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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의 힘 - 모두가 따르는 틀에 답이 있다
미타 노리후사 지음, 강석무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4월
평점 :
<꼴찌, 동경대 가다>가 히트를 치면서 강연회도 여러 차례 하면서, 거기서 교육관계자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기회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나는 예전부터 갖고 있던 개인적 견해가 옳다는 것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생각이다.
“개성은 필요 없다.”
“틀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길이다.”
독자들에게 이러한 생각을 보다 직접적인 말로 전하기 위해, 이번에는 만화가 아닌 일반서라는 방식을 채택했다.
예를 들어 시부야 같은 번화가에 가보면 대단히 ‘개성적’인 패션을 한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는 몇몇 젊은이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소위 개성파라는 그들의 패션이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는 몇몇 젊은이들은 유심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소위 개성파라는 그들의 패션이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이다. 즉 ‘이것이 개성적’이라는 ‘틀’이 있어 그냥 그 ‘틀’ 대로 꾸미고 있는 것이다. (...) 오랜 생각 끝에 나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세상에는 성공에 필요한 ‘틀’이 있다.
개성과 재능보다는 준비된 ‘틀’에 맞추면 된다.
오히려 어중간한 재능은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런 건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낫다. 요즘 세상은 개성을 중시한다는 명목으로 자유가 존중된다. 학교에서도 획일화된 교육을 지양하고 아이들의 개성을 키우는 쪽으로 노력하며, 체벌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기업에서도 능력주의나 성과주의가 도입되어 예전의 연공서열이나 조인고용제도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과연 이러한 사회적 풍조는 바른 것일까?
개성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개성이 시대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가 안겨준 개성에 대한 환상이 젊은이들의 발목을 잡고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다. ‘개성이 없는 인간은 필요 없다’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환상을 쫓아 헤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말하고 싶다. ‘개성을 버려라! 틀을 따르라’라고. 7-10p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별 세 개 반을 주려고 했다. 체크해둔 부분들을 다시 읽으면서는 네 개는 줘야지 라고 생각하다가 리뷰를 정리하면서는 별 다섯 개로 마음이 바뀌었다. 그렇게 마음이 변한 이유는 두 가지 가 있다.
첫 번째는 다시 읽으면서 내가 이 책을 상당히 방어적으로 읽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평범이라는 단어가 너무 힘들었다. 특이하다, 이상하다라는 말을 달고 다닐 정도로 남들이 들이대는 평범의 잣대가 너무나도 괴로웠다. 평범하게 지내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고 탓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기 때문에 그런 나의 삶을 부정하는 것 같은 내용들이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거리를 두고 읽고 있었다. 그런데 2독을 할 때 이 책이 그런 나의 삶을 평범의 틀에 구겨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반대로 평범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응원과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내용들을 하나하나 파악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두 번째는 리뷰를 정리하면서 평가를 만점으로 올린 이유는 이 책의 내용이 앞으로 내가 마주할 평범한 사람들 - 어쩌면 나의 현재 미래 가족들도 -을 이해하는 데 엄청나게 도움이 될 거라서. 지금까지 살면서 사회생활 이전에는 친구들과 수차례 엄청 크게 싸웠었다. 왕따를 당한 적은 없지만 그건 어쩌면 내가 문제가 생기면 아예 부딪혀버리는 스타일이라서 5 대 1, 4 대 1, 3 대 1 (물론 1은 나)로 화내고 싸운 적은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부딪힌 이유 중에 상당수가 넌 왜 그렇게 다르냐 였으니까. 내가 보기에는 모든 사람이 다 다르니까 난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몰린 적이 상당히 많았다. 예를 들자면 친구들과 함께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느니 나는 혼자서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했거든. 