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찾아왔다. 새삼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가을을 잃었다고 말한다. 그들의 의식은 고요에서 고난으로 넘어가던 시기를 기억한다. 마냥 따스하던 봄이 지나고 여름이 찾아와, 마천루 숲을 찜통 속 만두마냥 푹푹 쪄대던 열기에 지쳐 영원처럼 느껴질 즈음에 이윽고 찾아온 서늘한 바람이 문득 가을의 입구로 들어섰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바람 역시 언제부터 바뀌었는지 모르게 뼛속을 에이는 칼바람으로 변해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다시금 찾은 평안을 느낄 새도 없이 혹독한 고난이 찾아온 것이다. 지금은 딱 그런 시기였다.


“이제야 겨우 조용해 졌네. 시끄럽게 꽥꽥되던 것들이 사라지니 속이 다 시원해.”


남자는 소금을 뿌리듯이 손에 든 막걸리 사발을 흔들며 목 안에서 끓어 오른 가래침을 탁 뱉어냈다. 벤치 끝에 앉아 말을 나누던 소녀는 막걸리 사발에서 자신의 얼굴로 튄 막걸리 방울을 기분 나쁘다는 몸짓으로 닦아냈다.


“겨울이니까요.”


단품의 미색에 홀려 공원을 찾아들던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뚝 끊어졌다. 차츰차츰 줄어들었다면 그 변화를 이토록 확실하게 체감하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몇 차례 비가 내리고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단풍들이 구겨진 패배자처럼 바닥으로 떨어져 내릴 시기에 맞춰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람들은 더 이상 단풍을 보기 위해 공원을 찾지 않았다. 이젠 그런 쓰레기와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이. 어쩌면 그런 낙엽더미에서 자신들의 한풀 꺾인 모습을 투영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괴로운 모습을 억지로 보고 기분이 나쁠 필요는 없으니까.


“괴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이에요. 가장 답답한 건 자신이 왜 그런 괴로움을 느끼는지 알지 못하는 것. 이유를 모른다는 것. 그냥 하루하루가 괴로운 거죠.”


“그래서 세상엔 술이 있는 거야.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나 막노동꾼들도 술이 없으면 버티지 못해. 어느 정도는 술로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인 괴로움을 억누르며 몸을 깎아내며 힘든 노동을 해내는 거지. 그리고 더불어 담배는 생명을 갉아대는 대신 평화를 주지. 중독은 생명을 갉아먹지만 그 안에선 평화를 느낄 수 있어. 그래서 사람들은 중독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거야.”


“그럼 그만 마셔요. 아저씨는 일도 안 하니까 술을 마실 이유도 없잖아요.”


“시꺼! 난 술에 중독된 거야. 괴로워서 중독된 거라고. 딱 집어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분명 뭔가 견딜 수 없이 괴로우니까 중독된 거라고. 그러니까 참견하지마! 마누라라도 되는 양 옆에서 그만 좀 조잘거리라고. 훠이!”


“아 진짜! 술 좀 튀기지 마요! 옷에 냄새 밴다고요.”


“그럼 꺼지면 되잖아! 왜 굳이 여기에 붙어서 날 괴롭히는 건데? 집에 가라고!”


“싫어요. 여긴 원래 내 자리라고요. 나중에 온 건 아저씨니까 법적으로 따져도 나한테 우선권이 있다고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떠나요.”


“헹! 내가 왜? 이렇게 조용하고 좋은 곳을. 물도 나오지 쉴 수 있는 의자도 있지. 애초에 공원은 시민 모두의 거라고.”


“먼저 꺼지라고 한 건 아저씨잖아요. 이 술주정뱅이야.”


“고딩이면 고딩답게 일찍 일찍 집에 들어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 이 싸가지 없는 계집애야.”


“저 대학생이거든요? 성인이라고요. 밤늦도록 뭘 하든 내 맘이에요.”


벤치 양 끝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도사리고서 소녀와 남자는 서로의 눈을 노려보았다. 서로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 그런 대치는 몇 분이고 계속 되었다. 마치 짐승이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다른 짐승과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눈싸움을 하듯이 두 사람은 언제까지고 서로의 눈을 노려보았다.


“그만두자. 꼬맹이랑 무슨 감정싸움을 한다고... 그래 좋아. 있어도 좋다고. 대신 입 좀 다물어. 시끄러워서 막걸리가 어떤 맛인지도 모르겠다.”


“막걸리가 다 똑같지 무슨 맛이 있다고 그래요?”


“있지 왜 없어? 암! 있고말고. 너도 나처럼 많이 마시다 보면 알게 돼. 가만히 맛을 음미하다 보면 효모의 숙성 깊이를 느낄 수도 있지. 그러니까 조용히 입 다물고 있자고 우리.”


“좋아요. 나도 더 이상 아저씨랑 말 섞기 싫으니까.”


소녀, 효인은 목 주변으로 흘러내린 목도리를 단단히 여미며 공원의 낮이 고요히 일몰에 잠기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겨울이라 해가 짧은 탓에 그녀가 이곳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금세 땅거미가 찾아 들었다. 차가운 바람은 더욱 거세져 갔고 바람의 황량한 외침이 공원 구석구석에 울려 퍼지는 소리도 더욱 커져 갔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벤치의 두 남녀는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자연스레 어둠 속에 눈이 익어 어느 정도 실루엣은 인식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눈이 고양이의 그것과는 같을 수는 없기에, 결국 옆에 앉은 사람이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증명 받을 길은 목소리 정도 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 집에 가. 이런 시간에 나 같은 남자랑 있으면 겁나지 않냐?”


