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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평점 :
우리의 뇌는 어떻게 작동할까?
이 책,
정말 흥미로운 책입니다.
'뇌과학계의 칼 세이건' 이라는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이글먼도
굉장한 분이네요. 심지어 젊어요..^^
(그의 미래가 너무 기대됩니다..ㅎㅎ)
예전에 제목과 주제에 끌려서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 전작,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였는데.. 그 책은 어찌어찌 타이밍을 놓쳐서 못 읽었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그걸 어떻게 알고(??) 출간을 해주셔서, 그리고 그걸 또 운좋게 서평단에 선정되어서 이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역시.. 만날 인연은 다 만나게 되어 있다는.. 꿈보다 해몽스러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책 속에는 여러 요소가 들어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좋았던 것을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비유에 대한 부분이 특히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이전에 제 계정에서 여러 차례 리뷰로 다뤘던 책, <면역>의 필리프 데프머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필리프 데프머 이름 어려웠는데.. 여러 차례 다뤄서 그런지 외워졌음을 방금 인지했습니다.
사실 이 책에 대해서 어떤 메시지를 더 강조해서 전할 지 고민이 많았는데.. 방금 쓰던 글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인지' 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INCOGNITO 였던 것 같습니다.
<면역> 처럼 <무의식> 이란 짧은 제목인데~ 한국어 패치가 적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011년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적이 있는 책의 개정판?? 느낌이 나기 때문입니다.(아마도 맞을 것 같아요. 책에도 2011년이 적혀 있더라고요. 아니면 누가 알려주세요. 수정하겠습니다. ^^;;)
위에서 저는 '인지'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적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인지에서 연상된 '메타인지'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메타인지 하면 이 분이 저는 먼저 떠오릅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행동 방식을 들여다 볼 때, 두 가지 패턴을 보인다고 설명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가 그것인데.. 이건 부연설명이 필요하니, 그것보다 저는 책 <넛지>에서 사용되는 그것의 진화단계라고 볼 수 있는 '자동'과 '숙고'로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겁니다. 인간의 행동방식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두 가지의 도구로 선택을 하더라는 겁니다. 한 가지는 '자동' 입니다. 쉽게 말해서 본능적으로 빠르게 결정한다는 거죠. 저에게로 날라오고 있는 공이 닿기 직전에 발견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공을 피하거나 적어도 고개를 자동으로 돌리겠죠.
'숙고'의 경우는 자동과 반대로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천천히 결정하는 행동을 뜻합니다. 우리가 중요한 부동산 계약을 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미리 신뢰가 가는 부동산을 알아보는 것부터 모든 과정들이 숙고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테죠.
그런데 이 책은 그 중에 특히 '자동'에 대한 내용을 강조합니다. 둘 다 중요한 건 맞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자동적 인간인지를 잘 모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으로도 해석이 가능할텐데요.
제가 이해한 저자의 주장이 이게 맞다면 저는 이 의견에 크게 동의합니다. 우리의 뇌는 꽤나 쉽게, 그리고 자주 자동 시스템에게 지배를 받게 되는 것 같거든요.(무기력증과 우울증의 많은 경우도.. 이것에 해당될 것 같습니다. 이성적으로 "위험하지 않으니 괜찮아."라고 판단하고 행동을 바꾼다면 왜 계속 불안하겠습니까? 그게 마음처럼 안 되니까 계속 불안하고 무기력 한거죠..)
우리의 심리가 이렇게 된 것을 '진화론'이라는 도구를 가져다가 사용해서 연구하는 학문이 진화심리학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고, 진화심리학적 요소를 많이 반영해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요즘에는 트렌드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진화론 이야기가 정말 많은 책에서 짧게나마 등장하는 것을 경험 중입니다.)
(덧붙임 글에서 이어집니다..)
