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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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은 약혼녀 안나에게 결혼 전 둘 사이에 비밀은 없어야 한다고 말하고 결국 안나는 그에게 자신의 비밀을 보여준다. 충격받은 라파엘이 잠시 떠난 사이 안나는 사라진다. 전직 형사 마르크와 함께 안나를 찾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신분을 위조했고 진짜 이름은 클레어 칼라일, 범죄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클레어 칼라일에 대해 알아갈수록 더 커다란 비밀에 다가간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것들이 맞았기에 한숨 놓았다가 마지막 비밀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 까도 까도 새로운 비밀이 나오는 재밌는 소설이다.

_P.14
“비밀은 비밀일 때만 가치가 있으니까 더는 캐묻지 마.”
_P.96
내 약혼녀인 '안나'는 실제로는 누구였나?
그녀는 파리에 오기 전 어디에 살았을까?
그녀의 집에서 발견된 40만 유로의 출처는?
사진에서 본 세 구의 시체에 얽힌 사연은 무엇일까?
그녀는 진실의 일부를 밝히고 나서 왜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을까?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_P.222
나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이제 그 사실을 밝힐 사이도 없이 프랑크 중령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프랑크 중령은 운명에 대한 순종의 표시로 고개를 힘없이 떨어뜨렸다.
그래, 나름 괜찮은 결말이야.
프랑크 중령은 숨을 거두기 직전 그렇게 생각했다.
_P.247
내가 누구인지 그 남자가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내가 하인츠 키퍼에게 납치되었던 소녀라는 사실은 다른 모든 수식어를 삼켜버리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위력을 가진 꼬리표일 테니까. 내가 만난 남자는 그 사실을 알더라도 나를 사랑해줄 테지만 그 전과 같지는 않으리라. 적어도 연민과 동정심이 더해질 테니까. 나는 동정심 따위는 필요 없을뿐더러 사람들이 어디서나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소녀로 남고 싶지 않다.
_P.317
클레어 칼라일 사건은 10년도 넘은 이 시점에서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 대서양을 가뿐히 건너 엄청난 도미노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
마르크는 자신이 한낱 진실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_P.329
"나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작가 선생도 이미 진실이 뭔지 알아차렸을 텐데요?"
_P.346
"조이스의 딸 클레어가 프랑스에서 납치되었는데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했기 때문이겠죠. 제가 만약 조이스의 입장이었더라도 언론이 납치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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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들 환상하는 여자들 2
브랜다 로사노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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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게 어디서 오냐면 말이지, 여자들은 모두 자기 안에 마녀 같은 면을 조금은 품은 채로 태어난단다.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지."(P.131) 직감을 무시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걸 살아가며 느낀다. 그리고 가족이 그런 것들을 대신 느껴주는 그런 순간이 있다. 내 첫 생리 전 언니가 꿨던 내가 임신하는 꿈이라던가, 엄마가 딸에 대해 느끼는 어떤 직감들은 거의 맞는 법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생존자가 되기보다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중요할 뿐이다.