은근한 목소리. 말하는 대로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기보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그런 자신의 목소리에 그녀가 진짜로 겁내는 걸 두려워하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에 효인은 그만 풋 하고 웃어 버렸다.


“날 무시하는 거냐?”

“아뇨. 오히려 지금의 말에서 더욱 안심이 들어서요. 확신이라고 할지,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네요. 생긴 것과 달리.”


“당연하지. 난 이래봬도 신사라고. 여자에겐 절대로 손 안대. 아무리 열 받게 굴어도 말이야.”


남자의 목소리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차 있었다. 남자에겐 그런 것이 가장 큰 자부심 중 하나이리라. 자신보다 약한 이를 괴롭히지 않는다. 불의를 못 본 체 하지 않는다. 역경에 굴복하지 않는다 등등. 어찌 보면 바보스러우리만치 한심한 것들이지만 가끔 여자들은 도리어 그런 남자의 순수함에 끌리곤 하는 게 아닐까? 자신에겐 없는 단순함에 말이다.


“그거 잘됐네요. 앞으로도 아저씨랑 싸울 일 많을 것 같은데.”


남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사발에 마지막 한 방울의 막걸리까지 탁탁 털어내 우악스럽게 들이킨 그는 크게 트림을 하고는 그대로 엉덩이를 미끄러뜨려 등받이 난간 위에 목을 걸치고 누웠다. 그의 눈은 먼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의식 역시 어두운 하늘을 헤엄치고 있는 듯했다. 멍하게 비어가던 남자의 눈동자는 곧 무거운 눈꺼풀 속에 잠겨 들었다.


“의기(意氣)란 건 아주 사소한 것에서 솟아나지만 그 무엇보다 위대하지.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건 그 의기야.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한 때의 영광만을 되새기며 살아가게 되지만 가끔 그 중엔 의기를 일으키는 자가 있지. 그럼 그 자는 마법처럼 전성기 때의 능력을 발휘하는 거야.”


술주정인지 충고인지, 의미 모를 소리를 내뱉은 남자는 잠이 들었는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자는 시늉을 하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크게 코를 고는 그를 효인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벤치 위로 무릎을 바짝 끌어당겨 앉았다.


“나한테 그렇게 구슬픈 목소리로 한탄을 해봤자 소용없다구요.”


바람이 일었다. 한 모금의 체온마저 앗아갈 듯이 차갑고 메마른 바람이 낙엽을 머금고서 둘의 주위를 맴돌았다. 남자의 손에서 떨어뜨려진 술병과 사발을 깨지지 않게 벤치 아래 한쪽 구석에 치워 놓은 효인은 펄럭거리는 신문 뭉치를 날아가지 않게 누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남자의 발치엔 벤치에서 노숙을 할 요량으로 가져온 듯한 신문 뭉치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 위에 날아가지 말라고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를 누름돌로 올려놓았는데 그게 밤이 되자 그의 예상보다 바람이 거세져 그만 신문 뭉치 꼭대기에서 굴러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바로 신문들이 비둘기마냥 비상하려던 그때, 막걸리 병과 사발을 치우던 효인이 쥐를 사냥하는 고양이처럼 타이밍 좋게 그것을 내리 누른 것이다.


“이거 설마 화장실에서 밑 닦으려고 가져 온 건 아니겠지?”


효인은 우글거리는 신문의 윗 장을 보며 혐오스럽다는 눈으로 콧잔등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녀는 곧 이 공원의 화장실엔 싸구려 펄프 휴지가 구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굳이 휴지가 있음에도 신문을 쓰진 않겠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좀 더 자세히 구겨진 부분을 살펴보았다.

낡고 헤져 있었지만 바람에 모서리가 뒤집힌 맨 윗 장의 날짜를 보니 바로 어제 나온 것이었다. 아마도 반복해서 펼치고 접고를 반복하여 이렇게 누더기가 되었으리라. 그 증거로 자세히 보니 윗 장 아래의 신문은 그나마 애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유난히 우글거리는 부분, 손가락으로 헤집은 것처럼 누덕 진 신문 귀퉁이의 기사를 읽어 내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나 볼 법한 실종 사건. 요즘 시대엔 이 정도 나이 대의 실종은 희귀한 일도 아니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부근의 여자아이들이 실종되고 있다는 기사는 매번 자고 일어나면 뉴스에서 들을 수 있었다. 가출을 했던지 유괴를 당했던지, 이도 저도 아니면 남 몰래 자살을 했던지... 원인을 추측해 보면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아니, 오히려 요즘은 트랜드의 이동이라고 할까, 이런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나이 대 아이들의 실종보다 유치부에서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자주 각종 매스컴의 화제에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엔 무심코 넘어가는 부분이라 잘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사건이나 사고 역시 유행처럼 돌고 도는 경향이 있었다. 사계절이 순환하듯이 언젠가 들었던 것 같은 사건이 어느 날 아무렇지 않은 일상처럼 들려오곤 했다.

이건 어쩌면 매스컴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은폐하거나, 혹은 서로 커다란 이슈를 공유하자는 모종의 계약을 맺고 약속을 한 것처럼 일시에 한 가지 주제에 대한 기사를 연이어 터뜨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 개인의 사정에 의해 뭔가를 은폐해야 할 필요가 있거나 어쩌면 요즘 한창 떠돌고 있는 음모론 같은 국가 차원의 협박이 있었다거나.....


“또 경계를 넘었네.”


본래의 목적에서 몇 단계를 뛰어넘은 자신의 망상 세계를 추스르며 효인은 신문지 뭉치를 벤치 위, 남자 곁에 놓아두고 주변에서 큼지막한 돌멩이를 주워와 날아가지 않게 고정시켰다.


