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수도. 써놓고 보니 피학의 민족 한국인답게 몹시) 변태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나에게 가까운 진실인 것만 같다. - P15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 P127
나무는 한 자리에 서서 계절을 여행한다. 모든 유기체가그렇듯 나무도 물을 품고 있다. 물이 얼어 팽창하면 세포가 터진다. 죽지 않으려면 겨울 여행을 잘 해야 한다. 동물은 세포에서 당을 태워 열을 내지만 식물은 다른 방법으로 추위를 견딘다. 겨울이 다가오면 잎에 보내던 수분과 영양분을 끊는다. 그래서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진다.우리에게 가을의 정취를 선사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에 나무는 둥치와 가지의포에서 물을 내보내고 당과 단백질 같은 영양분만 남겨세포 내부를 시럽 상태로 만든다. 세포 사이 공간에는 물이 있지만 혼자 돌아다니는 원자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순수해서 섭씨 영하 40도까지 얼음 결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서리와 진눈깨비와 눈보라와 혹한을 견디고 나서 봄의 징후를 포착하면 나무는 물을 세포 안으로 끌어들여 새잎을 틔우고 광합성을 재개한다. - P120
시간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그 무엇도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시간을 무한정 견뎌내는 것은없다. 시간은 영원을 서약했던 사랑을 끝나게 한다. 찬란한우정을 빛바래게 하고 강철 같은 신념을 부스러뜨린다. 사람의 몸을 늙게 만들고 생기발랄했던 철학적 자아를 혼돈과무기력에 빠뜨린다. - P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