인간의 여러 특성들은 뇌와 어떻게 연결되어 설명이 가능할까요? 이미 뇌의 여러 부위가 대략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자면, 기억=해마, 불안=편도체, 논리적 사고=전두엽 뭐 대충.. 이런 식이죠. 그런데.. 자세히 알아보면 아직도 뇌에 대한 부분은 ~ 위에 적은 것들을 포함하여, 엄청난 미지의 세계라고 하더라고요?(어느 한 부위가 어떤 기능을 크게 담당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또 전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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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메타코그니션(초인지)'을 '메타이모션(초감정)'으로 확장해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이미 너무 많이 써버렸습니다. 그래도 이대로 끝내면 아쉬우니, 핵심만 이야기 하자면..
우리는 그동안 너무 우리 스스로를 이성적인 존재로 착각하고 살았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은 사실 무척이나 감정적이라고 느낍니다.
'메타인지'를 정말 많이들 이야기 합니다. 아주 단순화 해서 적어보면, 메타인지는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타인지가 높은 사람들끼리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대화보단 이성적이고 건강한 대화가 상대적으로 더 쉽게 가능하겠죠.(이마저도 단순화 시킬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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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100분 토론>을 한 번씩 보신다면.. 그것이 적정한 예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 일상도 사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100분 토론 속 대화와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표현이 너무 과했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있는 시기라서...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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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이모션, 즉 초감정은 메타인지와 비슷한듯 하지만 다릅니다. 자신이 느낀 감정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라고 설명하면 조금 어려울 수 있으니,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짜증나."라는 같은 말 속에는 여러 다른 감정이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봤는데 휴지가 없을 때 나오는 "짜증나(예를 들자면 황당하고 허탈하겠죠.)"와 꼰대로부터 어이 없는 지적을 받은 후 나오는 "짜증나"(예를 들면 납득은 안 되지만, 반박할 수 없어서 화가 날 테고요.)는 분명히 구분이 될 것입니다.
결론을 적어보자면.. 오늘 발췌한 내용에서 나오는
"내 머릿속에 누가 있는데, 내가 아니야." 이 말을 바꿔 보면.. "내가 했는데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이렇게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어." 이것에 대한 부분도 어쩌면 감정을 잘 들여다 보고 그것에 조금씩 이름을 붙여나간다면 더 알게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나로 살기로 했다" "주체적인 삶이 중요하다"라는 말에 적극적으로 수긍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이지만.. 생각보다 정작 그러길 어려워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직 감정에 이름 붙이기를 서툴러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봤습니다.(당연히 저도 포함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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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이름을 잘 붙이는 사회구성원들이 보다 더 많아진다면 조금 더 사회가 평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끝으로, 발췌히여 수정한 내용 공유드리며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내 머릿속에 누가 있는데, 내가 아니야
뇌는 정보를 수집해서 행동 방향을 적절하게 조종
하는 기능을 한다. 의사결정에 의식이 관여하는지
는 중요치 않다. 대부분의 경우 의식은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주제가 질투든, 매력이든,
기름진 음식에 대한 사랑이든, 지난주에 떠올린
훌륭한 아이디어든 상관없이 의식은 뇌의 활동
에서 가장 작은 역할을 한다. 뇌는 주로 자동으로
움직이며, 의식은 자신의 기저에서 움직이는 그
거대하고 신비로운 공장에 거의 접근하지 못한다.
저 앞에서 빨간색 도요타 한 대가 진입로를 빠져
나와 도로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이 알아
차리기도 전에 발이 벌써 브레이크를 향해 절반
쯤 다가가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저쪽 편에서 사
람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다
가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알아차리는 것,
이유도 모른 채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신경계가 '육감'을 제공
하는 것이 증거다.
뇌는 복잡한 시스템이지만, 그것이 곧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자연선택을 거치며
우리의 신경회로는 조상들이 진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조성되었다.
뇌도 비장이나 눈과 똑같이 진화의 압박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우리 의식도 마찬가지다. 의식이
발달한 것은 그편이 이롭기 때문인데, 그 이로움
에는 한계가 있다.
