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을 말하기는 그렇지만 삶과 죽음만큼 인간이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이 소설의 장기 구독 시스템은 그것마저 돈이 유무에 따라 누릴 수 있다. 유온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그들의 유산을 받는다. 그러나 누진세가 적용된 심장 임플란트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피부 이식으로 늙어 보이지 않고 장기 이식으로 삶을 연장해도 돈이 많은 소수를 제외하고 결국 구독 기간 만료로 죽음을 맞을 것이다. 노화와 죽음이 선택이 된 세상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백 년을 넘게 살아도 죽고 싶지 않은 게 인간이려나._P.11버디의 등장으로 우리 시대의 인간은 장기를 하나씩 임플란트로 갈아 끼우며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_P.29우리는 30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안았다. 그녀는 내 품에서 조용히 죽었다. 사인은 임플란트 구독 기간 만료로 인한 심정지였다. 이 시대에도 영생은 이론에 불과하다._P.52임플란트 장기를 제작하는 회사들은 제각각의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는데, 가장 성공적인 캐치프레이즈는 이거였다. "고장 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치료다." 거짓말은 아닌 것이 이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것은 암이 아니라 심장 정지와 폐 정지다. 다른 말로 하면, 모자란 통장 잔고다._P.229심장 임플란트 구독 기간 종료까지 1개월. 연장하시겠습니까?나는 '예'를 눌렀다. 화면이 전환되면서 이번에는 다음 문구가 표시되었다.심장 임플란트 1년 플랜(최고 인기): 105억 원(17% 할인)심장 임플란트 1개월 플랜: 10억 5000만 원어릴 때였으면 100년 넘게 살았으면 삶에 별 미련이 없지 않겠냐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은 살아도 살아도 아쉬움 뿐이다. 구체적으로 뭐가 아쉬운지도 모르는 채 그저 아쉬웠고, 억울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삶의 놀이공원에서 영원토록 놀고 있을 텐데 말이다._P.251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들은 죽기 전에 어떻게 그렇게 열정을 불태웠던 걸까. 막상 죽음에 바짝 다가서니 그 무엇에서도 의미를 찾거나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렇게 많은 시체를 봤는데도 나는 아직도 죽음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보아 온 시체의 숫자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인간은 평생 아마추어다. 우리가 여전히 4,000년 전에 지어진 피라미드에 감탄하듯이.✦ 래빗홀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_P.110열 살 무렵, 발튀스는 니옹 성에서 벌벌 떨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그는 고양이를 키워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제네바의 집으로 돌아온다. 이 고양이는 미츄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발튀스와 미츄는 늘 함께였다. 산책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놀이에 지쳐 잠들 때에도.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밤, 미츄는 홀연히 사라진다. 이현아, 『영원한 상실의 장소』그런데 상실이 아무리 잔인한 것이라 해도, 상실은 소유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상실은 소유의 끝입니다. 상실은 소유를 확인해 줍니다. 결국 상실이란 두 번째 소유일 뿐이며, 그 두 번째 소유는 아주 내적인 것이며, 첫 번째와는 다른 식으로 강렬합니다.(P.20)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서문처럼 발튀스는 상실을 경험한다. 어린 시절 그의 드로잉에서는 거칠어도 따뜻함이 느껴지는데 이 책에 수록된 그의 작품은 정교하지만 차갑게 느껴졌다. 그 사이 그 자신도 작화도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이제 걷는 시간보다 차를 타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은 나의 노견과 산책하면서 공원에서 읽은 책인데 발튀스의 상실을 일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미츄와 함께한 시간보다 미츄를 그리워한 시간이 더 길었으리라.✦ 을유문화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예술에 대해 잘 몰라도 이 책에 나오는 예술가의 이름은 대부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나는 그들의 일부분만을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아닌 이면을 알게 한다. 흥미로웠던 점은 미국의 매카시즘으로 인한 예술가들의 상황과 일제 강점기와 독재로 핍박받던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_P.112하지만 변화의 시작은 항상 그랬다. 수백 년 전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했던 과학자는 화형에 처할 뻔했다.