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록
듀나 지음 / 래빗홀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몰록』은 세계관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세상은 이미 한 번 망한 거 같다. 의식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향의 존재가 만화책 〔영원의 안식처〕를 떠올리게 했다. 화성에서 가져온 미생물 42호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 의식은 AI가 생각났고 결국 인간을 숙주로 한 전염병을 없애는 방법이 인간의 멸망이라면, AI가 인간을 위협할 때(음모론에 가깝지만) 모든 전자기기를 없애는 방법뿐이겠구나 싶었다. 역시 SF는 가상의 이야기 같아도 현실과 맞닿아있기에 재밌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듀나 작가의 초기작이자 유일한 장편소설을 읽는다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하는 SF의 미래 예측적인 면을 찾아보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를 높일 것이다.

P.124
”단순히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개념의 종류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는 몰라도요. 하여간 이 마약에 대해 알아내자마자 상황이 바뀌기 시작 했습니다. 우린 오래전부터 신디케이트의 이상 현상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암살자의 등장도 그런 이상행동 중 하나였지요. 뭔가 우리가 모르는 것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이유를 몰랐을 뿐이죠. 이젠 알았습니다. 모두 그 새 마약 때문이지요.“
P.319
살아 있는 건 우리뿐이었다.

✦ 래빗홀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렌지족의 최후
송아람 지음 / 미메시스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하나야. 네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그걸 모를 나이여도 넌 정말 철이 없구나. 자다가도 부끄러워 이불을 걷어찰 시기가 올 때까지 시간이 더 흘러야겠지. 한국에서 안 듣던 가요를 유학 중에 듣는 건 네가 얼마나 갖지 못한 것만 열망하는지 보여주는 거 같아. 김꼰대가 되어 너의 등짝을 때려주고 싶다.

✦ 열린책들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지음, 김목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션 브엉은 베트남계 미국 이민자로 성소수자다. 자전적인 이 소설에서 그것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어머니의 폭력과 이민자에게 가해지는 잔혹한 일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는 슬픔 그 모든 것이 이 소설에 있다. 그러나 내게, 이 소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작가 자신이 그 모든 걸 아름답게 기억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_P.28
엄마, 당신은 어머니예요. 괴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 역시 마찬가지죠. 그게 제가 엄마를 외면하지 않는 이유예요. 그것이 제가 신의 가장 외로운 피조물을 지니고 와 그 안에 엄마를 넣어둔 이유죠.
보세요.
_P.34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너무 가치가 없어 건드리지 않고 살려둘지 모를 어떤 것을 딴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죠. 공기처럼 희미한 이름도 방패가 될 수 있는 거예요. 리틀독 방패.
_P.130
’죄송해요‘는 이 사람들에게 있어, 남아 있기 위한 여권이었어요.
_P.148
색깔들이 있었어요, 엄마. 네, 제가 그 애와 함께 있을 때면 느껴지던 색깔들이 있었어요. 단어들이 아닌, 미묘한 색조들, 반그림자.
_P.229
”헬로“ 그 애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말해요. 우리는 우리가 만난 직후에 그렇게 인사하기로 했었어요. 이미 친구들이 약물 과용으로 죽어가고 있으니, 서로에게 절대 ’잘 가‘ 혹은 ’잘 자‘라고 인사하지 않기로 말이죠.
_P.286
비포장도로 옆, 거의 40년 전 엄마를 안고 서 계시던 할머니의 코앞에 M16이 겨누어졌던 그 도로와 다를 게 없을 그곳에서, 저는 은퇴한 가정교사이자 채식주의자, 대마초 재배자이자 지도책과 카뮈의 애호가인 저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첫사랑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을 다 마치시도록 기다려요. 그러고는 랩톱을 닫아요.
_P.310
그래요. 전쟁이 있었죠. 그래요. 우리는 그 진원지에서 왔고요 그 전쟁에서 한 여인이 스스로에게 새로운 이름을 선물했어요. 란, 여인은 그 이름을 지으며 스스로가 아름답다는 것을 주장했고, 그다음 그 아름다움을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로 만들었어요. 그로부터 딸 하나가 태어났고, 그 딸에게서 아들 하나가 태어 났어요.
P.310
그래요. 전쟁이 있었죠. 그래요. 우리는 그 진원지에서 왔고요 그 전쟁에서 한 여인이 스스로에게 새로운 이름을 선물했어요. 란, 여인은 그 이름을 지으며 스스로가 아름답다는 것을 주장했고, 그다음 그 아름다움을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로 만들었어요. 그로부터 딸 하나가 태어났고, 그 딸에게서 아들 하나가 태어 났어요.
지금껏 저는 저 스스로에게 우리가 전쟁으로부터 태어났다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제가 틀렸었어요, 엄마. 우리는 아름다움으로부터 태어났어요.
누구도 우리를 폭력의 열매로 오인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그 폭력, 그 열매를 관통했던 폭력은 열매를 망치는 데 실패했어요.