튀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한 건 아니었지만 남들과 다르게 보일까봐, 혹은 눈에 띌까봐 내가 하고 싶거나 해야한다고 느끼는 행동은 안 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튀려고 저런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고, 또 친구들에게 참 많이 들었던 말이 ‘멀리서 봤을 때는 정말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는데 친해지니까 생각보다 특이하지 않다’ 였음. 비상싱적인 사람은 아니니까. 어쨌든 30년 인생에 나의 다름으로 인한 트러블이 상당히 많았고, 나는 날 그렇게 몰아붙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일부러 노부나가나 료마 같은 실패한 선구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두 번째나 세 번째를 노리라는 것이다. 선구자의 경우,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전례가 없기 때문에 해결 방법도 알 수 없고 나아가야 할 길도 모른다. 예를 들자면 밀림 속에서 한 손에 나이프를 들고 길을 헤치며 나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실패나 좌절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두 번째나 세 번째에게는 그런 시행착오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선구자가 만들어놓은 길을, 쉽게 따라가면서 안심하고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솔직히 선구자로서 성공을 한다는 것은 극히 일부의 천재들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천재가 아니다. 필시 당신도 그럴 것이다. 나도 당신도 ‘평범한’ 것이다. 하지만 비관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눈앞에는 천재적인 선구자들이 시행착오를 거쳐 남겨준 ‘틀’이 있다. 이것을 이용하면 평범한 인간이라도 어느 수준까지는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43-45p
이 책에서는 성공의 지름길은 남들이 잘 닦아놓은 포장도로라고 이야기한다. 스스로 과감하게 개척해가지 말고 누군가 미리 정비해둔 도로를 빠르게 달려가라고. 사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가장 큰 반발이 생겼다. 나는 잘 정비된 도로에서 벗어나서 숲을 헤쳐가며 내멋대로 먼 길을 가고 있는 상황이라서.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파악하고 나니 납득이 갔다. 목표를 이루는 방법이 뻔한 상황이라면 굳이 개성이라는 이유로, 남들과 다르게 해야 겠다는 이유로 그 길을 벗어날 필요가 없다는 거. 나의 경우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남들이 뚫어놓은 길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알아서 해야 하는 거일 뿐이니까. 나도 나의 삶의 지향점을 그대로 이룬 사람이 있다면 주저 없이 그 사람이 닦아놓을 길에 올라탔을 거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이 나의 목적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대단한 성공도 아니라서, 나는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이 길을 닦아놓아서 다른 사람들이 그 길을 통해서 조금씩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니까.
진정한 개성이란, 타인과 같은 것을 해나가는 속에서 명확해지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같은 것을 해나가는 가운데 다른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개성이다.
‘난 개성적이야’를 어필하는 무리들이야말로 몰개성적이다. 예를 들어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다’며 인도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인도에 가면 뭔가가 있다’는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다. 게다가 인도에 다녀온 것으로 ‘나는 특별한 체험을 했어’ ‘나는 개성적인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대단한 착각이다.
언젠가 우스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서 어느 학생이 자랑스럽게 “저는 대학 때 호놀룰루 마라톤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그에게는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는 특별한 면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같이 면접을 받던 다른 학생 두 명도 호놀룰루 마라톤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즉 모두 호놀룰루 마라톤을 소재로 ‘개성적인 나’를 어필하려 했던 것이다.
만화가가 보조작가를 고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채용하는 측은 학생에게 어중간한 개성 따위는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란 듯이 ‘나’를 과시하는 사람보다는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을 찾게 된다.
