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자 요즘 연애
김정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한국 남자 버전의 섹스 앤 더 시티
. 사랑과 이성에 대한 마인드가 다른4명의 친구들이 섹스도 하고 사랑도 하고 상처도 받고 서로 싸우고 위로도 하는 이야기이고, 심지어주인공 역할은 작가다!

 사실 섹스 앤 더 시티를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와 내 친구가 사는 삶의 모습과 상당히 다른 모습 -처음 만난 여자를 헌팅을 해서 그날 끝까지 가는? - 에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남자들이 생각하는 여자와 사랑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상당히 즐거웠다. 보통 남녀로 나눠서 여자는 보통 이렇고 남자는 보통 이렇다는 식으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위에 적었듯이 남자 4명이 전부 사랑과 여자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에 여러 모습의 남자들의 마음을 따라가 볼 수 있었음.

 

 최근 가장 큰 이슈 하나는 젠더 워 Gender war. 페미니즘의 수용에 따른 남성과 여성의 불협화음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잘못된 방식이 아니라면, 남성들 또한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을 반길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남성성을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진짜 수다를 풀어낸 이 책을 통해, 젠더 워가 종식되길 바란다. 남자들에겐 반성을, 여자들에겐 이해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 7p

 

 이 책의 서문에 적혀있듯이 여자들에게 남자 그리고 남자들의 연애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책이었음. 남자들끼리 사랑에 관해서, 여자에 관해서 말싸움을 하는 모습이 상당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음.

 그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한가에 대한 토론 부분.

 

아는 오빠, 친한 오빠, 좋은 오빠, 원래 알던 오빠, 남친 욕하는 오빠, 초등학교 동창, 친구 남친의 친구, 여친 선물을 함께 골라달라는 친구, 헬스장 트레이너, 게이 친구, 소울메이트, 취재원하다 알게 된 오빠. 이런 애들이 지연이 주위에 얼마나 널려 있는지 알아? 씨발, 내가 진짜!” 준이가 분에 못 이겨 소리쳤다.

그렇다고 일일이 만나지 말라며 간섭할 수 없는 노릇이고.” 주영이가 한숨을 쉬었다. “걔들 다 꿍꿍이 있는 거라고, 절대 믿지 말라고 했을 때 지연이가 뭐라 했는 줄 아냐?”

- 왜 세상 모든 남자들이 다 오빠 같을 거라 생각해? 그 오빤 절대 아냐.

 준이는 지연이의 말투를 흉내 내며 눈물을 조금 보였다. (...) 준이와 같은 상황을 겪는 남자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 모두 조리있게 논쟁할 말발을 갖고 있진 않다. 그저 육체적 접촉의 위험성만 운운하며 감정을 쏟아내는 데 정신이 팔린다. 그렇게 우리 남자들은 남녀 사이를 떠난 범인류적인 우정 따윈 생각 못하는, 일차원적인 스킨십만 상상할 뿐인, 유치한 남자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사랑에 빠진 준이 역시 그랬고.

 속내는 훨씬 복잡하다. ‘그 남자가 너한테 뽀뽀라도 하면 어떡해!’라는 단순한 걱정이 아니란 얘기다. 그 남자가 가진 늑대 본성을 우선적으로 염려하는 건 맞다. 준이 역시 그 오빠를 맹신하는 태도가 정말 답답했다. 비록 첫 만남이 술자리이긴 했지만 나에게는 어떤 추파도 던지지 않았다는 오빠,오히려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말을 걸어왔다는 오빠, 대화를 몇 마디 나눠보니 생각도 바르고 매너가 좋았다는 그 오빠, 여자들이 이런 얘길 할 때면 남자들은 하나같이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거야, 알면서도 그리 믿고 싶은 거야? 그게 아니라면 좋은 사람만 마나는 여자라는 자부심, 혹은 내가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좋은 사람이라는 정당성을 확보하고 싶은 거야?’

끊임없이 그 오빠를 좋은 사람이라 옹호하는 여자 친구를 보면 정말로 기가 막힌다. 여자들이여, 그렇게 젠틀해 보이는 인간들이 오히려 더 위험한 선수라는 걸 알아야 한다!

물론 그 외침은 닿지 않는다. 심지어 남자 친구보다도 그 오빠를 더 믿는 모습을 대놓고 드러낸다. 세상 모든 남자를 믿지 않더라도 나만은 믿어!’라는 나의 말엔 코웃음 치던 여자친구가, 그 오빠를 그렇게나 믿는단 사실은 대단히 혼란스럽다. 이게 끝이 아니다. 남녀관계에서 중요한 건 정신적인 유대감이지 스킨십이 아니라는 그녀의 평소 논리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남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스킨십이 없으므로 친구일 뿐이라는 그 논리에 사랑에는 스킨십보다 정신적인 유대감이 중요하다며?’라고 되묻고 싶다.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일상을 공유하고, 영화보고 밥 먹고 커피를 마시는 등 데이트에 준하는 시간을 보내는 건 분명 정신적인 유대감을 형성한단 얘기 아닌가. 다른 남자들과 스킨십을 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이 기분 나쁜 게 아니다. 그들과 정신적인 유대감을 쌓는 시간 자체가 신경 쓰이는 거다. 남자친구에겐 늘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성 친구에겐 자연스레 터놓을 수 있어 좋다는 여자들이 간혹 있다. 그건 마치 나는 손도 대지 못했던 내 여자 친구의 일기장에, 다른 놈이 낙서를 해놓은 걸 보는 기분과 똑같단 걸 알아주길. 69-71p

