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매뉴얼
대니얼 월리스 지음, 이규원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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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계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어마어마한 아이언맨, 그래서 어마어마한 녀석이 출판되었음!!!! 

 바로 아이언맨 매뉴얼 IRON MAN MANUAL 공식한국어판!!!!!!


 예전에 [아이언맨의 팬이라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페이스북 구경가자] 포스팅도 했듯이 나는 아이언맨이 되기 전부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팬이었음~ 그리고 덕후 기질이 다분한 녀석이라 소장해야 겠다 싶었지 ㅎㅎㅎㅎㅎ




  "I AM IRON MAN" 21세기 가장 매력적인 슈퍼히어로 아이언맨의 모든것을 마음껏 소유하라

마침내 공개된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극비 매뉴얼! 

 쉴드 기밀 문서

 토니스타크의 메모들을 비롯한 스타크타워, 지하작업실 등의 공간분석 자료

 마크1부터 마크42까지, 토니스타크의 슈트 전종에 대한 공식 아머 분석 자료

 하워드 스타크, 블랙위도우를 비롯한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의 악역들에 대한 인물 분석자료

 그리고 토니 스타크 명함, 스타크 인더스트리 출입증 등 마니아를 위한 40여 종의 공식별첨자료!!!!


 책을 받고 비닐 포장을 뜯는 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음 ㅋㅋㅋㅋ 으아... 이걸 뜯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ㅋㅋㅋㅋㅋ

 근데 뭐 피규어도 바로 다 뜯어서 가지고 노는 스타일이니까 ㅋㅋㅋㅋ




 비닐 포장 뜯고서 띠지를 벗기고나니까....... 더 그럴 듯해!!!! ㅋㅋㅋㅋㅋ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기밀 문서같은 느낌에 더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ㅎㅎㅎ


 첫장 부터 자비스 로딩 중인 모습 ㅋㅋㅋ 다음장은 100% 로딩이라고 하면서 아이언맨 매뉴얼이 시작된다!


 이 아이언맨 매뉴얼은 페퍼 포츠를 위해서 스타크 인더스트리 AI 자비스가 아이언맨과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브리핑해주는 식으로 진행된 거 였음 ㅎㅎ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영드 셜록의 덕후를 위한 책인 [셜록 : 케이스북] 과 비슷한 스타일일 거라고 생각했음.

 사실 비슷하긴 하다. 포스트잇으로 메모도 붙어있고 읽으면서 영화 아이언맨의 다양한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그런데 이 책이 좀 가격이 센 이유가 있음.




 메모나 포스트잇 모양으로 인쇄되어 있는 게 아니라 따로 붙어있다!!!

 으어!!!! ㅎㅎㅎㅎ

 저 위에 보면 스타크 인더스트리 출입증도 있고, 스타크인더스트리라고 콱 박혀있는 토니스타크의 명함도!!! 그 아래는 국방부 기밀문서다 ㅎㅎ 떼어낼 수도 있는 것 같은데 떼어냈다가는 잃어버릴까봐 그냥 놔뒀음 ㅎㅎㅎ

 기밀문서는 redacted 된 부분- 싸인펜으로 꽉꽉 지워진 부분들 ㅎㅎ-까지 있어서 더 그럴듯해 보임 ㅎㅎㅎ


 우어~~!!!!!!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거 ㅎㅎ


 스타크 엑스포 초대권도 있다 ㅎㅎㅎ 저거 들고서 진짜 입장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으엉~~ ㅎㅎㅎㅎ 아이언맨이 날라 들어오는 모습과 쭉쭉빵빵한 언니들이 춤추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구만 ㅎㅎㅎㅎ


 그리고 전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멋있어 보인 것들 ㅎㅎㅎ



하워드 스타크의 연구 메모 랑 아크원자로의 설계도도!


 사실 기본적으로 문과라 ㅋㅋㅋ 이런 거 봐도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 나는 궁금한게 어느 정도 그럴 듯한지 궁금함 ㅎㅎ 보기에는 엄청 그럴듯해서 완전 다 헛소리인지 아니면 상당히 현실성있게 만들어낸 건지!!!


 나는 꼼꼼히 봐도 전혀 모름 ㅋㅋㅋㅋ

 


냅킨에 커피 자국 있는 것도 살려서 들어가 있고~ ㅎㅎㅎ


떼어내고 싶으면서도 떼어냈다가는 없어질 것 같아서 꾸욱 참고 ㅎㅎㅎ


사실 아이언맨의 팬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마블 코믹스보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팬이라서 혹시 아이언맨 코믹스 내용이 책 안에 많이 포함되어 있으면 어쩌나 살짝 걱정했는데 전적으로 영화 아이언맨의 덕후를 위한 책임!!


 제일 처음에 적었듯이 아이언맨의 아머들 - 마크1부터 마크42까지 재질, 기능 및 무장 들이 꼼꼼하게 나와있었음!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들었떤 마크1 아머는 쓱쓱쓱 그려놓은 설계도면... 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장면을 떠올려보니 아이언맨을 만들고 있다는 걸 안 들키기 위해서 여러 장에 나눠 그려서 겹쳤던 것 같은데 그걸 살짝 어긋나게 겹쳐놓은 것 같기도 ㅎㅎ


 인터페이스나 이전 마크에 비해 강화된 부분들도 나와있고, 아머에 따라 헬맷, 부츠, 건틀릿, 흉갑 나눠서 분석해놓기도 ㅎㅎ





그리고 아이언맨의 아머들 뿐만 아니라 아이언맨 시리즈의 악역들 아머들도 상당히 자세하게 나와있었음. 아이언몽거, 위플래스 마크, 해머드론 등등.


 아 ㅋㅋ 아이언 패트리어트도 나와있음! ㅎㅎ


 그리고 아머나 캐릭터 분석 중간에서도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에 나왔던 장면들이 기술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도면과 스케치로 설명해주었음!

 자연스럽게 걸어가면서 착착착 아머가 벗겨지는 모습이나 떨어지던 중 아머가 따라와서 겨우겨우 다시 올라갔던 모습들 다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라서 더 재미있게 읽었지요~






 그리고 캐릭터 분석은 국제적 위협으로 분류해서 아이언맨 시리즈별로 악역들을 차곡차곡 분석해놓았고, 그 다음으로는 스타크 씨의 친구들로 같은 편들이 나와있음.

 그 중에 페퍼 포츠의 파일도 있었는데 제일 처음에 적었듯이 자비스가 페퍼포츠에게 브리핑하는 컨셉인데 자기 파일을 보는 건 묘한 기분일 듯 ㅎㅎ


 순식간에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은근히 꼼꼼히 봤는지 시간이 많이 흘렀네 ㅋㅋㅋㅋㅋ 책이 두껍고 안에 붙어 있는 종이들도 있어서 책을 펼치기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제작자체를 활짝 펼쳐도 큰 무리가 없도록 해서 그런지 부담 없이 팔랑팔랑 거리면서 읽을 수 있었음.

 아이언맨3까지의 내용으로 만들어진 거라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 나온 페퍼포츠와의 결별은 나와있지 않음! 아!!! 그러고보니 시빌워가 아니라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전이구나!! 비전이 아직 자비스 였을 때니까~


 그런데.... 이런 책이 나온 걸 보면 진짜 아이언맨은 3편으로 끝인가 하는 느낌도 들고... 그래도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나온다고 하니까 기다리고 있어야지! ㅎㅎㅎ


하아... 영화 아이언맨 팬.. 보다는 덕후로 소장할 만한 녀석 ㅎㅎㅎ 셜록 옆에 꽂아놔야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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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의 힘 - 모두가 따르는 틀에 답이 있다
미타 노리후사 지음, 강석무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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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꼴찌, 동경대 가다>가 히트를 치면서 강연회도 여러 차례 하면서, 거기서 교육관계자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기회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나는 예전부터 갖고 있던 개인적 견해가 옳다는 것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생각이다.

개성은 필요 없다.”

틀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길이다.”

독자들에게 이러한 생각을 보다 직접적인 말로 전하기 위해, 이번에는 만화가 아닌 일반서라는 방식을 채택했다.

 예를 들어 시부야 같은 번화가에 가보면 대단히 개성적인 패션을 한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는 몇몇 젊은이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소위 개성파라는 그들의 패션이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는 몇몇 젊은이들은 유심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소위 개성파라는 그들의 패션이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개성적이라는 이 있어 그냥 그  대로 꾸미고 있는 것이다. (...) 오랜 생각 끝에 나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세상에는 성공에 필요한 이 있다.

 개성과 재능보다는 준비된 에 맞추면 된다.