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고 외친 여성은 과격한 주장을 펼쳤다며 핍박당했다. ’하늘을 나는 기구‘를 만들겠다고 나선 형제는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모두 승리했다. 전복적인 사람들이 결국 정복한다. 케이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왜 새로운 생각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오래된 생각이 두렵다.“존 케이지 작곡가, 1912-1992_P.121그는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눈여겨봤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바다 건너에 어떤 도시가 있고, 그곳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상상했다. 극장에 가기 힘든 사람은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보며 웃고 울었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보통 사람들은 저녁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했다. 혼자 살면서 외로움에 허덕이는 이들에게도 텔레비전은 괜찮은 친구였다. 텔레비전 안에는 사람이 있고 삶이 있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이라는 기술이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고 믿었다. 〈TV 부처>, <굿모닝, 미스터 오웰>, <다다익선> 모두 기술에 대한 긍정이 가득한 작품이다.백남준 미디어 아티스트, 1932-2006_P.144전설이 된 재즈 아티스트 대부분은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들 중 상당수가 흑인이었던 이유도 컸지만, 마약이 끼친 영향도 무시 할 수 없다. 당시 재즈와 마약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무대 위에서 영혼을 바친 연주자들은 무대에서 내려오면 마약과 술의 세계로 망명을 떠났다. 빌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밑바닥과 최상의 삶 모두에서 차별을 겪었다. 10대 때 받았던 상처도 아물지 않았다. 언제나 마음속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 이 상처를 마약으로 잊고자 했다. 가수로 벌어들인 돈을 마약 사느라 탕진할 정도였다. 주변엔 나쁜 남자도 많았다. 대부분 빌리의 명성을 이용해 한탕 해먹으려는 건달 같은 남자들이었다. 1950년대 들어 빌리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마약에 절어 목소리도 망가졌다. 하지만 그런 채로도 계속 노래를 불렀다. 알궂게도 황폐해진 빌리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가 됐다. ’불우한 삶‘이라는 서사와 함께 빌리는 전설이 됐다.빌리 홀리데이 가수, 1915-1959✦ 작가정신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한때 죽음을 매일 보는 현장에 있었고 환자에게 병명을 비밀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갈색 차광 봉투를 씌운 항암제를 맞는 환자에게 ‘항암제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그게 항암제인지 몰랐을까. 나는 모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인간이 순응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제목과 다르게 아주 편안한 죽음이란 죽음을 앞둔 사람과 그걸 지켜보는 사람 모두에게 존재할 수 없을지도._P.22”보다시피 매가리가 풀린 게야. 너무 피곤하고 진이 다 빠져 버렸어. 내가 늙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단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며칠이 지나면 일흔여덟이야. 완전히 늙어 버린 셈이지. 그러니 준비를 해야겠구나. 인생의 책장을 한 장 넘기려고 해.“_P.26언제나 엄마를 살아 있는 존재로 여겨 왔던 나는 언젠가,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곧 엄마가 죽는 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_P.122잠이 든 엄마의 숨결이 얼마나 가늘던지 나는 ’이대로 조용히 숨이 멈출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목에 건 검은색 가는 끈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기란 그렇게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_P.135의사들이 엄마의 의식을 회복시키고 수술하도록 허락한 걸 후회해야 할까 아니면 후회하지 말아야 할까? 단 하루도 버리지 않길 원했던 엄마는 수술을 받은 덕분에 30일을 벌었다._P.153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을유문화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황금가지에서 출간하는 국내 작가들이 쓴 소설들 상당히 내 취향이다.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 영상화가 기대되는 건 개그 코드가 나랑 정말 잘 맞았다. 악귀 퇴치를 위한 팥 먹이기와 복숭아 가지로 머리 치기 씬은 꼭 있어야 한다._P.331그 밖에는 모두 안 좋은 일뿐이지만...... 사무실은 물난리에 브랜드 평판은 나락, 유튜브는 재개할 수 있을지 모르는 불투명한 상황. 걱정이 되었다. 나는 여기에 계속 있을 수 있을까? 무당언니가 앞으로도 내게 월급을 줄 수 있을까?✦ 황금가지에서 책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