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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유년기 시절을 보낸 곳은 아담한 크기의 마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대문이 있는 집이 드물 정도로 마을 사람들간에 왕래도 정도 돈독했었다. 그랬던게 불과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20년이란 세월동안 내 주변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가스미초처럼 내가 살던 마을이 없어진건 아니지만 이제 더이상 대문 없는집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작은 마을 안에 새로 이사 들어온 사람들이 누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꽁꽁 문을 닫아걸고 마음을 문을 닫아버렸다.
그 20년 전 시골마을엔 집집마다 사진기를 가지고 있는 집이 드물었다. 사진관을 자주 찾진 않았지만 백일, 돌, 환갑등등 기념일에만 가뭄에 콩나듯 사진을 찍었었다. 그러던 것이 수동 사진기가 집집마다 생기고 자동이 생기고 디지털카메라가 생겼다. 사진기에서 필름을 꺼내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사진관으로 가서 현상된 사진을 보는 묘미도 있었다. 타이밍을 못맞혀 눈을 감거나, 딴곳을 보거나, 우스꽝스러운 입모양이라도 찍히면 배가 아플 정도로 웃곤 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생겨나면서 더이상 그러한 우스꽝스러운 사진들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그것들이 그리울때가 종종 있다.
가스미초 이야기 역시 빠른 일본의 경제성장에 발맞춰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건물, 도로가 생겨나고 자고일어나면 마을 하나가 뚝딱 만들어 질 정도로 경제성장이 빨랐다. 이노는 과거와 미래의 어중간한 현재에 머물러 있었다. 할아버지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혼자만 오롯이 옛것을 지키고자 하셨다. 지금은 거의 수입이 들어오지 않는 사진관을 굳건히 지키시며 장인으로써 자존심을 지키셨다. 그 자존심으로 사랑하는 여인의 지켰으며 그녀가 낳은 다른 이의 아들 신이치까지도 사랑으로 감쌌다. 신이치는 이노의 외삼촌이다. 젊은시절 전쟁터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신이치 삼촌을 사진관을 이어갈 후계자로 생각했지만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하자 제자였던 아버지가 엄마와 결혼을 하면서 후계자가 되었다.
이노는 신이치 삼촌의 죽음은 직접 겪지 못했지만 친구들의 죽음, 사랑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죽음을 오롯이 감당해 내야했다. 어디까지가 삶이고 어디까지가 죽음일까? 나 역시 이제 까지 살아오면서 죽음을 여러번 맞이했다.그 죽음이 무서워 차마 가까이 가진 못했지만 실감이 나질 않았다. 이노와 같이 나역시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한뼘 자라있지 않을까?
나이가 한살 한살 먹을 수록 유년기 시절의 그리움이 더해간다. 때없이 맑았던 친구들과의 놀이도, 지금처럼 편리하진 않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는 그때 그 시절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