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2disc) - 할인행사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맹인이었음에도 그의 이름은 'RAY'였습니다




50~70년대 사이엔 유명한 뮤지션이 많았습니다. 특히 한 뮤지션의 등장으로 미국 음악사는 또하나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지요.

그 전까지만 해도 가스펠(흑인 소울)은 신성한 것이었고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을 바꿔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가스펠을 처음 뒤 흔든 것이 레이 찰스. 재즈 계의 대부라 불리우는 고(故) 레이 찰스 선생이죠.

현 흑인 뮤지션 계에선 밥 말리, 스티비 원더등의 걸출한 뮤지션들이 많지만 그 이전 세대인 찰스 브라운이나 레이 찰스의 밑바탕이 없었다면 지금의 음악체계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애초에 조지아, 미국 남부에서 행해지던 인종차별에 대항한 첫 번째 인물이 레이 찰스였다는 점에서 그가 흑인 음악계에 기여한 공로는 간단히 설명할 수가 없죠.

이번에 영화를 보며 유명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그의 히트곡들을 듣는 재미도 참으로 쏠쏠했지만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그의 인생과, 그에게 얽혔던 인종차별에 대한 메세지도 참 가슴에 와닿는 주제가 아니었나 합니다.

미국 뮤지션이라고는 티비에 얼굴 잘 비추는 사람들 외엔 거의 전무하다시피 모르고 있는 제가 그의 이름을 처음 어디, 어느 때에 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장 최근에 들었던 것은 그의 서거 소식이었습니다.

배를 타는 항구에서 안개 때문에 배의 도착이 지연되는 가운데 자동차 라디오 모 음악프로에서 그의 서거 소식이 흘러나왔죠. 2004년이었으니 그리 길지도 않네요. 그때 역시 백수였던 저였지만 그가 어떤 음악을 만들어냈는지 알게 된 후 그 이름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더군요.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언체인지 마이 하트는 서양 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씩은 들어봤을테니까요.(그 외에도 힛 더 로드 잭은 재즈를 소재로 하는 영화라면 꼭 등장하는 명곡이니까요. 전체가 나오지 않더라도 그 긴장을 조성하는 도입부는 정말 유명하죠.)

그때까지 그걸 부른 가수의 이름은 몰라도 그 노래들 만큼은 좋아했던 저이기에 그의 서거 소식을 들은 이후 그가 죽기 전 바로 1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그의 자서전적인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코멘터리 부분을 보면 아시겠지만 감독은 이 영화를 15년 동안 구상하고 만들었습니다. 애초에 찍은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확신이 없어서,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로 구상과 각본 작업만 마치고 손을 놓고 있었는데 하늘의 계시인지(아슬아슬하게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 죽기 전 1년 전에 찍었으니 계시라고 한다면 계시겠죠.) 제이미 폭스라는 배우를 만나게 되고 영화를 찍을 결심을 하게 되죠.

제가 이 코멘터리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이 실제 레이 찰스와 제이미 폭스가 같이 합을 맞추고 폭스가 그의 모든 것을 따라하기 위해 연습하는 모습이었는데요. 솔직히 그 부분에선 미흡한 면이 있습니다.

코켄터리 두 번째 부분에서 대충 그런 바람에 충족되는 영상이 나오긴 합니다만 역시 많이 아쉽다고 할지, 하지만 정말 과거 젊은 시절의 레이 찰스와 그의 젊은 시절을 분한 제이미 폭스의 모습은 누가 진짜인지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더군요. 후반엔 레이 찰스의 장성한 아들이 나와 제이미 폭스를 보며 마치 자신의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고 그가 자신을 바라볼 때면 정말 아버지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찡해지더군요. 레이 찰스의 측근들 역시 연기에 감동했으며 정말 레이 찰스와 똑같았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하는 장면에서 나름 수긍을 했습니다.

오히려 영화를 다 보고 이후 코멘터리를 보면서 노년의 레이 찰스가 하는 행동이 영화와 너무 똑같고 목소리마저 비슷해서 깜놀. 계속 몸을 흔들흔들 하는 거나 연주를 하며 상체를 움직이는 모습, 사소한 제스쳐들이 오히려 진짜가 제이미 폭스를 과정되게 따라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더군요.(이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제이미 폭스가 3살때 부터 피아노를 치고 대학을 피아노 연주 장학생으로 들어가서 밴드 리더까지 했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오히려 후천적인 성대모사가 기가 막히더군요. 사람마다 목소리는 다른 법이고 인터뷰를 하는 목소리는 그렇게도 젊고 한데 그런 목소리가 나오다니... 이래서 헐리우드 배우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본점으로 돌아와서 실제 영화의 재미 역시 다른 여타의 자서전 영화들 보다 뛰어납니다. 평범한 드라마 영화와 비교해서 떨어지는 점이 없어요. 레이 찰스의 실제 인생이 그만큼 드라마틱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감독이 성장 드라마의 리듬을 잘 맞춘 것 같습니다. 처음엔 재능은 뛰어나지만 환경 문제로 빛을 보지 못하는 시점에서 시작하여 점점 세상 사는 법을 터득하고 좀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며 꽃피우는 레이 찰스의 인생을 보노라면 저까지 덩달아 즐거워지더군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화는 주제(무게감)을 잃지 않습니다. 이건 감독의 역량이라고 생각되는데 보통의 자서전 영화들이 실제 주인공의 화려한 성공에 전면적으로 초점을 맞춰 간간히 소스를 치듯이 고난을 보여주는 반면, '레이'는 음악에 관해서라면 거칠 것 없이 창창대로를 걷는 레이 찰스를 사이드로 놓고 무게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 그의 무거운 인생, 동생의 죽음, 시력을 잃은 후의 고난, 마약, 여자, 그리고 친우관계의 변화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그 사이사이에 그의 성장을 보여줍니다.
 
그러하기에 후반에 마약을 이겨내고 '그 후로 그는 오랫동안 행복했습니다.'라는 식의 엔딩을 넣었음에도 감동의 무게가 덜하지 않은 건 그 엔딩을 보기 전까지의 그의 고통을 충분히 납득한 이유였습니다. 예전 우연히 모 처의 케이블에서 이 영화(후반부)를 접하고 단번에 후일 구입을 결심한 이유는 이런 점 때문이었습니다.(제 기억으론 그때 당시 영화를 후반부 부터 봤음에도 그 무게감과 감동은 변화가 없었습니다.)

만일 누가 이 영화를 음악 쪽에서 일하는 자들 외에 다른 이에게도 추천할 수 있으냐 묻는다면 전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굳이 재즈나 알앤비, 서양팝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도, 혹은 허구적인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영화는 재밌게 볼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이 영화는 그저 한 유명인의 인생 자서전이 아니라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단면들이 녹아들어 있으니까요. 음악이라든지 마약이라든지 어지러운 사생활이라는 외적인 요소는 자신의 처지로 바꿔 비교할 수 있고 그게 우리가 겪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다 제쳐두고라도 괜찮은 영화 한 편 보고 싶으시다면 속는 셈치고 보세요. 물론 다 보고도 만족을 못 느낀다면 제가 보상할 길은 없지만 적어도 바닥을 뒹굴며 지름질을 하거나 재미없는 티비 프로를 보거나, 하등 영양가 없는 키보드 배틀을 하는 것보다 이 영화 한 편에 2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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