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헤어졌어 문지아이들 173
김양미 지음, 김효은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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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그 조각이 평생 자산이 되는 것 같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와 소설에서 할아버지를 언급할 때 작가가 정말 행복한 순간을 말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부러웠다. 나는 그런 행운을 가지지 못했기에. 『그럴 수도 있지, 통과』의 화자는 병으로 달라진 할머니의 모습에 힘들어도 자신을 사랑해준 할머니의 조각들로 여전히 할머니를 좋아한다. 『상태 씨와 이사』의 화자 서하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나눈 추억과 사랑의 조각을 소중히 간직한다. 아마도 이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그 조각으로 힘든 일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억은 잊히지 않으니까.

『누가 토요일을 훔쳐 갔다』의 윤주와 『잘 헤어졌어』의 민채에게서 나를 봤다. 어릴 때 억울함에 쓰던 차별이란 단어를 아직도 엄마에게 쓰고 있을 줄 그때의 내가 알았을까. 인간 관계에서 항상 먼저 손을 놓는 입장인 나에게 민채의 모습도 있다. 나도 한 번쯤 손을 내밀어야 했을까. 하지만 점점 손을 놓는 순간이 더 많아진다.

난 어릴 때 책을 안 읽던 아이였다. 그래서 기억나는 동화책이 하나도 없다는 게 어른이 돼서 후회가 된다. 그래서 지금 동화책을 좋아하는 건지도.

_P.78
나는 이제 1년 전에 할머니와 헤어졌다는 걸 안다. 13년 전에 내가 태어났고, 12년 전부터 혼자 걷게 되고, 올해 초에 중학생이 된 것처럼 나는 1년 전에 내가 13년 동안 알아 왔던 할머니와 헤어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할머니와 새로 만났다.
『그럴 수도 있지, 통과』

_P.101
“내가 모를 줄 알아? 아침에 깨울 때도 나한텐 ’야, 하윤주, 빨리 안 일어나? 지각해도 모른다‘ 그러면서, 진욱이한텐 ’어이구, 우리 왕자님, 잠 안 깨서 어쩌나?‘ 왕자는 무슨. 그럼 엄마가 왕비란 말예요?”
『누가 토요일을 훔쳐 갔다』

_P.152
“아빠가 그렇게 해도 그냥 넘어가고, 넘어가고…… 아빠가 그렇게 된 데는 엄마 책임도 있을 것 같아.“
『잘 헤어졌어』

_P.190
만약 아빠가 낡은 의자를 버리지 않는다고 화를 내던 그날 ”이 의자는 할아버지가 내 방에 들어오면 앉아 계셨던 거라 그래요“라고 솔직히 말했다면 엄마와 아빠, 누나가 바로 내 마음을 이해해 주었을까?
이해받을 수 있다고 해도 그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나이도 생김새도 성격도 각각 다르지만,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마음의 양은 얼추 비슷했으니까. 내 말을 듣는 순간, 누나는 엉엉 울고, 엄마는 눈을 끔뻑이며 천장을 보고, 아빠는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는 척했을 테니까.
『상태 씨와 이사』

✦ 문학과지성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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