 오히려 어중간한 재능은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런 건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낫다. 요즘 세상은 개성을 중시한다는 명목으로 자유가 존중된다. 학교에서도 획일화된 교육을 지양하고 아이들의 개성을 키우는 쪽으로 노력하며, 체벌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기업에서도 능력주의나 성과주의가 도입되어 예전의 연공서열이나 조인고용제도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과연 이러한 사회적 풍조는 바른 것일까?

 개성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개성이 시대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가 안겨준 개성에 대한 환상이 젊은이들의 발목을 잡고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다. ‘개성이 없는 인간은 필요 없다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환상을 쫓아 헤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말하고 싶다. ‘개성을 버려라! 틀을 따르라라고. 7-10p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별 세 개 반을 주려고 했다. 체크해둔 부분들을 다시 읽으면서는 네 개는 줘야지 라고 생각하다가 리뷰를 정리하면서는 별 다섯 개로 마음이 바뀌었다. 그렇게 마음이 변한 이유는 두 가지 가 있다.

 첫 번째는 다시 읽으면서 내가 이 책을 상당히 방어적으로 읽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평범이라는 단어가 너무 힘들었다. 특이하다, 이상하다라는 말을 달고 다닐 정도로 남들이 들이대는 평범의 잣대가 너무나도 괴로웠다. 평범하게 지내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고 탓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기 때문에 그런 나의 삶을 부정하는 것 같은 내용들이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거리를 두고 읽고 있었다. 그런데 2독을 할 때 이 책이 그런 나의 삶을 평범의 틀에 구겨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반대로 평범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응원과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내용들을 하나하나 파악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두 번째는 리뷰를 정리하면서 평가를 만점으로 올린 이유는 이 책의 내용이 앞으로 내가 마주할 평범한 사람들 - 어쩌면 나의 현재 미래 가족들도 -을 이해하는 데 엄청나게 도움이 될 거라서. 지금까지 살면서 사회생활 이전에는 친구들과 수차례 엄청 크게 싸웠었다. 왕따를 당한 적은 없지만 그건 어쩌면 내가 문제가 생기면 아예 부딪혀버리는 스타일이라서 5  1, 4  1, 3  1 (물론 1은 나)로 화내고 싸운 적은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부딪힌 이유 중에 상당수가 넌 왜 그렇게 다르냐 였으니까. 내가 보기에는 모든 사람이 다 다르니까 난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몰린 적이 상당히 많았다. 예를 들자면 친구들과 함께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느니 나는 혼자서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했거든. 튀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한 건 아니었지만 남들과 다르게 보일까봐, 혹은 눈에 띌까봐 내가 하고 싶거나 해야한다고 느끼는 행동은 안 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튀려고 저런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고, 또 친구들에게 참 많이 들었던 말이 멀리서 봤을 때는 정말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는데 친해지니까 생각보다 특이하지 않다 였음. 비상싱적인 사람은 아니니까. 어쨌든 30년 인생에 나의 다름으로 인한 트러블이 상당히 많았고, 나는 날 그렇게 몰아붙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일부러 노부나가나 료마 같은 실패한 선구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두 번째나 세 번째를 노리라는 것이다. 선구자의 경우,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전례가 없기 때문에 해결 방법도 알 수 없고 나아가야 할 길도 모른다. 예를 들자면 밀림 속에서 한 손에 나이프를 들고 길을 헤치며 나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실패나 좌절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두 번째나 세 번째에게는 그런 시행착오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선구자가 만들어놓은 길을, 쉽게 따라가면서 안심하고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솔직히 선구자로서 성공을 한다는 것은 극히 일부의 천재들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천재가 아니다. 필시 당신도 그럴 것이다. 나도 당신도 평범한 것이다. 하지만 비관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눈앞에는 천재적인 선구자들이 시행착오를 거쳐 남겨준 이 있다. 이것을 이용하면 평범한 인간이라도 어느 수준까지는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43-45p

 

 이 책에서는 성공의 지름길은 남들이 잘 닦아놓은 포장도로라고 이야기한다. 스스로 과감하게 개척해가지 말고 누군가 미리 정비해둔 도로를 빠르게 달려가라고. 사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가장 큰 반발이 생겼다. 나는 잘 정비된 도로에서 벗어나서 숲을 헤쳐가며 내멋대로 먼 길을 가고 있는 상황이라서.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파악하고 나니 납득이 갔다. 목표를 이루는 방법이 뻔한 상황이라면 굳이 개성이라는 이유로, 남들과 다르게 해야 겠다는 이유로 그 길을 벗어날 필요가 없다는 거. 나의 경우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남들이 뚫어놓은 길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알아서 해야 하는 거일 뿐이니까. 나도 나의 삶의 지향점을 그대로 이룬 사람이 있다면 주저 없이 그 사람이 닦아놓을 길에 올라탔을 거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이 나의 목적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대단한 성공도 아니라서, 나는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이 길을 닦아놓아서 다른 사람들이 그 길을 통해서 조금씩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니까.

 


 진정한 개성이란, 타인과 같은 것을 해나가는 속에서 명확해지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같은 것을 해나가는 가운데 다른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개성이다.

난 개성적이야를 어필하는 무리들이야말로 몰개성적이다. 예를 들어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다며 인도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인도에 가면 뭔가가 있다는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다. 게다가 인도에 다녀온 것으로 나는 특별한 체험을 했어’ ‘나는 개성적인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대단한 착각이다.

 언젠가 우스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서 어느 학생이 자랑스럽게 저는 대학 때 호놀룰루 마라톤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그에게는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는 특별한 면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같이 면접을 받던 다른 학생 두 명도 호놀룰루 마라톤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즉 모두 호놀룰루 마라톤을 소재로 개성적인 나를 어필하려 했던 것이다.

 만화가가 보조작가를 고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채용하는 측은 학생에게 어중간한 개성 따위는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란 듯이 를 과시하는 사람보다는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을 찾게 된다.

 하찮은 개성에 대한 환상은 이제 버리자. 개성을 고집하느라 애써 먼 길을 돌아가지 말고 재빨리 을 찾아서 익히도록 하자. 그러면 최단거리에서 성과를 올릴 수 있다. 개성이라는 것은 의식하지 않아도 나중에 성공하면 따라오게 되어 있다. 36-38p

 

 일을 함에 있어 평범한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가 일을 하던 중 싱수를 했을 때, 그것은 90퍼센트 이상이 평범한 수준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이다. 결국 평범한 수준을 지켜 일을 하면, 그 업무는 무난히 성공하는 점을 생각한다면, 어떤 일에 관련해 평범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 대단한 일이다. 주변에서 평범 이상의 능력을 기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만약, 당신이 평범한 월급쟁이의 평범한 생활을 우습게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그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범한 수준의 직장에서 일을 하고, 평범한 수준으로 벌고, 평범한 수준의 차를 사고, 평범한 수준의 집에 살며, 평범하게 저축을 하면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산다. 엄청난 빚이 있는 것도 아니며 범죄 전력도 보통 없으며, 부부 관계나 부모자식과의 관계도 보통 원만한 수준이다. 이런 것이 얼핏 시시한 삶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전부 만족시키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큰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41-42p

 

 그리고 평범함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만큼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그 내용은 얼마 전에 읽었던 [가면사축]이랑은 거의 반대되는 조언들이라 더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수직사회의 긍정적인 면을 상당히 많이 경험해서 그런지 이 책의 내용에 더 공감했다.

 

 수직사회의 질서가 없으면 역할분담이 쉽지 않으며, 단순한 개인주의 집단이 되면 엄청난 혼란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개인주의적인 사람은 기본적으로 나는 나대로 할 테니까 너는 너대로 해라고 하는 태도로 매사를 생각한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나 몰라라 하는 태도다.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면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누군가 해주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절대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개인주의의 정체이다. 그래서 내가 반복 설명하고 있는 헌신적인 플레이라는 것을 그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원래 팀이라는 의식조차 희박하다. 개인주의적인 크리에이티브 집단 하면 뭔가 듣기는 그럴싸한 것 같아도 그런 인간들만 모인 조직이라면 금방 무너지고 말 것이다. 개인주의라는 것은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제멋대로 나 몰라라 하는 주의인 것이다. 158-159p

 

 시대가 바뀌고 국제화의 파도가 거세도 일본이라는 나라는 봉건제도나 사농공상에서 계속되어온 수직사회를 토대로 형성되어있다. 관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기업도 학교도 지역 사회도 모두 수직사회다. 이는 좋든 싫든 관계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아예 뼛속까지 수직사회에 물들어버리자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용맹 과감하게 수직사회에 반기를 드는 것도 좋지만 일단 수직사회에 푹 빠져보고, 그 후에도 불만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그때 다른 행동을 취해도 좋을 것이다.

