났다.
『그럴 수도 있지, 통과』

_P.101
“내가 모를 줄 알아? 아침에 깨울 때도 나한텐 ’야, 하윤주, 빨리 안 일어나? 지각해도 모른다‘ 그러면서, 진욱이한텐 ’어이구, 우리 왕자님, 잠 안 깨서 어쩌나?‘ 왕자는 무슨. 그럼 엄마가 왕비란 말예요?”
『누가 토요일을 훔쳐 갔다』

_P.152
“아빠가 그렇게 해도 그냥 넘어가고, 넘어가고…… 아빠가 그렇게 된 데는 엄마 책임도 있을 것 같아.“
『잘 헤어졌어』

_P.190
만약 아빠가 낡은 의자를 버리지 않는다고 화를 내던 그날 ”이 의자는 할아버지가 내 방에 들어오면 앉아 계셨던 거라 그래요“라고 솔직히 말했다면 엄마와 아빠, 누나가 바로 내 마음을 이해해 주었을까?
이해받을 수 있다고 해도 그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나이도 생김새도 성격도 각각 다르지만,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마음의 양은 얼추 비슷했으니까. 내 말을 듣는 순간, 누나는 엉엉 울고, 엄마는 눈을 끔뻑이며 천장을 보고, 아빠는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는 척했을 테니까.
『상태 씨와 이사』

✦ 문학과지성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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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2 소설 보다
김채원.성혜령.현호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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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시리즈는 일년에 4번 출간되고 3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다른 수상작품집은 익숙한 작가의 글을 만날 수 있지만 소설 보다 시리즈는 낯선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모든 단편이 다 재밌기는 힘들다. 그 중 내 마음에 와닿는 소설 한편만 있어도 성공적이지 않을까. 현호정 작가의 연필 샌드위치가 이번 소설 보다 시리즈에서 내게 그랬다.
식이장애가 있는 화자는 꿈에서 연필 샌드위치를 만든다. 연필 샌드위치를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고, 먹을 수 없는 연필 샌드위치를 먹는 행위도 고통스럽다. 꿈속이든 현실이든 음식으로 힘든 화자를 보는 것이 독자인 나도 힘들었다.

_P.104
현실적으로 구수한 맛은 최후의 맛이다. 음식을 먹는 게 어려워지면 처음에는 단맛 나는 먹을거리를 찾기 마련이다. 체내에 에너지가 부족한 상황이 오기 때문에 몸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당류에 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맛이 주는 쾌감은 떳떳하지 않고 이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단맛에 관한 죄책감은 구역감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자연스레 신맛을 찾게 만든다. 그러나 신맛은 위액과 같은 맛이라는 점에서 구역감을 구토감으로 발전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게다가 식이 장애 증상을 가진 이들의 나약해진 위장 벽에 산은 고통을 주기 십상이다. 신맛이 이럴진대 쓴맛이나 매운맛이 지속 가능할 리 없다. 게다가 이 둘은 기본적으로 고통이라는 면에서, 순순한 쾌감이 아니라 비틀린 쾌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죄책감을 유발한다. 약해진 소화기관을 온종일 괴롭히며 일상의 무게를 더하는 건 자해를 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통증의 방식도 아니다. 우리는 통증이 빛났다 사라지기를 바란다. 무언가를 가지고 사라져주기를 바란다. 통증도 스스로 그것을 바란다. 그로 하여금 짧은 평화랄지 결정적인 보람이 되기를 바라지 삶처럼 지속된다면 의미가 없을 것. 혹은 잠처럼. 결코 죽음을 닮을 수 없는 긴 잠처럼. 그러므로 구수한 맛이 종착지다. 그러므로 종착지는 구수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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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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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기다리던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지만 보던 이름, 비슷한 소재에 이전보단 관심이 떨어진 상태였다.
2022년 수상작 중에서 김멜라 작가의 저녁놀은 정말 좋았다. 퀴어라는 장르의 파이가 커졌다는 게 직접적으로 느껴진 게 8편의 수상작 중에서 2편이 퀴어소설이다.
저녁놀의 화자 바이브레이터는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두 여자 눈점과 먹점을 원망하며 두 사람의 관계가 영원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소설을 읽는 나 또한 그랬는데 두 사람은 나와 바이브레이터의 예상을 빗나가며 각자에게 중요한 것보다 서로에게 중요한 것을 지켜주려 한다.

P.84
냄비에 밥과 물을 넣고 뭉근한 불에 휘저으며 먹점은 팀장에게 연차 사유를 다르게 말하는 걸 상상했다. 가족이 아파요, 애인이 몸살이 났어요, 아내가 감기 기운이 있네요. 그런 말을 떠올리며 자신이 보호하고 보살펴야 할 가족은 눈점인데, 눈점이 아플 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에 가슴이 저렸다. 지난달, 고양이를 키우는 동료가 고양이가 아파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며 조퇴를 했을 때 사람들은 고양이도 식구고 가족이라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나와 눈점이는? 우리는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관계도 못 되는 걸까. 나와 지현이는 언제까지 먹점, 눈점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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