“죽지 말아요. 다음에 봐요.”


남자가 깨지 않도록 작게 속삭인 그녀는 몸을 돌려 벤치에서 멀어져 갔다.





누구든지 가끔씩은 예상치 못한 결과와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신 스스로의 책임으로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타인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다가 그것을 배신당하여 생겨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미 벌어진 일. 그런 인연 자체를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허둥대지만, 사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 어차피 모든 건 마음에 달린 것. 상황을 받아들이는 아량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부분에서 효인에게 닥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제법 거물급이었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고양이를 한번 들어 올려 얼굴을 살펴보고는 여행용 우리에 집어넣고서 함께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듯이 집을 나섰을 뿐.


효인은 한숨을 쉬었다.


이후 그녀의 여정은 가볍게 집을 나선 모습만큼 녹록치는 않았다. 버스를 타는 데에 몇 십 분을 소요하고 전철을 두 번 갈아 탄 후에야 효인은 자신이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다는 사실을 인지한 듯했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 그녀는 지하철 입구 근처에 위치한 허름한 빌딩으로 들어서며 우리를 든 손에 꾸욱 힘을 주었다. 얼굴엔 한가득 비장한 그림자를 드리워졌다.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군,”


잘못된 물건을 항의하러 온 손님을 대하듯이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의 곁에는 창백한 얼굴의 여자가 서 있었다. 20대 초중반 즈음 되어 보이는 나이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 그녀의 두 손엔 와인 병이 들려 있었고 뚜껑은 열어놓은 채였다.


“사실은 이럴 때가 가장 난감하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처럼 반응이 그 반대라면 말이야.”



형광등 불빛으로 구석구석 환하게 밝혀진 사무실 한가운데에서 말끔한 검은 여성 정장 차림의 그녀는 꼿꼿이 몸을 세우고서 차가운 얼굴로 효인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선 마치 문상객을 맞이하는 상주 같은 엄숙함이 느껴져 효인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몸을 떨었다.


“어디 보자.....”



소년은 푹신한 소파에서 일어나 효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곤 곧바로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여행용 우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효인은 몸을 틀어 들고 있던 우리를 허리 뒤로 숨겼다.


“무슨 짓이야?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상태를 봐야 제대로 확인을 할 거 아닌가. 고양이를 보여주지도 않고 나보고 네가 말하는 ‘원래의 상태’로 돌려 달라고 하는 거야? 난 마술사가 아니라고.”


“... 이상한 짓 하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효인은 마지못해 손을 앞으로 가져와 우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우리의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고양이를 꺼냈다. 주인의 손에서 조금의 앙탈도 없이 순순히 우리에서 빠져나오는 하얀 고양이. 하리는 긴 털을 가지고 있어 흡사 솜뭉치처럼 보이는, 투명하고 푸른 눈동자와 늘씬한 몸매가 아름다운 터키시 앙고라 종(種)이었다. 녀석은 집과는 다른 분위기의 환경에 처했음에도 여타의 고양이처럼 반항을 하거나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주인의 품에 안긴 녀석은 그 말끔한 푸른 구안(球眼)으로 효인과 소년의 얼굴을 번갈아 돌아보고는 이내 고개를 모로 돌려 어딘가를 응시했다. 하리의 시선을 따라 효인이 고개를 돌리자 사무실 구석에 길고 검은-아마도 옻칠을 한 듯한- 나무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것을 집어넣는 용도라고 하기엔 크기가 너무 큰 그 상자는 일단 집어넣으려고 한다면 인간도 들어갈 정도의 너비였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니 이번엔 도리어 관 같이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한 눈에 보기에도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상자인건 분명했다.


“하얀 앙카라로군. 자신에게 생명을 준 존재를 확실히 인식하고 있어. 고양이치고는 예의가 바른 녀석이야.”


소년은 조심스럽게 하리의 머리를 쓸어주고는 몸을 돌려 원래의 자리, 상석의 푹신한 소파로 돌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옆의 소파를 가리키며,


“좀 앉지 그래. 보는 사람이 정신 사나우니까. 그리고 지금 당장은 네 고양이를 고쳐줄 수 없어.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나 말고도 한 사람 더 있어야 하거든. 조금만 기다리면 일어날 테니까 그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라고. 목마르면 음료수라도 한 잔 줄까?”


도저히 어린아이의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의젓한 몸짓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소년의 태도에 효인은 가슴 속에 묵직한 분노가 솟아났지만 어쨌든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그였기에 얌전히 권하는 대로 소파에 가 앉았다. 소년이 한 번 더 음료수를 마시겠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어 사양했다. 그리곤 신경 쓰인다는 얼굴로 뒤편에 놓여있는 예의 검은 상자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자고 있어. 밤과 낮을 바꿔 사는 녀석이라서 말이야. 잠을 자는 시간이 그렇게 길진 않지만 평범하게 낮에 움직이고 밤에 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수면 시간을 이해하기 어렵지. 어쨌든 맘 편히 있으라고. 과자 줄까?”


아이다운 치근이라고 해야 할까? 소년은 연신 지존부리를 권하며 그녀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효인은 자신의 고양이를 이렇게 만든 부분에서 그 역시 한몫했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었기에 쉬이 마음을 놓지 않았다. 자신을 경계하며 계속 권유를 거부하자 소년은 이내 포기해 버렸다.


“당(糖)은 여러모로 좋은 작용을 하지. 적정량 이상을 섭취하면 독이지만 적절하게만 섭취하면 머리를 쓰는 데도 우울한 기분을 푸는 데도 좋아. 기운을 북돋우기도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도 만들지.”


