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람은 말이야." 요한이 말했다. "명언을 인용할 때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거나 실은 본인이 생각해 낸 말일 때도 일단 ‘괴테가 말하기를‘이라고 덧붙여 둬. 왜냐하면 괴테는모든 것을 말했거든.‘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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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여는 추천사에는 ‘고통의 문해력‘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고통을 해석할 수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고통에 공감하며 마음을 포갤 수 있는능력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지요. 조금 더 확장해보면 고통의행간을 읽는 능력, 즉 그 사이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른 고통이 없나 찾아보는 능력이라는 뜻도 있겠지요. 또한 고통의의미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끝없이 질문하는 능력도
‘고통의 문해력‘이라는 말속에는 포함될 것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김인정 작가의 고통의 문해력에 감탄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부러워했습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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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지의 제왕>을 읽다 보면 톨킨이 이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습니다. 친구와 지인은 또 얼마나 잃었나 모릅니다. 그 어두운시기를 겪으며 어두운 작업실에 홀로 앉아 <반지의 제왕>을쓸 수밖에 없었던 톨킨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그토록 어둡지만 끝끝내 희망을 향해 전진하는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던 톨킨의 심경을 우리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이 없어서, 희망의존재를 믿을 수가 없어서, 기어이 희망으로 나아가는 연약한존재들의 이야기를 써야만 겨우 희망을 희망할 수 있었던 것아닐까요? 이야기에 기대서라도 희망의 여린 잎을 틔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야기가 아니라면 희망의 존재조차 상상하기 힘들었을 테니까요. 톨킨처럼, 아고타 크리스토프도이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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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빼앗아버리는 것. 이것은 우리에게 낯선 사건이아닙니다. 오래전 이 땅에서 벌어진 ‘창씨개명‘ 앞에서 사람들은 왜 그토록 저항했을까요. 그건 그냥 이름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름, 나의 가족의 이름, 나의 뿌리, 그 모든 것이 지워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지키겠다는 건,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최소의 권리를 빼앗기지않겠다는 투쟁입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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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그들의 행동 양식이, 그들의 어려움과 고민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라서요. 계속해서 현실의 저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어서요. 무엇이 정상일까요? 우리는 ‘다름‘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나요? 다름 앞에서 여성 (엄마)에게는어떤 역할이 요구되는가요? 그것이 정당한가요?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며 그를 고립시키고 있진 않나요? 그것이야말로 폭력 아닌가요? 지금도 다섯째 아이는 계속 태어나고 있지 않나요? 우리는 다섯째 아이를 사회에서 어떻게 배제하고 있나요? 다섯째 아이는 가해자일까요? 피해자일까요?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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