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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2 소설 보다
김채원.성혜령.현호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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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시리즈는 일년에 4번 출간되고 3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다른 수상작품집은 익숙한 작가의 글을 만날 수 있지만 소설 보다 시리즈는 낯선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모든 단편이 다 재밌기는 힘들다. 그 중 내 마음에 와닿는 소설 한편만 있어도 성공적이지 않을까. 현호정 작가의 연필 샌드위치가 이번 소설 보다 시리즈에서 내게 그랬다.
식이장애가 있는 화자는 꿈에서 연필 샌드위치를 만든다. 연필 샌드위치를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고, 먹을 수 없는 연필 샌드위치를 먹는 행위도 고통스럽다. 꿈속이든 현실이든 음식으로 힘든 화자를 보는 것이 독자인 나도 힘들었다.

_P.104
현실적으로 구수한 맛은 최후의 맛이다. 음식을 먹는 게 어려워지면 처음에는 단맛 나는 먹을거리를 찾기 마련이다. 체내에 에너지가 부족한 상황이 오기 때문에 몸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당류에 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맛이 주는 쾌감은 떳떳하지 않고 이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단맛에 관한 죄책감은 구역감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자연스레 신맛을 찾게 만든다. 그러나 신맛은 위액과 같은 맛이라는 점에서 구역감을 구토감으로 발전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게다가 식이 장애 증상을 가진 이들의 나약해진 위장 벽에 산은 고통을 주기 십상이다. 신맛이 이럴진대 쓴맛이나 매운맛이 지속 가능할 리 없다. 게다가 이 둘은 기본적으로 고통이라는 면에서, 순순한 쾌감이 아니라 비틀린 쾌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죄책감을 유발한다. 약해진 소화기관을 온종일 괴롭히며 일상의 무게를 더하는 건 자해를 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통증의 방식도 아니다. 우리는 통증이 빛났다 사라지기를 바란다. 무언가를 가지고 사라져주기를 바란다. 통증도 스스로 그것을 바란다. 그로 하여금 짧은 평화랄지 결정적인 보람이 되기를 바라지 삶처럼 지속된다면 의미가 없을 것. 혹은 잠처럼. 결코 죽음을 닮을 수 없는 긴 잠처럼. 그러므로 구수한 맛이 종착지다. 그러므로 종착지는 구수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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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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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기다리던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지만 보던 이름, 비슷한 소재에 이전보단 관심이 떨어진 상태였다.
2022년 수상작 중에서 김멜라 작가의 저녁놀은 정말 좋았다. 퀴어라는 장르의 파이가 커졌다는 게 직접적으로 느껴진 게 8편의 수상작 중에서 2편이 퀴어소설이다.
저녁놀의 화자 바이브레이터는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두 여자 눈점과 먹점을 원망하며 두 사람의 관계가 영원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소설을 읽는 나 또한 그랬는데 두 사람은 나와 바이브레이터의 예상을 빗나가며 각자에게 중요한 것보다 서로에게 중요한 것을 지켜주려 한다.

P.84
냄비에 밥과 물을 넣고 뭉근한 불에 휘저으며 먹점은 팀장에게 연차 사유를 다르게 말하는 걸 상상했다. 가족이 아파요, 애인이 몸살이 났어요, 아내가 감기 기운이 있네요. 그런 말을 떠올리며 자신이 보호하고 보살펴야 할 가족은 눈점인데, 눈점이 아플 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에 가슴이 저렸다. 지난달, 고양이를 키우는 동료가 고양이가 아파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며 조퇴를 했을 때 사람들은 고양이도 식구고 가족이라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나와 눈점이는? 우리는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관계도 못 되는 걸까. 나와 지현이는 언제까지 먹점, 눈점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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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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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마음으로는 임선우 작가의 단편 8개를 만날 수 있는 소설집이다.
작가의 말에서 본인은 생각이 너무 많은 걸 단점으로 생각했는데 글을 쓰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작가의 상상력이 고스란히 소재로 등장하고 단편의 화자들은 대부분 외로운 사람이다.
가장 좋았던 소설은 <낯선 밤에 우리는>이다. 나는 중학교 때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는 친했지만 외면했던 친구 금옥을 우연히 만난다. 금옥은 사이비 종교의 신자로 거리에서 포교 활동 중이었고, 나는 아이를 가지기 위한 시술로 점점 지쳐가는 중에 금옥의 초라한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다시 가까워진다. 그렇지만 서로에게 진짜 중요한 일들은 말하지 못한다.

P.138
같이 웃다가 우리는 천천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길었고, 우리는 자주 쉬어 갔다. 하나가 말하면 다른 하나는 얘기가 끝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며, 온몸으로 자신이 얘기에 집중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함께 무언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더디지만 분명한 방향으로, 모난 곳 없이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는 시간을 지나,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가 그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고 있었다.
<낯선 밤에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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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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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뜨거운 소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다.
아버지는 빨치산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죽었다. 연좌제로 아버지로 인해 피해를 본 가족부터 도움을 받았던 사람, 이념은 다르지만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동지들. 여러 사람이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다.
비극적인 삶을 살았을 거라 생각되는 이 가족을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아리가 가진 아버지와의 추억, 원망을 비롯한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작가님의 이야기가 투영된 것이 보여지는 소설이라 나에게 큰 감동을 주진 않았지만 청소년이나 소설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68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찬일파가 득세하는 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 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 근데 얼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은, 굶어 죽을 뻔한 고통은,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은 동료들이 바로 곁에서 죽어가는 고통은 어떻게 견뎠을까? 신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려와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 인식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P.252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옭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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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모락 - 우리들은 자라서
차홍 지음, 키미앤일이 그림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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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모락의 사전적 의미다.
문학동네 블라인드 서평단을 신청해서 읽은 그림책이다.
이 책의 화자인 나는 머리카락이며 너의 탄생과 함께 태어난다. 나는 너를 지켜보며 너의 삶을 응원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한다. 너가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나이듦에 따라 이별도 하는 그런 과정 속에서 나도 변화한다. 부드러운 아이의 머리카락에서 염색이 필요한 머리가 되었다가 어느새 하얗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럽지만 어쩐지 슬픈 과정을.
작가님이 공개되고 이 책의 화자가 왜 머리카락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연필로 그린듯한 그림도 책의 내용과 무척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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