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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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을 말하기는 그렇지만 삶과 죽음만큼 인간이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이 소설의 장기 구독 시스템은 그것마저 돈이 유무에 따라 누릴 수 있다. 유온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그들의 유산을 받는다. 그러나 누진세가 적용된 심장 임플란트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피부 이식으로 늙어 보이지 않고 장기 이식으로 삶을 연장해도 돈이 많은 소수를 제외하고 결국 구독 기간 만료로 죽음을 맞을 것이다. 노화와 죽음이 선택이 된 세상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백 년을 넘게 살아도 죽고 싶지 않은 게 인간이려나.

_P.11
버디의 등장으로 우리 시대의 인간은 장기를 하나씩 임플란트로 갈아 끼우며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_P.29
우리는 30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안았다. 그녀는 내 품에서 조용히 죽었다. 사인은 임플란트 구독 기간 만료로 인한 심정지였다. 이 시대에도 영생은 이론에 불과하다.
_P.52
임플란트 장기를 제작하는 회사들은 제각각의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는데, 가장 성공적인 캐치프레이즈는 이거였다. "고장 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치료다." 거짓말은 아닌 것이 이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것은 암이 아니라 심장 정지와 폐 정지다. 다른 말로 하면, 모자란 통장 잔고다.
_P.229
심장 임플란트 구독 기간 종료까지 1개월. 연장하시겠습니까?

나는 '예'를 눌렀다. 화면이 전환되면서 이번에는 다음 문구가 표시되었다.

심장 임플란트 1년 플랜(최고 인기): 105억 원(17% 할인)
심장 임플란트 1개월 플랜: 10억 5000만 원

어릴 때였으면 100년 넘게 살았으면 삶에 별 미련이 없지 않겠냐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은 살아도 살아도 아쉬움 뿐이다. 구체적으로 뭐가 아쉬운지도 모르는 채 그저 아쉬웠고, 억울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삶의 놀이공원에서 영원토록 놀고 있을 텐데 말이다.
_P.251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들은 죽기 전에 어떻게 그렇게 열정을 불태웠던 걸까. 막상 죽음에 바짝 다가서니 그 무엇에서도 의미를 찾거나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렇게 많은 시체를 봤는데도 나는 아직도 죽음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보아 온 시체의 숫자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인간은 평생 아마추어다. 우리가 여전히 4,000년 전에 지어진 피라미드에 감탄하듯이.

✦ 래빗홀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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