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야.
네 중학교 학생중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가을비가 지나가서 하늘이 유난히 말간 날엔 잠바 속주머니에지갑을 넣고, 무릎을 짚음으로 절름절름 천변으로 내려간다이. 코스모스가 색색깔로 피어 있는 길, 동그랗게 똬리를 틀고 죽은 지렁이들에 쇠파리가 꾀는 길을 싸묵싸묵 걷는다이.
네가 여섯살, 일곱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면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