  장인들의 세계에서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 전통 예능에서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 이런 수직관계는 기술이나 전통의 승계에 대단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수직사회에서 견디기 힘들어 도망쳐 나왔다 하더라도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규모가 작은, 또 다른 수직사회인 것이다. 170-172p

 

윗사람이 강한 권력을 가지고 아랫사람은 일상업무를 해난다는 이러한 수직사회의 공식은 지금도 중학교나 고등학교, 대학교의 운동부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대학 운돈부의 경우, 1학년생이 여러 일상업무를 해내고 4학년생은 회식비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은 스모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력이 없는 마쿠시타 아래의 선수라도 합숙소의 업무나 시중드는 역할을 함으로써 확실히 먹고 살 수 있는, 스모의 안전망 시스템이다. 만약 야구나 축구처럼 프로스포츠였다면 실력이 없는 선수를 먹여살릴 여지는 전혀 없다. (...) 그래서 시중드는 사람 등을 포함한 스모의 다양한 관례에 대해 낡았어”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아라고 비판하는 것은, 세상을 한쪽에서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164-165p

 

 물론 지금의 나는 상당히 한량처럼 일하고 있지만 주류(?) 의사 사회는 엄청나게 수직적이다. 드라마 하얀거탑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 실제로 그정도인 곳도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 상당히 융통성 없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 정도는 해야 하는 수직사회다. 시작은 대학교 입학 때부터.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내가 다녔던 순천향대는 서울에도 병원이 있지만 지방대에 속해서 그런지 서열 문화가 엄청났다. 머리 염색 안 되고, 남자는 반바지 안 되고, 슬리퍼 신고 돌아다니면 안되고, 치마 길이 등등 온갖 단속과 제한이 있었다. OT에서부터 흙바닥에 구르고 토하면 토하고 와서 술 마시고 그랬다.

 종종 위에도 적었던 나의 다름(?) 때문에 수직사회에서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순천향 문화에 엄청 잘 적응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다 겪어보고 나서 바꾸자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책에 나왔던 것처럼 일단 수직사회에 푹 빠져보고 내가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입장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바꿔나갔다. 겪을 때는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이 나중에 도움이 된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스모 사회의 예시처럼 사실 의사사회 뿐만 아니라 의과대학 생활에서도 수직적인 분위기가 도움이 되는 부분도 상당수 있다. 물론 위에서 괴롭히고 갈구기만 하는 경우도 간혹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의대의 많은 교과서들을 다 사기 어려운데 그런 교과서들도 대대로 후배들에게 물려주기도 하고, 또 족보 - 우리 학교 에서는 야마-나 강의 내용 정리를 스터디 선배들에게 물려받았다. 그것 뿐만 아니라 골학을 가르쳐 주는 것도 선배였고, 실습을 시작하면서 교수님들의 지도도 받지만 레지던트 - 4-5년 선배들의 티칭도 상당히 있었다. 만일 전문의를 따려고 하면 레지던트 생활을 할 때 가르쳐 주고 또 나의 일을 봐주는 사람은 교수님 보다도 윗 년차 선생님들이 많다. 학교로 따지면 1-2학년 차이지만 선생님이나 마찬가지인 거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폭력이나 말도 안되는 악습들까지 옹호할 마음까지는 없지만, 얼마 안 있으면 나를 가르쳐줄 선생님이나 마찬가지인 선배들에게 잘하면서 잘 챙김 받는 건 참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아산병원으로 갈까 말까는 한참 고민했던 거기도 하고. 위에도 적었지만 학교가 지방대라서 그때까지도 그런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아산병원에 가자 그런 부분이 많이 없어졌다. 그만큼 자유롭고 또 존중받는 느낌이긴 했지만 사실 그만큼 소속감을 느끼기 힘들었던 부분도 있다. 물론 내가 소속된 곳이 없는 인턴이라서 그랬겠지만, 인턴이 치프에게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모습은 상당히 충격적이긴 했다. 어쨌든 기본적으로 경험해보지 않고 투덜거렸다가는 힘든 거 하기 싫어서 그런 거 아냐?”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일단 다 견뎌내고 뜯어고칠 부분을 고치자고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초반에 이미지를 잘 다져놔서 그런지 수직 사회 안에서의 자유도 마음껏 누리기도 했고.

 


 이 책에서는 이런 식으로 평범함 그리고 틀이 가지는 가치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내내 생각났던 9GAG의 이미지 하나.


 


 Just because you are unique does not mean you are useful.


 다르다고 해서 유용한 것은 아니다.

 개성이나 오리지널을 추구하면서 전혀 유용하지 않은 다름을 추구해버리고 마는 사람들에게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으니까.

 

 지금의 어른들은 구체적 그림 없이 막연히 꿈을 가져라!’라고 설교를 한다. 일본인은 개성이 없다느니 그런 궤도에 올라타면 안 된다느니 젊은이들의 자의식을 부추기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다.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해야겠구나’ ‘평범한 회사에 들어가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조건 엄청난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부담을 가진다. 확실치도 않은 이 강박관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떻게 될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내 꿈이 뭔지 모르겠어.’

그래도 평범한 회사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

 그렇게 해서 별 생각 없이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니트족이 되어 버린다. 아르바이트족이나 니트족도 어떤 의미에서는 을 강요하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

큰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

그리고 출세의 궤도에 올라타고 싶어.’

 이것은 훌륭한 꿈이다. 112-114p

 

- 그래도 개성을 갖고 싶은 당신에게

 반복하여 말하지만, 나는 개성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개성이 있고 물론 당신에게도 개성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 개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일한 나(only one)라든지 오리지널 같은 것을 동경하는 사람은 자신을 한 송이 호접란처럼 생각한다. 호접란은 주위의 꽃들과는 다른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다른 것을 위압하는 듯한 꽃으로 알려진 난의 한 종류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런 것이 개성이며 스스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만 송이를 피우는 유채꽃밭의 한 송이에도 개성은 있다. 같은 장소에서 피고, 같은 색을 띠고, 비슷한 크기로, 멀리서 보면 전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의 꽃이지만 거기에도 개성은 있다. 어떤 유채꽃이라도 그 꽃의 꿀을 모으는 벌이나 나비가 있으며, 그들은 경유하여 꽃가루 받이를 하는 다른 꽃도 있다. 그리고 씨앗이 만들어지면 채종유의 원료로 인간들이 소중하게 여긴다. 즉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혹은 누군가가 원하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개성 이라고 생각한다. 별 의미도 없이 유달리 눈에 띄거나, 괴짜가 되는 것이 개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누군가가 원하고, 누군가로부터 감사를 받는 것이 그 사람의 존재가치이며 또한 개성이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까 나는 평범함 샐러리맨입니다라든지 나는 그저 평범한 주부입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어떤 일이건 예를 들어 서류에 도장을 찍는 단순한 일이라도 거기에는 당신이 필요한 것이다. 그 일은 당신이 있기 때문에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부들도 마찬가지다. 매일 식사 준비를 하고, 청소를 하고, 세탁을 하고 남편이나 아이들의 생활을 지탱해주고 있다. 이것만큼 명확하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예, 누군가가 원하고 있다는 예는 그렇게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시 당신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원하고 있으며,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 답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이미 충분할 정도로 개성적이며 그 개성과 존재가치는 계속 유지되어가는 것이다. 241-243p

 

 이 책은 내가 처음에 느꼈듯이 개성을 짓밟으려는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무리해서 개성을, 특히 아무 것도 기여할 것이 없음에도 다르다는 것만으로 자신을 어필하려는 바보짓을 그만해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나에게 왜 다르냐는 말이 스트레스 였듯이, 왜 똑같냐는 말이 스트레스가 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책이다. 자신이 평범하고’ ‘개성 없고’ ‘특색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읽는다면, 내가 내 안의 내향성을 부정하고 억누르다가 책 [콰이어트]를 읽고 받았던 정도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그 안에서 긍정적인 힘을 끌어낼 수 있게 해준다. 다름과 같음 그 사이에서 내 위치가 다름에 너무 가까운 상황에서 그걸 억지로 같음으로 밀어넣으려면 고통스럽듯이 반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이야기했듯 진정한 개성이란, 타인과 같은 것을 해나가는 속에서 명확해지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같은 것을 해나가는 가운데 다른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개성이다.’ 무엇을 배우든 하든 초반은 원래 더 힘들다. 이 때 틀을 충분히 나의 것으로 만들고 그 위에 개성을 세우는 것이 순서다. 코드를 익히고 F코드를 잡게 되는 과정이 지나야 기타를 즐겁게 칠 수 있다. 일도 그렇다. 들어가자마자 그 직업이 해야되는 일을 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요리사지만 감자나 깎고 설거지나 해야하고, 변호사이지만 서류 작업이나 도와야 하고, 의사지마 피나 뽑고 오줌줄이나 꽂고 있어야 한다. 다른 직업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일단 틀을 따라가고 틀을 따라갈만큼 따라 간 이후에 제멋대로 했을 때 진짜 개성, 나에게 또 세상에게 도움이 되는 개성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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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 - 남인숙의 여자마음
남인숙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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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를 앞두고
, 게다가 잠시 2개로 늘어났던 나의 방이 다시 하나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장용 책을 더 이상 늘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는 소장해야겠다. 직접적으로 결심한 것은 책 정리를 하다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읽고 나서. 무려 초판으로 가지고 있는데 누렇게 변색된 그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그 감동이 다시 살아나고 또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 글들도 많았다. 중학교 때는 크게 감흥이 없었던 글이었는데 이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게 만든 글도 있었고. 똑같이 좋은 글도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따라서 다르다는 거를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직접 경험을 하고 나니까 이 책이 내가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소장하기로 결심을 했다.