원래의 성격 탓인지 나잇대 다운 속 좁은 마음 덕인지 퉁명스럽게 한 마디를 다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그래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효인은 검은 상자를 다시금 바라보며 물었다. 그 다른 한 명이 저 안에 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애초에 저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다는 건 세속의 관념 상 맞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애묘를 변모시킨 주범 중 하나가 소년이라고 확신한 심증으로 다시금 저 안에 분명 사람이 들어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금방 뚜껑 열고 나오겠지. 지금 즈음이면 많이 배고플 테니까.”


“뭐?”


뚜껑을 열고 나온다는 소리를 듣자 효인은 소년을 돌아보며 억센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와 동시였다. 등 뒤에서 나무문이 열리는 듯 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온 것은.


“일어났네.”



소년은 다시금 채워진 와인 잔을 기울여 붉은 알코올을 한 모금 마시고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시끄러워서 깼나? 일어나기엔 아직 좀 이른 시각 같은데.”


“응? 아니. 자기 전에 알람을 맞춰 놓았거든.”


“알람?”


“실험 같은 거라고 할까 훈련이라고 할까. 내 스스로 생각해도 난 잠이 좀 깊은 편이거든. 필요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버릇을 들여놔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알람을 맞춰 놓으면 소리가 울린 후 얼마 만에 일어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로 했지.”



남자일까 여자일까? 효인은 딱 꼬집어 성별을 구분하기 어려운 그(혹은 그녀)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일단 머리는 단발. 게다가 차림도 남자 정장이었다. 같은 정장 차림이라도 치마를 입고 있는 여자와는 분명 구분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고운 목소리와 얼굴 생김, 호리호리한 몸매가 확실히 남자라고 단정 짓기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새치처럼 머리카락 밑 부분이 하얗게 염색되어 있는 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여성적인 취향? 남자다운 노련함? 어쨌든 그런 헤어 스타일이 세련되고 깔끔해 보이는 그(그녀)의 이미지에 플러스 요소가 되는 건 확실했다.


“근데 이 분은?”


“응. 자기 고양이 원래대로 해놓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찾아왔대.”


“아, 그 service? 그거 마음에 안 든대? 내 나름대로 엄청 smart한 녀석으로 골라서 한 건데 말이야.”

 

“일반인 눈에는 어떤 녀석을 깃들게 하던 괴물로 보이는 거겠지. 내가 봐도 제법 예의 바르고 이성적이고 얌전한 녀석인데 말이야. 안타깝군.”


소년의 말에 또 다른 소년(혹은 소녀)은 입술을 비죽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효인을 돌아보았다. 초록색 눈동자에 윤기가 흐르는 짙은 갈색 머리카락. 핏줄이 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를 한 이국의 소년은 인형 같은 얼굴로 효인에게로 다가왔다. 효인은 어리다곤 하지만 자신과 거의 맞먹는 키를 가진 이국인이 자신에게로 다가오자 내심 섬뜩할 만큼의 긴장감을 느꼈다.


“내 말투가 이상하진 않죠? 알아듣겠죠? 그럼 실례되는 일이겠지만 데가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확인하겠습니다만, 정말 저희들이 service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겁니까? bonus? 어쨌든 당신의 고양이를 바꾼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죠? 확실히 그 뜻이 맞죠?”


효인은 영어 울렁증은 아니었지만 이국인 특유의 따지는 듯 한 당돌함에 기가 죽었다고 할까. 그의 질문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분명 그것이 불만이고 그 원인을 캐묻고 따져 자신의 고양이를 원래대로 고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지만, 그걸 위해 어떤 것이든 불사하겠다는 나름대로의 전투 모드로 마음을 다잡고 찾아온 거지만 도저히 입술이 떼어지지 않았다. 선뜻 대답하는 것이 두려웠다.


“모습이 변한 것도 아니고 당신이나 주변에 피해를 입히는 것도 아닙니다. 영혼은 원래 당신의 고양이가 확실해요. 다만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이성을 지니게 되고, 약간의 힘을 준 것 뿐. 그 힘은 분명 자신을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신중하게 쓰여 질 겁니다. 더 정확하게는 그 힘으로 당신을 공격하지는 못해요. 그렇게 제한을 걸어두었으니까요. 신중에 신중을 기해 가장 얌전하고 이성적이고 제법 pride? level 높은 녀석으로 신중하게 골라서 깃들인 건데 그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니 많이 안타깝군요.”


문장의 중간에 들어가곤 하는 매끄러운 원어 발음을 들을 때마다 효인은 등골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여튼 그걸 감안하고라도 분명 한국어가 확실하고 못 알아들을 정도로 발음과 억양이 엉망인 것도 아님에도 효인은 대체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왠지 이국 소년의 면상에 주먹을 한 방 날려주고 싶은 용기라고 할지, 마음마저 들기 시작했다. 나무 상자에서 흡혈귀 마냥 튀어나온 수상하고 꺼림칙한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자신이 하리를 사랑하는 만큼 지금의 상황을 장난처럼 대하는 그들에게 분노를 느끼는 거겠지. 효인은 자신의 감정을 그렇게 해석했다.


“멜바튼 그만해. 어쨌든 사장이 알기 전에 이 일을 해결해야 해. 그녀 귀에 들어가면 골치 아파져. 원만하게 해결하자고. 조금 있으면 노하가 찾아올 거라고. 시간이 없어. 그래서 되돌릴 순 있는 거야?”


“없어. impossibility.



