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 - 안견과 목효지 꿈속에서 노닐다
권정현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의 인기에 역사에 대해서 다시 한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학창시절부터 역사라면 사죽을 못쓰던 나였지만 그 관심이 일차적인 차원에 머물 수 밖에 없었고 깊게 파고 들지 못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여러 과목에서 언급되어 알고는 있었다. 그림에 조예가 깊지 않아서 인지 몰라도 "몽유도원도"를 보고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본 "몽유도원도"는 실로 대단한 작품이었다. 안평대군이 꾼 꿈을 안견에게 그려달라고 청하고 그 그림을 안견이 3일 만에 완성한 작품이 "몽유도원도"이다. 이 그림은 안평대군이 새로운 세상을 꿈꾼 그들만의 몽유도원이었다.

안타깝게도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일본 덴리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 되어있다고 한다. 민응신(1772~1832년), <서화잡기>에서 "사라진 그림에 붙여"라는 제목의 글이 전하고 있는 내용은 "후세인들에게 글로 남기니 혹여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와 같은 그림을 보거든 잘 보존하여 누대의 보물이 되도록 할지어다."라는 대목이 있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보물을 우리가 보존하지 못하고 다른나라에 가있다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3부로 이루어진 내용은 1부에는 안견을 중심으로 안평대군과, 목효지등과의 만남을 주로 이루었고, 2부에서는 목효지가 중심이되어 그의 대단한 풍수가로서의 능력에 대해 언급하지만 그를 믿어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보였다. 만약 풍수가 목효지의 말을 김종서가 조금이라도 귀기울여 들었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바뀌지 않았을까? 역사적인 사건들이 결정되어지는데는 한 순간의 판단으로 이루어진다는걸 이 부분을 통해서 다시한번 절감하였다. 3부에서는 본격적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접전이 이루어지는 부분이다. 결국 단종의 편에 서서 그의 보위를 지키려했던 안평대군이 패하면서 그를 비롯해 김종서, 이현로,목효지 등이 사형에 처해진다.

역사에 관한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면 고민되는 부분들이 있다. 저 내용들이 픽션일까 논픽션일까? 어디까지가 사실이지? 어느정도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해도 세세한 부분들 까지 알지 못하는 이상 그것을 구분해 내는일은 좀체 힘들었다. 예전과 다르게 이러한 매체들이 그것들을 애용하는 사람들의 입맞에 맞추어 많은 허구성을 가미하고 있기때문에 그러한 사실을 감안하여 책을 읽는게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역사를 좀 더 바르게 보고 바르게 즐길 수 있기 않을까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 - 사랑했으므로, 사랑이 두려운 당신을 위한 심리치유 에세이
권문수 지음 / 나무수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여고생때 흔히들 그러하듯 나 역시 친구들의 상담자가 되어준 적이 많았었다.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호응해주고 그들이 마음을 풀 수 있을 때까지 옆에 있어주는 일.....이 책을 통해 내가 그때 친구들에게 해 주었던 방법들이 최상의 치유법이었다는걸 알았다. 

보통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듣게 되면 그 고민이 이성에 대한 사랑이라면 더더욱 훈수를 두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랴. 그 당시엔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친구가 스스로 깨우치고 움직이지 않으면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오고 만다. 

친구가 이성에 대해 고민을 이야기 한적이 있었다. 친구가 사귀는 남자친구는 사귀는 사이임에도 의처증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했다. 남자 친구들은 물론이고 여자 친구들과의 통화 혹은 만남도 경계하고 질투한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그친구에게 남자와 헤어지라고 말했었다. "너가 그와 결혼하게되면 평생 고생할 것이다." 라고 충고했었다. 하지만 맘 약한 그 친구는 결국 그를 내치지 못했고 지금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결혼생활에 위기가 없었던건 아니지만 현명하게 잘 넘기는 모습을 보며 내 어리석은 조언이 부끄러웠다. 선택은 그 친구의 몫이었던 것이다.

책의 저자 역시 이야기 한다. 사랑으로 고통받고 마음의 병을 얻어 병원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고자 한다. 하지만 자신이 테라피스트인가 싶을 정도의 말을 할 때가 있다고 한다. 그건 선택의 문제인데 환자 혹은 클라이언트들의 치료를 받고자 하는 의지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중요한 선택을 그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의지를 확고히 한다면 그 다음으로 나아가기는 쉽다. 끝까지 치료에 임하고 완쾌될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선택을 테라피스트가 도와준다면 어떻게 될까? 임시방변일 수 밖에 없다. 댐을 임시방편으로 막아놓으면 어느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듯이 그들의 의지가 없는 치료는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그 사랑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 주위에서도 흔히들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아픔도 아픔이다. 그러나 "이성 간의 사랑과 성처"에 대해 정의하고 그것을 치료하기 위한 치료법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다. 체계적인 이론개발과 치료에 소홀했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사랑에 무감각해지고, 불안, 상실, 편력, 중독, 금기, 트라우마, 오해, 극복이라는 이름의 사랑에 상처받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치료법이 빨리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유년기 시절을 보낸 곳은 아담한 크기의 마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대문이 있는 집이 드물 정도로 마을 사람들간에 왕래도 정도 돈독했었다. 그랬던게 불과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20년이란 세월동안 내 주변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가스미초처럼 내가 살던 마을이 없어진건 아니지만 이제 더이상 대문 없는집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작은 마을 안에 새로 이사 들어온 사람들이 누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꽁꽁 문을 닫아걸고 마음을 문을 닫아버렸다.

