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제리 클럽
유춘강 지음 / 텐에이엠(10AM)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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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제리 클럽'은 서른 즈음에 결혼한 여자들이 마흔 즈음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결혼의 본질에 대해 한번쯤 되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어느날 '나'는 노후 연금으로 생각하던 남편이 자살했고, 늘 가방에 약을 넣어 다니는 소정은 바람기가 대관령 풍력 발전소 수준인 남편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있고, 골드 미스로 늙어도 멋진 위킹우먼 지소는 인생을 아마추어 정신으로 살며 결혼 10년에 스무 번이나 직장을 옮기며 마음 내키는대로 사는 철없는 남편과 살고 있다. 

주위에서도 들어봄직한 세 여자의 이야기를 작가는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생명 보험 안 들고 죽는 남편은 '남편 칠거지악'에 속하고, 운전면허처럼 자격 미달이거나 시험에서 떨어진 남자들은 결혼도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며 남자를 철저히 가해자로 표현하고 있다. 나이 마흔의 그녀들 얘기처럼 결혼 10년차가 되면 남편이란 노후 대비책인 연금과 동격인 셈인건지 아직 그 나이대가 아니어여서일까 왠지 수긍하고 추측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유교사상이 짙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아무리 사회생활을 하며 남녀의 평등 비율이 비슷해졌다고는 하나 그건 숫자상 통계일뿐 여전히 여자들의 위치는 남자들의 그림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남편들로부터 상처 받은 그녀들의 말을 빌려 표현한 작가의 문체가 매우 적나라하게 통쾌하기도 하다. 

어쩌면 그가, 남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남편이, 그의 인생을 순탄하게 하기 위한 위장용으로 나를 선택했을 거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란제리 클럽은 자살한 남편의 죽음을 미스테리하게 끌고 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소 서스펜스같은 기대치로 남편 앞으로 배달된 책에서 발견된 사진과 산악회 회원인 아름다운 남자의 출연 등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회자 '나'는 조금씩 죽은 남편을 의심하며 배신감을 느낀다. 


"마흔이 늦은 건 아니지. 사랑이라는 건 시간이 되면 끊어지는 기차 같은 건 아니잖아. 때와 장소와 대상을 불문하고 올 수 있는 안하무인이지."

온실 속 화초였던 '나'는 늙지도, 그렇다고 아주 젊지도 않은 나이 마흔에 지금까지의 자신보다 앞으로의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을 깨달은 후, 도움을 주는 남편의 회사 선배에게서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첫사랑이었던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인 그와 '여자 나이 마흔에 또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건 벼락 맞아 죽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연애를 시작한다. 여자는 혼자 살아도 남자는 혼자 못산다는데, 이태리 요리에 그리스 요리, 유명 식당의 요리 레시피까지 갖춰 놓았고 정원까지 딸린 예쁜 2층 집에 사는 선배라는 이혼남, 현실에선 이혼했어도 훈남에 속하는 남자이다. 하지만 그의 태도 또한 남편의 죽음만큼 애매모호하게 표현되어 있다. 

 

"결혼은 늪이다. 사랑이란 미끼 때문에 빠지는 늪."

대부분의 여성들은 작가의 말처럼 결혼과 동시에 러브 바이러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남편만 바라보며 자신보단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한가정의 주부로써 살아가게 된다. 비단 여자뿐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버지라는 타이틀 뿐이다. 여기 세 여자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결혼 10년만에 맞게 되는 결혼이라는 실상이 이렇게 무감각하고 건조하기 이를데 없는 무겁고 상처투성이인 삶이라는 것이 안스럽기만 하다. 여기서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 하나만으로 인생을 걸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하기에는 21세기가 너무나 위험천만한 세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랑으로 결혼하는 여자와 연금을 드는 기분으로 결혼하는 여자'와 '결혼하지 말아야 할 남자와 결혼해도 되는 남자'로 나누어야 하는 건지 의문을 느낄만하다. 



"여자가 마흔을 목전에 두면 남자, 종교, 친구. 세 가지 중에 하나에 미친다드라."

그녀들의 젊은 시절 파자마클럽이 사십대에는 란제리클럽으로 변모한 제주도 여행으로 인해 세 사람은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마흔이라는 세월의 잿더미 속에서 다시 부활하고 싶은 마음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결혼에 대한 중간 점검을 한 후 새로운 삶에 복무하는 세 여자의 이야기는 희망적인 부분으로 결론이 난다. 하지만 작가님이 책을 덮으면서 뒤로 갈수록 독자에게 너무 많은 부분을 떠넘기듯 이야기를 하다만 건 아닌가 싶다. 적절한 상상력은 도움이 되지만 2%부족한 문장은 모래를 씹은 듯 입안이 까슬하다. 그러나 운명에 맞서듯 과거의 '나'로부터 탈출하려는 그녀들의 비상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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