그렇게 대답하는 얼굴이 무척이나 여유롭게 보였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일이 아닌, 방관자의 입장에서 즐거운 장난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듯 한 악동의 얼굴이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엉망으로 만들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얼굴이다. 아까워. 이성의 실이 끊기기 직전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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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다크 나이트 (2disc)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게리 올드만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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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수 들고 환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유치한 짓은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해도 된다. 이 만한 스케일의 영화에 단지 그런 원시본능적인 반응은 어딘지 부족하다고 생각되잖아? 

일단 난 어릴적 부터 배트맨을 좋아했다. 가면을 쓰고 악당을 혼내주는 히어로들은 거진 좋아했기에 특별히 유독 그만을 숭배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히어로(마블이나 dc코믹)의 부류로써는 그밖에 없다. 다른 히어로들도 가면을 쓰고 능력을 발휘하지만 dc에선 그가 최고다.(뭐 이것도 좀 머리가 크고 확립된 호성향이지만) 

초기에 난 엉뚱한 생각을 해왔었다. 가면을 쓰고 폼을 잡고 최첨단 기계로 능력을 발휘하지만 1편과 리턴의 배트맨은 너무 어설프다. 물론 내가 접한 배트맨에 대한 매체 중 순위를 매기자면 베스트 3위에 오락가락할 물건들이지만 일단 그렇게 맨 성대로 소리를 내서야 그걸 간파 못하는 지인들이 xx들이다.  

(게다가 계단을 어렵고 힘들게 기어 올라가 결국 조커에게 처 맞는 배트맨을 보며 안쓰럽기도 했다. 그 시대에선 내가 바라는 가장 근사치의 로망이었지만 지금에 와선 왠지 시시콜콜한 고전처럼 느껴진다.) 

내가 그렇게 변했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그보다 뛰어난 배트맨 영화는 없다고 자부하던 내가. 그 원인은 바로 이 물건이 나왔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찬양하는 원시로의 강화. 마초적인 회귀... 

이 성향은 구닥다리의 근처까지 갔다왔던 007에서도 보여지는데 머리쓰고 기계에 의존하는 젠틀한 영웅상에서 몸을 쓰는 영웅상으로 시대가 바뀌었다. 

그 이유에는 요즘도 인기가 식지 않은 이종격투기라던지 영화상으로 보면 세계적으로 제법 짭짤한 맛을 본 본 시리즈의 충격 등을 들 수 있겠지. 스파이 특수 요원이 실전 격투기를 하다니! 그 물건이 처음 나왔을 때(난 공중파 더빙판으로 봤지만) 충격은 좀 컸다. 

멋지잖아 이거! 

그리고 그 클라이막스가 거대한 메이져인 007의 원시 영웅. 일단 2편까지 비슷한 컨셉으로 나온 신작은 많은 호평과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초기 1편이 나올 당시에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내 최고의 히어로인 배트맨을 좋아했는지 아니었는지는 나에겐 별 상관이 없었다. 그는 이전의 작품(메멘토)에서 완성도 높은 심리 스릴러를 보여왔고 배트맨 앤 로빈으로 이어지며 타락할 대로 타락했던 배트맨의 계보는 한줄기 빛을 얻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나의 영웅이 진짜 멋진 모습으로 다시 일어난다! 모두가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게다가 범죄 스릴러 전문가! 우왕굿! 미치겠네. 

당시 상영 끝물 극장가서 본 감상평은 일단 합격점. 살짝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새로운 배트카는 생각 이상으로 멋지고 와일드했고 걸걸하고 쉰 듯한 배트맨은 완벽한 갑옷(과학과 전투 능력)을 걸치고 과격하고 거칠게 악당들을 상대한다. 게다가 고리타분한 소심함도 없다. 마치 쌓이고 쌓인 분노를 폭발시키듯이 악을 향해 일갈한다. 본격적인 라운드에 앞서 보여지는 에피타이져로는 참으로 대단한 영화였다.

그리고 결국 2008년 그 본격적인 라운드가 개봉되었다. 배트맨의 영원한 숙적이자 죽이지 못하는 미치광이 조커가 나온다.   

 

다크나이트(dark knight).   

 

애초에 스포일러가 나오기도 전에 모든 배트맨 팬들과 영화팬들은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았다. 다크나이트는 두 사람을 동시에 일컫는 말이다. 좋은 해석이다. 결과적으로 그건 맞는 말이고 공식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영화를 본 누구나 알 수 있다. 배트맨과 조커, 누구도 승자는 없다. 동등한 결론이다. 물론 빤히 조커가 모든 면에서 앞서지만 히스 레져는 하늘로 올라갔으니까.(...) 

다음 편에서 조커는 배트맨과 놀지 못하고 또다른 조커는 정의에서 악으로 타락한 배트맨과 서로 거기서 거기인 애들의 치받이 싸움을 해야 한다. 물론 조커의 바람 자체가 그저 배트맨과 룰루랄라 재밌게 놀면 장땡이지만 그래서야 결국엔 어느게 악이고 선인 경계가 없어진다.  

난 누구랑 싸우는 거지? 나와 같은 세계에 사는 놈이랑? 오십보 백보? 민간인의 눈에는 어떤 의복을 걸치든 모두 군바리? 그렇다면 그는 결국 배트맨 개인적인 인간성과 싸우게 되는 꼴이다. 

누구도 그를 악당으로서의 풍모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모순이다. 그는 악당으로서의 품위를 위해 돈도 태우고 권력도 버렸는데 결국엔 대악당이 되지 못한다. 대악당이란 대단한 선과 싸우는 존재다. 어떤 의미에선 참 욕심없는 청렴결백이로군. 어이쿠! 