하찮은 개성에 대한 환상은 이제 버리자. 개성을 고집하느라 애써 먼 길을 돌아가지 말고 재빨리 ‘틀’을 찾아서 익히도록 하자. 그러면 최단거리에서 성과를 올릴 수 있다. 개성이라는 것은 의식하지 않아도 나중에 성공하면 따라오게 되어 있다. 36-38p
일을 함에 있어 ‘평범한’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가 일을 하던 중 싱수를 했을 때, 그것은 90퍼센트 이상이 ‘평범한 수준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이다. 결국 ‘평범한’ 수준을 지켜 일을 하면, 그 업무는 무난히 성공하는 점을 생각한다면, 어떤 일에 관련해 ‘평범’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 대단한 일이다. 주변에서 ‘평범’ 이상의 능력을 기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만약, 당신이 ‘평범한 월급쟁이의 평범한 생활’을 우습게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그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범한 수준의 직장에서 일을 하고, 평범한 수준으로 벌고, 평범한 수준의 차를 사고, 평범한 수준의 집에 살며, 평범하게 저축을 하면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산다. 엄청난 빚이 있는 것도 아니며 범죄 전력도 보통 없으며, 부부 관계나 부모자식과의 관계도 보통 원만한 수준이다. 이런 것이 얼핏 시시한 삶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전부 만족시키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큰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41-42p
그리고 평범함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만큼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그 내용은 얼마 전에 읽었던 [가면사축]이랑은 거의 반대되는 조언들이라 더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수직사회의 긍정적인 면’을 상당히 많이 경험해서 그런지 이 책의 내용에 더 공감했다.
수직사회의 질서가 없으면 역할분담이 쉽지 않으며, 단순한 개인주의 집단이 되면 엄청난 혼란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개인주의적인 사람은 기본적으로 ‘나는 나대로 할 테니까 너는 너대로 해’라고 하는 태도로 매사를 생각한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나 몰라라 하는 태도다.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면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누군가 해주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절대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개인주의의 정체이다. 그래서 내가 반복 설명하고 있는 ‘헌신적인 플레이’라는 것을 그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원래 팀이라는 의식조차 희박하다. 개인주의적인 크리에이티브 집단 하면 뭔가 듣기는 그럴싸한 것 같아도 그런 인간들만 모인 조직이라면 금방 무너지고 말 것이다. 개인주의라는 것은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제멋대로 나 몰라라 하는 주의인 것이다. 158-159p
시대가 바뀌고 국제화의 파도가 거세도 일본이라는 나라는 봉건제도나 사농공상에서 계속되어온 수직사회를 토대로 형성되어있다. 관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기업도 학교도 지역 사회도 모두 수직사회다. 이는 좋든 싫든 관계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아예 뼛속까지 수직사회에 물들어버리자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용맹 과감하게 수직사회에 반기를 드는 것도 좋지만 일단 수직사회에 푹 빠져보고, 그 후에도 불만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그때 다른 행동을 취해도 좋을 것이다.
장인들의 세계에서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 전통 예능에서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 이런 수직관계는 기술이나 전통의 승계에 대단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수직사회에서 견디기 힘들어 도망쳐 나왔다 하더라도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규모가 작은, 또 다른 수직사회’인 것이다. 170-172p
‘윗사람이 강한 권력을 가지고 아랫사람은 일상업무를 해난다’는 이러한 수직사회의 공식은 지금도 중학교나 고등학교, 대학교의 운동부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대학 운돈부의 경우, 1학년생이 여러 일상업무를 해내고 4학년생은 회식비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은 스모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력이 없는 마쿠시타 아래의 선수라도 합숙소의 업무나 시중드는 역할을 함으로써 확실히 먹고 살 수 있는, 스모의 안전망 시스템이다. 만약 야구나 축구처럼 프로스포츠였다면 실력이 없는 선수를 먹여살릴 여지는 전혀 없다. (...) 그래서 시중드는 사람 등을 포함한 스모의 다양한 관례에 대해 “낡았어”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아”라고 비판하는 것은, 세상을 한쪽에서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164-165p
물론 지금의 나는 상당히 한량처럼 일하고 있지만 주류(?) 의사 사회는 엄청나게 수직적이다. 드라마 하얀거탑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 실제로 그정도인 곳도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 상당히 융통성 없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 정도는 해야 하는 수직사회다. 시작은 대학교 입학 때부터.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내가 다녔던 순천향대는 서울에도 병원이 있지만 지방대에 속해서 그런지 서열 문화가 엄청났다. 머리 염색 안 되고, 남자는 반바지 안 되고, 슬리퍼 신고 돌아다니면 안되고, 치마 길이 등등 온갖 단속과 제한이 있었다. OT에서부터 흙바닥에 구르고 토하면 토하고 와서 술 마시고 그랬다.