 

 소장하고 싶은 책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그 중에 추리느라 고생했다. 나중에 따로도 포스팅해야지.

 

- 가족을 상대로는 수수께끼를 내는 게 아니다.

 먼 곳까지 강연을 다녀와서 몹시 지쳤던 날이었다. 집에 돌아왔는데 딸아이가 거실을 잔뜩 어질러놓은 것을 보니 짜증이 올라왔다. 그 순간 끌어넘치는 곰솥에 찬물 한술 붓듯 마음을 가다듬고 아이에게 부탁했다.

엄마가 오늘 강연을 하고 와서 지금 굉장히 힘들거든, 좀 깨끗하게 해놓고 쉬고 싶은데 이거랑 저거, 그리고 저것 좀 치워줄래?”

 청소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면 헤헷 하고 웃고는 어물쩍 넘어가는 게 평소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달랐다. 이것 보고 조금 있다가 할 게요하는 식으로 시간을 미루지도 않고 곧바로 시키는 대로 하는 걸 보고 도리어 내가 놀랐다. (...) 여러 경우를 가정해보고 몇 번 적용해본 끝에 나온 유의미한 결론은 이거였다. 내가 원하는 것과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했다는 것.

 알고보면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자신이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직접적인 말이 아닌 다른 것으로 표현한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많은 엄마들은 - 실은 나도 - ‘왜 이렇게 더럽혀놨어?!’ 하고 소리를 빽 지르고는 신경질적으로 청소를 한다. 사실 엄마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감정과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고, 이쯤 되면 아이가 눈치채고 청소를 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자신이 청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엄마가 왜 또 저러지? 괜히 나한테 화풀이야 하는 반발심을 느끼며 당황할 뿐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상황에서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쯤은 알아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며 서로를 괴롭히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로의 기대보다 상대의 마음을 끔찍이도 못 읽어낸다. (...)정글과 같은 세상에서 사력을 다해 생존하고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보호를 받는 이곳에서만큼은 이중,삼중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언어가 필요하다. 특히나 남편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도 깨닫지 못했던 언어의 원형을 영접하게 된다. 은유와 상징은 잘라내고 모든 빈 공간을 실질적인 언어로 채워 넣어야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 이제 나는 이 남자가 나에게 너무 관심이 없구나, 내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는구나 하며 속상해하는 대신 그때그때 내 상태를 정확히 알려주고 각각에 대한 행동 지령을 발표한다.

내가 지금 우울해서 맛있는 걸 먹고 싶거든. 우리 고기 먹으러 나가자.” “지금부터 어떤 사람 욕을 할 테니까 토 달지 말고 무조건 내 편 들어줘. 여자들은 그렇게 하면 기분이 풀리거든.” (...)

 처음에는 내가 이런 것 까지 말로 해야 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가 나를 이상하게 볼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남편은 자기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다 알려주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 전에는 날 우울하게 한 만큼 남편도 혼란스러워하며 답을 찾는 게 당연한 벌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 혼란과 고통 속에서 답을 찾아내야 내 마음이 풀리는 건데. 그는 혼란스러워만 하고 답을 찾는 건 쉽게 포기했다. 그에게 수수께끼를 내기를 포기한 다음부터는 모든 게 수월해졌다. 그냥 그가 잘못한 게 무엇인지, 지금 그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해야 할 최선은 무엇인지 콕 집어 말해준다. 옆구리 찔러서 절 받는 격이지만 나를 위해 무언가 해주려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훨씬 나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191-194p

 

- 가사 분담,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원고 마감을 앞두고 한창 바쁠 때였다. 그날 일을 끝내고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저녁밥을 지어 먹고 나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그때 설거지를 미루고 소파에 퍼져버리면 잠자리에 들기전까지 못 일어날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움직여 설거지를 하는데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고무장갑 위로 툭, 눈물이 떨어졌다. 요리는 내가 하고 밥은 다 같이 먹었는데, 왜 설거지도 내가 해야 하나, 더구나 나는 전업주부도 아니고 일을 하는데... 억울하고 억울했다. 소파에 몸을 맡긴채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남편에게 일순간 살의를 느꼈다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하는 기혼녀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의 남편들만 이럴까?

 첫 번째는 한국사회에서 가장에게 기대하는 책임감 때문이다. 남성들은 능력 유무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가정의 생존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내의 일을 시한부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 (...) 남자들에게 집안일이란 언젠가는 아내가 전담하게 될 일이니 내킬 때만 도와주면 되는 것일 뿐, 결코 내 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한국에서 먹고 산다는 일의 엄혹함이다. 출근 시간은 있으되 퇴근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한국의 직장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을 한다. (...) 일하는 데 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직장인들은 집에 오면 그저 쉬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에게 미루고 싶다. 그러다 보니 사회문화적 배경 때문에 가사에 보다 의무감을 느끼게 되어 있는 여자들이 자연스럽게 집안일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남성성과 가사를 상극으로 보는 문화적 잔재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남편들은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고추 떨어진다고 엄포를 놓던 어머니들 아래서 자랐다. 그 시절에는 학교에서도 가사라는 과목을 여학생들에게만 가르쳤다. 그냥 해도 힘든 일인데 어려서부터 네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배운 일을 나서서 하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이 모든 장애 요인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성들에게 되도록 남편을 가사에 참여시키기를 권한다. 물론 나도 그러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지치고 힘들수록 남편에게 집안일을 부탁하지 않는다.그를 설득하고 언제쯤 그 일을 해줄 건지 물어보고 잊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과정들의 스트레스가 내가 직접할 때 드는 힘을 한참 웃돌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느 정도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래도 이번 생애에는 틀린 것 같은 가사 분담을 그래도 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남편을 위해서다. (...) 가사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가장은 누가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은 평생을 두고 보면 삶의 일부이지만 가정생활은 삶 자체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을 위해서도 집안일은 너무 늦기 전에 어느 정도라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난 나도 포기한 것 - 남편이 집안일을 내 일처럼 당연히 하도록 만드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남편이 그렇게 한다면 그건 그녀의 행운일 뿐이다. 대신 조금씩 설득하고 칭찬해가면서 끌여들여 보는 것이다. 186-190p

 

엄마, 선생님이 지난 학기 교과서를 전부 집에 가져가라고 하셔서 짐을 쌌는데 너무 무거워요. 학교로 좀 와주시면 안 돼요?”

 나는 아이가 웬만큼 크고 나서는 학교에 드나들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을 이용해서 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 시간을 놓치면 좀처럼 다시 집중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 무렵에도 아무리 잠깐이라도 학교에 다녀오고 나면 그날 일은 아예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나이 쯤이면 굳이 부모가 나서지 않아도 자기 일은 알아서 할 수 있다는 것도 이우였다.

 아이의 전화를 받은 나는 한 삼초쯤 망설였떤 것 같다. 밖을 내다보니 마침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우산에 무거운 책 보따리 까지, 아무래도 오늘은 무리겠다 싶었다. 나는 가겠다고 대답으ᅳᆯ 하고 겉옷을 챙겨 입고 학교로 나썼다.

 그런데 딸은 학교에서 나를 기다리지 않고 이미 집 쪽으로 한참 걸어오고 있었다. 횡단보도 앙v에서 나와 조우한 딸은 제가 불러놓고도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 반겼다. 마치 내가 진짜로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아이의 짐을 받아들고 걷는 나를 향해 딸이 연신 말했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 고마워요..”