결국엔 조커 역시 선이나 악이며 그런 경계의 모호함 때문에 오히려 다른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들 사이에서 강력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영웅을 만들어낸 꼴이 아닌가!(일단 dc의 초인들은 같은 동료이면서도 아웃사이더인 그를 겁대가리 없는 그린 랜턴 외엔 모두 두려워한다.) 자신 스스로는 손해라고 생각 안 하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거다. 

일단 판은 잘 벌어졌다. 조커는 전설이 되었고 배트맨은 어떤 행동도 이해될 수 있는 위치에 놓였다. 선이지만 악이니까 어떤 판이든 크게 벌여도 이번 작에서 표현된 원론적인 고통은 없다. '죽어서 영웅이 되던지 살아서 악당이 되던지' 라는 모순에서 빠져 나왔다. 배트맨은 우화등선을 했다. 

그러하기에 더욱 히스 레져의 사망은 가슴이 쓰리다. 떠도는 루머에는 조커가 다시 등장한다고 하는데 그 새로운 조커를 믿어 버리기엔 이전의 히스 레져가 얄미울 정도로 너무 연기를 잘했다. 배트맨 팬들이나 영화 팬들은 모두 그가 눈에 밟힐 것이다. 대체 얼마나 죄 많은 인간이냐 당신은? 

......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이 영화는 가면을 쓴 히어로 영화지만 동시에 굉장히 탄력적인 범죄 스릴러다. 내가 1편 때부터 바라왔던 기대를 충족해 주었다. 맥빠지는 감상일지도 모르겠지만 더이상의 미사어구는 필요 없을 것이다. 일단 영화를 4번 정도 더 돌려보고 그 늬앙스를 즐겨보라. 그 행위에 회의적이 되거나 짜증이 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작품에게로 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조커는 범죄자의 정석, 변주, 궁극의 결말을 보여 주었다. 그 결과가 배트맨의 악당화다. 그는 거의 모든 것을 다 잃었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최고의 수확은 모두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목숨을 잃지도 않고. 이런 악당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입은 찢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지 않는가. 이런 이상향적인 범죄 스릴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배트맨 역시 찌질하다거나 소심한 면 없이 종막에는 다크 히어로의 극을 보여준다. 내키는대로 슈트를 바꾸고 차를 바꾸고 동네에 서 있는 차라는 차는 모두 사이드 미러를 깨어 놓으며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까지 친다. 온갖 최신 기기를 사용하고 1편에서 보여준, 독수리 오형제가 부럽지 않은 패러글라이딩의 완성을 이룬다.(게다가 미스 캐스팅의 히로인까지 그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다.) 이보다 더 윈윈적인 완성도가 어디 있는가?

뭘 더 바라는가? what more do you need? 

 

 

별을 네 개만 주는 이유? 셔플이 너무 아쉽다. 적어도 난 콘스탄틴 급 정도를 원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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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트랜스포머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마이클 베이 감독 / 파라마운트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일단 블루레이로써의 제품에 대한 평가는 굳이 입 아프게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을 듯 싶다. 저번 다크나이트에서  봤듯이 전방위 후방위 좌우, 어디든 부족한 면이 없다. 화면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지금의 영상표현에서 극장화면을 제외하고 블루레이를 이길 수 있는 건 없다.(그나마 hd가 좀 시비를 붙일만 하다.)  

트랜스포머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금속에 대한 질감 표현은 아이언맨이 좋은 예가 될 것이고 화면 속에선 진짜 금속이 움직이고 때가 끼고 부셔지고 불꽃이 튀고 베어링이 돌아가며 짜맞춰진다. 무엇을 더 설명해야 하는가? 

그보단 내용! 

일단 이 영화는 모두가 말하듯이 선과 악이 시원하게 나뉘어져 있다. 반전이나 음모는 없다. 그 덕에 아이들 영화라는 단순한 스토리 구성에 대한 평가절하를 당하기도 하지만 어떤 어른이든 일단 아이라는 시기를 거친다. 게다가 남자아이라면 으레 변신 로봇에 대한 추억 한 두개 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그 추억과 빠방! 뿡야! 터트릴 수 있는 기회 때문에 이 영화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의뢰로 이 영화를 접했을 때 매우 심드렁해 했다. 그러나 이후 트랜스포머의 본지사인 하스브로와 끊임없는 스필버그의 회유로 영화를 만들 결심을 세웠다. 

그리고 그는 결과적으로 아이였던 어른들을 위한 다른 의미로의 동화를 만들어냈다. 요즘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컨셉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이것도 그것과 크게 노선이 다르지 않다. 부수고 변신하고 폼잡고 격돌한다!  

많은 분들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으로 초기의 지구 진입씬과 최초의 변신씬을 꼽는다. 옵티머스의 테마였던가 그 노래가 흐르며 운석의 형태로 지구에 성층권을 진입하고 물흐르듯이 최초의 조우(변신)으로 이어지는 연출은 영화를 보다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흥분되고 감동적이다. 어떻게든 그 흥분을 분출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 정도. 결국엔 그 채증을 영화에서 풀어낼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클 베이는 최고의 해결사다. ha? what more need?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은 간단하다. 넉넉치 않은 제작비로 그는 완벽한 기계 생명체를 만들어냈고 지구의 국방력을 들었다 놨다. 추억과 로망으로 성인 남성들의 심금을 울렸고 귀여운 범블비로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했다.(더불어 동인녀들의 감성도) 

뭐가 더 필요하지?

설마 모조(mozo)? 그럼 딴데 가서 알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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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2disc) - 할인행사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맹인이었음에도 그의 이름은 'RAY'였습니다




50~70년대 사이엔 유명한 뮤지션이 많았습니다. 특히 한 뮤지션의 등장으로 미국 음악사는 또하나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지요.