종종 위에도 적었던 나의 다름(?) 때문에 수직사회에서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순천향 문화에 엄청 잘 적응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다 겪어보고 나서 바꾸자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책에 나왔던 것처럼 일단 수직사회에 푹 빠져보고 내가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입장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바꿔나갔다. 겪을 때는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이 나중에 도움이 된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스모 사회의 예시처럼 사실 의사사회 뿐만 아니라 의과대학 생활에서도 수직적인 분위기가 도움이 되는 부분도 상당수 있다. 물론 위에서 괴롭히고 갈구기만 하는 경우도 간혹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의대의 많은 교과서들을 다 사기 어려운데 그런 교과서들도 대대로 후배들에게 물려주기도 하고, 또 족보 - 우리 학교 에서는 야마-나 강의 내용 정리를 스터디 선배들에게 물려받았다. 그것 뿐만 아니라 골학을 가르쳐 주는 것도 선배였고, 실습을 시작하면서 교수님들의 지도도 받지만 레지던트 - 4-5년 선배들의 티칭도 상당히 있었다. 만일 전문의를 따려고 하면 레지던트 생활을 할 때 가르쳐 주고 또 나의 일을 봐주는 사람은 교수님 보다도 윗 년차 선생님들이 많다. 학교로 따지면 1-2학년 차이지만 선생님이나 마찬가지인 거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폭력이나 말도 안되는 악습들까지 옹호할 마음까지는 없지만, 얼마 안 있으면 나를 가르쳐줄 선생님이나 마찬가지인 선배들에게 잘하면서 잘 챙김 받는 건 참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아산병원으로 갈까 말까는 한참 고민했던 거기도 하고. 위에도 적었지만 학교가 지방대라서 그때까지도 그런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아산병원에 가자 그런 부분이 많이 없어졌다. 그만큼 자유롭고 또 존중받는 느낌이긴 했지만 사실 그만큼 소속감을 느끼기 힘들었던 부분도 있다. 물론 내가 소속된 곳이 없는 인턴이라서 그랬겠지만, 인턴이 치프에게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모습은 상당히 충격적이긴 했다. 어쨌든 기본적으로 경험해보지 않고 투덜거렸다가는 “힘든 거 하기 싫어서 그런 거 아냐?”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일단 다 견뎌내고 뜯어고칠 부분을 고치자고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초반에 이미지를 잘 다져놔서 그런지 수직 사회 안에서의 자유도 마음껏 누리기도 했고.
이 책에서는 이런 식으로 평범함 그리고 틀이 가지는 가치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내내 생각났던 9GAG의 이미지 하나.
Just because you are unique does not mean you are useful.
다르다고 해서 유용한 것은 아니다.
개성이나 오리지널을 추구하면서 전혀 유용하지 않은 다름을 추구해버리고 마는 사람들에게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으니까.
지금의 어른들은 구체적 그림 없이 막연히 ‘꿈을 가져라!’라고 설교를 한다. 일본인은 개성이 없다느니 그런 궤도에 올라타면 안 된다느니 젊은이들의 자의식을 부추기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다.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해야겠구나’ ‘평범한 회사에 들어가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조건 ‘엄청난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부담을 가진다. 확실치도 않은 ‘꿈’이 강박관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떻게 될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내 꿈이 뭔지 모르겠어.’
‘그래도 평범한 회사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
그렇게 해서 별 생각 없이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니트족이 되어 버린다. 아르바이트족이나 니트족도 어떤 의미에서는 ‘꿈’을 강요하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
‘큰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
‘그리고 출세의 궤도에 올라타고 싶어.’
