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의 개들 - 제11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을 1회부터 주욱 읽어 오고 있는데, 분위기가 어느새 많이 바뀐 걸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가족 이야기나 삶의 묵직함등 조금은 묵직한 주제였다면, 어느 순간부터 블랙 코미디나 풍자를 빌어 쓴 소설들이 눈에 띈다.

내 머릿속의 개들 역시 블랙 코미디이며 풍자극이라 볼 수 있다. 마치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이 겪어온 일들과 심정을 토로하듯이 씌어진 이 소설은 왠지 무성 영화의 변사가 재치좋은 입담으로 그 내용을 이야기해 주는듯 하다.
시종일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작가의 청산유수같은 언변술에 이리 취하고 저리 취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다.

껄껄대며 웃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묘하게 마음속이 가라앉았다. 효용과 가치 창출로만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현대 사회나 자본과 권력으로 돌아가는 현대 사회, 미의 기준이 일률적인 잣대로만 매겨지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어이없을 정도로 과장된 단어를 사용해서 드러 낸다.

사람은 실업자 상태인 A와 언젠가 실업자가 될 B로 나누어 생각하는 주인공 나 고달수는 어느 날 미국 물 먹고 자칭 팝 아트 예술가가 되어 나타난 마동수에게 한가지 제안을 받는다. 그것은 자신의 아내를 유혹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 만들어 달라는 것.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혼을 위해서? 고달수는 처음엔 도덕적 양심이란 것으로 마동수의 제안을 거부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백수 주제에 그걸 거부할 양심은 곧바로 우주 멀리 날려버리고 마동수의 제안을 받아 들인다.

자, 작전 개시!
그런데, 막상 고달수의 아내 말희를 만나보니 은근히 말도 잘 통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일단 돈을 받았으니, 착착 작업을 진행시키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계절이 두 계절이나 지났다. 그 무렵 말희의 예전 사진을 보게 된 고달수는 말희에게 다이어트를 제안한다. 고달수의 말에 따르면 대리석에서 비너스를 발견하는 것이라나?

호오라.. 알고 보니 고달수도 쭉쭉빵빵한 여자가 좋은 천상 남자로구나. 역시 말이 통한다는 정신적 교류와 몸은 달리 반응하는 고달수는 역시 평범한 남자, 보잘 것 없는 그릇을 가진 남자였다. 어쨌거나 일단 말희는 고달수의 사랑고백(?)에 넘어가 다이어트를 하지만, 그녀의 몸은 단 것을 원했고, 모든 것은 도로아미타불이로다.

그후 어떻게 되었느냐. 고달수는 말희에게 마동수가 제안했던 이야기를 던지고 그녀 곁을 떠나버린다. 그후 다시 실직자 상태로 지내던 고달수는 말희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그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막상 그녀가 곁에서 없어진 후에야 정신을 차린 고달수는 그녀를 위해 피둥피둥 살을 찌운다.

아아.. 이 무슨 멍청함이란 말인가.
뚱뚱한 여자를 사랑하는 방법은 그녀를 날씬쟁이로 만드는 것도 아니요, 자신이 뚱뚱해져서 그녀와 비슷한 몸매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는 그 것이 사랑이 아니더냐. 하여간 뚱뚱한 고달수는 뚱뚱한 말희를 찾아 나서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건?

읽으면서 큭큭대고 웃었다.
현란한 말솜씨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적절한 비유에 맞장구쳤다.
그러나 결국 쓴웃음이 지어졌다.
이 모든 설정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자, 즉 효용성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사회를 한껏 비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희는 마동수에게 돈줄이기도 했지만, 결혼 당시에는 그럭저럭 봐줄만한 통통함이었다. 그러나 도미행 이후 말희는 설탕중독자가 되었고, 마동수는 성공한 팝아티스트가 되어 마누라를 버릴 음모를 꾸민다. 굳이 사회 전체를 들먹이지 않아도, 필요에 따라 결합하고 필요에 따라 버리기도 하는 현대 사회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가. 마동수의 마지막에 묘한 쾌감이 생겨났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이유는.

사람은 죽으면 다 똑같다.
하지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고 있다.
웃으면서 이 책을 읽어도 마음이 묵직해지는 것은 결국 이 사회를 비꼬거나 비웃어줄 수는 있을지언정 바꿀수 없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