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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보통 비숑이 아닌 이시봉에 대해 알아갈수록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다. 단순히 시습, 시현과 연결된 이름인 줄 알았던 이시봉이란 이름이 아빠가 원했던 투쟁없는 삶을 위해 외면한 동료의 이름이었고 이시봉을 사랑하고 아낀다며 나타난 사람들은 결국 각자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이래서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거야. 이건 뭐,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드니......"(P.434) 강아지의 혈통을 만드는 것도 인간일 뿐, 이시봉이 원하는 것을 우리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거다. 나를 포함한 회피형 인간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마음 한구석이 따끔거릴지도.
_P.27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지금 선생님께서 키우고 있는 비숑은 보통 비숑이 아닙니다."
_P.120
미안한 것과 억울한 것을 뒤섞지 말 것. 나와 시현을 키울 때도, 공장에서 동료들과 일하고 투쟁할 때도, 아빠는 자주 그 말을 생각했고, 또 주문처럼 입안에서 중얼거리기도 했다. 아빠에겐 그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했다.
_P.190
"오빠가 이시봉을 사랑한다면 분양 계약서는 말도 안 되는 형식인 거지. 사랑하는 존재를 이렇게 사고팔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필요도 없는 거야. 이건 그냥 자본주의의 형식일 뿐이니까. 인간은 오랫동안 이렇게 해왔잖아? 그것도 사랑의 이름으로...... 그 사람들도 이시봉을 사랑하고 아낀다면서?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니까 그 증거로서 이런 분양 계약서가 필요했던 거야. 이시봉이 아니라 오빠를 믿지 못해서......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나 오빠나 다 똑같다는 거지. 다 똑같은데 뭐가 문제겠어?"
_P.277
이건 어쩔 수 없이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알면서도 속는 일, 그게 사랑의 일이니까.
_P.318
이시봉의 과거를 알면 알수록 이상하게도 이시봉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하나둘씩 들춰내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이시봉은 없었다. 이시봉은 없는데 사람들만 서로 얼굴을 찡그리며 비난하고 있는 듯한 느낌. 어느덧 나 역시 그 안에 발을 내디딘 기분이었다.
_P.493
자신이 지키고 싶어하는 것만 바라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지도 못하는구나. 그게 인색한 거구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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