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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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향성과 성정체성은 다른 것인데 성소수자에게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도 어쩌면 틀에 갇혔다는 생각을 했다. 타고난 것들에도 고정된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의 장면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그 영향이 아닐까. 그래서 후안은 누군가에 의해 검은 줄이 그어진 『성적 변종들』도 상관없던 거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에도 거짓을 추가하고 조작하기도 하니까.

_P.60
「맞아요. 정확히 그 말처럼, 당신의 에고를 훔치고 싶었어요. 아, 그 시절 전 참담했어요. 제 몸이 수치스러웠어요. 살갗을 찢고 나가고 싶었어요. 세상을 알고 싶었어요.」
_P.122
낮이면 나는 책을, 삭제된 페이지들을 읽고 또 읽었다. 이 증언들 속에서 나는 무엇을 찾아야 할까? 위로? 전략? 후안이라는 사람? 그러나 후안도 연구의 참여자 중 하나였느냐고 내가 묻자 그는 그저 웃기만 했다.
「나? 그럴 리가. 계산 좀 해 봐라. 여기 실렸다면 죽은 지 오래였겠지.」
「죄송해요, 후안.」
「난 안 죽었잖니?」
「안 죽었죠, 후안.」
「그런데 너는 - 살아 있는 거냐, 아니면 유령이냐? 말해보렴, 꼬마 소년아. 여기서 뭐 하는 거니?」
_P.223
「맞아요, 후안. 하지만 그 시절엔 누가 날 사랑하게 만드는 법은 그것밖에 몰랐어요. 몸부림치는thrashing 것.」
「몸부림? 멋진 말이구나....... 털어 내는threshing 게 지닌 쓸모와 망가뜨리는trashing 게 가진 낭비와 폭력의 중간 어디쯤. 그게 바로 요령이지? 내가 그걸 좀 일찍 알았더라면.......」
「침대 위에서도, 밖에서도, 늘, 몸부림쳤죠.」
_P.329
「떠나라 간청하지 마시옵소서? 모든 결말은 지저분한 결말이란다, 네네. 앞날에 놓인 모든 것은 위대한 망각이다. 이제 언제라도 암전이 찾아올 거다. 그리고 몸은....... 네네, 모든 끝은 지저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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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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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익은 작가들의 소설이라 그런지 겉으로 다 드러나지 않아 껍질을 한 겹 벗겨서 읽어야 했다. 김혜진 작가의 「빈티지 엽서」는 악스트에서 읽었는데 다시 만나 반가웠고, 최진영 작가의 「돌아오는 밤」은 지금 읽고 있는 에세이도 2024.12.3 비상계엄과 관련된 이야기라 더 몰입했다. 앞으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는 더 읽게 되겠지.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도 생각했지만 확실히 한국문학은 여성작가들이 강세다.

_P.25
광부들은 신분증 격인 소속 광업소의 인감증을 내걸고 술을 마셨다. 그러면 다음달 월급은 그 술값이 공제된 채로 나왔다. 화운갱 광부의 아내들은 남편의 월급봉투를 김춘영과 나눠 가진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이들이 나를 어지간히도 싫어했지요." 김 춘영은 말했다. "과부가 되고 나면 좀 덜 싫어했고." "내가 술만 판 건 아니었어요."
#최은미 #김춘영

_P.52
하지만 어쨌든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모는 내가 훌륭한 사람을 만나기를 원했다. 그래. 아주 훌륭한 사람. 왜냐하면 진이야. 너는 아주 괜찮은 아이거든. 착하 고 다정하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그러니까 너처럼 훌륭하고 멋진 사람을 찾아야 해. 알았지?
#강화길 #거푸집의형태

_P.127
그렇게 말할 때는 펑 하고 터지는 대신 피시식 새어나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런 게 바로 혐오라고 말했다. 혐오란 그런 것이라고, 터지는 게 아니라 새어나오는 것이라고. 엄마가 내게 그랬다고.
#김인숙 #스페이스섹스올로지