국가들의 특징적인 활동을 생각해보자. 공장이
돌아가고, 통신선을 따라 신호가 분주히 오가고,
기업은 제품을 배송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음
식을 먹는다. 하수로가 폐수를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한다. 경찰은 넓은 국토 전역에서 범죄자를
뒤쫓는다. 사람들은 거래가 성사됐음을 악수로
확인한다. 연인들이 만난다. 비서는 걸려 오는
전화를 처리하고, 교사는 가르치고, 운동선수는
경기하고, 의사는 수술하고, 버스 기사는 운전한
다. 내가 사는 훌륭한 나라에서 어느 특정한 순간
에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 해도,
이 모든 정보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
하다. 게다가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그 모든
정보가 쏠모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
한 것은 요약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문을 집어
든다. <뉴욕타임스>처럼 묵직한 신문이 아니라
<USA 투데이>처럼 가벼운 신문이다. 앞에서
말한 활동들이 신문에 전혀 실려 있지 않아도
우리는 놀라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실들뿐이다.
우리 가족에게 영함을 미치는 새로운 세법을 의
회가 방금 통과시켰다는 사실은 알아야 하지만,
그 세법과 관련된 상세한 이야기(변호사와 기업
과 필리버스터 등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딱히
중요치 않다. 이 나라의 식량 생산과 관련된 온
갖 시시콜콜한 정보들(소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고 그들 중 몇 마리가 식용으로 사용되는지
등) 또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광우병이
갑작스레 증가하는 경우 그 사실을 빨리 알게
되기를 바랄뿐이다.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처리
되는 과정도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쓰레기가
우리 집 뒷마당에 갑자기 생기지만 않으면 된다.
공장의 기반시설에도 우리는 관심이 없다.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문에서 이런 정보를 얻는다.
우리 의식이 바로 이런 신문과 같다. 뇌는 24시
간 내내 분주히 움직인다. 거의 모든 활동이 국지
적으로 일어난다는 점도 국가와 똑같다. 작은 집
단들이 끊임없이 결정을 내리고 다른 집단에 메
시지를 보낸다. 이런 국지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더 큰 연합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정신이라는 신
문의 헤드라인을 읽을 무렵이면, 중요한 활동과
거래는 이미 이루어진 뒤다. 막후에서 벌어진 일
에 우리는 거의 접근할 수 없다. 놀라울 정도다.
우리가 느낌이나 직감이나 생각이라는 형태로
낌새를 알아차리기 전에 모든 정치적 움직임이
이미 바닥부터 지지를 얻어 멈출 수 없는 수준까
지 진전되어 있다. 우리는 그 정보를 맨 마지막
에 알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상한 종류의 신문
독자라서 헤드라인을 읽으면서 마치 자신이 그
생각을 처음 해낸 것처럼 공치사(*남을 위하여
수고한 것을 생색내며 스스로 자랑함.)를 한다.
"방금 좋은 생각이 났어!" 기쁨에 차서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이 천재적인 발상이 뇌리에
떠오르기 전에 뇌가 이미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해놓았다. 막후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올려보낸
다는 것은, 신경회로가 몇 시간, 며칠, 몇 년
동안 정보를 통합하고 새로운 조합을 시험하
는 작업을 해왔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막후에 숨어서 움직이는 이 광대한 기계에 별
로 감탄하지 않고 그 공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다. 이런 우리를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뇌는
비밀리에 활동하면서 엄청난 마법처럼 아이디
어를 만들어낸다. 그 거대한 운영 시스템을 의
식이 인지하고 조사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뇌는 자신을 숨긴 채 작전을 지휘한다.
그렇다면 훌륭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공은 정확
히 누구의 것인가? 스코틀랜드의 수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월은 1862년에 전기와 자기를 통합
한 중요한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임종을
앞둔 어느 날 기묘한 고백을 했다. 자신이 아니
라 "자신 안의 어떤 것"이 그 유명한 방정식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디어가 자신을 찾
아오는 과정을 전혀 모른다고 시인했다. 아이디
어가 그냥 떠오를 뿐이었다. (중략)
요한 볼프강 폰 괴테도 중편소설 <젊은 베르테
르의 슬픔>을 쓸 때 자신의 의식이 기여한 것은
사실상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마치 손에 진 펜
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고 했다.(중략)
카를 융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
핑크 플로이드는 이렇게 말했다.
"내 머릿속에 누가 있는데, 내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