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딸이 자신만큼 늙은 모습을 보지 못하지만 딸은어머니가 보지 못한 모습으로 늙었을 때 거기에서 어머니의모습을 본다. 어쩌면 경선도 이 이야기에는 공감할 것이다. 봄빛이 이렇게 환한 날에는 햇볕 아래에 앉아 눈을 감고 웃는 누군가가 뜻밖에도 젊고 예뻐 보이더라는 이야기라면 특히나 좋아할 것 같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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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잇몸이 내려앉아서 이는 당나귀 이빨처럼 길어 보인다. 근육이 빠져나가 다리가 앙상해지는데도 이상하게 좋아리에만은 덜렁거릴 살이 남아 있다. 매끄러웠던 손등에 지렁이 같은 핏줄이 우락부락 불거지는가 하면 턱밑은 닭벼슬처럼늘어진다. 난데없이 뺨 한가운데에 터럭이 자라나고 머리숱이빠지면서 점점 골룸의 헤어스타일이 되어간다. 찰랑거리던 참머리도 필연적으로 부스스한 곱슬이 된다.
특히 피부가 처지고 늘어지면서 얼굴이 울퉁불퉁해지기 때문에 평화롭게 가만히 있는데도 심통맞고 화가 난 사람처럼보인다. 식도의 연동운동이 둔해져 사레도 잘 걸리고 기침도잦아진다. 귀가 어두워진 탓에 목소리가 커지는데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니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자신이 못 듣는 거면서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 또 입안이 말라 구취가 생기고 그게 아니고도 몸에서 알데하이드인가 뭔가가 배출돼서 노인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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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그 얘기를 해주었을 때 안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의 첫 관심이 기뻐서만은 아니었다. 죽음을 생각하고 있던 순간에 그가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독한 결말은 아닐 것 같았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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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안나가 와이퍼를작동시켜 차창으로 달려오는 눈발을 밀어낸다. 병실에서 안나가 읽던 책에 주황색 고양이 책갈피로 표시해둔 부분도 눈 내리는 장면이었다. 거기 이런 구절이 있었다. 여든 살에 그녀는계속해서 새 친구를 사귀겠지.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놀면서.
경선의 시선이 그 앞의 한 줄에 가닿았었다. 춤춰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나.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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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살아가는 일의 고독함도 쉽게 수긍했다. 고독은 모든인간에게 내재된 천분 같은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경선이 사라진 뒤 살아남은 안나가 감당해야 할 고독은 그런 일상적 차원의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억하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는 세상에 살아남는 일. 안나에게 그것은 낯선 행성에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홀로 남겨지는 것만큼이나 두렵게 다가온다. 살아가고는 있지만 없는 존재인 것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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