마치 지나가던 행인에게 호의를 빚진 것처럼 고마워하는 딸의 모습에 나는 좀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약간의 죄책감도 느꼈다. 평소 엄마가 얼마나 냉정하게 느껴졌으면 이런 정도의 일로 저렇게 고마워할까.

 하지만 딸의 얼굴을 보고 그런 생각은 이내 지워졌다. 짐을 덜고 우산을 나눠 쓰며 걷고 있는 딸은 밝게 웃고 있었다. 아이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평소에 나는 아이에게 엄마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고 그걸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가르쳤다. 그날 아이는 내가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마중나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아이의 책가방을 들어주러 학교로 마중 나가는 엄마를 둔 아이들은 느끼지 못할 종류의 감정을 아이는 느끼고 있었다.

 나는 엄마들이 아이를 위해 지나친 희생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희생의 대가가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낄 때의 실망감이 어떤 것인지도 말이다. 아기가 조금씩 제 생각을 가지고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할 때 쯤 엄마들이 몸과 마음의 병을 얻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자식과 남편에게 쏟아 붓는데, 그게 아주 당연한 것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정말 서글픈 일이다. 가족에게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전업주부들만 이런 감정을 겪는 것도 아니다.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쉽게 고갈될 수 있는 워킹맘들도 그런 감정에 괴로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 그녀에게는 희생이 일종의 습관으로 굳어져 있었다. 문제는 그쯤 되면 상대방도 받는 것이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내 노력과 관심의 중심이 내가 아닐 때, 언젠가는 그 대상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내가 받은 상처는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다시 돌아간다. 도대체 누가 잘못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영문 모를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

세상을 물들이는 악은 언제나 불행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행복한 사람은 남에게 결코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결국은 세상에 기여하는 것인 셈이다. 세계 평화라는 거대 담론으로 나아갈 것도 없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우선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이 불행해지니 말이다나는 아직도 내가 행복하지 못했던 시기에 딸을 어떻게 대했는지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너무나 바빠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불행했던 시절이 딸에게 가장 미안하다. 불행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변의 가장 약한 대상에게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자식이다. 그래서 불행한 엄마들이 자신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힘들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

 아이나 남편과의 사이에서 뭔가 삐걱거릴 때 멀리 떨어져 살펴보면 거기에는 항상 내 자신이 아닌 그들을 통해 행복감이나 대리만족 따위를 느껴보려고 하는 내가 있었다. 행복의 중심이 내가 아닐 때 서로가 불행해지더란 말이다. 자꾸만 희생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이 되기 쉽다는 건 씁쓸한 역설이다. 어머니들의 전매특허인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로 시작되는 각종 슬픔의 대서사시가 그 증거다.

 따라서 나는 내가 행복해지는 걸 제일 우선순위에 놓기로 했다. (...) 이런 식으로 점점 더 행복해지다 보면 아주 나이가 많아졌을 때 저절로 세상의 빛이 되어 있지 않을까? 242-247p

 

 임신 육 개월에 접어들 때쯤이었나, 배는 무거워 오는데 아직도 입덧이 가시지 않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남편과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과일 코너의 멜론을 봤는데 태어나서 그런 강렬한 식욕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정말 너무나 먹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의 우리는 지금처럼 먹고 싶다고 덜렁 들어 카트에 실어 넣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 나는 족히 십 분은 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발걸음을 돌려 그냥 집으로 왔지만 이상하게도 그 일이 영 잊히지를 않았다.그리고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이 꽤 오래갔다. 가계부를 쓰던 내 입장에서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해도, 남편이 이거 하나 먹는다고 우리 굶지 않아! 먹고 싶음 먹어야지!’하고 호기롭게 장바구니에 담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해서 멜론은 나에게 서글픔과 원망의 과일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돌이켜 보니 이 신파적인 멜론의 추억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신용카드를 쥐고 있던 내가 그냥 멜론을 샀으면 될 일이었고, ‘이거 하나 먹는다고 굶지 않아! 먹고 싶음 먹어야지!’는 남편에게 기대할 게 아니라 내 입에서 나왔어야 할 말이었다. 당시 아직 이십 대였던 남편은 멜론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무리해서 살 만큼 먹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하는 데까지밖에 생각이 못 미치는 철부지일 뿐이었다. 차라리 그때 내가 결단을 내려 멜론을 사먹고 다음 날 돈이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라도 했다면 궁색하지만 재밌는 추억거리 하나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죄 없는 멜론에 한을 뒤집어씌우는 대신에 말이다.

 나는 아직도 주변에서 슬픈 희생으로 한을 켜켜이 쌓아가는 여성들은 많이 본다. 내 입으로 나를 좀 더 생각해달라고, 배려하고 챙겨달라고 말하는 일이 자존심 상하고 피곤한 일로 여겨질 때가 많다. 하지만 정말 뜻밖에도 가족들은 아내나 어머니가 자신의 욕구를 희생했다는 사실 자체도 알지 못한다. 최근 앞의 멜론 사건의 전말을 남편에게 말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랬어? 그냥 사먹지 그랬어?”

 결국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희생은 원망과 허망함 같은 부정적인 에너지로 바뀌어 고스란히 가족에게 되돌아간다. 나 자신을 허술하게 대접하는 습관은 가족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이제 세상살이에 익숙해진 덕에 내가 원하는 것을 거침없으면서도 맘 상하지 않게 전달하는 화법에 능숙해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때로는 해야 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는 지론을 곧 잘 실천한다. 비록 남편이 내 말에 집중하게 하려면 텔레비전을 끄고 스마트폰을 빼앗은 다음 내 눈을 쳐다보게 해야 하고, 사춘기 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신중히 말을 골라야 하지만.

 이제 스스로를 대접하는 데에 익숙해진 내가 좋다. 멜론에 얽힌 슬픈 추억 따위는 다시 만들지 않을 자신이 있다. 43-46p

 

 엄마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 아빠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 아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 그런데 그 행복은 남이 챙겨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챙기는 거다. 사실 저 위의 메론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우리 엄마도 위의 메론 에피소드처럼 그 상황에서는 말하지 않고 꾸욱 참고 다름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다가 몇 년 후 십 몇 년 후에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스타일. 며칠 전 내가 CAE 합격 턱으로 고기를 샀다. 고기를 먹다가 시헙 공부 이야기하면서 아빠가 시험 준비할 때 엄마가 얼마나 배려했는지, 그리고 엄마가 시험 준비할 때는 아빠가 배려해주지를 않아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기억 없다는 반응.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엄마가 하면 힘들었겠다. 그런데 그때 이거 이거 도와달라고 말하지 그랬어~’ 라고 보탰었는데 워낙에 같은 패턴으로 반복이 되어서 이제는 그냥 그래~’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서인지 다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게다가 올해 말부터는 은퇴하시면서 엄마 아빠 둘다 집에서 지내게 되니까 이런 패턴을 좀 깨야 한다고 생각해서 위의 메론 이야기를 했다. 알아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원하는 게 있으면 구체적으로 말로 하라고. 소제목을 그대로 써서 가족에게 수수께끼 내는 거 아니야라고도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그래봐야 똑같아~’라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요즘에 친할머니께서 몇달에 한 번씩 우리 집에 2-3주씩 와서 지내신다. 아무래도 그러면 엄마가 해야할 일이 몇 배가 되니까 같이 밥을 먹다가 내가 나서서 '아빠가 좀 많이 도와줄 수 있을 때 할머니를 모셔오자'고 얘기했었다. 그때는 게다가 엄마가 학교를 다니는 상황이었는데 할머니께서 우리와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으셔서 챙겨드리려고 점심시간에 집까지 왔다가기도 하고, 주말에도 우리 아침 먹고 할머니 아침 챙겨 드리고 우리 점심 먹고 할머니 간식 챙겨드리고 같이 저녁 먹고. 때마다 약 챙겨 드리고 평소보다 집안 상태에 신경을 더 써야 하는 것까지. 그런데 아빠는 일의 연장선상이라고는 하나 그 때 유독 바빠서 일주일에 3-4번 회식에 주말에는 골프를 갔거든. 그래서 할머니께서 큰집으로 돌아가시고 셋이서 밥을 먹을 때 내가 할머니께서 오실 때는 아빠가 최소한 평일 2번은 같이 식사하고, 오시기 전 주말은 다같이 대청소할 수 있게 잡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오히려 나는 서운하지 않은데 왜 그러냐. 일이고 사회생활인데 어쩔 수 없는 거 난 이해한다 라며 나를 몰아붙였다. 제일 어이없었던 것은 그러고서 몇 달 후 유현이가 전에 얘기를 참 잘했다고 이야기를 했다는 거. 뭐야? 나한테 뭐라고 하지를 말던가, 엄마가 자기가 원하는 거 힘든 거를 말하지 않아서 내가 이야기를 했을 때 오히려 내가 유난 떠는 것처럼 그래놓고!!!