 

 나의 경우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하다는 쪽이었는데 이 책의 마지막 줄을 보면서 정말 싫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자인 친구들만큼 남자인 친구들도 소중하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만나는 사람의 50% 이상이 남자였는데 그 중에 친구로 남을 만한 좋은 인간들이 당연히 많았다. 나는 오히려 이성인 친구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더 신기하다. 그건 마치 미국에서 살면서 다양한 인종을 만나지만 백인 친구만 있는 것 같달까. 분명히 성별에 따라 다른 점도 있지만 결국 똑같은 인간이라 공감대도 많고 - 선입견과 달리 남자들도 엄청 수다스럽고! - 그리고 다르기 때문에 대화가 더 풍성해지는 부분도 있고. 언젠가 선을 넘을 위험이 있어서 우정이 아니라고 하면 동성친구도 언젠가 연락이 뜸해지고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으니 우정이라고 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현재 내가 저 인간과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지만 멋진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만들어갈지 바로 옆은 말고 그냥 근처에서 지켜보면서 응원해주고 응원 받으며 지내고 싶은 관계. 같은 여자라면 친구가 되지만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아니라고 해야하는 거냐고!

 그렇게 생각했고, 여전히 그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이 책에서 워낙에 말을 잘 풀어놔서 기분 나쁠 만한 일이라는 건 충분히 납득을 했다. 여자친구의 일기장에 다른 놈이 낙서를 하는 꼴이라니 다시 읽어도 빵 터진다. 이런 식으로 남자들의 다양한 마음을 찰진 표현력으로 들춰낸다. 내가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만화책을 참 아끼는 데 아끼는 가장 큰 이유가 여자들이 사랑을 하면서 또 일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생각해도 쪽팔리고 부끄러운 감정이지만 울컥 쏟아져나오는 감정들을 잘 표현해줘서.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는 연애 도중 말로 표현하기는 쪽팔리고 꼴사나운 남자들의 감정들, 특히 여자들에게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잘 담겨 있었다.

 


진실한 사랑 그 자체가 중요한 거잖아, 그치. 요령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

요령도 중요하지, 오빠. 사랑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중요하잖아.” 준이가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요령은 사람의 진심이 아니잖아.”

? 요령도 그 사람 캐릭터의 일부야. 봐봐, 오빠. 선물이란 건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전달하는 방식도 중요해. 아무리 비싼 선물을 샀어도, 편의점 봉지에 넣어서 툭 던져주면 그걸 엄청 공들여서 샀다고 어떻게 생각하겠어? 요령은 그런 포장법 같은 거야. 메시지가 중요한 만큼 그걸 전달하는 채널도 중요하다는 거지.”

아니, 적어도 연애에선 그럼 안 되는 거 아냐? 그럼 애초부터 사랑이 아니라 사람,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나 방식을 따진다고 알려줘야지. 우아한 척, 진실한 사랑에 대해 운운하면서, 결국엔 요령이 없다고 등을 돌리는 여자들은 문제가 있어. 차라리 예쁜 여자 좋아한다는 남자들처럼 인정을 하든다.” 말이 좀 심하게 나갔다. 역시 여자친구와 이런 대화는 하면 안 된다. 그녀는 단호히 대답했다.

. 근데 나도 그런 남자에게 끌려. 그러니까 오빠도 요령을 좀 키워봐.”

 단순한 불만이라 생각했다. 여자들을 일반화하는 말에 대한 반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요령을 중요하게 여기는 행동은 관계에 예의를 지키지 않는, 의리를 무시한 대답이라고 나무란 적도 있었으니까.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그녀는 내게 솔직했던 거다. 자신이 받고 싶은 사랑, 자기가 원하는 그런 연애의 형태에 대해서. 아무리 순도 높은 보석이라고 해도 능수능란한 세공사의 다듬질 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석은 애용할 수 없다고 분명히 표현했다. 난 기껏 찾은 원석을 도무지 다듬을 수 없단 자격지심에 빠져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타인의 기호를 이해하는 요령을 부리는 게 어려웠던 난, 그저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을 했을 뿐이다. 그게 편했다. 그래서 그녀를 놓쳐버렸다. 212-213p

 

 주인공이 자신의 이별을 곰씹으면서 처음에 쌍년이었던 그 여자에 대해서 조금씩 생각을 달리하고 또 자신을 돌아보는 부분을 보면서는 영화 [500일의 썸머]가 떠올랐다. 영화 자체도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누구의 탓이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재미도 있었던 영화. 특히 남자 주인공이 자기자신의 방식으로 사랑을 했다는 점이 가장 비슷했고. 영화는 톰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또 자세하게 풀어주기 않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는 썸머가 쌍년이네 하다가 다시 보거나 썸머의 입장에서 사건들을 되짚어 보면서야 그녀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 책은 주인공과 함께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되새기고 또 그녀를 이해하고 사람과 사랑에 대해 성숙해가는 과정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읽으면서 여자의 입장에서 몇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음.

