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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때가 오면 - 존엄사에 대한 스물세 번의 대화
다이앤 렘 지음, 황성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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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따르면, 현재 건강한 상태 혹은 질병에 걸린 상태에서 생애 말기의 연명 의료를 원하지 않을 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사전 연명의료지향서로 민법상 성년인 19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다. 먼 훗날 자신이 생의 말기에 들어섰을 때 의학적 처치를 중단하겠다는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없는 상황(혼수상태)을 대비해서 본인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문서다.
둘째는 연명의료 계획서로 생의 말기에 직면한 상태는 아니지만 적극적인 치료에도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의료 기관에서 자신을 담당한 의사와 함께 본인의 연명 의료 중단에 대한 의사를 표명한 문서다.
328쪽 해제 / 유성호
죽음에 대한 책이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표현보다 적극적으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 적절한 책이었다. 조금 더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죽을지 고민하는 것보다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구나! 왜냐하면 삶의 방향성이 확실할수록 마지막에 대한 의견이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삶의 모든 측면에 경의를 표할 줄 알고, 누군가가 자신이 집이 없다거나, 죽어가고 있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거나, 더는 설 수 없다거나, 똑바로 걷지 못하거나, 분명하게 말하고 사고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61쪽
누구나 본연의 존엄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건 양보도 안 되고, 매매도 안 되며, 그냥 이유 없이 또는 세상의 모든 이유로 '나'는 소중하니까.
제 책은 사실 죽음에 대한 책이 아니에요. 삶에 대한 책이죠. 충실하게 살기, 의료 기술의 컨베이어 벨트 위로 납치당해서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을 강탈당하고, 삶의 마지막에 당신이 제일 아끼는 것들이 내동댕이쳐지지 않게 만들기에 대한 책이요.
71쪽
그렇다면 죽음과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이건 늘 느끼면서도 죽음만은 왠지 모르게 저쪽에 따로 떼어놓길 원한다. 죽음은 두렵고 음습한 어떤 존재라고 여기는 건 일종의 문화일까? 본능일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알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만큼 나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쩌면 기회가 있었어도 외면했는지도.
제가 생각하기에 '힘 있게 끝내기'에서 핵심요소 중 하나는 자녀, 부모, 사랑하는 이들, 친구들과 자기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정확히 대화하는 거예요.
72쪽
그러니 피하지 말고 생각하고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적극 동의했다. 하지만 실천하려면 끝내기 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해서 아직 머뭇거리고 있다.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깊이 헤아려 본 적이 없다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그러니 나는 먼저 나를 연구하는 것이 순서다.
죽음이 일상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여서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할아버지는 집에서 돌아가셨어요.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임종까지 보살폈고 돌아가신 뒤에는 시신까지 다뤘어요. 그런데 우리가 죽음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 치워버린 거예요. 죽음을 벽장에서 꺼내 대화를 나누는 일은 중요해요.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삶을 긍정하는 실천일 수 있거든요.
94쪽
나의 할아버지도 비슷했다. 다만 집에서 돌아가신 건 아니었지만 마지막까지 가족들이 보살폈고 안녕히 보내드리면서 애도했다. 가족과 헤어지는 경험이 적은지라 뭐라 비유할 만한 건 없지만 죽음을 터부시하는 분위기는 분명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맞다.
말기 돌봄에는 두 가지가 중요해요. 하나는 위안을 드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분들의 바람을 존중하는 일이에요.
264쪽
마지막까지 삶의 소중함과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연대하고 배려해야 한다. 나는 나의 때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여 읽기 시작한 책이 그때는 바로 지금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했다.
'때'가 과연 준비가 되는 것일까? 시간을 메우는 준비가 아니라 마음가짐이구나! 더하자면 나를 포함한 가족과 가까운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내 삶의 신념과 방향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인연을 꼽아 보며 그것으로 삶을 채워도 참 보기 좋겠구나 싶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채우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