✦ 인플루엔셜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타스 카르텔이 미리암의 딸 카렌을 납치하고 돈을 요구한다. 납치 피해자 가족을 위한 대출 상품이 존재할 정도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고, 딸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에 계속해서 그들에게 돈을 지급한다. 그러나 카렌은 돌아오지 못한다. 미리암은 결심한다. 〔”내 여생을 걸고 내 딸에게 이런 짓을 한 놈들을 전부 찾아낼 거야.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어.“ (P.55)〕 그리고 미리암은 해낸다. 정보를 수집하고 국가 기관의 관료주의에 적응하며 그들을 압박하고 때로는 협박한다. 군과 협조해 체포 현장에 함께하고 직접 표적을 체포도 한다. 그러면서 납치 피해자 가족을 돕는다. 미리암은 정부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활동가가 되고 결국 세타스의 표적이 되어 사망한다. 미리암의 아들 루이스 엑토르는 그를 이어 납치 피해자 가족을 돕고 어머니를 죽인 표적을 쫓지만, 어머니처럼 살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이게 드라마나 영화였다면 미리암이 직접 총으로 그들을 죽이는 엔딩이 가능했겠지만 현실이기에, 감옥에 있던 카렌의 납치 살해범들도 미리암의 사망 이후 형기를 채워 출소한다. 미리암도 무서웠겠지. 두려움이 없는 사람처럼 살았지만 그건 딸을 잃은 아픔이 두려움을 이긴 거겠지.

_P.52
그야말로 가난한 사랑이었다. 그들이 딸을 납치했을지도 모른다는, 딸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딸을 돌려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가능성 때문에 그동안 저축한 돈을 낯선 사람의 계좌에 몽땅 털어 넣는 것 말이다.
_P.155
미리암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딸을 납치했는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카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야 했다.
_P.223
카렌의 참혹한 죽음에 대한 카를로스의 진술은 미리암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그녀는 강렬한 신체적 고통을 느꼈다. 텅 빈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는 사이에 터져 나온 내장이 햇빛 아래에서 곪는 듯했다. 자식을 잃는 것은 자신의 일부분을 잃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에 구조와 목적과 질서를 부여했던 일부분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했던 일부분을,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부분을 잃는 것이었다.
_P.267
미리암은 다른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경험한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신변의 위협이었다. 시누이는 세타스의 표적이 될까 두려워 그녀와 거리를 두고 지냈다. 오빠인 호르세는 미리암 탓에 세타스에서 찾아올 수도 있으니 자신을 지킬 총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남편 루이스 역시 그녀의 활동 탓에 표적이 될지 모른다며 불평했다. 하지만 미리암은 가족과 친구의 만류를 뿌리쳤고, 추적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조직범죄를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조직범죄에 맞서는 주변 사람이 있는 것조차 탐탁지 않아 했다.
_P.340
루이스 엑토르가 단지 행정부의 변화 때문에 엘 우고 사건과 거리를 두는 것은 아니었다. 더는 골치 아픈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멈출 줄을 몰랐다. 표적을 쫓을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든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삶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었다. 그는 지쳤고 복수에 대해서도 회의가 들었다. 아버지가 종종 말했듯 어떻게 해도 카렌과 어머니가 돌아올 수는 없었다.

✦ 동아시아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지향성과 성정체성은 다른 것인데 성소수자에게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도 어쩌면 틀에 갇혔다는 생각을 했다. 타고난 것들에도 고정된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의 장면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그 영향이 아닐까. 그래서 후안은 누군가에 의해 검은 줄이 그어진 『성적 변종들』도 상관없던 거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에도 거짓을 추가하고 조작하기도 하니까.

_P.60
「맞아요. 정확히 그 말처럼, 당신의 에고를 훔치고 싶었어요. 아, 그 시절 전 참담했어요. 제 몸이 수치스러웠어요. 살갗을 찢고 나가고 싶었어요. 세상을 알고 싶었어요.」
_P.122
낮이면 나는 책을, 삭제된 페이지들을 읽고 또 읽었다. 이 증언들 속에서 나는 무엇을 찾아야 할까? 위로? 전략? 후안이라는 사람? 그러나 후안도 연구의 참여자 중 하나였느냐고 내가 묻자 그는 그저 웃기만 했다.
「나? 그럴 리가. 계산 좀 해 봐라. 여기 실렸다면 죽은 지 오래였겠지.」
「죄송해요, 후안.」
「난 안 죽었잖니?」
「안 죽었죠, 후안.」
「그런데 너는 - 살아 있는 거냐, 아니면 유령이냐? 말해보렴, 꼬마 소년아. 여기서 뭐 하는 거니?」
_P.223
「맞아요, 후안. 하지만 그 시절엔 누가 날 사랑하게 만드는 법은 그것밖에 몰랐어요. 몸부림치는thrashing 것.」
「몸부림? 멋진 말이구나....... 털어 내는threshing 게 지닌 쓸모와 망가뜨리는trashing 게 가진 낭비와 폭력의 중간 어디쯤. 그게 바로 요령이지? 내가 그걸 좀 일찍 알았더라면.......」
「침대 위에서도, 밖에서도, 늘, 몸부림쳤죠.」
_P.329
「떠나라 간청하지 마시옵소서? 모든 결말은 지저분한 결말이란다, 네네. 앞날에 놓인 모든 것은 위대한 망각이다. 이제 언제라도 암전이 찾아올 거다. 그리고 몸은....... 네네, 모든 끝은 지저분하지.」

✦ 열린책들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