 나는 내가 화가 나면 뭐에 대해서 화가 났는지 콕 찝어서 이야기하고, 서운한 점도 바로 이야기하고,원하는 게 있으면 알아차려주길 기다리지 않고 먼저 말한다. 여자들은 보통 안 이런 다는데 내가 왜 이런 성격이 되었나 했는데 엄마처럼 참고 알아주길 기다렸다가는 죽도 밥도 안된다는 걸 봐와서 일지도 모른다.

 내 삶을, 내 시간을 내가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남들도 그것을 함부로 대하게 된다. 희생이 습관이 되듯, 받는 것도 습관이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가족에게 또 나에게 해주는 만큼 절대로, 절대로 돌려줄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가족들이 원하는 것보다 엄마가 원하는 것을 열심히 챙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예전에 엄마에게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라는 책도 줬었고.

 엄마가 나에게 너도 결혼해봐라 그럼 이해할 거라고 하는데 이건 성격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남편이랑 부딪히는 부분도 당연히 있겠지만 엄마와 내가 워낙 성격이 다르니까. 책에서 결혼 생활을 해보면서 깨달은 방법인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기를 난 지금도 하고 있거든. 특히 남자인 친구들에게는 원하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말한다. 책에 나온 예시랑 거의 비슷한데 오늘 정말 쓰레기 같은 일을 겪었는데 어차피 해결 방법 없는데 속이 답답해서 한 번 쏟아붓는다. 들어줘 라고 하기도 하고 심지어 오늘 생일이니까 축하해라(해줘라도 아님) 라고도 하는 사람이라. 블로그만 봐도 평소에는 진짜 혼자서 주절거리는 느낌이다가도 응원이 필요할 때는 응원해주세요, 자랑일 때는 자랑합니다 이런 식으로 딱딱 요구를 하거든. 문득 생각해보니 엄마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이 쌓여서 그런지 원하는 걸 말하지 않고 그냥 알아주기를 뉘앙스로 비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해주지 않는다. 원하는 걸 얻어내기 위해서 표현하려는 노력 정도는 하라고. 물론 말하는 사람에게는 엄청 잘 챙겨주긴하는데 확실히 내가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닌듯.

 그리고 엄마와는 다른 결혼생활을 할 것 같은 이유 하나 더 꼽자면 나는 집이 더러운 꼴 잘 보거든. 보통 남편들이 집안일을 해도 다시 해야 된다, 눈에 안 찬다 그러면서 자기가 다 하는 사람들 상당히 많은데 난 대충 해도 그냥 살 자신 있고, 심지어는 안 하면 방치할 자신 있음.


 다시 강조하지만 나의 삶과 나의 시간을 내가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나서서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챙겨주는 사람도 아주 드물게, 이 세상의 슈퍼히어로 비율 정도로 있을 수도 있는데 그건 그 사람이 대단한 거지 당연한 게 아니다. 내가 나를 좀 소중히 여기자.

 

 워낙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워킹맘, 전업맘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글을 쓸 거라 짧게만.

 

 나는 이제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이 그만 오가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남녀 임금 격차로 십수년째 OECD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성격차 지수가 이슬람 국가들과 함께 세계 최하위권인 나라에 살면서 여자의 적이 여자라니. 좁은 입지에서 서로 경쟁하다 보니 여자들끼리 부대끼는 건 당연한 건데, 보다 운신이 자유로운 남자들은 그걸 구경하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몇몇 여자들은 당장 자신을 짜증나게 하는 여자를 보며 그 말을 따라한다. 어떤 여자가 상처를 주었다면 그 사람이 나쁜 거지 여자가, 전업맘이 워킹 맘이 나쁜 게 아니다. 222p

 

 미친 여자가 있다면 여자가 미친 게 아니라 그 여자가 미친 거다. 쓰레기 같은 남자가 있다면 남자가 쓰레기가 아니라 그 남자가 쓰레기인 거다. 특정 집단을 일반화했을 때 돌아오는 것은 그 집단이 나를 본격적으로 처치해야할 적으로 느끼게 된다는 것뿐이다. 지금 이 세상을 여자로 사는 것도 참 힘들고, 남자로 사는 것도 참 힘들다. 워킹맘으로 사는 것도 힘들고, 전업주부로 사는 것도 힘들다. 내가 하는 일이 중간중간 쉬는 텀이 있는데 그때마다 느꼈다 나는 전업주부로는 절대 행복하게 살 수 없겠구나. 이에 관해서는 [전업주부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포스팅을 따로 해서 구구절절 풀어낼 예정이다.

 

 제목만 보고는 살짝 까칠한 이야기, 부정적인 독설들이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 동안 손을 못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니 일러스트도 귀엽고 에피소드들도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정이 묻어나서 내내 입꼬리를 올리고 읽었다. 처음에 적었듯이 이 책이 내가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져서 소장하기로 결정을 했고, 나이가 들어서 내가 혹시라도 결혼을 한다면, 아이를 낳는다면 이 책이 어떻게 읽힐지도 궁금하다. 잘 간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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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남자 요즘 연애
김정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한국 남자 버전의 섹스 앤 더 시티
. 사랑과 이성에 대한 마인드가 다른4명의 친구들이 섹스도 하고 사랑도 하고 상처도 받고 서로 싸우고 위로도 하는 이야기이고, 심지어주인공 역할은 작가다!

 사실 섹스 앤 더 시티를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와 내 친구가 사는 삶의 모습과 상당히 다른 모습 -처음 만난 여자를 헌팅을 해서 그날 끝까지 가는? - 에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남자들이 생각하는 여자와 사랑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상당히 즐거웠다. 보통 남녀로 나눠서 여자는 보통 이렇고 남자는 보통 이렇다는 식으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위에 적었듯이 남자 4명이 전부 사랑과 여자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에 여러 모습의 남자들의 마음을 따라가 볼 수 있었음.

 

 최근 가장 큰 이슈 하나는 젠더 워 Gender war. 페미니즘의 수용에 따른 남성과 여성의 불협화음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잘못된 방식이 아니라면, 남성들 또한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을 반길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남성성을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진짜 수다를 풀어낸 이 책을 통해, 젠더 워가 종식되길 바란다. 남자들에겐 반성을, 여자들에겐 이해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 7p

 

 이 책의 서문에 적혀있듯이 여자들에게 남자 그리고 남자들의 연애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책이었음. 남자들끼리 사랑에 관해서, 여자에 관해서 말싸움을 하는 모습이 상당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음.

 그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한가에 대한 토론 부분.

 

아는 오빠, 친한 오빠, 좋은 오빠, 원래 알던 오빠, 남친 욕하는 오빠, 초등학교 동창, 친구 남친의 친구, 여친 선물을 함께 골라달라는 친구, 헬스장 트레이너, 게이 친구, 소울메이트, 취재원하다 알게 된 오빠. 이런 애들이 지연이 주위에 얼마나 널려 있는지 알아? 씨발, 내가 진짜!” 준이가 분에 못 이겨 소리쳤다.

그렇다고 일일이 만나지 말라며 간섭할 수 없는 노릇이고.” 주영이가 한숨을 쉬었다. “걔들 다 꿍꿍이 있는 거라고, 절대 믿지 말라고 했을 때 지연이가 뭐라 했는 줄 아냐?”

- 왜 세상 모든 남자들이 다 오빠 같을 거라 생각해? 그 오빤 절대 아냐.

 준이는 지연이의 말투를 흉내 내며 눈물을 조금 보였다. (...) 준이와 같은 상황을 겪는 남자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 모두 조리있게 논쟁할 말발을 갖고 있진 않다. 그저 육체적 접촉의 위험성만 운운하며 감정을 쏟아내는 데 정신이 팔린다. 그렇게 우리 남자들은 남녀 사이를 떠난 범인류적인 우정 따윈 생각 못하는, 일차원적인 스킨십만 상상할 뿐인, 유치한 남자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사랑에 빠진 준이 역시 그랬고.