그 전까지만 해도 가스펠(흑인 소울)은 신성한 것이었고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을 바꿔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가스펠을 처음 뒤 흔든 것이 레이 찰스. 재즈 계의 대부라 불리우는 고(故) 레이 찰스 선생이죠.

현 흑인 뮤지션 계에선 밥 말리, 스티비 원더등의 걸출한 뮤지션들이 많지만 그 이전 세대인 찰스 브라운이나 레이 찰스의 밑바탕이 없었다면 지금의 음악체계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애초에 조지아, 미국 남부에서 행해지던 인종차별에 대항한 첫 번째 인물이 레이 찰스였다는 점에서 그가 흑인 음악계에 기여한 공로는 간단히 설명할 수가 없죠.

이번에 영화를 보며 유명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그의 히트곡들을 듣는 재미도 참으로 쏠쏠했지만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그의 인생과, 그에게 얽혔던 인종차별에 대한 메세지도 참 가슴에 와닿는 주제가 아니었나 합니다.

미국 뮤지션이라고는 티비에 얼굴 잘 비추는 사람들 외엔 거의 전무하다시피 모르고 있는 제가 그의 이름을 처음 어디, 어느 때에 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장 최근에 들었던 것은 그의 서거 소식이었습니다.

배를 타는 항구에서 안개 때문에 배의 도착이 지연되는 가운데 자동차 라디오 모 음악프로에서 그의 서거 소식이 흘러나왔죠. 2004년이었으니 그리 길지도 않네요. 그때 역시 백수였던 저였지만 그가 어떤 음악을 만들어냈는지 알게 된 후 그 이름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더군요.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언체인지 마이 하트는 서양 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씩은 들어봤을테니까요.(그 외에도 힛 더 로드 잭은 재즈를 소재로 하는 영화라면 꼭 등장하는 명곡이니까요. 전체가 나오지 않더라도 그 긴장을 조성하는 도입부는 정말 유명하죠.)

그때까지 그걸 부른 가수의 이름은 몰라도 그 노래들 만큼은 좋아했던 저이기에 그의 서거 소식을 들은 이후 그가 죽기 전 바로 1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그의 자서전적인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코멘터리 부분을 보면 아시겠지만 감독은 이 영화를 15년 동안 구상하고 만들었습니다. 애초에 찍은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확신이 없어서,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로 구상과 각본 작업만 마치고 손을 놓고 있었는데 하늘의 계시인지(아슬아슬하게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 죽기 전 1년 전에 찍었으니 계시라고 한다면 계시겠죠.) 제이미 폭스라는 배우를 만나게 되고 영화를 찍을 결심을 하게 되죠.

제가 이 코멘터리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이 실제 레이 찰스와 제이미 폭스가 같이 합을 맞추고 폭스가 그의 모든 것을 따라하기 위해 연습하는 모습이었는데요. 솔직히 그 부분에선 미흡한 면이 있습니다.

코켄터리 두 번째 부분에서 대충 그런 바람에 충족되는 영상이 나오긴 합니다만 역시 많이 아쉽다고 할지, 하지만 정말 과거 젊은 시절의 레이 찰스와 그의 젊은 시절을 분한 제이미 폭스의 모습은 누가 진짜인지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더군요. 후반엔 레이 찰스의 장성한 아들이 나와 제이미 폭스를 보며 마치 자신의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고 그가 자신을 바라볼 때면 정말 아버지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찡해지더군요. 레이 찰스의 측근들 역시 연기에 감동했으며 정말 레이 찰스와 똑같았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하는 장면에서 나름 수긍을 했습니다.

오히려 영화를 다 보고 이후 코멘터리를 보면서 노년의 레이 찰스가 하는 행동이 영화와 너무 똑같고 목소리마저 비슷해서 깜놀. 계속 몸을 흔들흔들 하는 거나 연주를 하며 상체를 움직이는 모습, 사소한 제스쳐들이 오히려 진짜가 제이미 폭스를 과정되게 따라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더군요.(이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제이미 폭스가 3살때 부터 피아노를 치고 대학을 피아노 연주 장학생으로 들어가서 밴드 리더까지 했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오히려 후천적인 성대모사가 기가 막히더군요. 사람마다 목소리는 다른 법이고 인터뷰를 하는 목소리는 그렇게도 젊고 한데 그런 목소리가 나오다니... 이래서 헐리우드 배우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본점으로 돌아와서 실제 영화의 재미 역시 다른 여타의 자서전 영화들 보다 뛰어납니다. 평범한 드라마 영화와 비교해서 떨어지는 점이 없어요. 레이 찰스의 실제 인생이 그만큼 드라마틱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감독이 성장 드라마의 리듬을 잘 맞춘 것 같습니다. 처음엔 재능은 뛰어나지만 환경 문제로 빛을 보지 못하는 시점에서 시작하여 점점 세상 사는 법을 터득하고 좀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며 꽃피우는 레이 찰스의 인생을 보노라면 저까지 덩달아 즐거워지더군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화는 주제(무게감)을 잃지 않습니다. 이건 감독의 역량이라고 생각되는데 보통의 자서전 영화들이 실제 주인공의 화려한 성공에 전면적으로 초점을 맞춰 간간히 소스를 치듯이 고난을 보여주는 반면, '레이'는 음악에 관해서라면 거칠 것 없이 창창대로를 걷는 레이 찰스를 사이드로 놓고 무게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 그의 무거운 인생, 동생의 죽음, 시력을 잃은 후의 고난, 마약, 여자, 그리고 친우관계의 변화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그 사이사이에 그의 성장을 보여줍니다.
 
