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나 사람 마음이나 똑같네···."
못질을 당한 벽이나 못질을 당한 사람 마음이나 박혀 있던 못을 빼낸다 한들 상처는 남는다. 아무리 상처를 덮고 메워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 마음에 못질할 때보다 자기집 벽에 못질할 때 더 신중해 보인다.
내 집에는 혹시 작은 흠집이라도 남을까 노심초사하지만, 남의 마음에 남을 상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번에 대못을 박아버린다.
p.25
무던해 보이는 창화도 매일 같이, 시시각각 나쁜 기억들과 투쟁을 벌였다. 잊고 싶은 기억이 자신을 급습해 오면 사투를 벌이다 끝끝내 그것들을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
사투가 끝난 줄 알고 돌아서면, 그 기억은 다시 절벽을 꾸역꾸역 기어 올라와 갈고리처럼 창화의 발목을 낚아챘다. 창화는 나쁜 기억과의 쌍무에서 번번이 지면서 점점 지쳐갔다.
p.43
"기억과 추억의 차이··· 어떻게 달라요?"
"기억은 남기고 싶지 않은 것도 남아 있지만, 추억은 남기고 싶은 것만 남아 있잖아요.
그래서 전 좋게 남은 것만 추억이라고 말해요. 나쁘게 남은 건 추억이라고 하기에··· 좀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p.141
"있잖아, 난 이렇게 생각해. 좋아하는 걸 하고 사는 것보다, 싫어하는 걸 하지 않고 사는 게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라고.
좋아하는 걸 하고 사는 사람은 너무 적지만, 싫어하는 걸 하고 사는 사람은 너무 많잖아. 그냥··· 좋아하는 건 못해도 되니까 최소한 싫어하는 것만이라도 안 하고 살면 좋지 않나 싶어."
p.172
노력과 목적. 어쩌면 둘이 가미되는 순간 인간관계는 끝이 보이는 게 아닐까.
그래서 또 어쩌면, 맹목적인 만남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아름다운 것인지도 몰랐다.
p.179
한겨울, 창밖에 서 있는 기분. 그 비참 미묘한 기분은 창밖에 서있어 본 사람만 안다. 창밖과 안의 온도 차가 심하면 창에 쁘얀 성에가 끼고, 그 차이가 심할수록 성에는 짙어진다.
성에 때문에 따뜻한 창 안에 있는 사람은 창밖이 보이지 않지만, 앙밖에서는 안이 얼마나 따뜻한지 점점 더 선명하게 알게 된다.
p.225
나만 느린 것 같았고, 나만 부족한 것 같았고, 나만 답답한 인간으로 보이는 것 같았지만 알고 보면 당신도, 그들도 그러하다는 것.
더 잘하고 싶고, 더 빨리 달리고 싶고, 더 잘나 보이고 싶은 줄 알았지만, 사실 지쳐 있었고, 천천히 가도 좋았고, 이제 그만 편해지고 싶었다는 것.
우린 다르지 않았다는 것.
p.275
'괜찮아?'라고 물어봐 주는 것. 이 작은 질문 하나가 지니는 따뜻함은 너무나 크다.
'괜찮겠지'라며 마음의 고개를 그냥 넘어가려다 잠시 멈추고, 상대방의 마음에 머물러주는 것,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한다미가 아닐까.
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