 속내는 훨씬 복잡하다. ‘그 남자가 너한테 뽀뽀라도 하면 어떡해!’라는 단순한 걱정이 아니란 얘기다. 그 남자가 가진 늑대 본성을 우선적으로 염려하는 건 맞다. 준이 역시 그 오빠를 맹신하는 태도가 정말 답답했다. 비록 첫 만남이 술자리이긴 했지만 나에게는 어떤 추파도 던지지 않았다는 오빠,오히려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말을 걸어왔다는 오빠, 대화를 몇 마디 나눠보니 생각도 바르고 매너가 좋았다는 그 오빠, 여자들이 이런 얘길 할 때면 남자들은 하나같이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거야, 알면서도 그리 믿고 싶은 거야? 그게 아니라면 좋은 사람만 마나는 여자라는 자부심, 혹은 내가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좋은 사람이라는 정당성을 확보하고 싶은 거야?’

끊임없이 그 오빠를 좋은 사람이라 옹호하는 여자 친구를 보면 정말로 기가 막힌다. 여자들이여, 그렇게 젠틀해 보이는 인간들이 오히려 더 위험한 선수라는 걸 알아야 한다!

물론 그 외침은 닿지 않는다. 심지어 남자 친구보다도 그 오빠를 더 믿는 모습을 대놓고 드러낸다. 세상 모든 남자를 믿지 않더라도 나만은 믿어!’라는 나의 말엔 코웃음 치던 여자친구가, 그 오빠를 그렇게나 믿는단 사실은 대단히 혼란스럽다. 이게 끝이 아니다. 남녀관계에서 중요한 건 정신적인 유대감이지 스킨십이 아니라는 그녀의 평소 논리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남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스킨십이 없으므로 친구일 뿐이라는 그 논리에 사랑에는 스킨십보다 정신적인 유대감이 중요하다며?’라고 되묻고 싶다.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일상을 공유하고, 영화보고 밥 먹고 커피를 마시는 등 데이트에 준하는 시간을 보내는 건 분명 정신적인 유대감을 형성한단 얘기 아닌가. 다른 남자들과 스킨십을 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이 기분 나쁜 게 아니다. 그들과 정신적인 유대감을 쌓는 시간 자체가 신경 쓰이는 거다. 남자친구에겐 늘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성 친구에겐 자연스레 터놓을 수 있어 좋다는 여자들이 간혹 있다. 그건 마치 나는 손도 대지 못했던 내 여자 친구의 일기장에, 다른 놈이 낙서를 해놓은 걸 보는 기분과 똑같단 걸 알아주길. 69-71p

 

 나의 경우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하다는 쪽이었는데 이 책의 마지막 줄을 보면서 정말 싫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자인 친구들만큼 남자인 친구들도 소중하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만나는 사람의 50% 이상이 남자였는데 그 중에 친구로 남을 만한 좋은 인간들이 당연히 많았다. 나는 오히려 이성인 친구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더 신기하다. 그건 마치 미국에서 살면서 다양한 인종을 만나지만 백인 친구만 있는 것 같달까. 분명히 성별에 따라 다른 점도 있지만 결국 똑같은 인간이라 공감대도 많고 - 선입견과 달리 남자들도 엄청 수다스럽고! - 그리고 다르기 때문에 대화가 더 풍성해지는 부분도 있고. 언젠가 선을 넘을 위험이 있어서 우정이 아니라고 하면 동성친구도 언젠가 연락이 뜸해지고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으니 우정이라고 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현재 내가 저 인간과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지만 멋진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만들어갈지 바로 옆은 말고 그냥 근처에서 지켜보면서 응원해주고 응원 받으며 지내고 싶은 관계. 같은 여자라면 친구가 되지만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아니라고 해야하는 거냐고!

 그렇게 생각했고, 여전히 그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이 책에서 워낙에 말을 잘 풀어놔서 기분 나쁠 만한 일이라는 건 충분히 납득을 했다. 여자친구의 일기장에 다른 놈이 낙서를 하는 꼴이라니 다시 읽어도 빵 터진다. 이런 식으로 남자들의 다양한 마음을 찰진 표현력으로 들춰낸다. 내가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만화책을 참 아끼는 데 아끼는 가장 큰 이유가 여자들이 사랑을 하면서 또 일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생각해도 쪽팔리고 부끄러운 감정이지만 울컥 쏟아져나오는 감정들을 잘 표현해줘서.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는 연애 도중 말로 표현하기는 쪽팔리고 꼴사나운 남자들의 감정들, 특히 여자들에게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잘 담겨 있었다.

 


진실한 사랑 그 자체가 중요한 거잖아, 그치. 요령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

요령도 중요하지, 오빠. 사랑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중요하잖아.” 준이가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요령은 사람의 진심이 아니잖아.”

? 요령도 그 사람 캐릭터의 일부야. 봐봐, 오빠. 선물이란 건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전달하는 방식도 중요해. 아무리 비싼 선물을 샀어도, 편의점 봉지에 넣어서 툭 던져주면 그걸 엄청 공들여서 샀다고 어떻게 생각하겠어? 요령은 그런 포장법 같은 거야. 메시지가 중요한 만큼 그걸 전달하는 채널도 중요하다는 거지.”

아니, 적어도 연애에선 그럼 안 되는 거 아냐? 그럼 애초부터 사랑이 아니라 사람,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나 방식을 따진다고 알려줘야지. 우아한 척, 진실한 사랑에 대해 운운하면서, 결국엔 요령이 없다고 등을 돌리는 여자들은 문제가 있어. 차라리 예쁜 여자 좋아한다는 남자들처럼 인정을 하든다.” 말이 좀 심하게 나갔다. 역시 여자친구와 이런 대화는 하면 안 된다. 그녀는 단호히 대답했다.

. 근데 나도 그런 남자에게 끌려. 그러니까 오빠도 요령을 좀 키워봐.”

 단순한 불만이라 생각했다. 여자들을 일반화하는 말에 대한 반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요령을 중요하게 여기는 행동은 관계에 예의를 지키지 않는, 의리를 무시한 대답이라고 나무란 적도 있었으니까.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그녀는 내게 솔직했던 거다. 자신이 받고 싶은 사랑, 자기가 원하는 그런 연애의 형태에 대해서. 아무리 순도 높은 보석이라고 해도 능수능란한 세공사의 다듬질 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석은 애용할 수 없다고 분명히 표현했다. 난 기껏 찾은 원석을 도무지 다듬을 수 없단 자격지심에 빠져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타인의 기호를 이해하는 요령을 부리는 게 어려웠던 난, 그저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을 했을 뿐이다. 그게 편했다. 그래서 그녀를 놓쳐버렸다. 212-213p

 

 주인공이 자신의 이별을 곰씹으면서 처음에 쌍년이었던 그 여자에 대해서 조금씩 생각을 달리하고 또 자신을 돌아보는 부분을 보면서는 영화 [500일의 썸머]가 떠올랐다. 영화 자체도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누구의 탓이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재미도 있었던 영화. 특히 남자 주인공이 자기자신의 방식으로 사랑을 했다는 점이 가장 비슷했고. 영화는 톰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또 자세하게 풀어주기 않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는 썸머가 쌍년이네 하다가 다시 보거나 썸머의 입장에서 사건들을 되짚어 보면서야 그녀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 책은 주인공과 함께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되새기고 또 그녀를 이해하고 사람과 사랑에 대해 성숙해가는 과정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읽으면서 여자의 입장에서 몇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음.

 여자 친구에게 지갑 받았다는 이야기에 너는 뭐 줬냐고 양아치라는 이야기를 듣는 남자. 남자친구에게 가방을 주고, 오빠 생일에 직접 만든 케이크를 줬다는 여자. 그 이야기에 가방 까지 받고선 케이크만 주는 건 좀 그렇지 않다고 하는 한 명은 다른 여자친구들에게 질타를 받는다고 했는데, 결국 사람 나름이다. 그런 친구들끼리 어울리는 사람도 있는 거고, 아닌 사람도 있는 거고. 남녀로 나눠서 이야기할 부분은 아닌게 나의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때는 나 이거 받았다 하면 우와~ 넌 뭐해줬어 라고 물어보면서 별거 안 해줬으면 남자의 예시처럼 구박하거든. 그리고 기본적으로 누구에게 선물받은 거로 자랑하는 이야기 자체를 별로 안 하고, 차라리 내 돈 모아서 산 거를 자랑하면 하지.