그 20년 전 시골마을엔 집집마다 사진기를 가지고 있는 집이 드물었다. 사진관을 자주 찾진 않았지만 백일, 돌, 환갑등등 기념일에만 가뭄에 콩나듯 사진을 찍었었다. 그러던 것이 수동 사진기가 집집마다 생기고 자동이 생기고 디지털카메라가 생겼다. 사진기에서 필름을 꺼내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사진관으로 가서 현상된 사진을 보는 묘미도 있었다. 타이밍을 못맞혀 눈을 감거나, 딴곳을 보거나, 우스꽝스러운 입모양이라도 찍히면 배가 아플 정도로 웃곤 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생겨나면서 더이상 그러한 우스꽝스러운 사진들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그것들이 그리울때가 종종 있다.

가스미초 이야기 역시 빠른 일본의 경제성장에 발맞춰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건물, 도로가 생겨나고 자고일어나면 마을 하나가 뚝딱 만들어 질 정도로 경제성장이 빨랐다. 이노는 과거와 미래의 어중간한 현재에 머물러 있었다. 할아버지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혼자만 오롯이 옛것을 지키고자 하셨다. 지금은 거의 수입이 들어오지 않는 사진관을 굳건히 지키시며 장인으로써 자존심을 지키셨다. 그 자존심으로 사랑하는 여인의 지켰으며 그녀가 낳은 다른 이의 아들 신이치까지도 사랑으로 감쌌다. 신이치는 이노의 외삼촌이다. 젊은시절 전쟁터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신이치 삼촌을 사진관을 이어갈 후계자로 생각했지만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하자 제자였던 아버지가 엄마와 결혼을 하면서 후계자가 되었다.

이노는 신이치 삼촌의 죽음은 직접 겪지 못했지만 친구들의 죽음, 사랑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죽음을 오롯이 감당해 내야했다. 어디까지가 삶이고 어디까지가 죽음일까? 나 역시 이제 까지 살아오면서 죽음을 여러번 맞이했다.그 죽음이 무서워 차마 가까이 가진 못했지만 실감이 나질 않았다. 이노와 같이 나역시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한뼘 자라있지 않을까?  

나이가 한살 한살 먹을 수록 유년기 시절의 그리움이 더해간다. 때없이 맑았던 친구들과의 놀이도, 지금처럼 편리하진 않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는 그때 그 시절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춤추는 목욕탕
김지현 지음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서해대교 참사가 기억난다. 아는 사람이 서해대교 참사가 일어났던 안개 자욱한 그날 먼 발치에서 그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는 말을 전했다. 뉴스를 통해 전해들은 사고 소식에 전 국민이 안타까움과 비통한 심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날 미령과 현욱은 휴가를 가기위해 안개 자욱한 서해대교 위에 있었다. 사고는 순간이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꽝!꽝!꽝!" 여기저기서 부딪히는 자동차 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 거기 그곳에서 거꾸로 뒤집혀진 차량에서 미령은 구조되어 나왔다. 현욱도 곧 따라 나올것이라는 눈빛을 보내며 꼭 잡은 두 손을 풀어줬었다.

이 사고가 남편을 없는 세 여자를 한곳으로 모이게 한다. 바람난 남편과 이혼한 시어머니 박복남, 꿈속에 사는듯 뻥을 잘 치는 정호순, 현욱과 3년을 같이 살았던 여자 미령.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서 아픈 사람과 그 아픈 사람을 보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들은 시어머니 박복남이 병실에 던져주고 간 3장의 때밀이 이용권을 사용하기 위해 미령이 목욕탕을 드나들면서 느슨한 끈이 이어진다.

남편 현욱이 사라진 자리의 허전함을 돌연 나타나 자신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는 이구아나에게 의지하며 허벅지에 붙어있는 그 묵직함에 웬지 든든함을 느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서로의 가슴속에 꽁꽁 숨겨만 두었던 아픔이 독설로 내뱉어지고 그러면서도 가느다란 끈이라도 서로 이어져있길 바랬던 그녀들이었다.

현욱의 유골을 시어머니 박복남이 꿀어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미령은 시어머니 박복남에게서 현욱을 뺏어오려 하고 옥신각신하다 유골함이 떨어져 깨지고 만다.