이것은 훌륭한 꿈이다. 112-114p
- 그래도 개성을 갖고 싶은 당신에게
반복하여 말하지만, 나는 개성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개성이 있고 물론 당신에게도 개성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 개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일한 나(only one)라든지 오리지널 같은 것을 동경하는 사람은 자신을 한 송이 호접란처럼 생각한다. 호접란은 주위의 꽃들과는 다른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다른 것을 위압하는 듯한 꽃으로 알려진 난의 한 종류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런 것이 개성이며 스스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만 송이를 피우는 유채꽃밭의 한 송이에도 개성은 있다. 같은 장소에서 피고, 같은 색을 띠고, 비슷한 크기로, 멀리서 보면 전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의 꽃이지만 거기에도 개성은 있다. 어떤 유채꽃이라도 그 꽃의 꿀을 모으는 벌이나 나비가 있으며, 그들은 경유하여 꽃가루 받이를 하는 다른 꽃도 있다. 그리고 씨앗이 만들어지면 채종유의 원료로 인간들이 소중하게 여긴다. 즉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혹은 ‘누군가가 원하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개성 이라고 생각한다. 별 의미도 없이 유달리 눈에 띄거나, 괴짜가 되는 것이 개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누군가가 원하고, 누군가로부터 감사를 받는 것이 그 사람의 존재가치이며 또한 개성이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까 ‘나는 평범함 샐러리맨입니다’라든지 ‘나는 그저 평범한 주부입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어떤 일이건 예를 들어 서류에 도장을 찍는 단순한 일이라도 거기에는 ‘당신’이 필요한 것이다. 그 일은 ‘당신’이 있기 때문에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부들도 마찬가지다. 매일 식사 준비를 하고, 청소를 하고, 세탁을 하고 남편이나 아이들의 생활을 지탱해주고 있다. 이것만큼 명확하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예, 누군가가 원하고 있다는 예는 그렇게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시 당신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원하고 있으며,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 답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이미 충분할 정도로 개성적이며 그 개성과 존재가치는 계속 유지되어가는 것이다. 241-243p
이 책은 내가 처음에 느꼈듯이 개성을 짓밟으려는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무리해서 개성을, 특히 아무 것도 기여할 것이 없음에도 다르다는 것만으로 자신을 어필하려는 바보짓을 그만해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나에게 왜 다르냐는 말이 스트레스 였듯이, 왜 똑같냐는 말이 스트레스가 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책이다. 자신이 ‘평범하고’ ‘개성 없고’ ‘특색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읽는다면, 내가 내 안의 내향성을 부정하고 억누르다가 책 [콰이어트]를 읽고 받았던 정도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그 안에서 긍정적인 힘을 끌어낼 수 있게 해준다. 다름과 같음 그 사이에서 내 위치가 다름에 너무 가까운 상황에서 그걸 억지로 같음으로 밀어넣으려면 고통스럽듯이 반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이야기했듯 ‘진정한 개성이란, 타인과 같은 것을 해나가는 속에서 명확해지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같은 것을 해나가는 가운데 다른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개성이다.’ 무엇을 배우든 하든 초반은 원래 더 힘들다. 이 때 틀을 충분히 나의 것으로 만들고 그 위에 개성을 세우는 것이 순서다. 코드를 익히고 F코드를 잡게 되는 과정이 지나야 기타를 즐겁게 칠 수 있다. 일도 그렇다. 들어가자마자 그 직업이 해야되는 일을 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요리사지만 감자나 깎고 설거지나 해야하고, 변호사이지만 서류 작업이나 도와야 하고, 의사지마 피나 뽑고 오줌줄이나 꽂고 있어야 한다. 다른 직업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일단 틀을 따라가고 틀을 따라갈만큼 따라 간 이후에 제멋대로 했을 때 진짜 개성, 나에게 또 세상에게 도움이 되는 개성이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