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 약속을 지키기까지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다. 안도감이 밀려들었지만 오랜 시간 가시지 않은 미안한 감정은 그대로였다.
p.18
마주 앉아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엇갈릴 때, 진실을 밝혀내는 일은 마치 얇은 얼음 위를 걷는 것과 가타.
그들의 이야기가 나에게로 모이고, 나는 그 목소리를 신중하게 들어야만 한다.
때로는 그 과정이 나를 외롭게 만든다. 내 고민의 결과는 진실의 무게 추를 움직이고, 나의 평가 결과는 한 사람의 삶을 좌우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닫는다.
p.36
과학수사에서는 현장에서 실수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내가 저지른 실수 하나로 인하여 사건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부주위로 나와 팀원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재차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p.104
시신은 단순히 생명이 사라진 존재가 아니다. 모든 시신에는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 있다.
과학수사관은 그러한 사연을 제대로 듣기 위해 혼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을 푸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과학수사관은 자부심 없이는 버텨낼 수 없는 고된 작업이기도 하다.
p.106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면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과학수사관들은 각자 처해 있는 개인적인 상황으로 저마다 더욱 슬픈 감정에 휩싸이는 현장들이 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혼자 남겨진 아이, 그런 아이를 두고 혼자 떠나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아서였을 거다.
p.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