_P.32
어머니는 꼿꼿하셨고 매일 일하셨어요. 늘 위에 계셨지요. 아래도 아닌, 중간도 아닌, 언제나 위에 계셨어요. 어머니는 내 여동생 프란시스카처럼 말수는 적었지만, 내가 남편을 여의었을 때 내게 말씀하셨지요. 딸아, 고개를 들거라, 어미처럼 일하거라, 세상 모든 여자처럼 열심히 일하거라, 세상 모든 여자처럼 앞으로 나아가거라.
_P.96
"벼룩 문제는 보기보다 더 심각하기 마련이야, 조에. 그거 아니, 유리병에 벼룩을 한가득 넣으면 벼룩들은 뛰어오르다 뚜껑에 부딪치지. 뚜껑 높이까지 계속 뛰어오르거든. 왜냐하면, 걔들은 벼룩이고 벼룩이 하는 일은 뛰어오르는 거잖니. 그런데 네가 뚜껑을 없애도 걔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한계까지만 뛰어오른단다. 뚜껑이 없어졌다는 생각을 못 하거든. 남성우월주의적으로 굴러가는 체계 안의 문제도 똑같아. 너도, 레안드라도 한계에 부딪치는 벼룩이 아니야. 조에, 명심하거라. 너희는 원하는 만큼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단다. 유리병에 뚜껑이 있다면, 너희가 직접 없애는 거야."
_P.119
세상에는 버러지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 버러지들에게는 이름이 없지요. 성경에도 버러지 같은 자들은 있는 법입니다. 그들은 마을에도 있고, 모든 언어와 시대에 존재합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여자들의 배 속에서 나올 테지만, 내게 그들은 이름 없는 존재들이며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_P.220
이어서 마취의가 들어왔다. 축 늘어진 속눈썹에 처진 눈썹,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짧은 머리, 수녀 같은 분위기와 강한 로션 냄새를 풍기는 여자였다. 그것이 그날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냄새로, 길에서 똑같은 로션 냄새를 맡기라도 하면 매번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여자는 역설적이게도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100에서 1까지 거꾸로 숫자를 세어보라고 했고, 숫자를 서너 개 정도 말했을 뿐인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정신이 들자 손톱에 샤넬 로고를 박은 여자가 이제 끝났다고, 조금 쉬다가 집에 가면 된다고 했다.
_P275
우리 가족 안에서 문제아 역할은 언제나 레안드라의 몫이었다. 아빠는 레안드라가 학교에서 퇴학당할 때마다 괴로워했고, 엄마는 그 애가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권위에 대들며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힘들어했다. 엄마 마음 깊숙한 곳에는 레안드라가 어떤 사람인지 신뢰 하는 구석이 있었지만, 아빠는 레안드라의 능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음에도 행실 때문에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할까 봐 진심으로 걱정했다. 내 동생은 폭탄이었고, 한 집안을 날리는 데에는 폭탄 하나면 족하다.
_P.309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에게 무엇이 부족합니까, 전부 다 가지지 않았습니까, 오늘 부족한 것이 없다면 내일도 부족한 것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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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심장 훈련
이서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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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아라는 낯선 작가의 이름처럼 그의 소설도 그랬다. 이 소설들은 실험적이고 난해하며 거침없는 언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몇 편은 연작소설처럼 느껴졌다. 소설 속 화자의 기이한 행동은 마지막 수록작 『푸른 생을 위한 경이로운 규칙들』까지 읽으니 알 수 있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한 행위였음을.

_P.80
내 부모는 아주 많은 순간에 나를 수치스러워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수치심을 연기했다. 서울의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내가 당장이라도 죽기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기원하듯이 나와 부모를 노려 보았고, 그럴 때마다 부모는 성심성의껏 수치심을 공표했다. 저도 제 아이가 부끄럽습니다. 이런 아이를 낳아서 죽도록 죄송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내 부모를 조금 용서했다. 나는 그 모든 걸 나와 무관한 연극을 감상하듯이 지켜보아야 했다.
『서울 장미 배달』

_P.130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나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죄를 지은 아이는 이야기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이야기 안에 영영 갇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린다. 나는 어쩌면 언니를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악단』

_P.151
진희가 침묵을 깼다. ”악착같이 놀자, 악착같이, 모든 기념일을 다 챙기고, 모든 축제에 다 참여하고, 모든 하찮고 기쁜 일에 요란을 피우자.“ 그녀의 목소리는 기쁘기보다 화가 나 보였다. 매우 많이 화가 나 보였다.
『초록 땅의 수혜자들』

_P.245
그런 식의 기이한 충동, 해명 불가능한 충동이 나를 어떤 장소로 끌어당기거나 어떤 행위를 하도록 밀어붙이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나는 종종 불가해한 것에 매료되고,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면서 혹은 바로 그 무의미함 때문에 온몸을 던져 다이빙한다.
『사하라의 DMZ』

_P.333
우리는 신을 만날 수 없으니 스스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뛰어내려야 할 때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온다면 뛰어들라. 결코 물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날에 입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면 수치심을 무릅쓰고 그곳에서 도망치라. 겉옷을 벗어던지고, 명령을 거역하고, 삶을 모욕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수가 있더라도 일단 살아남으라. 일단 살아남아 돌아오라.
_P.368
다이빙이 끝나고 로그북을 적으며, 나는 바다에 가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이 내게 생존의 문제였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예비 호흡기를 물고 있던 그 순간뿐만이 아니라 정말이지 평생 동안 내가 살고 싶어 했음을, 그러니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적잖은 양의 소설과 시를, 일기를, 이런저런 기록들을, 여러 장의 유서를, 거창한 버킷 리스트를 쏟아내듯이 쓰는 일을 통하여 내가 생존해왔음을 알았다.
『푸른 생을 위한 경이로운 규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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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커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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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남겨둔 수많은 if는 결국 현재를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과거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현재에 영향을 주고 있는 거겠지. 그러니 ‘라잇 나우. 이제 앞으로의 세계에서 살아.’(P.254)

