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연인
이시다 이라 지음, 최선임 옮김 / 작품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엄지 연인>이라는 제목처럼 뭔가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글이 아닐까 했던 내 생각을 완전 뒤엎어버리고 책 첫페이지에 이야기의 결론이 떡하니 나와 있다. 충격적이다. 책의 광고문구처럼 '어린 연인의 짧은 사랑과 충격적 결말'에 '엄지 연인'은 나에게 그렇게 안타깝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던지며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내놓은 역행하는 이야기 구도는 오히려 추리 소설같은 빠른 전개와 스토리로 긴장감을 자아낸다.  

여자도 싫고 이 세상도 싫다. 아무 것도 원하는 건 없고 오늘밤 이 시간에 이 장소에 살아 있는 것도 후회한다. 만약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세상이 끝날 때 같이 있어줄 사람이면 좋겠다. 

240평 정도에 한 달 임대료가 300만 엔이 되는 집에 사는 부유한 집안의 스미오, 빵 공장과 채팅 사이트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버는 쥬리아.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히 문자메시지로 시작해 돌아가신 엄마의 죽음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음지와 양지에서 자란 환경에도 서로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끼며 가까워진다. 비록 삶에 지친 쥬리아의 극단적인 선택에 그녀를 사랑하는 스미오도 함께 동반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선택을 하면서 끝을 맺지만 글은 단순히 연인들의 슬픔 사랑 이야기를 논하고 있지 않다. 

책의 소개에 보면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식으로 표현한 글이라고 해놓았지만 죽음으로 끝난 결말이 비슷할지는 모르나 이야기는 빈부의 격차에 의한 나락의 끝을 향한 어린 연인들의 잘못된 선택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충격적인 결말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동조하기 어렵다. 젊음의 방종이라고 하기엔 너무 한시적인 상황과 또 너무 극단적인 결정이여서 이해보단 측은하고 씁쓸하며 허무하다는 느낌 뿐이다.

"스미오는 사회의 제일 위쪽에 있잖아. 하지만 나는 밑바닥에 있어. 위에 있는 사람이 잠깐 엘리베이터라도 타고 아래 쪽을 견학하는 건 쉬워. 내려오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아래 있는 사람은 그럴 수가 없어. 한걸음씩 중력을 거스르며 올라가지 않으면 안 돼." (p.118) 

반년 치 보너스가 7억엔이고 롯본기힐즈 37층에 살고 있는 외국계 은행 사장인 스미오의 아버지, 요코하마 야마모토마치 공영주택에 사는 도박 좋아하는 트럭운전사 쥬리아 아버지. 그리고 비정규직 계약사원으로 빵공장에서 3교대를 하며 연봉은 풀타임으로 일해도 200만 엔대 중반인 쥬리아. 하늘과 땅차이인 빈부의 격차는 같은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다른 세상에 사는 것만 같은 환경을 만들어 낸다. 

책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역시 하루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한 현실 속에서 더 이상 내려 갈 곳 없는 하위 계층의 사람들과, 한 단계 더 올라가기 위해 부를 축적하고 날로 윤택한 생활을 하며 부피를 키우는 사람들로 나뉜다. 없는 것 보단 있으면 좋은 것이 돈이라지만 돈이 인간을 살리고 죽이기도 하는 생명부를 움켜쥐고 있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니 누구나 위를 향해 인간의 도리를 져가며 악착같이 올라가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평생 밑바닥이야. 한 걸음이라도 계단을 오르려고 하면 굉장한 벌이 내리는 게임. 스미오, 내 운명은 뭘까. 왜 하느님은 나한테 이렇게 장난을 치는 걸까."

불행은 불행을 낳고 불행은 행운을 전염시킨다고 한다. 좋은 생각이 좋은 사람을 끌어당기듯이. 그래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좋은 일만 생각하라는 자기계발서가 그나마 인간들의 삶을 지침해주며 힘을 지탱해준다.

'엄지 연인'은 처음 이야기의 시작부터 허무한 나날들을 보내며 인생을 낭비하는 스미오와 나락의 끝에서 버둥거리며 날개짓하는 쥬리아의 고된 인생살이를 결국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은 비록 채팅으로 만났지만 더할 나위 없이 서로에 꼭 맞는 연인답게 보기에 좋았다. 그리고 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깔려 있지만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 희망적으로 발전했으면 여느 연애소설처럼 평범하여 재미가 반감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미만으로 여기기엔 '1파운드의 슬픔', '아름다운 13월의 미오카', '4teen' 등을 쓴 이시다 이라 작가의 글이 너무 사실적이고 있을 법한 어두운 면이 있어 담대하리만치 담담한 문체로 잘 쓰여진 글이기는 하나 그리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작가의 글이 마음에 든다. 그의 책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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