그러하기에 후반에 마약을 이겨내고 '그 후로 그는 오랫동안 행복했습니다.'라는 식의 엔딩을 넣었음에도 감동의 무게가 덜하지 않은 건 그 엔딩을 보기 전까지의 그의 고통을 충분히 납득한 이유였습니다. 예전 우연히 모 처의 케이블에서 이 영화(후반부)를 접하고 단번에 후일 구입을 결심한 이유는 이런 점 때문이었습니다.(제 기억으론 그때 당시 영화를 후반부 부터 봤음에도 그 무게감과 감동은 변화가 없었습니다.)

만일 누가 이 영화를 음악 쪽에서 일하는 자들 외에 다른 이에게도 추천할 수 있으냐 묻는다면 전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굳이 재즈나 알앤비, 서양팝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도, 혹은 허구적인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영화는 재밌게 볼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이 영화는 그저 한 유명인의 인생 자서전이 아니라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단면들이 녹아들어 있으니까요. 음악이라든지 마약이라든지 어지러운 사생활이라는 외적인 요소는 자신의 처지로 바꿔 비교할 수 있고 그게 우리가 겪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다 제쳐두고라도 괜찮은 영화 한 편 보고 싶으시다면 속는 셈치고 보세요. 물론 다 보고도 만족을 못 느낀다면 제가 보상할 길은 없지만 적어도 바닥을 뒹굴며 지름질을 하거나 재미없는 티비 프로를 보거나, 하등 영양가 없는 키보드 배틀을 하는 것보다 이 영화 한 편에 2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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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인저 : 무황인담 초화한정판 디지팩 패키지 (2DISC)
안도 마사히로 / 아트서비스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그날 받아서 그날 감상문을 쓴 적은 지금껏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늘 또 새로운 일을 갱신하게 되는군요.

일단 자세한 내용이야, 아니 그 전에 내용 자체는 그리 숨길만한 게 없습니다. 일단 이 극장 애니메이션의 심플한 주제는 한 남자의 속죄, 앞으로의 첫발, 꼬마 아이와의 우정 등이니까요. 나머지는 들러리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애초에 여자 캐릭터는 부각되는 애가 없고 그나마 뭔가 주인공과 썸씽이 있을 것만 같았던 기껏 폼 잡는 공주 캐릭도 후반의 바보 청년의 혈기를 부추기는 역할 외엔 무엇도 아니었으니까요.(후반에 그렇게 시원하게 몰아 죽이는 건 참 이영도 작가 식이라고 해야할지... '이 애니는 캐릭터 애니가 아니에요.'라고 대변하는 것처럼 가차없이 죽이더군요. 원래 죽을 놈들이긴 했지만 자비가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네.

내용은 다들 아시는 대로 소년은 쫓기고 경호원을 고용하고 결국 고용원은 우정과 속죄를 위해 소년을 끝까지 지키며 칼부림을 하시고 결국 그가 죽는지 안 죽는지도 모른다는 결말입니다.(설명이 이상한가요?) 전 이 애니를 보면서 내내 신경쓰이던 것이 영주와 그의 충신(사실은 야심가)의 목소리였습니다. 분명 한 명은 메기솔의 스네이크 성우 분이 확실한데 처음엔 갈피를 못 잡았거든요. 둘의 목소리가 비슷비슷 한 것이 조금 더 가서야 충신의 목소리가 그라는 걸 알았는데 대체 전 왜 두 사람의 목소리를 구별하지 못했을까요?(.....)

어쨌든 찡한 감동도 있고(연출의 안배를 잘 했다는 의미지요.) 액션 연출도 깔끔하면서 살짝 잔인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레벨을 지키는 것이 역시 본즈와 프로덕션 I.G의 합작이라고 느꼈습니다.

게다가 살짝 놀란 것은 액션의 잔혹함을 표현하는 정도더군요. 솔직히 이 정도까지는 생각지 못했는데 액션 측에서는 가이낙스와 다른 의미로 굳건한 본즈라고 할지. 액션과 잔혹 연출 부분은 보면서 무사 쥬베이와 살짝 비교를 해봤는데 어느 것이 낫다 못하다 라는 평은 방향을 잘못 잡은 기분이었습니다.(솔직히 둘을 비교하며 봤어요.) 이 애니는 깔끔한 것이 특징인 잔혹함이고 저 쪽은 전 어지럽고 악다구니 액션이라고 해야할지... 본즈의 검투 연출에서 인물들이 반동에 몸이 흔들린다던지 다리가 미끄러져 움직인다든지 하는 마치 게임의 모션캡쳐를 한 듯한 움직임은 훌륭하지만 뭔가 그러면서도 깔끔함을 유지하기 위해 정도를 지킨다는 기분일지. 성인과 그 바로 밑의 한계 때문인지 역시 에로스라던지 끈적이는 것이 없고 액션을 깔끔하게 만들려다 보니 칼부림 연출에서 그 이하로 혼란을 감수하려는 느낌을 받진 못했습니다.(하긴 검술이 쥬베이 마냥 그러면 애초에 상큼한 보이 앤드 맨의 싱그러운 여정에 금이 가는 사태가.....) 

위에 건 지극히 개인적인 아쉬움이구요. 취향이 살짝 어긋났지만 예전 R.O.D 극장판을 봤을 때의 상쾌하고 깔끔한 느낌이 좋았습니다. 아, 그리고 중간에 생각한 건데 역시 이 애니의 작화는 하가렌(구)의 그 작화가가 아닐까 하네요. 엑스트라들의 모습이라든지 간간히 그의 향기(...)가 났더군요. 제 착각일지도 모르지만요.

제게 찡한 느낌을 준다면 그건 좋은 작품. 그러므로 이 작품도 좋은 작품입니다.(그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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