_P.161
이런 일련의 일을 통해 그녀는 친절과 선의가 완성되는 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음을 배웠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친절과 선의는 있는 그대로 주고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만 유효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오염되고 변질되고 공중분해되면서 자신 혹은 상대를 다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누구나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취약했고 위험했고 다루기 까다로웠다.
#김혜진 #빈티지엽서

_P.198
즉 갑작스러운 혹은 갑작스러워 보이는 불행은, 다른 종류의 불행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사실상 매일매일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흰 두부처럼 잘린 그것을 임의로 한 조각씩 나누어 가질 뿐이다. 그것을 삶이라고 부른다.
#배수아 #눈먼탐정

_P.250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연이어 메시지가 올라왔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10조야.
법이 그래.
법이 그렇다고.
헌법이 보장한다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행복할 권리가 아니야.
행복을 추구할 권리야.
우리도 그걸 추구하면 돼.
#최진영 #돌아오는밤

_P.293
나한테 정말 중요한 일들이 있어. 내가 생각하기엔 사람들에게도 정말 중요한 일들이거든. 그래서 나는 자꾸 그걸 말하는데, 말하면 시답잖은 일이 돼.
시답잖아져, 말하면서.
#황정은 #문제없는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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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소녀 진초록
강이라 지음 / &(앤드)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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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기가 들어간 카레도 김치찌개도 먹지 않는다. 내 의지로 고기를 먹으러 간 적도 없다. 이건 나의 기호일 뿐 난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채식주의자라는 고백은 벽을 쌓아야 할 거 같기 때문이다. 엄격하게 나 자신을 통제하고 무지로 그것을 어겼을 때 느껴야 할 죄책감도 싫다. 언니의 질병으로 비자발적인 채식주의자로 살던 초록의 고민과 무난하게 자라는 다자녀 가족의 일원으로 느끼는 고민도 모두 와닿았다.(초록의 엄마에게 나도 상처받은 기분) 우리는 선언하는 자에게 높은 잣대를 요구하기에 그것을 드러내기 점점 힘들어지고 쉽게 혐오의 대상으로 삼아 공격하기에 자신을 숨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청소년 소설이 담는 주제가 때론 무겁게 느껴지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_P.14
”고기 못 먹는 건 진아름이지 내가 아니잖아. 그런데 왜 나까지 덩달아 고기를 못 먹는데?“
_P.105
”맞아. 비자발적이어서 싫었을 수 있어. 채식할 권리가 있듯이 육식할 권리도 있는 거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채식을 해 본 적이 없는 학생들에게 채식의 경험을 줘 보자는 거야. 무조건 안 돼, 먹지 마, 이러는 게 아니라.“
_P.174
”엄마는 내가 나물 먹으면 소화 잘 안 되는 것도 모르지. 생야채 잘못 먹으면 속 따끔거려 밤에 끙끙거릴 때 있는 것도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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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쓴맛 - 제13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동시집 97
양슬기 지음, 차은정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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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의 시는 수다스러운 아이가 쓴 것 같다. 그땐 왜 그렇게 우유 먹기가 싫었을까. 교과서에 낙서하는 것도 여전하네. 아이도 상실을 알고 슬픔도 느낀다. 동시인 만큼 아이의 시선으로 쓰려고 했을 텐데 어른이인 나에게도 그것이 충분히 전달됐다.

나중에 네가 나로 내가 너로 태어나면
콧잔등부터 꼬리 끝까지 돋은 내 모든 새하얀 털들로 너의 손을 쓰다듬어 줘야지
네 손바닥에 내 이마를 문지르며
까만 눈동자로 말해 줘야지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고

그럼 네가 쪼쪼쫏, 하고 나를 부르며
크고 두꺼운 두 손으로 나를 감싸안아 주겠지
동그란 등을 가만히 내어 주는 나를
까만 눈동자로 바라보면서
「난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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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키는 사람
류츠신 지음, 곽수진 그림, 허유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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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샤가 리디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아름답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도 그렇다. 상대를 생각하는 것. 사샤가 약속을 지킬 거라는 확신이 생기자 불지기는 일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사샤는 자신으로 인해 리디나가 햇빛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_P.73
그에게 가장 큰 위안은 리디나가 이 햇빛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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