_P.82
그러나 인생에서 뒤늦은 'if'는 의미 없는 상상에 불과했다. 그 길로 갔더라면, 그 선택을 했더라면, 그 사람을 만나고, 아니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지나간 if는 삶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이라 말할 수 있었다. 무의미하게 과거를 생각하고 그때마다 반복되는 후회로 아쉬워하니까.
_P.86
삶은 과거에서 현재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삶이란 어쩌면 그 위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인지도 몰랐다. 시간은 때때로 훌쩍 건너뛰기도 하고, 한곳에 오롯이 멈춰 있기도 하니까.
_P.97
평생을 오직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많은 '나'들이 찰나에 존재했다, 덧없이 사라지고 다시 존재함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탈피하고 그 껍질을 버리는 갑각류처럼,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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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은의 가게
이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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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 작가들의 등장으로 한국 문학은 여성 중심 서사의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여자만이 겪는 차별과 폭력 그것에 공감하는 여성 독자 중에 나도 포함된다. 그러나 피해자로만 서술되는 여성 서사에 싫증이 나기도 했다. 『82년생 김지영』에 열광할 때 우리는 그렇게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 없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또 피해자로만 그려질 그들과 뻔한 결말을 예상했다. 하지만 이서수 작가는 여성 독자에게 공감하게 하면서 하나의 의견을 제시한다. 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잠정적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벽을 쌓고 있었다. 마은이 하는 그 노력을 나도 해야 할 때일지도.

_P.36
이력서를 심사하는 동안 나는 지원자들의 인생이 종이 한 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는 것에 새삼스레 놀랐다. 이력서 양식은 압축된 인생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틀이었다. 그 틀 안에선 어떤 인생이든 쉽게 분류되기 마련이고, 회사의 인재 선발 기준에 맞춰 무엇이 부족하고 넘치는지 한눈에 드러났다. 서류 양식부터 인간을 가르는 잣대가 적용되었다. 왼편 상단의 사진(외모), 대학명과 학점(계급), 자격증 및 경력 사항(스펙), 자소서(열의). 이러한 형식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중요도에 따라 하향식으로 전개된다.
_P.133
사람이 아닌 동물만이 내가 원하는 감정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 편한 온기. 정다운 인사. 내가 하는 것만큼 나에게 정확히 돌아오는 호의. 나를 두렵게 만들지 않는 존재. 나는 그걸 길고양이에게 기대했다.
_P.205
돈을 낸다고 해서 모두가 손님인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엔 자신을 왕처럼 받들지 않으면 언제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짓밟으려는 마음을 품은 자들이 있다. 자신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상대의 인생과 인격을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어딜 가나 있는걸.
_P.219
"보영 씨, 이 일 때문에 누군가를 믿지 못하게 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미리 의심하지 말고, 겁먹지도 말고요."
"의심하지 않는 건 어려워요."
이미 상처가 되었으니까. 이 일로 민감해진 어떤 감각이 있으니까.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만 마요. 당연히 이런 일을 당할 것이다. 그런 한계요."
"여자라서."
"맞아요. 여자라서 당할 것이다, 그런 마음이요."
"불필요한 마음일까요?"
"선험적으로 품고 살아가는 건 하지 마요. 경험하지 않았는데 이미 경험한 것처럼 살지는 말라고요."
"그런 게 집단 무의식 아니에요?"
"글쎄요."
"집단 무의식이 우리를 살릴 때도 있지 않아요?"
"무의식과 경험을 분리해봐요."
"언니는 그게 돼요?"
"우리는 경험을 하며 살아가지, 무의식이 현실로 드러나길 바라며 살아가진 않잖아요."
"저도 그런 걸 바라진 않아요. 그래도 우리를 지켜줄 때가 있잖아요."
"움츠러들게 할 때도 분명히 있고요."
우리의 대화는 잠시 멈추었다. 이윽고 언니가 말했다. 원래 어떤 일이든 양가적인 요소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 거라고. 그 말을 힘겹게 한 단어씩 천천히 내뱉 었다.
"언니는 그렇게 하고 있어요?"
"노력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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