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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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야.
네 중학교 학생중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가을비가 지나가서 하늘이 유난히 말간 날엔 잠바 속주머니에지갑을 넣고, 무릎을 짚음으로 절름절름 천변으로 내려간다이. 코스모스가 색색깔로 피어 있는 길, 동그랗게 똬리를 틀고 죽은 지렁이들에 쇠파리가 꾀는 길을 싸묵싸묵 걷는다이.
네가 여섯살, 일곱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면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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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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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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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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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떡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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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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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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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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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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