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돈같은건 중요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매 순간 살았지만, 사실 돈이 중요했다. 한 달을 다니면 한 달치 월급을 받았고 그건 한달치 밥과 술과 집과 버스와 영화와 데이트와 취미와 수다와 즐거움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돈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지는않았지만, 누구 앞에서건 돈 이야기를 하는 건 여전히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돈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그 모든 세계가 좋았다. 친구가 시험에 붙었을 때 회전초밥집에 데리고 갈 수 있어서 좋았고,
점에서 책 두세 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어서 좋았다. 남자친구에게 밥도 사고 커피도 사고 술도 살 수 있어서 좋았고, 하루에 몰아서 영화를 네 편이나 봤는데도 잔고 걱정이 없어서 좋았다. 겨우그거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겨우 그게 나에겐 대단한 사치였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진짜 사치는 어차피 내 꿈속에 없었다. 다음 달이면 다음 달 월급이 들어오고, 그건 다음 달 치 꿈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놀랍도록 안전한 꿈이었다. - P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