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날의 여름방학을 떠올려본다. 친가나 외가가 시골에 있어서 그림일기에 논과 밭, 원두막 그림을 그려 넣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서울에서 꼬박 방학을 보내야 하는 나는장마 걷히고 남은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엔 나가 노는 대신다락에 올라가 아버지의 낡은 트렁크 사이에 낑겨 앉아 만화책을 읽으면서 고구마나 감자, 찐빵 같은 간식을 먹는 게여행이었다. 그것도 싫증 나면 그냥 마루에 앉아 추녀 끝 빗방울이 마당에 만들어놓은 구멍들을 멍하니 보며 ‘비멍물멍‘을 했다. - P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