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형의 삶 (양장) - 김민철 파리 산문집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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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전은 우연이다. 우연히 내가 저기에 없었고, 우연히 누군가가 거기에 있었다. 우연히 내가 안전하고, 우연히 누군가가 위험에 처했다. 일상이라 단단히 믿고 있던 지반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이 모든 순간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지. 나의 안전은 얼마나 수많은 우연이 결합해서 기적적으로 찾아온것인지. 이 안전에 필연은 없다. 도서관에서 읽던 책에 세월호이야기가 나와서 결국 울었던 며칠 전이 생각났다. 수많은 생이 가라앉는 순간을 모두 같이 목도한 기억이 우리에겐 있다.
이태원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몇 겹으로 짓눌린 날들도 있다. 오래 아팠고, 오래 슬펐고, 오래도록 죄스러운 날들이있었다. 나의 안전은 당연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을 일상이라 부르며 이것을 당연한 듯 누리고 있지만 이것은 특별한 것. 투명하도록 얇고 우연한 안전이 손에 만져졌다. 나의 안전이 누군가의 위험을 담보로 한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누리는 모든 말짱한 생활이 말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를 향한 건지도알 수 없는 미안함이 밀려왔다. 더는 음악 속에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창문을 열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안전을 빌었다. 그렇게 창가에 밤늦도록 앉아 있던 밤이 있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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