 여자 친구에게 지갑 받았다는 이야기에 너는 뭐 줬냐고 양아치라는 이야기를 듣는 남자. 남자친구에게 가방을 주고, 오빠 생일에 직접 만든 케이크를 줬다는 여자. 그 이야기에 가방 까지 받고선 케이크만 주는 건 좀 그렇지 않다고 하는 한 명은 다른 여자친구들에게 질타를 받는다고 했는데, 결국 사람 나름이다. 그런 친구들끼리 어울리는 사람도 있는 거고, 아닌 사람도 있는 거고. 남녀로 나눠서 이야기할 부분은 아닌게 나의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때는 나 이거 받았다 하면 우와~ 넌 뭐해줬어 라고 물어보면서 별거 안 해줬으면 남자의 예시처럼 구박하거든. 그리고 기본적으로 누구에게 선물받은 거로 자랑하는 이야기 자체를 별로 안 하고, 차라리 내 돈 모아서 산 거를 자랑하면 하지.

 

 주영이 집안에서 만든 칼은 거의 모든 레스토랑의 오너 쉐프들이 애용했고, 그들은 당연히 주영이를 알아봤다. 그래서 주영이가 갈 때면 메인 쉐프가 직접 요리를 한 뒤 우리 테이블에 와서 음식 맛을 자세히 물어보곤 했다. 그저 맛있다는 말만 반복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주영이는 재료와 식감, 양념과 조리법에 대한 소감을 늘 상세히 전달했다. 그 절차는 꽤 부담스러워 보였는데 언제나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주영이를 보며 감탄하곤 했다. 그건 주영이가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했을 때의 일종의 법칙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상황 자체가 귀찮진 않았지만, 자기 앞에 앉아 있는 타인의 눈빛이 그 상황으로 인해 바뀌는 걸 보는 게 거북스럽다고 주영이는 늘 얘기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자기 모습을 보며 실망하던 여자들이 그런 상황에선 급격히 호의적인 태도로 바뀌는 게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녀석이 처음부터 집안 얘기를 숨기려 한 건 아니었다. 칼을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나 가업을 이어야 할지도 모른단 얘길 꺼내면 여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두 단계로 나뉜다고 했다. 찌푸린 눈썹을 억지 다림질해가며 그래요?’라는 무미건조한 대답을 하는 거, 그리고 그 주제론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반응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쪽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니 만큼, 당연히 칼을 만드는 직업을 낯설게 생각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함께 레스토랑에 가서 VIP 대접을 받기라도 하면, 혹은 그와 비슷한 상황을 통해 주영이 집안의 화려한 실체를 알게 되면, 백팔십도 바뀌어버리는 여자들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녀석에게 있어 그런 태도 변화는 두 번 마주하기 싫을 만큼 괴로운 것이었다. 79-80p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백팔십도 바뀌는 여자들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일단 위에 친구들도 그랬듯이 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모습을 보이면 같은 동성 친구도 남녀를 떠나서 감탄을 하게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여자를 대표해서 말하기는 어려우니까 내 기준으로만 따져봐도 한 분야에 대해 정통하고 또 그것을 인정받으면서 그 능력을 내보이는 사람의 모습은 멋있을 수 밖에 없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얼마전에 가족들과 함께 갔던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 야노슈카 앙상블이라는 연주자들이 나왔다. 우리나라에 까지 초청받을 정도로 세계적인 연주자지만 첫인상은 배 나오고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들로 보였음. 그런데 한 곡 한 곡 연주를 할수록 제대로 빠져들었다. 멋있고 잘생기고 진짜 심장까지 두근거릴 정도.

 나는 남자가 여자보다 돈을 잘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분야 혹은 내가 잘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서 박식하거나 인정받고 뛰어난 모습이 보일 때 남자로서의 매력이 느껴진다.그래서 나는 위의 상황에서 분명히 우와~ 감탄하면서 정말 멋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 물론 그걸 스펙을 따지는 걸로 보거나 혐오표현인 김치녀스러운 거라고 매도해버리는 사람도 있을 거다. 돈을 뇌고 배경을 노리고 접근하는 여자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이성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부분일 뿐이라는 거지. 실제로 여자들 중에 내가 못하던 일을 손쉽게 처리하거나 내가 잘 다루지 못하는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많고. 가슴이 큰 여자에게 끌리는 남자가 있고, 하얀 피부에 끌리는 남자가 있듯이 나는 꼭 사회적인 지위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능력이 있고 목표가 있는 사람이 좋다. 물론 나도 그만큼 능력 있는 여자가 되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고.

 

 처음에 적었듯이 남자 버전의 섹스 앤 더 시티. 남자들의 여러 가지 사랑모습과 고민들을 읽어보면서 평생을 함께할 수 밖에 없는 -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일상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자 없는 세상은 없다 - 남자들에 대해서 공감까지는 아니어도 머리로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