 

 주영이 집안에서 만든 칼은 거의 모든 레스토랑의 오너 쉐프들이 애용했고, 그들은 당연히 주영이를 알아봤다. 그래서 주영이가 갈 때면 메인 쉐프가 직접 요리를 한 뒤 우리 테이블에 와서 음식 맛을 자세히 물어보곤 했다. 그저 맛있다는 말만 반복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주영이는 재료와 식감, 양념과 조리법에 대한 소감을 늘 상세히 전달했다. 그 절차는 꽤 부담스러워 보였는데 언제나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주영이를 보며 감탄하곤 했다. 그건 주영이가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했을 때의 일종의 법칙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상황 자체가 귀찮진 않았지만, 자기 앞에 앉아 있는 타인의 눈빛이 그 상황으로 인해 바뀌는 걸 보는 게 거북스럽다고 주영이는 늘 얘기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자기 모습을 보며 실망하던 여자들이 그런 상황에선 급격히 호의적인 태도로 바뀌는 게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녀석이 처음부터 집안 얘기를 숨기려 한 건 아니었다. 칼을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나 가업을 이어야 할지도 모른단 얘길 꺼내면 여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두 단계로 나뉜다고 했다. 찌푸린 눈썹을 억지 다림질해가며 그래요?’라는 무미건조한 대답을 하는 거, 그리고 그 주제론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반응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쪽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니 만큼, 당연히 칼을 만드는 직업을 낯설게 생각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함께 레스토랑에 가서 VIP 대접을 받기라도 하면, 혹은 그와 비슷한 상황을 통해 주영이 집안의 화려한 실체를 알게 되면, 백팔십도 바뀌어버리는 여자들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녀석에게 있어 그런 태도 변화는 두 번 마주하기 싫을 만큼 괴로운 것이었다. 79-80p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백팔십도 바뀌는 여자들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일단 위에 친구들도 그랬듯이 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모습을 보이면 같은 동성 친구도 남녀를 떠나서 감탄을 하게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여자를 대표해서 말하기는 어려우니까 내 기준으로만 따져봐도 한 분야에 대해 정통하고 또 그것을 인정받으면서 그 능력을 내보이는 사람의 모습은 멋있을 수 밖에 없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얼마전에 가족들과 함께 갔던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 야노슈카 앙상블이라는 연주자들이 나왔다. 우리나라에 까지 초청받을 정도로 세계적인 연주자지만 첫인상은 배 나오고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들로 보였음. 그런데 한 곡 한 곡 연주를 할수록 제대로 빠져들었다. 멋있고 잘생기고 진짜 심장까지 두근거릴 정도.

 나는 남자가 여자보다 돈을 잘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분야 혹은 내가 잘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서 박식하거나 인정받고 뛰어난 모습이 보일 때 남자로서의 매력이 느껴진다.그래서 나는 위의 상황에서 분명히 우와~ 감탄하면서 정말 멋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 물론 그걸 스펙을 따지는 걸로 보거나 혐오표현인 김치녀스러운 거라고 매도해버리는 사람도 있을 거다. 돈을 뇌고 배경을 노리고 접근하는 여자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이성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부분일 뿐이라는 거지. 실제로 여자들 중에 내가 못하던 일을 손쉽게 처리하거나 내가 잘 다루지 못하는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많고. 가슴이 큰 여자에게 끌리는 남자가 있고, 하얀 피부에 끌리는 남자가 있듯이 나는 꼭 사회적인 지위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능력이 있고 목표가 있는 사람이 좋다. 물론 나도 그만큼 능력 있는 여자가 되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고.

 

 처음에 적었듯이 남자 버전의 섹스 앤 더 시티. 남자들의 여러 가지 사랑모습과 고민들을 읽어보면서 평생을 함께할 수 밖에 없는 -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일상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자 없는 세상은 없다 - 남자들에 대해서 공감까지는 아니어도 머리로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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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미안해 -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 (아동학대.가정폭력)
고주애 지음, 최혜선 그림 / 소담주니어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담주니어에서 출판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 - 아동학대, 가정폭력

아빠가 미안해 / 고주애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 추천 도서.


 [스즈키 선생님]이라는 학교 만화를 읽으면서 만화책이라고 가볍고 웃긴 내용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 [아빠가 미안해]라는 동화책을 읽으면서 동화책 역시 중요하고 무서우면서도 알아야 하는 내용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음.





 우리가 돌아섰을 때 아빠가 방문 앞에 떡 버티고 서 계셨어요. 며칠째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아빠라서 그런가 머리털도 덥수룩하고, 수염도 북실북실하고, 얼굴은 벌겋고, 안 씻은 냄새도 났어요. 낯선 아저씨, 아니 곰 같았어요. 마치 겨울잠을 자고 나온 배고픈 곰같이 거대하고 무서웠어요.

 "왜 이렇게 시끄러워!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술 때문인가... 곰처럼 큰 소리로 으르렁 거리는 것 같았어요. (...)


"아. 아악.. 흠.... 자, 잘못했어요. 아악, 정말 잘못했어요."

 아빠의 손이 그렇게 큰지, 그렇게 아픈지 처음 알았어요. 다정하게 나를 쓰다듬어 주셨던 그 손이 맞나? (...)



 



 마침 퇴근한 엄마가 현관문 입구에 장바구니도 떨구고 우리에게 달려오셨어요. 그리고 성난 곰으로부터 우리들을 보호해주셨어요. 마치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어 주는 것처럼, 천사가 감싸 주는 것처럼.

 하지만 성난 곰은 엄마도 막 때렸어요. 소중하고 착한 우리 엄마를... 우리를 대신해서 엄마가 아파요. (...)


 "다 쟤 때문이야. 쟤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제가 태어났을 때 새어머니가 들어왔고, 철이가 태어났어. 아버지는 이제 철이가 있으니까 나는 필요 없대. 같은 핏줄이 아니라고... 아버지가 나를 버리셨어." (...)


누군가 나를 노려보며, 그것도 평소에 나를 많이 사랑해 준 어른이 큰 소리로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하고 외친다면 그건 너무 무서운 일일 것 같아요. 이런 말 하면 엄마는 속상하겠지만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것 같아요.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또 회복이 되어가는 가족의 모습이 나온다 그렇게 동화가 마무리 되고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나온다.




무엇을 아동학대라고 부를까요? 그리고 그 학대를 의심해야 하는 경우.

* 신체학대 아동의 몸을 아프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겨드랑이, 팔뚝, 허벅지 안쪽 등 다치기 어려운 부위의 상처가 있는 경우.

 부모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갖는 경우

 담뱃불 자국, 뜨거운 물에 잠겨 생긴 화상 자국이 있는 경우


* 정서학대 아동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 탈모가 생긴 경우

 갑작스러운 폭력 성향과 행동 장애를 보이는 경우

 발달 지연, 자살 시도, 언어 장애, 비행 등을 보이는 경우

 특정 물건을 계속 빨고 있거나 물어뜯는 경우


* 성학대 아동과 함께하는 모든 성적 행위를 말합니다.

 성기나 항문 주위에 통증이나 상처가 있는 경우

 걷거나 앉는 데 어려움을 표하는 경우

 나이에 맞지 않는 성적 행동을 하거나 해박하고 조숙한 성 지식을 가진 경우

 위축, 환상, 퇴행 행동을 보이고 혼자 남아 있기를 거부하는 경우

 특정 유형의 사람들 또는 성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경우


* 방임 아동의 양육과 보호를 소홀히 하여 방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양실조, 발달 지연, 성장 장애를 보이는 경우

 음식을 구걸하거나 훔치는 경우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거나 청결하지 못한 외모

 학교에 일찍 등교하고 집에 늦게 귀가하는 경우

 특정한 사유 없이 무단결석을 하는 경우

 예방 접종 등 아픈데도 치료를 받지 않거나 건강 상태가 불량한 경우





아동학대를 목격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가.

1단계 : 아동학대 의심상황을 발견합니다

 아동학대 유형 및 징후를 인지합니다.

 아동 및 보호자를 관찰, 면담하여 아동학대 가능성을 파악합니다.

 응급 상황 시 아동의 안전을 우선 확보합니다.


2단계 : 112 (경찰)에 아동학대 신고를 합니다.

 가능한 한 아동과 그 가정에 대한 많은 정보를 파악하여 즉시 신고합니다.


3단계 : 지속적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협력을 유지합니다.

 피해 아동에 대한 재학대 여부를 지속 관찰합니다.

 의심스런 상황 발생 시 신속하게 112 또는 아동 보호 전문 기관에 연락합니다. http://korea1391.org





 이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른, 특히 "부모"를 위한 동화책이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부모 성장 동화!

아쉬운 부분이라고 하면 가정폭력의 해소 과정을 너무 쉽게 그린 것 같다는 거. 동화니까^^;; 그렇지만 가정폭력, 아동학대의 경우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또 점차 강도가 높아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걸. 잘못했다와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빌면서 돌아와서는 어느 순간 돌변해버리고, 그래서 이름까지 바꿔가면서 도망가고 숨어 살아야하는 경우까지 생기는 거고.


 그래도 아동 학대를 아이의 시선으로 함께보면서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 보면서 그 무서움과 심각성을 느껴볼 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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