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앗 - AJ공동기획신서 2
김서영 지음, 아줌마닷컴 / 지상사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시앗[-앋] 「명사」 남편의 첩.
 

처음 <시앗>책을 받아들었을때 불륜을 다룬 화제의 드라마 '내남자의 여자'가 생각났다. 2007년 당시 식을 줄 모르는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드라마가 방영되는 날이면 그다음날 주부들의 열띤 공방전이 뜨거웠던 작품이라,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혹자도 도대체 왜들 난리인지 궁금해서 몇 번 시청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는, '내 남자의 여자'라는 제목에서 풍기듯 불륜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저 나는 불륜에 관한 스토리의 드라마는 보기 불편하다. 물론 드라마라는 장르가 허구에 의한 이야기 구조로 쓰여졌지만 그래도 우리네 일상의 단면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모든 것이 허구라고만 단정지을 수 없기에 아무리 연기자의 뛰어난 연기에도 그리 재미있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불륜에 대한 악감정도 반발심도 있는 건 아니다. 내가 하면 연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이상 불륜이라는 말이 그리 강렬하게 내가슴에 와닿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드라마라는 일상생활 속 불륜을 아름답고 때로는 순수하게 아가페적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미화하고 과장되게 또는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둥 하물며 업보로 받아 들이라는 듯 메시지를 은연중 우리들 머리속에 세뇌하듯 무책임한 의도와 연출에서 즐겁지가 않은 것이다.  

하물며 드라마가 날 이렇게 불편하게 하는데 실제로 겪은, 아니 지금도 겪고 있는 주인공 김서영씨가 쓴 책은 나를 무척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지 책을 읽는 내내 '설마?' '거짓말이야.'라며 의심하면서도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며 단숨에 책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런데 난 <시앗>을 2009년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는데 벌써 3년이나 지난 2006년에 출간 된 책이었다. 그것도 책에 나와있는 설명을 보니, 아줌마닷컴(
www.azoomma.com)에서 엄청난 조회수와 댓글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출판을 하게 되었단다. 책 <시앗>은 그야말로 시앗, '첩'이라는 존재가 저자의 인생 앞에 나타나면서 겪게 되는 일상의 단상들을 담담하게 때로는 씁쓸한 거의 절제된 언어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절제된, 아니 억눌릴 수 밖에 없었던 표현들이 내 심장을 아프게 짓누르는것만 같아서 눈물이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근 25년이나 된 남편의 내연녀를 알게 된 순간 저자는 배신감을 느끼며 치를 떨었다고 했다. 그리고 숱한 좌절과 고통 속에서 '직무유기', '남편방조죄', '오만방자' 등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그들의 관계도 인정해주기로 했단다. 저자 김서영씨는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건 누굴 탓하고 누굴 까발리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너무나 아파서, 송곳으로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서, 어딘가에라도 풀어 놓고 싶었다고 한다. 처음엔 비난과 악플이 많이 달렸지만 책을 출판하고 나서는 그녀를 격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혼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내 자리에서 한 치도 물러나 앉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늘의 식물은 그늘에서 살아야만 한다. 시작이 그늘이었으면 끝도 그늘이어야만 한다. 나는 햇빛 찬란한 양지에 앉아서 음지의 그들을 관조하기에 이른다. 나는 더 많은 것을 가지기로 한다. 

<시앗>2권에서는 관계를 인정해준 시앗과 남편의 이야기를, 그리고 저자가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의 이야기를 좀 더 세밀하게 들려준다. 또 큰시아주버님이 있음에도 둘째인 남편이 한 가정(시댁 식구들)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으로써의 삶을 뒷바라지 하면서 살아 온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책을 읽은 독자들의 설문 자료에서 20-30대는 이혼을 하라고 하고, 40-50대는 이혼은 절대 해주지 말라고 했단다. 난  30대이다. 통계에서처럼 처음엔 차라리 이혼하고 앞으로 남은 여생이라도 자신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책의 뒤로 갈수록 그녀가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또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 
 
또한 그녀의 부처같은 인내를 옳고 그르다는 잣대를 휘두룰 만큼 환갑의 저자보다 내 인생은 너무도 짧아서 논할 자격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끝이 없는 여정을 여전히 감래해야하는 그녀의 고달픈 삶이 가슴을 싸늘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녀의 용기있고 지혜로운 대처법에 고마울 정도로 응원을 보내고 싶다. 
 
아래는 저자의 상황을 그나마 나타내 주는 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나이
  이 년 전 결혼 후 며느리와 유학길에 오른 큰아들은 소식 한 번 없고, 처음엔 그 아들이 괘씸하고 다음엔 그립고 다음엔 기다리고, 그러고는 체념하고. 독립해나가 있는 작은아들에게는 다시 상처 받을 일이 생길까봐 조심스럽고. 그리고 남편. 그 사람에게 여자가 있음을 처음 알았던 사 년 전에는 기절해 응급실에 실려가고, 잘못했다고 한 번만 용서해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시 믿고 속았음을 알고. 또 일 년 또 일 년 그리고 사 년이 지났다.
   이제 아무런 기대도 없고 욕심도 없이 예순이라는 나이가 되고 남편은 갑자기 비어버린 시간들을 주체하지 못해 쩔쩔매고, 그 여자가 남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나도 인정하게 되고,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모자라는 것 투성이라는 것도 스스로 깨닫게 되고, 그들의 이십오 년의 역사 앞에서 맥 못 추는 삼십 년이라는것이 처음엔 가슴 아픔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다 내 나름대로의 자만에 불과하고,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는 없다는 이론 앞에서 나는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엇던 일. 엄밀히 따지자면 진실로 자기 것이란 자기 자신밖에 엇는 것이 아닌가.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도 내 것일 수 없는데, 하물며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편에게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기대와 욕심을 버리기까지 많이도 아팠지만, 그래도 가정을 버리지 않겠다고 버티는 남편에게 감사하고 나를 형님이라고 깍듯이 모시는 그 여자의 인생에 대해서도 측은지심을 가지기로 하고, 둘이 떠나는 미국 여행길에 공항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 달라는 남편의 말대로 두 사람을 태워다 주었다.   



이렇게 덧없이 세월은 갔고 몸은 늙고 마음은 의욕상실이 되고 말았다. 빼앗긴 의욕이라고 생각지 않으려 한다. 피해의식은 금물이다. (1/p. 189)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형부와 언니의 이야기가 더 의문을 초래한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배움도 갖게 한다. 빈수레가 더 요란하다는 깨달음도 갖게 한다. 상대가 아끼는 것을 함께 아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2/p.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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