그 큰 엉덩이로 모든것을 살리려 했던 정호순은 뼛가루가 날릴까 먼지가 묻을까 조심스레 모아 깨진 유골함 대신 젓갈통에 담는다.

먼저 간 사람을 보내지 못하고 끌어안고있던 이 여인들은 유골함을 가지고 한바탕 소동을 벌인후 시어머니 박복남의 일터인 목욕탕으로 향하고 따뜻한탕에 몸을 담그며 그여인들은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의지하게된다.

진정으로 현욱을 떠나 보냄으로써 며느리 미령역시 이젠 노아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서로가 서로를 떠날날이 언제가 될진 알 수 없지만 지금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책속의 관계도를 보면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돈간의 얽히고 얽힌 이야기들이지만 이들의 삶에 인간의 고뇌가 그대로 묻어나있다. 소외계층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끊임 없이 되풀이되는 삶의 고단함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상 飛上 - 태양을 향한 꿈과 열정의 도전
국가대표 스키 점프팀 지음, 박수경 정리 / 시공사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극장가에 소리없이 "국가대표"라는 영화가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홍보가  많이되지 않았던 "국가대표"는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점점 관객수가 늘어나고있었다.

스포츠 영화에 열광하는 나지만 좀체 시간을 빼기 어려워 관람을 못한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스포츠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박진감 넘치는 활력과 감동의 쓰나미를 입소문을 통해서만 들어왔었다.

그러던 중 "국가대표" 실제 선수들의 감동 스토리를 담은 책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먼저 "국가대표"라는 영화를 봐줘야 할 것 같아 픽션과 논픽션을 구별하고자 하는 의도도 다분히 담은 마음으로 영화를 관람했다.

"추격자"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한 하정우씨의 연기력은 "국가대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영화를 볼때도 결말을 알고 보는것을 즐기던 나였기에 책 속의 내용들을 영화를 통해 내용 파악을 어느정도 끝낸 책을 펼쳐 들었다.

5명의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이 스키점프를 시작한 동기는 어린아이의 호기심 딱 그것이었다. 별천지 무주 리조트 내부에 자신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막연히 좋았던 아이들이었다. 1991년 이들이 스키 점프 꿈나무에 선발 될 당시 나이는 초등학교 4~5학년이었다. 처음 열몇명의 아이들이 꿈나무로 선발되었지만 훈련을 하면서 뛰어내리는 것이 무서워서, 훈련이 힘들어서 그렇게 아이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 지금의 국가대표 선수 딱 5명만이 남았다. 

감독님이 "너희는 왜 안나가냐?"라고 물었을때 이들의 대답은 단순했다. "그냥 스키 점프가 좋아서, 스키를 타고 뛰어 내리는게 재미있어서요" 이들에게 스키 점프는 "너는 내 운명"이었다.

이들이 처음부터 후원사가 없었던건 아니었다. 겨울 스포츠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쌍방울에서 새로운 겨울 스포츠를 창단해봐라 하는 말에 열정이 넘치셨던 최돈국 감독님을 만나 해외로 훈련을 나가기도 하고 그곳에서 열리는 스키 점프대회를 휩쓸기도 했다.

앞만 바라보며 쭉쭉 나아가던 이들에게 제동이 걸린것은 우리 나라 국민들 모두가 힘든 시기였던 IMF때 였다. 쌍방울이 IMF를 이겨내지 못하고 도산하고 만것이다. 

이때부터 이들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서로를 경쟁자겸 코치겸 여기며 끈끈한 동료애로 점점 좋은 성적을 이루어 냈다. 하지만 이들이 금메달을 땄을때도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이슈가 되지 못했다. 나 역시도 스키점프에 대해서 잘 몰랐었다.

공사판에도 나가고 인형탈도 쓰며 짧은 시간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 돈으로 해외 경기에 참여하고 연습을 했다.

스키점프 후보선수가 없어서 이들은 20년 가까이 국가대표로 있어야했다. 부상도 있었고 슬럼프도 있었지만 단 하나 스키점프가 너무 좋아서 그 모든걸 이겨내고 지금 이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비인기 종목이었던 스키점프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던 이들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그 기회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 

영화 "국가대표"가 흥행하면서 지금 이들은 스폰서가 생기게되었다. 이제는 많은 국민들의 응원을 받는 이들이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멋지게 해냈다. 2009년 평창에서 열리는 스키점프 대회에서 금과 은을 따낸것이다.

비인기 종목 스키 점프에 대한 관심이 일회성으로 그치질 않기를 우리나라 모든 비인기 종목 스포츠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기를 바란다.

                예상치 않게 다가와 삶의 전체가 되는 걸 운명이라고 한다.
                   스키 점프는 나에게, 우리들에게 바로 그 운명이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